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다보니 자연스럽게 읽는 속도도 점점 빨리진다.
그래서 다독을 하는 사람들은 속독가가 된다.
심지어는 두서너 권의 책을 같이 읽어도 인물이나 내용이 뒤섞이는 법도 없다.
그런 내가...
요 몇 달 동안 고전을 면치 못하는 책이 있다.
바로 도스토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의 형제>
1986년 범우사 판으로 무려 30년 전에 번역된 책이다.
김탁수라는 분의 번역본인데 엄청나게 투박하고 고답스런 부분도 상당하다.
심지어 책을 펼치면 이건 뭐 전공서적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숨 쉴 틈 없이 빼곡하다.
그래선지 이 책을 읽으면서는 유난히 다른 책들을 많이 기웃거렸는데
아무래도 안 될 것 같다.
일단 읽고 있던 다른 책들을 전부 정리하고 이 책만 집중적으로 파보기로 했다.
그랬더니... 역시나 길이 조금 보인다.
(그래도 고전은 역시 고전이다 ^^)
상권은 다 읽었고 지금은 하권의 후반부를 읽고 있다.
미쨔가 아버지의 살해범으로 재판을 받는 부분.
그런데 재미있는건,
이 책만 집중해서 읽으니 그동안 왜 그렇게 고전을 면치 못했나 싶게 너무 재미있는거다.
150년도 훨씬 전에 태어난 사람이 쓴 이야기가
지금 읽어도 이상하거나 뒤떨어진 느낌이 전혀 없다.
농노제의 폐해,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 그리고 선과 악의 문제까지
이 모든 것을 소설에 다 담았다는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책을 읽을 수록 다방면으로 박식했던 도스토예프스키의 지성에 감탄하게 된다.
얇은 지식이 아니라 깊고 넓은 지식이다.
마치 제크와 콩나무 저 밑에서 위를 올려다 보는 느낌이다.
또 다시 고전(苦戰) 중...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한동안은 어안이 벙벙할 것 같다.
어쩌면 다른 책들을 찾아 읽을 엄두조차 안 날지도...
그래도 이번 만큼은 피하지 말고 정면승부를 해야겠다.
그렇다고 고전만 읽겠다는건 아니고 세 권 중 한 권 꼴로 챙겨 읽을 생각이다.
제대로만 길을 찾는다면 제대로 빠지게 될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살짝 위기감이 들기도 했다.
지금보다 더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총기더 떨어질테고
그러면 고전은 더 읽기 어려워질테니까.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