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1. 7. 5. 09:02
그냥 무심코 손에 잡았던 책이다.
읽기 시작했을 때도 지은이가 <폰더씨의 위대한 하루>를 쓴 사람인줄 몰랐었다.
1시간이면 뚝딱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그 안에 담긴 단상들은 오래 두고 생각하게 한다.
"관점을 바꾸면 세상이 달라진다!"
기본공식처럼 느껴져 오히려 상투적으로 다가오는 문구를
앤디 앤드루스는 여섯 편의 짧은 이야기를 통해 따뜻하게 멘토링해주고 있다.
커다랗고 낡은 여행가방을 들고 다니는 푸른 눈의 "존스"를 통해서...


재미있고 공감되는 부분이 있어 옮겨본다.
사람들은 크게 네 가지 방식으로 사랑을 표헌한다는데
그걸 동물로 비유하자면 강아지, 금붕어, 고양이, 카나리아의 모습이란다.

...... 강아지칭찬해보게, 온몸을 흔들어대지 않나. 강아지를 훈련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뭔가? '잘했어!', '이렇게 착할 수가!'라고 말해주는 거지. 그러니까 강아지처럼 사랑하는 사람, 칭찬에 사랑을 느끼는 사람에게는 조심할 게 있네. 절대 화난 목소리로 꾸짖어선 안 되네. 강아지를 혼내면 금세 풀이 죽지 않나, 강아지처럼 사랑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야.

금붕어배려해줄 때만 사랑받는다고 느끼는 동물이네. 금붕어를 건드릴 수는 없잖나. 또 사랑한다고 말한다고 해서 그 말을 들을 수 있겠나? 그러니 금붕어에게는 칭찬이 필요 없네. 함께하는 시간도 마찬가지지. 누가 옆에 있든 없든 신경 쓰지 않거든. 금붕어는 오직 먹이를 주고 어항을 깨끗이 청소해주길 바랄 뿐이야.

고양이만큼 접축을 좋아하는 동물을 없지. 심지어 고양이에겐 먹이를 줄 필요도 없네. 배가 고프면 스스로 먹이를 잡아먹으니까. 고양이는 자네가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짓을 해도 신경 쓰지 않네. 불러봐야 소용없어. 암만 불러봐야 오지 않지. 그저 쓰다듬어주고 긁어주기만 바랄 뿐이야. 그때 고양이는 사랑받는다고 느끼꺼든. 그럼, 고양이는 사랑을 어떻게 표현하겠나? 당연히 자네 얼굴이나 손등에 몸을 비벼대지. 그건 고양이가 '날 사랑해주세요' 하고 말하는 거네. 그렇게 고양이와 똑같은 방식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거지.

함께하는 시간으로 사랑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카나리아와 비교할 수 있네. 카나리아는 '같이 있어 주기만 해요!'라고 노래하지. 누가 먹이를 주고 물을 주느냐에는 관심이 없네. 무슨 말을 해도 신경 쓰지 않고, 쓰다듬어줄 필요도 없지. 하지만 옆에 앉아 노랫소리를 들어주면 가장 행복해해. 그래서 카나리아는 외면당하면 금세 죽어버리지. 먹이가 없어 주는 게 아니라,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해 주는 거지 .......

섬득할만큼 정확한 관찰이고 표현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동물일까?
정확히 따지자면 해당되는 동물이 없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카나리아와 금붕어를 섞은 기괴한 형태의 동물이지 않을까 싶다.
이런 조합이 가능하다면...
(왠지 예전에 합성사진으로 유행했던 "개새" 같은 게 막 떠오른다...)
아무래도 나도 오렌지 비치에 한 번쯤 다녀와야 할 모양이다.
어디서 마법처럼 키다리 할아버지 "존스"가 나타나 관점을 바꾸라고 말해줄지도...
그렇다면 나는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에게 고맙다고 말하게 될까?
아니면 평소의 까칠함을 맘껏(?) 발휘해 이렇게 말하게 될까?
저 아세요?
그 다음 장면을 생각하자 심하게 뻘쭘해진다.
 ^^;;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1. 6. 14. 05:47
누군가는 그랬다.
공선옥의 소설속 인물들이 너무 구질구질하고 우울하다고.
그래서 그 기분이 꼭 자신한테까지 퍼지는 것 같아서 읽다가 그만두게 된다고.
그렇다. 공선옥의 인물들은 정확히 이런 모습이다.
그런데 나는 그 인물들을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내 살 같고, 내 뼈 같아 마디마디가 저리고 손톱끝까지 아파온다.
한참을 붙들고 울고 싶은 심정...
그러나 그 인물들은 지친 울음 끝에서 항상 새롭게 시작할 힘을 보여준다.
절망 속에서 희망이 피어날 수 있다는 걸 난 그녀가 만들어낸 인물을 통해 절실하게 깨닫는다.
그녀는 나에겐 하나의 현실이며 동시에 극적인 다큐다.
1년 사이에 자폐아 아들과 남편을 모두 잃은 여자!
이야기 속에서도 단 한번도 본명을 내비치지 않는 여자!
막걸리와 빵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여자!
아이와 남편이 좋아했던 작은 정원엔 이제 이웃 건물에서 버린 쓰레기로 가득차고
그 집에서 살아있지만 철저히 죽어있는 여자!
이 여자가 나는 안스러워 자꾸 내 가슴을 쓸어내리고 또 쓸어내렸다.
어쩌면 좋을까... 이 여자...
그리고 이 여자때문에 아픈 나는 또 어쩌면 좋을까...
...... 사는 동안은 눈물 흐르는 소리를 견디며 살아야 할 것이었다.
눈물 흐르는 소리를 듣고 사는 것은 삶이 아니라 일종의 형벌일 터였다.
그 형벌을 달게 받기로 했다. 달게 받기로 한 때부터 고요해졌다 ......

그녀의 고요는 죽음보다 더 적막하다.
죽음보다 깊고 죽음보다 더 차다.



영란과 이정섭!
체기같은 마른 울음을 몸 안에 담고
길고 지루한 장마같은 생을 살아가는 사람.
매혹은 힘겨움을 이기지 못한다는데
나는 이들의 힘겨운 삶에 어이없이 매혹당하고 말았다.
때로 사랑이 사람을 살리기도 하지만, 환별 또한 그럴 수 있다는 사실 앞에
나 역시도 전율했다.
누구를 향한 환멸이건, 환멸이 사람을 살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공선옥이 말한다.
...... 이 이야기는, 한 슬픔의 사람이 어떻게 슬픔을 딛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 되는가에 관한 것이다.
누구나의 생애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겪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숙명이다. 아프더라도 또한 살아가야만 한다. 그러하니, 산다는 것은 고해(苦海), 고통의 바다를 건너가는 것이라는 말은 맞는 말이다.
나는 '지금 슬픈 사람'들이 자신의 슬픔을 내치지 않기를 바란다. 외면하지 말기를 바란다. 슬픔음 방치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제는 슬픔을 돌볼 시간이다. 내 글의 독자들이 슬픔을 돌보는 동안 더 깊고 더 따스하고 더 고운 마음의 눈을 얻게 된다면, 그리하여 더욱 아름답고 더욱 굳건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면, '슬픔의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쓴 사람으로서, 많이 기쁠 것이다 ......
어쩌면 이 이야기가 상처받은 두 남녀의 새로운 시작이라는 식상한 구조였다면
나는 가차없이 외면했을 것이다.
변하는 건 없다.
본명을 드러내지 않는 여자는 "영란"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허름한 영란집에서 간재미회를 만들어낼 것이다.
그리고 그녀에게 사랑은 다시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 떠나버린 사랑이 남긴 상처는 남은 사람의 일생을 관통한다.
그러니, 사랑한다면 떠나지 않아야 한다. 떠날 거면 사랑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한다 ......

생명은 태동할 때도 눈물겹고
살아갈 때도 눈물겹고
소멸할 때도 눈물겹다단.
그래서 세상의 모든 생명은 눈물로 이루어져 있는지도 모른단다.
<영란>을 읽으면서 나는 끝없이 "영란"을 불러 세웠고
그렇게 불러 세운 "영란"은 나를 위로한다.
내가 불러서 올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 세상에서 내가 부르면 달려올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대답을 알고 싶다고 직접 불러봐야 한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차마 그러지 못하는 건,
아무도 달려오지 않을까봐서다.
차디찬 한기만이 우뚝 서있을까봐 두려워서다.
내 속으로 키운 한기를 견뎌낼 수 없을 것 같아서다.
공선옥은 어떻게 견뎠을까?
어떻게 견디면서 울음같은 글들을 내내 썼을까?
그녀는 언제나 내게 서러운 눈물을 심는다.

깊게 깊게 울고 싶다.
그러나 또 깊게 깊게 참는다.
울어도 편치않을 울음이라면
울지 않는 게 나을테니까...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10. 27. 05:56
제목만 봤을 때는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헌사같은 책이라고 생각했다.
글을 쓴 저자는 현재 메이지 대학교 문화부 교수 사이토 다카시.
소개글에 말의 권위자라고 나와 있는데 솔직히 어떤 의미의 표현인지는 잘 모르겠다.
좀 거하게 말하자면,
하루키의 소설 뿐만 아니라 일본의 현대문학 속에 등장하는
사랑에 대한 느낌과 그 언어적 표현에 대한 통찰이다.
참 묘한 건 객관과 주관 그 중간의 어디쯤에서 적당히 감성적으로 쓰여진 글이다.
살짝 시니컬하기도 하고 관조적이기도 하면서 때론 열정적이다.
사랑한다면, 사랑하고 싶다면, 사랑했다면,
일본 소설 속 사랑 언어에 주목하라...
딱히 그러고 싶진 않았는데 읽다보면 그 표현들에 주목하게 된다. 이상하지?



part 1 쿨한 사랑 -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년의 핀볼>

part 2 나쁜 사랑
<금각사> 미시마 유키오
<산시로> 나츠메 소오세키
<겐지 이야기> 무라사키 시키부

part 3 보통 사랑
<지금 만나러 갑니다> 이치카와 다쿠지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카타야마 쿄이치
<선생님의 가방> 가와카미 히로미
<전차남> 나카노 히토리


기억하기 딱 좋은 편수인 10편의 일본 소설이 나온다.
물론 이야기의 줄거리를 무시할 순 없지만 
여기선 각각의 소설에 나오는 어떤 부분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고 소박하게 쓰고 있다.
나는 이 책들을 읽으면서도 이런 부분들을 놓쳤었구나 새삼 성긴 책읽기에 웃음이 나기도 했다.
때론 이런 책들이 묘하게 가슴에 담길 때가 있다.
고민하지 않고 소풍처럼 읽을 수 있는 적당히 평화롭고 한가한 책이...



가끔 생각하게 된다.
"사랑"이라는 건 말일까? 행동일까? 감정일까?
이 모든 것이라고 대답하겠지만 어쩐지 그 시작은 말(고백)이 아닐까?
표현되어지든, 표현되어지지 못하든.

그리고 나는 사랑을 하고 있었다.
그 사랑은 몹시 복잡한 곳으로 나를 끌어들이고 있었다.
주위의 풍경에 마음을 쓸 여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고백을 세상을 다르게 보고, 다르게 느끼게 한다.
극도의 무관심이든, 극도의 관심이든
고백의 순간 이제 더이상 처음과 같을 수는 없게 되는 것.

나의 외로움이 너의 외로움이 되는 것,
망연히 벽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흘려야 했던 것, 왜 너를 사랑했냐고,
왜 나를 사랑했냐고 따지고 싶어도 따질 수 없는 것,
한 번이라도 더 보고 헤어질 것이라고 후회해도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는 것,
그것을 입 밖에 내밀 수 없었던 사랑이라는 것.

너와 나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
그래서 그 경계의 끝에서 비록 누군가 너덜거리게 된데도
사랑이 두려운 남자도 여자도
모두 운명같은 사랑을 꿈꾼다.
운,명.같.은.사.랑.
얼마나 대책없는 단어끼리의 조합인가!

하도 사랑, 사랑하기에
그것이 뭐가 그렇게 대단하기에 난리냐 싶어
사랑을 해봤지만 그 감정 별 것 아니던데,
라고 말하면서도 사랑 없이 못 사는 것이 사람인지라,
누군가 사랑, 그것은 말이야, 서두를 떼기만 해도 또다시 두근거린다.


아닌 척 하면서도 그만,
이 문장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사랑, 참...
또 다시 모질구나... 싶어서...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10. 6. 06:31
오르한 파묵!
또 다시 이 사람에게 완벽하게 매혹당하다.
이런 이야기일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 첫 장편소설
오르한 파묵은 말했다.
"나는 이 소설로 기억될 것이다”

5월에 우리나라에 출판됐을 당시에 바로 손에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펼쳐보지 않았었다.
오래오래 숨겨놨었다.
힘들 때, 지칠 때, 위로가 필요할 때 펼쳐보리라 다짐했었다.
지금은 더 오래 이 책을 간직했어야 했던건 아닌가 후회하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휩싸이면 제자리를 찾기가 또 얼마나 버거울까?
단지 소설책일뿐인데도 나는 이 매혹과 질투와 신비에 화가 난다.
오르한 파묵의 책을 읽는 동안은
나는 먹지 않아도, 자지 않아도 괜찮다.
허기도 졸음도 그의 책을 손에 잡는 동안만은 저절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버린다.
오르한 파묵!
비참함이 느껴질 정도로 나를 완벽히 매혹시키는 작가!
그것도 여러 번,
철저히 치명적으로...



한 여자와 만나 44일 동안 사랑하고,
339일 동안 그녀를 찾아 헤맸으며,
2864일 동안 그녀를 바라본 한 남자.


또 다시 신물나는 사랑 이야기라고?
맞다!
그러면서 동시에 아니다.
한 사람을 너무 사랑한다고해서
그 사람의 입과 손이 닿았다는 이유만으로 담배꽁초 4,213개를 집에 모아놓는 사람이 있을까?
귀걸이, 소금통, 도자기 개인형, 화장수 병, 라크 잔, 설탕통, 모과를 가는 강판 등은 어떤가?
이 정도의 집착이라면 사랑이 아니라
단지 도착적인 정신병의 일종이라고 판단하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인정하고 희망하게 된다.
언제가 꼭 "순수 박물관"을 방문하리라.
그래서 케말이 수집하고 보관했던 퓌순의 흔적이 남겨진 이 모든 물건들을 두 눈으로 확인하리라.
물론 "순수 박물관"을 방문할 땐 반드시 이 책을 들고 가게 될 것이다.
책 안에 있는 1회 무표 입장권을 보여주면서 말이다.
너무 책 속에 빠진 생각이라고 말하고 싶을까?
역시나 그렇지 않다.
올해 하반기에 터키 이스탄불에 "순수 박물관"이 정말로 일반에 공개된단다.
(계획대로라면 8월에 이미 공개됐을지도 모르겠다)
소설의 주요 배경이 된 이스탄불 추쿠르주마에 있는 퓌순의 집.
그곳을 방문하면 소설에 나오는 모든 물건들을 실제로 볼 수 있단다.
번역자의 말처럼 이야기가 책에서 나와 현실에 존재하고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되는 셈이다. 
소설의 모든 것들을 재현한,
작가가 창조한 한 편의 소설이 이렇게 현실로 재현된다는 게 신비롭다.
문학이 현실을 새롭게 창조할 수 있다는 사실!
글의 힘에 전율이 인다.
...... 오르한 파묵이라는 작가의 작품을 번역하는 가장 큰 보람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의 작품을 전 세계에서 누구보다 먼저 읽어 볼 수 있는 특권을 갖는 것이며, 처음 읽는 순수한 감동과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이라고 답하겠다. 그러므로 이후에 이어질 지옥과도 같은 번역의 고통을 이겨 낼 수 있는 힘도 아울려 얻는 것이라고 ......
번역자 이난아는 말했다.
나는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번역자가 너무 부러워서 불같은 질투가 난다.



퓌순과 케말.
그 둘의 사랑은 이루어졌을까?
이루워졌을 수도 있고 이루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인생은 절대로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고 했던가?
그렇더라도 이 사랑은 충분히 의미있고 그리고 완벽하게 아름답다.
사랑하는 사람이 눈 앞에서 사라졌을 때 삶의 모든 광채도 함께 사라졌다고 말하는 사랑.
그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이 한순간에 제자리를 찾는 것 같고,
세상이 의미 있고 아름다운 곳으로 변해버린다는 사랑.
그녀와 한 집에 살 수 없기에 그녀의 손길이 닿았던 물건들을 하나하나 훔치는 사랑.
그 사소한 물건들은 아름다운 순간을 연상시키는 물건을 넘어, 순간의 일부가 된다.
그리고 그것은 집착적으로 사랑하지만 '소유할 수 없는' 누군가에게서 어떤 일부를 떼어 내는 행복이란다.
9년의 기다림 끝에 함께 할 수 있게 된 두 사람의 최후가 되어버린 밤.
신파라고 작위적이라고 비난하진 말자.
이 책을 읽으면 소설속 이야기는 그대로 현실이 된다.
그것도 의심할 여지가 없는 생생한 현실.
나는 내 가슴팍으로 운전대가 꽃힌 것처럼 내내 극심하게 아팠다.
그리고 그 고통은 묘하게 육체의 통증을 동반했다.
영리한 사람들은 인생이 아름다운 것이며,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라는 것을 잘 안단다.
그런데 나중에는 행복하다고 말하는 건 바보들 뿐이라나!
"순수 박물관"은 그런 바보들을 위한 책이며 장소다.
점점 사라지고 희미해지는 "시간"이  하나의 "공간"으로 형체를 갖게 되는 곳.
<순수 박물관>
터키에 가게 되면 꼭 이곳에서 하루를 보내리라. 
꼭 그렇게 하리라...

너는 한때 나의 연인이었지
내 곁에 있을 때조차 나의 그리움이었지
지금 너는 다른 사랑을 찾았어
행복이 너의 것이길
고통과 번민은 나의 것이니
삶이 너의 것이 되길, 너의 것이 되길


<순수 박물관>을 탈고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오르한 파묵은 이미 새로운 소설 집필에 착수했단다.
그러니 견디자, 버티자.
그의 글을 읽기 위해서라면 긴 노동같은 기다림도 나는 기꺼이 감수할 수 있다.
괜찮다.
견딜 수 있다,
버틸 수 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10. 4. 06:08


나무 액터스와 악어 컴퍼니가 기획한 "무대가 좋다" 시리즈 2탄 <클로져>
이미 대학로에서 장기 공연을 여러번 했던 작품이라 신선할 것까진 없다.
단지 문근영이라는 국민 여동생이 스트립퍼라는 파격적인 성인 연기로 연극에 데뷔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엄청난 티켓전쟁을 만들어낸 문제작 되시겠다.
엄기준, 문근영 출연분은 수초만에 매진이 돼서
헛손질 몇 번에 황량한 자리만을 확인해야만 했다.
솔직히 많이 놀라긴 했다.
조승우의 <지킬 앤 하이드>를 보는 듯 했다.
(조승우도 10월이면 제대라는데 다들 서로 잡으려고 혈안이 되겠구나 싶다.)
워낙에 엄기준을 제외하고 생각했던지라
(이 사람 나랑 참 안 맞는다)
문근영, 이재호 춮연분은 다행스럽게 좋은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문근영 앨리스, 이재호 댄, 진경 안나, 배성우 래리.
내가 선택한 casting.
솔직히 말하면 별로 선택의 여지가 없긴 했었다.
내가 진짜 보고 싶었던 건 최광일 래리였지만
배성우도 워낙에 <Closer>에서 래리 역을 오래 했던 사람이라
뭐 나쁘진 않더라.
(정말 오래전 이야기긴 한데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란 뮤지컬에서 그는 참 안 어울렸었다...)
안나 역의 진경이야 워낙 연기를 잘하는 여배우라 선택의 고민이 전혀 없었고
(여전히 나는 연극 <이>의 녹수에는 그녀만한 사람이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신인 이재호의 댄도 나쁘지는 않았다.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오디션에 합격한 뉴페이스라는데
첫 작품에서 그야말로 기라성같은 배우들과 만난 셈이다.
행운이면서 불운이기도 했겠다.
꼭 그런 심정이지 않았을까?
"나만 잘하면 돼!"
표정연기가 많이 어색하고 다소 어린애스러운 액팅 부분이 있긴 하지만
무엇보다 목소리 톤이 맘에 든다.
목소리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탈렌트 정찬의 이미지와 많이 겹쳐진다.
더불어 TV 연기도 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혼자 해봤다 



개인적으론 이런 노골적인 대사들이 오가는 연극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겠지만
어쩐지 앨리스라는 역이 문근영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불량 청소년, 엄마 화장을 몰래 하고 나온 어설픈 문제아 쯤으로만 여겨지니
아무래도 국민 여동생이라는 이미지가 너무 강력하지 않나 싶다.
따지고 보면 문근영이라는 배우의 나이가  이제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귀여운 여고생으로 밖에는 생각되지 않으니 말이다.
아마도 문근영에게도 국민 여동생의 이미지가 오래 간다면
배우로서는 오히려 마이너스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까 싶다.
영리한 배우니까 자신의 이미지를 잘 만들어 가겠지만 노파심에 한 마디 ^^
물론 연극 <클로져>에서 문근영의 연기가 나빴다는 뜻은 아니다.
순간적인 몰입으로 눈물을 흘리는 것도 좋았고 딕션 또한 정확했다.
표정 연기도 나쁘지 않았다.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지르는 모습은 좀 거슬리긴 했지만.



사랑의 첫번째 조건은 타협이란다.
처음 본 낯선 사람에게 사랑에 빠질 수 있다면,
그 사람을 곁에 두고 또 다른 낯선 사람과 사랑에 빠지지 않을거라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그래서 앨리스는 안나에게 이런 말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사랑에 빠진 게 아니라 유혹에 넘어간거야" 라고...
사랑은 타협이기도 하지만
무언의 룰을 지키지 않을 때에는 대가를 치뤄야 하는 게임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랑에 필요한 두번째 조건은 어쩌면 "정의"가 될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이유가,
"그 사람에겐 내가 필요하지 않아서" 라고 말하는 댄도
그런 댄을 "집요하게, 이해를 못 할 정도로" 사랑하는 앨리스도
그래서 모두 다 낯선 사람들일 뿐이다.
앨리스는 안나에게 묻는다
"왜 그랬어요?"
그리고 래리는 안나에게 묻는다.
"왜 하필 그 자식이야?"
그리고 극의 마지막엔 안나의 입을 통해 또 하나의 질문이 던져진다.
"우린 왜 그랬을까?"



연극과 영화의 느낌은 당연히 다르겠지만
이 작품은 특히나 차이가 난다.
연극이 훨씬 더 가볍다고나 할까?
문근영이 아니었다면 솔직히 챙겨보지 않았을 작품이다.
참 많이 대학로에 올려졌는데도 매번 초지일관 외면했었는데...

혹시 한 눈에 반하는 낯선 사람과의 사랑을 찾고 있는가?
그렇다면 타협과 정의의 룰을 반드시 지킬 것을 조언한다.
왜냐하면 이 두 가지를 무시할 때 그 결과는
연극에서처럼 누구에게도 해피하지 않기에...
선택했다면,
타협하라!
그리고 반드시 정의롭게 행동하라!

내게 연극 <클로져>는 두개의 화두를 남겼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10. 5. 22. 07:51

<I love you, Ronnie> - 낸시 레이건
 



5월이 가정의 달이고, 또 어제 5월 21일은 부부의 날이었습니다.
좀 이벤트성 같긴 하지만 오늘 소개하려는 책은 부부에 관한 책입니다.
로널드 윌슨 레이건.
1911년 2월 6일 출생, 영화배우 출신으로 캘리포니아 주지사 당선.(아놀드 슈왈제너거가 레이건 대통령의 뒤를 그대로 밟고 있다는 설도..... 물론 그 두 사람의 비쥬얼 차이는 정말 엄청나지만.... 일단 가장 큰 차이는 근육이 양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1981년 미국의 제 40대 대통령.
2번의 대통령 재임과 1981년 총격 사건, 대장암, 전립선 암 극복.
그리고 2004년 6월 5일 알츠하이머로 병으로 사망하기까지 레이건은 미국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역대 대통령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는 정치나 정치인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은 없지 않을까 싶지만(자랑이라고 쓰고 있는 건지.....) 이 책은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고 세계 강국으로써 미국의 위상을 말하는 내용도 아닙니다. 그저 한 남자와 한 여자, 그 두 사람의 존중과 배려, 그리고 사랑에 관한 기록들입니다.

레이건은 데이트하던 시절부터 약혼, 결혼, 아이들의 출생, 캘리포니아 주지사, 그리고 마침내 미국의 대통령에 이르기까지의 50년 시간동안 변함없이 아내에게 사랑이 담긴 편지와 카드를 수시로 보냈다고 합니다.
때로는 기차역에서 잠깐의 틈을 이용해 아주 짧게, 때로는 영화 촬영지에서, 때로는 에어 포스 원에서 그리고 때로는 바로 옆에서 책을 읽고 있는 아내에게까지....
장난스런 그림들과 문구들, 절로 미소가 그려지는 수많은 애칭들과 애정 어린 투정들...
읽고 있으면 자꾸 미소가 지어 집니다....
(어쩌면 너무 부러워 타액 분비 호르몬의 이상으로 자신도 모르게 구강에서 과다한 분비물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가령, 당신의 남편에게 이런 편지를 받았다고 생각해 보세요.

당신의 어머니는 정말 딸을 훌륭하게 키우셨소.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아내가 되었으니.
‘아내’라는 두 글자가 당신 이름 앞에 붙으면 얼마나 놀라운 빛을 발하는지...
아내란,
그 사람이 없다면 결코 완전할 수도 행복할 수도 없는 나의 동반자를, 내가 날마다 더욱더 간절히 원하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여인을, 그녀가 방을 나가기만 해도 내게 외로움을 느끼게 하는 그런 사람을 뜻합니다.
당신으로 인해 나는 영원히 따사로운 빛 속에서 살고 있고.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나의 아내가 되어준 것에 감사할 따름이오.

어떤 아내가 미친 듯이 헌신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고 정말 미친다면 좀 상당히 곤란은 하겠지만......)

당신이 그 자리에 없으면, 나는 세상 어디에도 없소. 다만 시간과 공간을 헤매고 있을 뿐이지.
예전보다 더욱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이 없다면 난 내가 아니오. 내게 당신은 생명 그 자체요. 당신이 없으면 당신이 내게 올 때까지 난 기다릴 뿐이오. 그래야 다시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레이건은 그들의 결혼기념과 발렌타인 데이 , 크리스마스 같은 특별한 날에도 항상 잊지 않고 편지를 보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요...

아주 오래 전에, 당신과 결혼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만약 그랬더라면 오늘이 우리의 은혼식이 되었을 텐데...
하지만, 나는 우리가 함께 보낸 4년이라는 세월 동안, 이미 25년만큼의 행복을 다누렸다오.

이들은 우리가 20년 동안 함께 살았다고 당신을 속이려 하고 있어,
설마 20분이겠지, 20년이라니! 말도 안 돼...

미합중국의 대통령으로서, 29년 동안 한 남자를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남자로 만들어 준, 당신의 의무를 넘어선 봉사에 대해 언급하게 된 것을 무한한 영광과 특권으로 생각하오.

우리는 특별한 삶을 살아왔으며, 나는 내가 깊이 사랑하는 사람과 50년 이상을 함께 사는 축복을 누렸소.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따스한 충만함을 느껴지는 건, 당신이 바로 거기에 있기 때문이오, 당신이 없다면 나는 바로 알 수가 있어요. 집안 전체가 공허해지는 걸... 당신은 마치 제철에 나는 싱싱한 과일이나 영원히 멈추지 않는 행복의 기계와도 같소. 날마다 새롭고 신선한 아침을 열며, 나의 온 세상을 밝게 비추는 빛처럼... 날 사랑해줘서 고맙소. 그리고 당신을 사랑할 수 있을 만큼 날 현명하다 판단해준 것에 대해서도...

아내가 홀로 여행을 가게 됐을 때는 요일마다 먹어야 할 비타민 알약을 상기시켜 주기 위해 하나하나 약에 대한 메모를 써주는 자상한 편지까지....
그리고 자신이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는 사실을 온 국민에게 알리는 자리에서까지도 그의 무한한 사랑은 계속됩니다.

불행하게도, 알츠하이머병이 진행 중에 있기 때문에, 나의 가족들은 무거운 짐을 안고 있습니다. 내가 지금 바라는 건, 이 무거운 짐이 주는 고통스런 경험을 내 아내 혼자 감당하지 말았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여러분의 도움으로 그녀는 믿음과 용기를 가지고, 이 어려움에 맞설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마지막으로 나에게 미국의 대통령으로서 일할 수 있는 영광을 허락해준 미국 국민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날, 나는 미국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미래에 대한 영원한 희망을 간직한 채 떠날 것입니다.
이제 나는 인생의 황혼으로 가는 여정을 시작하려 합니다.
그러나 미국의 미래에는 언제나 밝게 빛나는 희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그는 정치인들에게는 유독 보수적인 미국에서 최초로 이혼 경력이 있는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국민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가 바로 퍼스트 레이디 낸시 여사를 내조였죠. 그녀의 헌신적 배려와 끊임없는 내조.
실제로 마치 그 두 사람은 하나의 생명줄로 연결된 사람 같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하나의 가정을 이루는 일...
이 책을 읽으면서 그 가치의 아름다움에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그 두 사람은 그랬다고 하네요.
한 방에 있다가 두 사람 중 한 사람이라도 그 방을 떠나면 그 순간부터 지독한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고...
서로의 외로움을 메워주고, 서로를 채워주는 일이야말로 그들에겐 온전한 남편과 아내가 되는 것을 의미하는 일이었다고...
이 책을 읽고,
진심으로 그 둘의 헌신적인 사랑이 부러워 부끄러웠습니다....

*  보너스 팁 하나...
레이건 대통령의 고별 연설 중 유명한 부분이 있습니다.
“All in all, not bad, not bad at all"
(전체적으로 볼 때 괜찮았습니다, 꽤 괜찮았습니다)
자신의 대통령 기간이 완벽하게 좋았던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꽤 괜찮았다는 그의 고별 연설....
스스로에게 이런 평가를 내릴 수 있는 그런 대통령을 우리도 한번쯤은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을 적어 봅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초음파 검사를 하다 자주 받게 되는 질문이 있죠.
1. 우리 아기 아들이예요, 딸이예요?
   - 현행법상 우리나라는 임신 32주가 넘어야 태아의 성별을 알려 드릴 수 있답니다 (^^)
2. 아기도 딸국질을 하나요?
  - 심장 뛰는 건 아닌 것 같은 데 뭔가 규칙적으로 뛰었다 안 뛰었다 한다면서...
     정답은? 태아는 딸국질을 한답니다. 그것도 꽤 자주 말이죠.
3. 아기가 눈도 뜨나요?
   - 눈동자가 선명하게 보이거나 하진 않지만 태아들도 눈을 뜬답니다.
     실제로 모습을 보고 무섭다고 하는 분도 있지만 제 눈엔 너무 귀여워 보이죠 (^^)



초음파 검사중에 이렇게 눈을 살짝 뜨는 태아를 보면
부모님 못지 않게 저 역시도 경이감 비슷한 감정을 느끼죠.
엄마의 배 안에서 저렇게 조심스럽게 눈을 뜨면
아이는 무엇을 볼 수 있을까요?
비록 까맣고 어두운 양수 속 세상이겠지만
제 생각엔 세상 그 누구보다 많은 것들을 보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그리고 그 "봄"이라는 건,
엄마와 아빠의 형연할 수 없는 "사랑"이라는 중간 매개물을 통해서겠죠.
부모와 태아의 말로 설명되어질 수 없는 그 "관계"라는 건
아마도 이 세상 어떤 미스테리보다도 더 강하고 신비로와서
어떤 누구라도 결코 알아낼 수 없을거란 생각이 듭니다.



뭐가 보고 싶어 작은 눈을 떠 본 거니?
네가 태어나면 너는 감사와 사랑으로 가득한
엄마 아빠를 맨 처음 보게 된단다.
작은 천사, 기억해줄래?
세상은 너보다 더 많이 널 보고 싶어하면서
이렇게 내내 기다리고 있다는 걸...
건강하게 태어나 첫인사 눈맞추며 함께 할 수 있기를...
너의 눈 뜬 보고픔만큼
모두가 함께 널 그리고 보고파 한단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4. 26. 05:44


일    시: 2010.04.21. ~2010.06.13.
장    소 : 유니버설아트센터
작    곡 : 프랭크 와일드혼 / 연   출 : 로버트 요한슨
casting : 몬테크리스토 백작(류정한, 엄기준, 신성록)
             메르세데스(옥주현, 차지현)
             아베 파리아(조원희, 이원근),
             몬데고(최민철, 조휘),
             빌포트(조순창), 당글라르(장대웅), 
             알버트(김승대, 전동석) 그 외...


<2010.04.21. casting>

몬테크리스토 : 류정한 / 메르세데스 : 옥주현
아베 파리아   : 조원희 / 몬데고       : 최민철 
알버트          : 김승대

첫공을 아무 망설임 없이 선택한 건
오로지 이 사람,
뮤지컬 배우 "류정한" 때문이었다.
조금 쉬고 싶었는데 뮤지컬 넘버가 너무 좋아  휴식기를 반납할 수밖에 없었다는 작품.
그리고 무엇보다 <지킬 & 하이드>의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의 작품이니
그로서도 역시 탐나지 않을 수 없었겠다.
<영웅>에 이어 <라만차> 서울 공연과 지방 공연을 다니느라 참 지쳤을텐데...
그를 또 다시 불러들이는 무대 때문에
그의 매니아들 역시 또 다시 기꺼이 좌석쟁탈전을 준비한다.
(클릭이 빠른 자, 가까이서 그를 보리니...)



개인적으로는 옥주현의 뮤지컬 무대를 처음 봤다.
감정연기도 나쁘지 않고 노래도 잘 하는 건 정말이지 충분히 알겠다.
그런데 이상하지?
목소리는 왠지 모르게 약간 들떠있고 그리고 숨소리가 너무 크다.
그리고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녀의 어머니를 보는 것 내겐 좀 당황스러운 모습이다.
(그냥 내내 여자이기로 선택한 거라면 할 말이 없지만...)
오랫만에 본 최민철의 무대는 아직 중심을 잡지 못하겠다.
캐릭터 설정을 그렇게 한건지,
아니면 그가 현재 좀 방황(?)하는 중인지 아직까지 잘 모르겠다.



뮤지컬 <몬테크리스토>가 올려진다고 했을 때
일부러 알렉상드르 뒤마의 <몬테크리스토 백작> 완역본 5권을 찾아 읽었다.
(내가 생각해도 정성이 갸륵하다)
그런데 원작을 괜히 본건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뮤지컬 <몬테크리스토>는 원작과는 느낌이 참 많이 다르다.
(당연한 거 아니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3인의 몬테크리스토 (류정한, 엄기준, 신성록) 
                                                 그런데 이 사진들 다들 좀 심하시다... ^^


알렉상드르 뒤마의 결말은 메르세데스와 에드몽 당테스의 헤피엔딩이 아니다.
당테스는 새로운 인생을 살기 위해 다시 배 위에서 길을 떠난다.
그의 곁에는 메르세데스가 아닌 다른 여자가 있다.
지조없는 남자라고?
아니! 원작을 읽으면서 나는 그 결말이 몹시도 좋았다.
그리고 그가 모렐 선주의 아들 막시밀리앙에게 남긴 편지의 마지막 구절이
결국 이 이야기의 모든 걸 대변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뮤지컬에서는 몬테크리스토의 아들같은 존재인 막시밀리앙이 등장하지 않는다)

"...... 인간의 지혜는 오직 다음 두 마디 속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기다려라! 그리고 희망을 가져라!......"


뮤지컬 <몬테크리스토>에서는 이 문장을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문장을 만들어냈다.
극의 내용에 맞게 조금 더 극적인 문장으로 말이다.

"......정의는 갖는 자의 것, 사랑은 주는 자의 것...."

그러니까 이 뮤지컬의 주제는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당연하지!
정의로 사랑을 통합하긴 힘들겠지만
사랑으로 정의를 통합하긴 훨씬 더 드라마틱 할테니까...


                    연출가 : 로버트 요한슨                         메르세데스 옥주현, 몬테크리스토 류정한

뜬금없는 배역과 내용에 원작을 읽은 나로서는 처음에 많이 당황스러웠다.
너무 과하게 코믹한 설정으로 나오는 파리아 신부,
(원작에선 이 사람은 현자, 석학자의 이미지였는데.... 쩝!)
이프 감옥에서 탈출에 성공한 당테스를 구출하는 배가 해적선이라는 설정,
거기다가 그 해적선의 선장인 루이스 밤파가 여자로 나오는 장면
그리고 원작에 없는 이름 "발렌타인"까지...
(이건 너무 달콤하쟎아~~~)
참 많은 창조적 과정으로 거쳐서 뮤지컬이 탄생된 셈이다.
여기에 당테스와 몬테고가 뮤지컬에서처럼 친구 사이가 아니라
몬테고가 메르세데스의 사촌오빠로 원작엔 나온다면 좀 놀라울까???
(뭐, 18세기엔 근친의 성행했으니까...)
그리고 알버트는 몬테크리스토의 아들이 아니라
몬데고의 아들이 맞다고 말한다면...
(에이. 그만 할란다~~)


                                                                               2장의 사진 출처 : 건승정한 ^^
뭐 어쨌든 좌우지간,
작품 자체는 확실히 나쁘지 않다.
문제는 공연장이 아주 확실하게, 너무도 완벽하게 나쁘다는 거다.
왜 하필 "유니버설아트"냐고 고개를 저었었는데
이번에도 역시 공연장의 열악한 조건이 공연의 감동을 얼마나  빠른 속도로 반감시킬 수 있는지
절실히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나, <삼총사>와 <살인마 잭>을 모두 넘겼다. 유니버설아트라서...)
내 귓 속에는 아직도 삐그덕거리며 완전 100% 수동으로 설치되던 
무대셋트들의 소음으로 가득하다.
(열심히 무대 설치하는 사람들에게 당신 발소리 무지 크다고 말한다면 내가 죽일년인가?
 암튼 출연료는 제일 많이 주어야 할 것 같아. 어쨌든 제일 많이 무대에 등장하니까...)
이 공연장의 총체적이고 절대적인 난국이
빠른 시간 안에 해결되길 나는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몬테크리스토가 고향으로 돌아와 처음 연회를 여는 장면에서
(정확히 말해서 빨간색 망토를 휘날리며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 장면)
살짝 미스코리아 Feel이 느껴지는 건 나 혼자만이었을까?
(여러분! 아름다운 밤이예요~~~)
아무튼 이 작품을 위해서
마흔이 넘은 몸을 이끌고 멋지게 힘준(?) 복근을 보여준 류정한의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잘하면 머지 않아 화려한 "액션 히어로"로 등극하지 않을까???
결투 장면은 정말 실감나더라.
(그것도 매번... 이 뮤지컬, 칼싸움 정말 여러번 나온다)
배우들이 하나하나 정확하게 동작을 맞추기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연습했을까를 생각하니 대단하다 싶다.
저러다 다치는 건 아닌가 솔직히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그만큼 실감이 난다는 뜻 ^^
이 상태로 가다간 조만간 배우 류정한 배에도 멋진 리얼 초코릿 복근이 생기게 되지 않을까 기대된다. ^^

 
                                                       류정한, 차지연 <언제나 그대 곁에>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3. 2. 06:23


2007년 뮤지컬 "스핏파이어 그릴"을 마치고 돌연 영국 유학길에 올랐던 그녀. 
영원히 줄리엣일 것만 같았던 "조정은"의 복귀작.
그 이유만으로도 꼭 봐야겠다 다짐하게 만들었던 뮤지컬 <로맨스 로맨스>
2년의 공백 동안 그녀는 어떻게 변했을까?
그리고 얼마나 무대가 그리웠을까?
게다가 계원예고 동창 "최재웅'이 상대역이란다.
오랫만에 동창회에  나오는 그런 느낌도 있지 않았을까?
왠지 그녀의 감회가 나는 기쁘고 그리고 이쁘게 다가온다.



뮤지컬 <로맨스 로맨스>
"Two new musical"이라는 말을 쓰더라.
1막은 19세기 비엔나를 배경으로
2막은 현재를 배경으로 해서 그런가?
"new"라는 단어가 어쩐지 좀 민망하긴 하다.
어쨌든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더이상 새롭지는 않을텐데...  (^^)
아무래도 형식면에서 "Two new musical"이라는 말을 이해해야 할 것 같다.
이 작품은 오프오프브로드웨이 무대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1988년에 브로드웨이에서 공연 되면서 큰 호응을 받게 되고
토니상 작품상, 대본, 작곡/작사,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작품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미국인들이 우리보다 사랑이라는 감성에 더 악한 것 같다는 생각도...
 


1막 19세기 비엔나
돈 많고 잘생긴 미혼남 알프레드(최재웅)와 화려한 연애편력을 자랑하는 조세핀(조정은).
그들은 진정한 로맨스가 없는 삶이 영 불만족스럽고 무의미하기만 하다.
주인공이 친구 테드와 헬렌에게 보내는 편지 속에는
이런 무료함과 상류층의 사랑에 대한 신물이 구구절절 적혀있다.
뭔가 다른 사랑을 꿈꾸는 그들이 선택한 방법은 "Mask(가면)".
두 사람은 똑같이 가난뱅이 시인, 공장 노동자가 되어
은밀한 연애의 즐거움에 빠져든다.
극의 마지막에 알프레드가 그 스스로의 입으로 말하듯
1막은 하나의 "오페레타(operetta)"다.
경쾌하고 가벼운 웃음을 주는 소극.
천연덕스러운 조정은의 연기가 돋보인다.
그동안 정말 그녀는 무대가 많이 그리웠구나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어딘지 그녀의 목소리와 음색도 예전의 곱고 이쁜 것과는 많이 달라져있다.
능청스러웠던 그녀의 표정은 참 즐겁더라...
깨방정 조정은 ^^

 


2막은 현재
대학시절부터 13년째 절친한 친구인 그(최재웅)와 그녀(조정은).
그들은 가족과 함께 여행을 다닐만큼 가깝고 친한 사이다.
복잡한 일상을 벗어나 바닷가 팬션에서 함께 여름휴가를 즐기는 두 사람은 
서로의 배우자가 잠든 깊은 밤,
거실에서 결혼생활, 플라토닉 한 사랑(우정)에 대해 얘기를 나눈다.
그러니까 그의 말대로 그들은 지금 "연애질" 중인거다.
선을 넘느냐, 넘지 않느냐...
그 연애질의 이제 막 위험한 관계로 넘어가려고 한다.
만약 당신이 이런 경우라면 어떤 결말을 원하는가?
극은 마치 보는 사람에게 이렇게 질문하는 것 같다.
우리가 믿는 모든 사랑의 시작은
환상과 거짓일수도 있다. 아니 확실히 그렇다.
그 환상이 이제 막 현실로 넘어오는 순간은 유머러스하고 수다스럽다.
그러나  반전(?)이랄 수 있는 마지막 대사에서는
모든 유부남, 유부녀들에게 마지막 환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연애 경험이 많은 사람일수록 공감되는 대목이 많은 풍자극이라고
조정은은 말한다.
그러니까 이 뮤지컬은 결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상황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즐기라는 뜻이다.
2막보다는 1막이 재미면에선 더 있지만
2막에서 오랜 두 남녀 친구가 주고 받는 시덥잖은 대화 속에 담긴
심리적인 고백들과 그 변화를 따라가는 즐거움은
오히려 1막보다 더 솔솔하고 은근한 재미가 있다.



유학생활 중에 조정은은 생각했단다
내가 나의 모국어로 공연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깨달았다고.
그래선가?
그녀는 충분히 그 작은 복귀 무대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그녀의 반짝이는 눈빛이 그동안의 그녀 속에 있던 그리움을 보여주는 것 같다.
앞으로 그녀는 착하고 이쁜 역을 벗어나
아마도 더 많은 다른 모습으로 무대위에 서지 않을까 기대된다.
사실 배우 조정은을 이쁘고 착한 여주인공으로 만들었던 건
관객의 시선일지도 모르겠지만,
배우 조정은은 이제 그 시선에조차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배우 최재웅.
그에게 코믹한 역은 어쩐지 어울리지 않을거란 생각을 했다.
그런데 "꽤"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쁘진 않았다.
오랫만에 본 상큼 발랄한 뮤지컬.
그런데 솔직히 다시 보게 되진 않을 것 같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1. 13. 06:06
마흔을 넘긴 남자가 
남은 인생을 함께 할 확신을 주는 그런 여자를
드디어 만났다.
그리고 사랑은 시작됐다.
그러나 혼자 남겨진 그 사람은 그녀를 생각하며
깊고 진한 순애보를 세상에 남긴다.
어차피 모든 사랑의 기억은 왜곡이라지만
누군가 믿고 확신했다면 그 사랑의 가치는 이미 모든 것 위에 존재한다.
사랑... 독하고 치명적인 그 사랑...



영화배우 장진영.
자신이 주연한 영화 <국화꽃 향기>
그 여주인공 희재가 되어버린 여자 장진영.
그녀의 위암 사망 소식에 나는 손끝이 흔들렸다.
그 떨림은 그러나 같은 여자이기에,
혹은 같은 동갑이기에 느꼈던 감정은 아니었다.
가슴 안으로 크고 무거운 돌덩이 하나가 갑자기 내려앉는 느낌.
그랬던 것도 같다.
그녀가 외롭게 여행을 끝내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는지도...
그리고 그녀를 외롭게 보내지 않은 그녀 곁의 한 사람을 생각하며
그의 남은 시간들을 막막해했는지도...



결혼식 사진 속 그녀의 야윈 모습을 보면서
그의 야윈 마음을 읽어낸다.
사랑하는 사람이 필사적으로 지켜내는 하루하루를 봐야만 했던 그는
고난했을테고 그리고 황망했을 것이라고...
모르겠다.
그를 그렇게 만든 게
자기 자신인지. 아니면 그녀였는지...



어쩌면 시간이 더 지나면 나는 이 사랑을 잊어버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사랑을 믿는 사람에게 코웃음으로 흘려 보내며
세상에 아직 그딴 게 있느냐며
별 희안한 소리도 다듣는다 말할지도...
그의 기억 속에
그녀 장진영은 살아 있더라.
한 사람의 기억 속에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
결국 그녀의 삶은 그로 인해
이 생에서 아직 끝나지 않은 셈이다.
혹 모르는 일.
그를 향해 누군가 그녀의 안부를 물을지도... 

기억의 불완전성을 믿는 남자의 세밀하고 선명한 기록들...
그의 삶 속에 그녀의 삶 또한 아직 또렷이 살아있다.
건강하고 밝게, 그리고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그녀는 지금 그의 맘 안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