읽고 끄적 끄적...2014. 10. 10. 08:01

원래 "읽고 끄적 끄적"에 포스팅을 할 때는

책을 다 읽고 나서 쓰는게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 책은 이제 고작 몇 페이지를 시작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포스팅하는 이유는...

개기월식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10월 8일에 개기월식이 있을거라는걸 몰랐었다..

퇴근해서 운동하고 돌아오는 길에 또 다시 습관처럼 하늘을 봤더니 달이 반쯤 가려져 있더라.

아... 개기월식이구나...

느닷없이 맞딱뜨린 달의 변화 앞에 처음엔 좀 멍해졌었다.

그리고 나서는 나도 모르게 계속 달을 쫒았다.

1시간 예정했던 산책길이 어느새 2시간을 훌쩍 넘겼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달의 변화가 이정표였고, 시간이였고, 유일한 길이었다.

게다가 적월(赤月).

 

길어진 밤산책 후

최예선의 <밤의 화가들>이란 책을 펼쳤다.

사람들은 여전히 내게 묻는다.

혼자 사는거 외롭지 않느냐고..

외로움을 느낄만큼 혼자 산 기간이 긴게 아니라 조금 민망하지만

내 선택은 그런 것 같다.

혼자 사는 외로움이 아니라 혼자 사는 고요함을 택한거라고.

그 고요가 아직 나는 평온하다.

 

<밤의 화가들>

이 책은 읽는 책이 아니라

보는 책 그리고 감각하는 책이다.

책장을 넘기면서 알았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들 중 밤과 관계된 그림들이 이렇게 많았다는걸...

그림을 보면서 내가 놓친 시간들은 실루엣과 뉘앙스로 남아있다.

꼭 밤처럼....

 

그런 순간이 있다.

아니 있다고 믿는다.

딱 그 장소여야만 하고,

딱 그 시간이어야만 하고,

딱 그 사람이어야만 하는 순간들.

그것 역시 실루엣에 불과할 뿐임을

그림을 한 장 한 장 감각하면서 다시 느꼈다.

 

흐려지는 기억을 붙잡으려 살을 붙이는 일,

그건 간절함이 아니라

조작되고 왜곡(歪曲)된 환상일 뿐이다.

그 환상에 빠져버리면

현실은 함께 환상이 된다.

 

그러니 잊지말자!

내가 여전히 살아야 하는 세상은

환상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존 싱어 사전트 <카네이션, 릴리, 릴리, 로즈>

빌렐름 함메르쇠이 <스트란드가드 30번지, 실내>

빈센트 반 고흐 <론 강의 별이 빛나는 밤에>

빈센트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에>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4. 9. 25. 11:37

이 멋지고 대단한 소설을 나는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읽게 될까?

내게 터키를, 동유럽을, 마침내는 유럽을 꿈꾸게 만들고

결국 그 곳으로 발을 옮기게 만든 나의 위대한 작가 오르한 파묵.

2004년 그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들었을때

나는 뛰고 있던 런닝머신에서 그대로 멈춰버렸다.

우당탕탕...

운동하던 주위 사람들이 놀라서 소리 지르고,

트레이너들은 급하게 뛰어오고,...

내게 웃지 못할 헤프닝을 안겨 줬던 기억이 지금까지도 선명하다.

처음 <내 이름을 빨강>을 읽고 오르한 파묵이란 터키 작가를 알게 됐을때

너무 화가 나서 혼자 씩씩거랬더랬다.

화의 원인은,

이 책을, 이 작가를 그제서야 알게된 내 무능(?)하고 편협한 책읽기에 대한 분노였다.

솔직히 이런 마음도 있었다.

'책읽는다고 깝죽거리더니 여지껏 헛읽었구나...'

 

확실히 두 번의 터키여행은

이 책을 훨씬 더 재미있고 생생하게 느끼게 만든다.

아야소피아 주변과 술탄궁전의 골목들을 주인공들과 함께 걷는 기분.

순간순간 공간이동되는 환상에 빠지게도 했다.

역사책이기도 하고, 탐정소설이기도 하고, 환상소설이기도 한 <내 이름은 빨강>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것들은 다 화자(話子)이고 미스터리다. 

심지어 죽음도 말을 하고, 시체도 말을 하고, 그림도 말을 한다.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모든게 다 살아서 말을 한다.

이 책은 그야말로 alive다.

게다가 더 신기한건,

지금껏 여러번 이 책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매번 읽으때마다 새롭게 리셋된다.

분명히 책의 내용을 완벽하게 다 알고 있임에도 불구하고

읽고 있는 동안은 이제 처음 읽는 책처럼 새롭게 빠져든다.

정말 마술같은 책.

 

나는 지금 우물 바닥에 시체로 누워있다.

마지막 숨을 쉰 지도 오래 되었고 심장은 이미 멈춰버렸다.

 

이렇게 매혹적으로 시작되는 책을 도대체 어떻게 거부할까?

덕분에 요즘 오르한 파묵의 글들을 하나하나 찾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또 다시 오르한 파묵과 깊은 사랑에 빠지려나보다.

좋구나...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4. 6. 16. 08:41

니나 상코비치는 언니를 잃었다.

담도암 진단을 받은지 40여일 만에 죽음은 폭격기처럼 언니를 덮쳤다.

언니를 보내고 난 후 3년간 그녀는 실픔을 잊으려고 바쁘게 살았다.

사랑하는 네 명의 아들과 남편, 그리고 더 많은 남겨진 가족들이 그녀를 위로했고 걱정했지만

그녀는 위로받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날 보랏빛 의자에 않아 400쪽이 넘는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를 단숨에 읽고 나서

처음으로 편안하게 잠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다짐한다.
"하루에 한 권, 마법같은 독서의 한 해"를 살아가겠노라고.

 

..... 언니가 죽었고 나는 살아 있다. 삶의 카드는 왜 내게 주어졌으며, 난 이걸로 뭘 해야 하는가? 난 도피에 대해 생각했다. 도피하기 위해 달아나는 것이 아니라 도피하기 위해 읽는 것이다. 20세기의 작가이자 평론가인 시릴 코널리는 "말은 살있고 문학은 도피가 된다. 그것은 삶으로부터의 도피가 삶 속으로 들어가는 도피이다'라고 말했다. 내가 책을 활용하고 싶었던 방식이 바로 이것이다. 삶으로 되돌아가는 도피 말이다...

 

그녀는 책으로 슬픔을 흡수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녀의 선택이,,,

어쩌자고 나는 또 너무나 깊게, 그리고 절실하게 이해가 되던지.

내가 그랬으니까...

지금까지도 내가 그러니까...

살기 위해, 살아 남기 위해 나 역시도 "책"을 선택했다.

 

한 권을 끝내기 실허 가슴이 찢어진 적이 있는가?

마지막 페이지가 덮이고 한참 뒤까지도

계속 당신의 귀에서 속삭이고 있는 그런 작가가 있었는가?

                                    -엘리잡베스 메과이어 <열린 문>

 

<Tolstoy and The Purple Chair>

세상 무엇으로도 위로받지 못할 때

책을 통해서만 유일하게 위로 받아본 사람들은 안다.

읽어야 할 책을 남겨놓고는 결코 눈을 감을 수 없다는 걸.

책을 통한 위로와 도피는.

평안했고 따뜻하게 그리고 충분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바로 앞에 읽었던 줄리언 반스의 책이 겹쳐졌다.

우연의 일치였을까?

줄리언 반스 역시도 2008년 평생의 문학적 동지이자 뮤즈였던 아내를 뇌종양으로 잃었다.

위로되지 않는 슬픔을 견디던 그는 2013년 넓은 하늘 위에 기구를 띄우듯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를 출판했다.

 

...... 아직 젊을 때, 세상은 섹스를 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으로 나뉘었다.

나중에는 사랑을 아는 사람과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 나뉜다.

그 후에도 여전히, 세상은 슬픔을 견뎌낸 사람과 그러지 못한 사람으로 나뉜다 ......

 

오르한 파묵.

나를 지옥에서 건져내준 작가.

나는 그의 책을 읽으며 세상으로 다시 나올 수 있었다.

그래서 내게 오프한 파묵은 절대자이자, 종교이자, 구원이다.

 

내 생명은 그렇게 책과 연결되어 있다.

나는...

내가 읽은 모든 책들이 총합이다.

그게 바로 나...다.

 

...... 내게 독서의 한 해는 요양원에서 보낸 한 해였다. 그것은 내 삶을 채우고 있던 건강하지 못한 분노와 슬픔의 공기에서 격리되어 지낸 1년이었다. 그것은 책의 언덕에서 불어오는 치유력을 가진 미풍 속으로의 도피였다. 나의 독서의 한 해는 언니의 죽음으로 인한 감당할 수 없는 슬픔과 나를 기다리고 있는 미래 사이에 끼어든 행동 중지 기간, 나 자신을 위한 유예 기간이었다. 책으로 채워진 1년간의 집행유예 기간 동안 나는 회복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 회복 단계를 넘어서 다시 생활로 돌아가는 방법도 배웠다 ......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4. 4. 25. 07:34

요즘은 무심코 집어든 책이 자꾸 뒷통수를 후려친다.

그때마다 솔직히 많이 당황스럽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예고없는 가격이라면 언제라도 환영이다.

살아있음을, 살아서 이렇게 느끼고 있음을 감사하게 되니까.

"엘리펀트맨'

영화로도 제작된 이 작품이 실화란다.

그래서 절망했다.

1862년 영국에서 태어나 27살에 사망한 조셉 메릭

그의 병명은 다발성 신경성 섬유종증이다.

온 몸에 륭칙한 혹을 주렁주렁 달고 사는 사람.

인간은 그렇다.

"normal"이라고 규정된 것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바로 "elephant man"이라 부르며 가차없는 손가락질로 매도한다.

"괴물"은 그렇게 타인의 규정에 의해 그렇게 탄생된다.

 

솔직히 말하면 이 소설은 아주 잘 쓴 책이 아니다.

오히려 조악하다고 말해야 할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으면서 내내 가슴이 답답하고 막막했다.

사람이라는 건...

참 무섭다.

그리고 사람의 눈은

이것보다 훨씬 더 무섭다.

정상적인 사고와 이성을 가진 사람을

외모 하나만으로 엘리펀트맨이라 부르고 전시하는 사람.

명백한 엘리펀트맨은 바로 그들이다.

 

그런데... 그런데...

지금 우리 곁에는 너무 많은 엘리펀트맨들이 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멀리 있어야 할 것은 너무 가까이 있고

가까이 있어야 할 것들은 너무 멀리 있다.

 

도대체 지금,

우리는 누구와 함께 있는 걸까?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4. 4. 15. 07:29

의도하지 않은 실수(?)로 손에 잡은 책이다.

솔직히 고백컨데 이 책을 빌려서 집에 가져와서 몇 장을 읽을 때까지 전혀 몰랐었다.

그냥 도서관에서 이 책을 봤을 때 '어! 내가 안읽은 김연수 책이 있었네!"

의아함과 반가움에 얼른 대출을 했었는데...

책을 쓴 작가가 "김연수"가 아니라 "김언수"였다.

혼자 참 민망했고 동시에 김연수와 김언수 작가 모두에게 대책없이 미안했다.

"설계자들"이라는 제목만 보고는 어떤 내용일지 감이 안잡혔고

단지 책의 표지를 보면서 1999년 개봉했던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가 떠올랐다.

그런데... 이 유추는,

아마도 일종의 암시였던 모양이다.

그리고 또 하나 책을 다 읽고나서야 알게 된건데

책 표지에 있는 작은 글씨로 적인 문장을 내가 미처 읽지 않았다는거다.

그것만 자세히 봤어도 "설계자들"이 뭘 설계하는 사람들이었는지 뻔히 알 수 있었을텐데...

(책을 시작할 때 그래도 표지를 꽤 꼼꼼히 살피는 편인데 이 책은 참 유난히 띄엄띄엄 시작한 모양이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그게 의외의 모호함과 연결되면서

읽는 내내 쏠쏠한 재미를 줬다.

 

읽으면서 이 소설 영화를 만들면 재밌겠다 생각했다.

정유정의 <7년의 밤>과는 또 다른 느슨하면서도 팽팽한 긴장감이 살아있다.

(모순되는 단어의 조합이긴 한데 이 표현이 딱인걸 어쩌하리.)

살인청부업자가, 그것도 아주 단체적이고 기업적으로 등장하는 소설을 이렇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니...

불쾌감과 거부감보다는 오히려 미학적이란 느낌이 들더라.

살인을 설계하는 사람,

그 설계에 딱 맞게 사람을 죽이는 자객,

그렇게 죽은 사람을 조용히 소각하는 동물소각소.

이런 그로테스크한 인물들과 상황들에 미학을 느끼다니...

내가 어떻게 됐건가 싶기도하고...

그래, 살인을 해도 미학적으로 죽여준다면 죽는 입장에서도 좀 덜 비참하겠다.

(죽임을 당하는 마당에 별 시덥잖은 소리로 들리겠지만...)

"인생은 멀리서부터 복잡하게 꼬여온다. 그러므로그것은 한방에 풀리지 않는다"

맞는 말이다.

이 책에는 이런 의외의 클라세들이 느닷없는 습격처럼 튀어 나온다.

꽤 충격적이더라.

읽으면서 그랬다.

산다는 건 누군가의 설계로

나를 죽이기 위해 오는 또 다른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 같다고...

래생(來生).

하필이면 주인공 이름이 래생이라나!

그냥 참 어이없게 주인공 이름이 심하게 부럽더라.

그리고 개들의 도서관 관장 자리까지도.

뭐 꼭 관장이 아니어도 좋다.

사팔뜨기 사서 자리라도.

 

그럼 비밀을 지켜줄 용의,

충분히 있는데...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4. 4. 11. 07:37

오소희의 글을 읽고 있으면

엄마인 그녀의 자리도 부럽고, 

걸음마를 시작할 때부터 엄마와 함께 여행을 다닌 아들 JB도 부럽다.

"엄마"라는 이름.

이젠 내가 가질 수 없는 그 이름이기에

그녀의 글을 읽는 동안은 사무치게 그 자리가 그립고 부러웠다.

이 특별한 모자(母子)에게 쏟아지는질투심은,

참 대책없다.

게다가 라오스라니...

베트남의 메콩강과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를 꿈꾼 적은 있지만

라오스를 생각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 길을 나란 사람이 감당할 수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그녀의 글을 읽고 있으면 자꾸 "If..." 그 가정법의 세계를 생각하게 된다.

만약 내갸 엄마라면,

나는 아이와 함께 라오스나 북미를 갈 수 있을까?

그것도 페키지 여행이 아니라 자유여행, 배낭 여행을...

몇 번의 If를 생각해도

나는 못할 것 같다.

용감하고 현명한 엄마가 곁에 있다는 건,

아이에게 큰 축복이고 용기다.

 

소유에 대한 거친 욕망이 없는 곳, 라오스.

행복지수라는 건 소유의 개념과는 별개다.

물론 그들의 삶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건 아니다.

욕망하지 않는다면 발전의 가능성 또한 그만큼 적어지기에!

하지만 그게 부끄럽지 않은 곳.

그곳이 라오스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도 그랬다.

"Give me money!"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이유.

우리의 과거도 딱 그랬으니까...

 

오소희의 여행과 글이 마음을 건드리는 다른 이유 하나 더!

늘 그랬던 것 같다.

뭐가 됐든 그 여행이 단지 시간의 기록으로만 끝나지 않았다는데 있다

라오스를 다녀온 후 그녀는 블로그를 통해 글을 올렸다.

그렇게 모인 옷들을 꼼꼼히 정리해서 그걸 들고 다시 여행길에 올랐다.

참 무식하고 구태의연한 방식이지만

왈칵하고 무섬증이 일었다.

그러다 마지막 책장을 넘기면서는 혼자 뭉클해졌다.

오소희라는 사람은..

참 열심히 제대로 사는구나...

 

또 다시 나를 묻게 만든다.

요즘은 여행서가 나에게 집중 난타를 가한다.

정말이지 이러다 완전히 뻗어버리겠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4. 4. 10. 07:48

그야말로 폭풍같은 탐독이다.

이러다 "스페인"라는 단어가 나오는 책은 다 집어 삼켜버릴지도 모르겠다.

이론적으로만 따진다면 스페인을 두어번 다녀온 사람 축에 들겠다.

원래 남대문 인 본 사람이 말싸움에서 이기는 것처럼.

그래도 다행스러운건,

"스페인'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어느 정도 걷히고 있다는 거다.

환상과 현실 사이의 줄다리기가 시작됐다.

팽팽한 힘겨루기를 지켜보는게 꽤나 재미있다.

바르셀로나에 대한 유토피아적인 환상은 열추 제정신 언저리로 돌아온 것 같고

(불행히 가우디에 대한 환상은 점점 커지고 있다)

전혀 흥미롭지 않았던 플라멩고에 대해 비로서 다른 생각을 품게 됐다.

플라멩고가 단지 떠돌이 집시들의 춤만이 아니라는 걸 이 책이 알게 해줬다.

책을 보면서 두 번 놀랐다.

플라멩고는 단순한 춤이 아니라

춤과 노래, 기타연주와 손벽장단이 함께 어우려져야만 비로소 완성된다.

온 몸으로 소진해야만 이해되는 언어.

추는 사람도, 연주하는 사람도, 그리고 보는 사람까지도.,,

몸의 언어 속에 온전히 갇혀야만 알 수 있는 세계.

그 언어의 굽이굽이에는 한(恨)이 서려있다.

그걸 춤으로만 이해하려 했으니 참 얼마나 어이없고 무모한 치기던가!

게다가 천하에 둘도 없는 박자감 제로의 몸치는 주제어...

 

이 책은 읽으면서 두 번 놀랐다.

책 표지의 현란한 색채에 한 번 놀랐고

(솔직히 쌈바 음악 흥건한 브라질 어디쯤이 생각나더다)

안의 내용이 정말 실하고 알차서 또 한 번 놀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안의 모든 열정을 깨워

스페니수처럼 노래하고, 춤추고, 즐거워 할 자신은

그러나 여전히 없다.

터닝포인트를 꿈꾸는 것도,

그렇다고 투우사의 소의 숨을 끊는 그 결정적 순간을 꿈꾸지도 않는다.

나는 다만 걷고 싶을 뿐이다.

걷는게 내겐 숨이고 쉼이다.

잡념이 많아졌다.

그리고 불친절해졌다.

제일 불친절해진 대상은 바로 나.

 

이 책에 나온 스페인의 길들.

나는 그 길들을 과연 걷게 될까?

걷게 된다면 언제쯤에 그렇게 될까?

꿈만 꾸고 있다.

그나마 그게 숨길이다.

 

어쩌면...

뜨거운 햇빛은 기억을 증발시켜줄지도 모른다.

흔적도 못찾게 아주 깨끗이.

 

나는 기억을 완저 연소시키기위해

스페인 그 곳을 꿈꾼다.

스페인은 그래서 내겐 멈추지 않는 유혹, 그 끝판왕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4. 4. 9. 08:16

책을 읽는 중간 중간 후회가 밀려드는 책이 있다.

두 가지 이유로.

내가 왜 이 책을 읽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면서 그야말로 기계적으로 책장을 넘길 때,

그리고 지금처럼 왜 좀 더 빨리찾아 읽지 않았을까 하는 자책 비슷한 감정에 빠질 때.

"타이밍"이라는 거,

참 절묘하구나 비켜가는구나...

이 책을 그리스 여행 가기 전에 읽었었다면,

아마도 내 여행의 걸음과 느낌과 veiw는 정말 많이 달랐으리라.

Fira의 빛나는 태양 아래 그렇게 아낌없이 넋을 잃기만 하진 않았으리라.

여행자의 관광에 밀려 삶의 터전을 옮겨야 했던 원주민의 가난한 삶.

그걸 나는 여행 내내 외면했다.

아니 단 한 번도 밀려난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품지도 못했다.

빠듯하게 계획한 여행도 아니었는데 그때는 왜 그랬을까?

이 책 한 권만 먼저 만났었다면...

왜 나는 저스트 고나 프렌즈 시리즈를 찾아봤을까?

얼마나 실용적인 여행을 하겠다고!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을 읽기까지 좀 망설였다.

미학 기행이라니...

어딘지 젠체하는 기분도 들었고

게다가 저자의 모습은 미학을 논하기에는 소위 말해 새파랗게 젊어 보이기까지 했다.

'자기가 무슨 이윤기라도 된다고 생각하나!"

살짝 빈정이 상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랬는데...

책장을 넘기면서 수없이 되뇌었다..

정말 멋지다. 이 책!

그리스의 바람과 햇빛이 시간을 품고 고스란히 글 속에 담겨 있다.

 

길의 감촉,

그 서걱거리는 황홀한 소리를 저자는 다 듣었고 느꼈고 만졌다.

...... 걷는다는 것은 머리가 아닌 몸으로 생각하는 방법이다. 몸으로 생각하는 경험은 훨씬 직관적이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머리로 생각하는 것은 메모장과 연필 그리고 논리력이 필요하다. 질문 대부분이 구체적 형상이 없이 물음과 답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몸으로 생각하는 경험은 걸으며 닿는 길의 감촉, 목덜미를 감싸게 하는 바람, 등을 데우는 태양까지도 기억한다. 물론 이런 경험은 대화를 통하기보다 제 몸에 귀 기울일 때 가능하므로 혼자하는 여행에서 더 큰 법이다. 무엇보다 '걷는 생각'은 억지로 하는 생각과는 전혀 다른 수월한 방법이다. 억지스런 생각이 반드시 그 자리에서, 무언가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라면 '걷는 생각'은 자리를 벗어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것이 바로 벗어나는 행위, 걸으며 생각하는 해방감이다. 그리고 영감은 바로 이 자유로운 순간순간에 온다 ......

"걸으며 생가하는 해방감"

머릿속으로 바람이 치는 그리스의 종소리가 울린다.

...... 내게 여행은 느긋함보다는 치열함이었다. 여행을 떠나는 순간부터 한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꺼져가던 열정을 다시 사리기 위해서 걷고 또 걸었다. 지독하게 걸어 오르고 그곳에서 묻고 대답한다. 왜 여기 있는지, 왜 나였는지, 이제 어디로 가는지 그야말로 끊임없이 '물음'을 적어간다 ......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을 보면서 나는 시간을 생각했다.

신전 위를 가득 덮고 있던 구름도

사납게 옷길을 날리던 바람도 다 고대로부터 오는 시간이었다.

오래 침묵하게 만드는 시간.

그렇게 그리스의 시간은 과거로 향해 있었다.

나는 짬짬이 그 시간의 간격을 더듬어가며 시간의 거리를 좁혔다.

 

그리스...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곳이다.

다시 가게 될 일이 있을가 싶어 잠깐 머무르는 시간 동안 발걸음이 바빴다.

플라카 지구를 밤늦게 산책할 때도

인심좋은 주인장이 잔돈이 없다며 엽서 10장을 그냥 가져가라고 줄 때도

다시 올 일 없는 이곳에서 참 고마운 기억을 담는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는 다시 그곳을 꿈꾸게 됐다.

꼭 뭘 보겠다는 소망이 생긴건 아니다.

단지 그곳에서 햇빛 속에 오래 앉아 불오나전한 나를 느껴보고 싶어졌다.

과거로부터 이어지는 상징들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면서

"Carpe Diem"와 "Memento Mori"를 좌우에 거느리고 고대의 제전에 혼자 빠져 보고 싶다.

그러나 예언같은 신탁을 받게될지도.

 

이 책은,

너무 짧았던 그리스에서의 시간을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니체와 베르그송을,

심지어 아폴론과 디오니소스까지도 내내 그리워하게 만들었다.

욕망과 멀어지기 위해 메테오라 그 깊은 수도원을 스스로 오른 수도자의 절실함.

그 절실함이 나를 부른다.

니체와 베르그송, 니코스 카잔차키스에게 길을 물어

그곳을 찾아가야겠다.

스스로 봉쇄를 선택한 간절함에 답하기 위하여!

신탁이 제우스의 번개처럼 내 몸을 후려친다고 해도

 

 

* 여행을 귀중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두려움이다  - 니체

  나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 묘비명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4. 3. 27. 08:31

여행작가 오소희의 책은

여행지보다는 그 곳에서의 느낌과 글의 뉘앙스때문에 자꾸 손에 간다.

평범한 가정주부와 어린 아들 JB가 함께 떠나는 베낭여행.

그것도 선진국의 유명한 관광지를 둘러보는 여행이 아니라

터키와 아프리카 같은 한번쯤은 망설이게 되는 그런 나라들을.

지금이야 터키가 유명한 관광국이 되버렸지만

10여 년 전 그녀가 걸음마를 시작한 아들을 데리고 떠나기에는 쉽지 않은 나라였다.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겠지>

3년 전 첫 터키 여행을 준비하면서 읽었던 책이 이 책이다.

내가 갈 여행지와 교차되는 곳은 전혀 없었지만 책을 읽는 동안 참 많이 두근거렸던 것 같다.

JB의 작은 발걸음 때문에...

 

기회가 되면 그녀의 다른 책들도 읽어봐야지 했는데

우연히 집 앞 도서관에서 <하쿠나마타타, 우리 같이 춤출래?>를 발견했다.

역시나 엄마 오소희는 참 남다르다.

내가 아는 상식으로는 초등학교 입학을 앞 둔 부모는 아이와 함께 베낭여행을 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것도 아프리카로...

게다가 그녀의 귀국일이 JB의 입학식 이틀 전이란다. 

이 아줌마...

정말 너무 멋지게 대책없다!

평생 "엄마"라는 호칭으로 불릴 일이 없을 나는

이 아줌마의 무모함과 "엄마"라는 자리가 그렇게 탐이 날 수가 없다.

여행을 다녀올때마다 여행서를 펴내는 것만으로도 대단한데 이 아줌마는 한 술 더 뜬다.

책의 인세 일부를 가지고 제3세계 국가들에 도서관을 짓는데 사용한단다.

벌써 네 곳인지 다섯 곳인지가 지어졌단다.

인간적으로 사람 좌절감에 푹푹 쩔게 만드는 무서운 아줌마다.

 

하쿠나마타타(Hakuna matata)

디즈니 에니메이션 <라이온킹> 덕분에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다.

"하쿠나마타타"는 아프리가 동부 지역에서 사용하는 스와힐리어로

"문제 없어, 걱정 없어, 할 수 있어!" 쯤으로 번역되는 "으샤으샤!" 용어다.

No problem!

You can do it!

Don't worry!

여행자에게 필요한 그 나라 언어도, 구글맵도, 쾌적한 숙식도 아니다.

"Hakuna matata"

이 마음 하나면 모든 걸 기꺼이 감당할 수 있다.

오소희와 그녀의 아들 중빈이 그걸 확실하게 증명하고 있다.

멋지고 현명한 엄마 덕분에 멋지고 현명하게 크게 될 중빈.

그 아이가 벌써 중학생이 됐단다.

아마도 중빈은 학교나 학원에서 배운 것 보다 더 많은 걸 알고 있을거다.

축구공 하나로 아프리카 아이들과 친구가 되고

구정물 같은 물에 기꺼이 손과 발을 담글 줄 아는 아이.

이 아이가 나는 너무나 눈물나게 욕심난다.

 

오소희와 JB.

이 눈물나는 모자가 나를 마구 흔들어댄다.

생각보다 더 높게 흔들리고

다짐보다 더 많이 흔들린다.

아.찔.하.다.

 

하쿠나마타타!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4. 3. 21. 09:08

요즘 최도성의 "일생의 한번" 시리즈에 빠져있다.

여행이 그리운 것도 이유지만

최도성의 글에선 그만의 색채와 뉘앙스가 있어 참 좋다.

허세와 현학이 쏙 빠진 단백한 글도 맘에 들지만

여행에 대한 다른 관점을, 다른 사고를 갖게 한다.

예술과 문학이 주는 힘과 위로.

최도성의 글 속엔 그게 있다.

느리게 걸을 수록 느리게 느껴지는 시간.

그리고 그 시간 속에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 풍경들.

warking and warking

내가 꿈꾸는 유토피아적인 움직임과 호흡.

plan이 아니라 그냥 눈에 보여지는 veiw를 따라 걸음을 옮기고 사고하는 그런 여행.

거기에 최도영의 글에는 반짝이는 지식까지 품고 있다.

그야말로 "Because it is there"

 

예전에 어떤 책에서 프로이드가 요리사였다는 걸 읽고 놀랐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다빈치가 왼손잡이고 채식주의자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그의 원고를 '거울원고'라고 불리는 것도 처음 알았다.

재미있다.

베니스, 로마, 피렌체의 숨겨진 이야기뿐만 아니라

모나리자 도난 사건과 음식과 마을 이름에 대한 기원 등이

비밀의 화원이 열리듯 자꾸자꾸 열린다.

게다가 그 여행길을 세익스피어와 미켈란젤로가, 다빈치와 바사리가 함께 한다.

그것도 내 옆에서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느낌.

(솔직히 황홀하더라)

<일생에 한번은 동유럽을 만나라>에서는 베토벤과 모차르트, 쇼팽이 내 옆에 있더니

이번에는 화가들이 길라잡이가 됐다.

그렇다면 아직 읽지 않은 <일생에 한번은 스페인은 만나라>의 또 누가 가이드가 되어 줄까?

이 책은 기대감을 품고 열심히 아껴놓고 있는 중이다.

책 겉장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려서...

 

그래, 결국은 또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왔다.

짝사랑이 너무 깊다.

이러다간 조만간에 상사병에 빠지겠다.

상사병엔 약도 없다는데...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