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3.07.17 08:18

신간이 출판될때마다 꼭 챙겨서 읽는 편이지만

솔직히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매니아는 아니다.

어쩌다보니 우리나라에 출판된 그의 책을 다 읽기는 했지만

그건 어쩌면 일종의 습관같은 거일수도 있다.

그의 책을 읽고 있으면

하얀 양떼 가죽을 뒤집어 쓰고 우물 속에 쪼그리고 앉아

적당한 간격으로 맥주를 들이키면서 서서히 몽롱한 상태로 빠지는 느낌이랄까?

거기에 한 가지를 취가하자면 장어덮밥 정도가 있을지도 모르겠고...

(그런데 맥주도, 장어도 내 취향은 아니라서...)

이런 이야기 주변에 책 좀 읽는 사람들에게 하면 막 웃는다.

어쩜 그렇게 딱 무라카미 하루키라고!

게다가 이 책은 시작도 하기 전에 두 가지가 무시무시했다.

일단 엄청나게 긴 제목이 무시무시했고

어떻게든 이 책의 판권을 차지하기 위한 출판사의 사투도 무시무시했다.

게다가 출판 하루 만에 전국의 서점가를 완저히 휩쓸어버린 것도 것도 무시무시했다.

이건 정말이지 근래에 보기 드문 쓰나미였다.

아! 그런데 민음사 너무 급했나보다.

오타가 너무 많다. ㅠ.ㅠ

적어도 다섯 개 정도 발견한 것 같다.

(양억관의 번역은 확실히 좋았고!)

 

 

레드, 블루, 화이트, 블랙 색채 가득한 네 명의 고교 동창생과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

나고야를 떠나 홀로 도코로 진한간 다자키는

영문도 모른 채 대학교 2학년 때

흐트러짐 없이 조화롭고 친밀한 이들 그룹으로부터 그야말로 가차없이 추방당힌다.

"스스로에게 물어봐!"

모호하고 잔인한 말과 함께!

16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36살이 된 다자키는 타의에 의한 자의(?)로 이들 한 명씩 찾아가 당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들에게서 듣게 된 이야기는 이렇다.

그가 추방된 건 시로를 강간해서라고.

시로가 그 상황을 너무도 상세하게 고백해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게다가 그에게 어이없는 누명(?)을 씌운 시로는 몇 년 전에 교살된 채로 삼일만에 발견됐단다.

급기야 일본을 떠나 필란드에 살고 있는 예리까지 찾아간다.

그런데 그녀는 처음부터 시로의 말을 믿지 않았었다고 말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추방시킨 이유는

"내가 유즈를 지켜야만 했기 때문이야.

 그 애가 정신적으로 그만큼 심각한 문제를 끌어안고 있었어.

 그만큼 절박한 지점까지 가 버렸어."

순간, 감이 왔다.

이들 모두가 사실은 공통체의 와해를 간절히 바랬다는 걸.

일종의 희생자가 필요했던 걱다.

...... 고등학교 시절, 다섯 명은 빈틈 하나 없이 거의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그들은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했다. 구성원 모두가 거기에서 깊은 행복을 맛보았다. 그러나 그런 최고의 행복이 영원히 계속될 수는 없다. 낙원은 언젠가는 사라지는 것이다. 사람은 제각기 다른 속도로 성장해 가고, 나아가는 방향도 다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피할 수 없는 위화감이 생겨났을 것이다. 미묘한 균열도 나타났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윽고 미묘한이란 말로는 처리할 수 없는 뭔가가 되었을 것임에 분명하다.

시로의 정신은 아마도 그런 다가올 미래의 압박을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다.

시로는 아마도 그런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끊임없이 감정 조절을 요구하는 긴밀한 인간관계를 더는 버텨 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 스스로의 힘으로는 그 테두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녀는 그 정도로 강인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시로는 쓰쿠루를 배신자로 만들어 버렸다. 다자키 쓰쿠루라면 그런 입장에 처한다 해도 나름대로 잘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직관이 시로에게 있었을 것이다 ......

이 부분을 읽어 나가면서,

나는 이 책을 좋아하기로 작정했다.

완벽하고 절실하게 공감했기 때문이다.

이건 좀 위험한 발언이긴한데,

나란 인간은 가족이라는 공통체에서도 자발적으로 탈락하고픈 욕망이 강하기 때문에!

다자키와 나와의 차이점은,

존재를 부정당한 사람과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의 차이, 거기에 있다.

 

이쯤되면 이제 말해도 되겠다.

지금껏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중에서 가장 좋았노라고...

책의 앞, 혹은 뒤에 작가의 변이나 작품 해설, 번역가의 소감 따위 없이

아주 냉정하고 깔끔하게 책장을 덮게 만든 것도 완벽하다.

그런데 한 가지는 영 아쉽다.

그레이 하이다의 존재가 정말 어이없이 실종돼 버렸다는 거.

실종된 채로 끝났다는 거.

그러다보니 죽음의 승계를 받았다는 의문의 피아니스트 이야기조차 신비감이 희미해져버렸다.

(그레이라는 색깔이 품고 있는 희미함에서 비롯된, 완벽히 의도된 실종이었을까???)

 

읽을수록 알겠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인 그가

굳이 어른아이의 성장소설을 쓴 의도를!

...... 사람의 마음과 사람의 마음은 조화만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다.오히려 상처와 상처로 깊이 연결된 것이다. 아픔과 아픔으로 나약함과 나약함으로 이어진다. 비통한 절규를 내포하지 않은 고요는 없으며 땅 위에 피 흘리지 않는 용서는 없고, 가슴 아픈 상실을 통과하지 않는 수용은 없다. 그것이 진정한 조화의 근저에 있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이번엔 내게 강력한 펀치를, 그것도 아주 제대로 날렸다.

젠장!

온 몸이 얼얼하다.

 

인생은 길고 때로는 가혹하다.

희생자가 필요할 경우도 있다.

누군가가 그 역할을 해야만 한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1.08.12 05:57
1965년까지 이런 법이 시행됐었단다.

누구도 흑인 남자가 입원한 병동이나 병실에서 백인 여자에게 간호를 요구할 수 없다.
백인이 백인 이외의 사람과 결혼하는 것은 위법이다. 이 조항을 위반한 결혼은 무효다.
유색인 이발사는 백인 여자나 소녀의 머리를 손질할 수 없다.
백인 관리자는 백인을 묻는 장소에 유색인을 묻을 수 없다.
백인 학교와 흑인 학교 간에는 책을 돌려 볼 수 없고, 처음 읽은 인종이 계속 본다.

공공장소에서 흑인과 백인의 분리와 차별을 규정한 '남부 짐 크로 법'
1965년까지 시행된 법이라면 그렇게 오래 된 이야기도 아니다.
이 책은,
그러니까 인종차별 시대를 살았던 위대한 흑인 가정부들의 이야기다.
우리가 알고 있는 "허클베리 핀"에도 그녀들의 이야기는 별로 없었다.
책을 읽는 동안 느꼈던 막막함과 안타까움의 정체는
어쩌면 백인 입장에서 황인족 역시 유색인에 불과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얗지 않은 피부는 더럽고 불결하다!



백인이면 누구나 자기 집에 유색인 가정부가 쓰는 화장실을 따로 만들어야 한다는 가정부 위생 발의안!
더러운 흑인 가정부가 깨끗한 백인 가정에 질병을 옮길 수 있다!
그래서 화장실 뿐만 아니라 냉장고도, 식기도, 식기를 보관하는 찬장도
백인 주인이 쓰는 것과 철저히 불리해서 사용해야 한다!
불과 50여년 전까지도 미국이라는 나라가 그랬다.
(이런 게 바로 야만이다!)
모르고 백인 화장실을 사용한 흑인이 백인들의 몰매를 맞아 실명을 한다.
(총에 맞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란다!)
인종차별 철폐 연좌농성장에는 사납고 치명적인 독일산 셰퍼드를 푼다.
아프리카의 굶주린 가난한 아동을 위한 자선 행사를 계획하는 위대한 백인은
그들 주위에서 그들의 모든 것을 챙기느라 불합리한 노역에 시달리는 가정부에게는
그 어떤 일말의 자선도 배풀지 않는다.
우아하고 인정 넘지는 백인들을 향해
이제 그녀들이 말한다.
더러운 건 색깔이 아니라고, 흑인 구역에 질병은 없다고......



<헬프>는 5년 동안 60여 차례 거절을 당한 끝에
2009년도에 출간됐단다.
그리고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며 오랜 시간 베스트셀러에 목록에 머물렀다,
드림윅스 사에서 영화로도 제작되고 있다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참혹함과 아름다움을 함께 느꼈다.
강인하다는 것은 누구에게도 당하지 않고 사는 것이란다.
강인함이란 진심으로 이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12명의 흑인 가정부들이 자신들이 겪은 이야기로 엮은 책 <가정부들>
그녀들을 인터뷰했던 백인 여자는 묻는다
"두려워요? 무슨 일이 일어날지?"
그녀들이 말한다.
"괜찮아요!"


그녀들이 대답이 "아니요!"라는 확신에 찬 대답이었다면
나는 그녀들이 이렇게까지 눈물겹지는 않았으리라.
"괜찮아요!"
그 대답 속에 들어있는 두려움이 나는 아프고 눈물겹다.
나는 그녀들만큼 용감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앞으로도 단 한 번이라도 그녀들만큼 용감해질 것 같지도 않다.
그녀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강인해질 것이다.
그 누구보다도...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1.04.01 06:16
처음 이 책을 손에 잡았을 때 참 막막했었다.
"인생 앞에 홀로 선 젊은 그대에게" 라는 부제를 책은 달고 있었다.
자신의 인생과 진로를 고민하는 젊은이를 위한 멘토링이라는 광고 문구도 읽었다.
불혹의 나이로 들고 있기에는 왠지 민망하고 미안한 책.
이 책이 베스트셀러라서 손에 잡았던 건 아니다.
김난도 교수 때문에...
난 이 사람의 담백한 글들이 좋다.
지친 어깨를 위로해주는 그 느낌도...
2010년 12월 초판 1쇄를 출판한 책은
2011년 2월 21일 초판 116쇄를 펴녔다.
덜컥 무섬증이 생길 정도로 이 책의 속도는 엄청나다.
그렇다면 이 책에는 뭐가 있는 걸까?
그 궁금증이 불혹의 나를 젊은 그대가 되어 책장을 넘기게 했다.
책의 마지막 에필로그까지 읽으면서
나는 참 따뜻하고 그리고 고마웠다.


프롤로그 | 기억하라, 너는 눈부시게 아름답다

PART 1 그대 눈동자 속이 아니면 답은 어디에도 없다
PART 2 바닥은 생각보다 깊지 않다
PART 3 기적이란 천천히 이루어지는 것이다

PART 4 ‘내일’이 이끄는 삶, ‘내 일’이 이끄는 삶

에필로그 |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사람은 누구나 지금이 가장 늙고 가장 힘든 시기란다.
젊은 백발들이 문득 가엾다.
폭발적인 젊음을 이제 다 지나온 나는 어거지로 우기듯 끄트머리를 붙잡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의 문구처럼
"그대 OO 했는가?",  "그대 OO 하라!"는 말에는 지금도 맘이 떨린다.
재수를 선택한 큰조카 놈에게 아무래도 이 책을 선물해야할 것 같다.
대학이 결승점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죽은 듯이 1년 간 공부만 하겠다고 결심한 조카놈에게
대학이라는 곳이 또 다른(혹은 진정한) 문제의 출발점이라는 사실을 조금은 알려주고 싶다.
(혹 고모를 철없는 어른아이로 생각할지라도...)
짧은 단문 속에 많은 생각과 고민들을 읽으면서
나는 내 젊음이 아까웠고 그래서 지금의 내가 서러울만큼 아쉽다.
나는 많이 두려웠었고 많이 망설였었고 많이 주저했었고 많이 포기했었다.
따지고보면 누군가 그러라고 강요하거나 압력을 준 것도 아닌데
나는 그걸 "주제파악"이라는 망상 속에 던져놓고 무참히 방치했다.
최대한 숨을 곳을 찾으려고 애썼고 숨어있는 그 곳에 물두했다.
그래서 결국 그 몰두가 나를 만들었는지도....

 If you don't know where your going, just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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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슬럼프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시점을 짧게 두는 게 포인트다.
o 추락을 지나치게 두려워하지 마라. 바닥은 생각보다 깊지 않다.
o 인관관계란 좋은 파트너를 선택하는 일이 아니라 좋은 파트너가 되는 일이다.
o 젊은 그대는 지금 인생에서 가장 늙고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o 그대의 좌절조차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o 나는 아직도 꿈꾸고 있다.
o 현실에 치열하자
o 치열한 꿈꾸기의 상실은 단순히 나이를 먹어감이 아니라 안정과 안락의 보수성에서 비롯된다.
o 더딘 것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멈출 것을 염려하라.
o 자기 전공(일)의 가치에 대해 그대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
o 인생에서 시계보다 필요한 것은 나침반이고 나침반보다 더 중요한 것은 거울이다.
o 시간관리란 무엇인가를 용기 있게 포기하는 것이다. 우선순위를 정하고 포기할 것을 먼저 정해라.
o 바빠야 시간이 난다.
o 연습하는 자와 저축하는 자는 절대로 지지 않는다.
o 기적이란 천천히 이루어지는 것이다.
o 그러니 그대여 늘 지금의 나를 뛰어넘을 것을 생각하라.
   잊지 말라. 그대가 스스로를 새롭게 만들지 않으면 언젠가는 기회가 그대를 오래되게 만들어 버린다.
o 알은 스스로 깨면 생명이 되지만 남이 깨면 요리감이 된다.
o 스펙을 위한 스펙은 말하자면 화장발 같은 것이다.
o 치열한 경쟁을 뚫기 위해서는 그저 그런 스펙이 아니라 확실한 자기 브랜드가 있어야 한다.
o 브랜드의 핵심은 하나의 촛점이다.
o 그대가 가장 잘하는 것, 그 한 가지에 집중해 그대만의 이야기를 들려주어라.
o 학교에선 나태속에 분주함이 있다. 사회는 분주함 속에 나태가 있다. 사회는 외줄을 타는 곳이다. 
   그래서 균형이 중요하다.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선 결국 자기성찰이 중요하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1.01.13 05:31
기욤 뮈소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우리나라에 정말 고마워해야 한다. ^^
매번 책이 출판되면 광속으로 베스트셀러에 진입시키는 두 사람.
한 번도 내 돈 내고 구입한 적은 없지만
어찌됐건 출판이 되면 읽게 되는 책이다.
희한하다.
굳이 찾아 읽는 것도 아닌데...



좀 미안한 발언이긴 하지만
생긴 것과 다르게 "하이틴 로맨스"스러운 글을 쓰는 기욤 뮈소.
이 사람 책이 개인적으로 기대되는 북리스트에 올라간 적은 한번도 없다.
그러나 나름대로 재미는 확실히 있다.
이 사람의 모든 책들은 영화화에 대한 소망이 담뿍 담겨있다.
(아마도 조만간 판권으로 한 밑천 잡지 않을까 싶다)
<종이 여자>는 지금까지 읽은 기욤 뮈소의 소설들과 별반 다르지 않지만
그래도 가장 읽을만한 소설이었다.
(기욤 뮈소의 책은 그래도 다 읽었다.)
개인적으로 뒷부분을 반전으로 마무리한 게 맘에 든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기윰 뮈소만큼 Killing Time에 적당한 소설을 쓰는 사람도 없는 것 같다.
서너시간을 뚝딱 지나가게 만드니까...
기욤 뮈소는 이 책을 자신의 소설들 중에서 가장 애착이 많이 가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그럴만하다 싶다.
많이는 아니지만 기존의 소설들과는 약간은 다르니까.



집필에 몰두하다 보면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많았다. 글쓰기에 빠져 살다 보면 현실의 자리를 허구에 내주는 적도 많았다. 내 소설속 영웅들이 너무나 현실적이다 못해 내가 가는 곳마다 나타나곤 했다. 그들의 고통, 회의, 행복이 온전히 내 것이 되어 집필을 끝내고 나서도 쉽게 현실세계로 돌아오지 못했다.

소설 속 주인공인 베스트셀러 작가 톰의 말이다.
사랑하는 여자와 헤어진 톰은 예고된 3부작 마지막 책을 쓰지 못하고 방황한다.
그러다 만나게 된 "빌리" (내가 요즘 "빌리"라는 이름만 들어도 무한 애정 상승이다. ^^)
그런데 이 여자가 다름아닌 톰의 소설속 등장인물이다.
인쇄 불량 파본책에서 떨어진 여자.
"빌리"는 말하다.

우리 거래를 하는 게 어때요? 나는 당신이 오로르를 되찾아 오는 걸 돕고, 당신은 날 위해 3부작 소설의 마지막 편을 쓰는 거예요. 내가 다시 책 속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으니까...

현실에서 이런 일을 겪게 된다면?
솔직히 환장하게 좋을 것 같다.
나 역시도 한번쯤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은 인물들이 꽤 많으니까...
작가도 그렇겠지만 책을 읽는 독자도 가끔 그렇다.
현실의 자리를 허구에게 내주기도 한다.
책을 완성시키는 건 작가가 아니라 독자란다.
그 말엔 전적으로 공감한다

근본적으로 책이란 게 뭘까? 종이 위에 일정한 순서에 따라 글자를 배열해 놓은 것에 불과해. 글을 쓰고 나서 마침표를 찍는다고 해서 그 이야기가 존재할 수 잇는 건 아니야. 내 책상 서랍에는 아직 출간되지 않은 미완성 원고들이 몇 개나 들어 있어. 난 그 원고들이 살아 있는 거라 생각 안 해. 아직 아무도 읽은 사람이 없으니까. 책은 읽는 사람이 있을 때 비로소 생명을 얻는 거야. 머리속에 이미지들을 그리면서 주인공들이 살아갈 상상의 세계를 만드는 것, 그렇게 책에 생명을 불어넣는 존재가 바로 독자들이야.
책이 서점에 깔리는 순간부터 책은 내 소유가 아니다. 그때부터 책은 독자들의 소유가 되는 거야. 나한테서 배턴을 넘겨받은 독자들이 주인공들을 자기화하지. 그러고는 자신의 머릿속에서 새롭게 주인공들의 세계를 만들지. 독자가 자기 방식으로 책을 해석해 내가 애초에 의도했던 것과 전혀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도 종종 있어. 하지만 그건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어.


프랑수아즈 사강이 그랬단다.
책 읽는 시간은 언제나 도둑맞는 시간이라고...
그래서 지하철 안이 세상에서 제일 큰 도서관이 되기도 한다고...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11.11 06:31
한 인간이 완벽한 타인이 돼서 산다는 게 가능할까?
우발적인 살인으로 시작된 다른 사람 되기!
그것도 아내와 두 아이가 있는 뉴욕 월가의 잘나가는 변호사가
부모가 남긴 신탁기금으로 근근히 살아가는,
숱한 잡지사에 매번 퇴짜를 맞는 별볼일 없는 삼류 사진가로 살아가기로 했다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지금과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건
적어도 내겐 일종의 환상이자 유토피아다.
책을 쓴 작가 더글라스 케네디.
어딘가에서 그를 두고 "듣보잡" 작가라는 표현을 썼다.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그의 책 <빅 픽처>는
발간된지 한달도 되지 않아 5쇄에 들어갔을 만큼 현재 서점가의 베스트셀러다.
블로그나 독서 모임 카페에서도 한창 블루칩인 소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조국인 미국보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지역에서 인지도가 높은 작가란다.
이미 10권이 넘는 소설과 여행집까지 발간한 더글라스 케네디.
미국 태생이면서 영국에서 주로 활동하고 프랑스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작가.
그야말로 그로벌한 인물이다.
2007년 4월에는 심지어 프랑스에서 문화훈장을 받기도 했단다.
2009년 11월에는 또 다시 프랑스의 유명 신문 <피가로>지에서 수여하는 그랑프리상을 받고...
정치적으로 미국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프랑스에서 열광하고 있다지만
<빅 픽쳐>를 읽고 나면 기발한 상상력과 표현력에 천상 스토리텔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진작가의 꿈을 아버지로 인해 접고
월 스트리트의 잘나가는 변호사가 된 벤 프레드포드.
공교롭게 이웃집 별볼일 없는 삼류 사진작가 게리 서머스와 아내의 불륜을 알게된 그는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르고 낯선 곳에서 게리 서머스가 된다. 
완전범죄를 꿈꾸며 철저하게 증거인멸을 하는 그의 솜씨는
과히 충격적이고 섬뜩하다.
(와인병에서 냉동고로 급기야 전기톱까지 등장하니 그럴 수밖에...)
사람은 자신이 가진 걸 모두 잃게 되면 필사적으로 되찾고 싶어한다는데
벤 이 사람은 필사적으로 자신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노력한다.
요트사고로 스스로를 죽은 사람으로 만든 벤은
되도록이면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살고자 서부의 허름한 마을에 게리 서머스란 이름으로 정착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가 찍은 인물 사진과 산불 사진이 미국 전역의 신문과 매스컴에 실린다.
하루 아침에 유명 인사가 된 벤.
급기야 의도적으로 떠나온 뉴욕 <타임>지에서도 함께 일하고 싶다며 연락이 오고
전국에서 전시회와 책 출간 제의가 쏟아지듯 들어온다.
여기에 미국이라는 나라의 특성이 독백처럼 나온다. 
꽤나 재미있고 상당히 예리한 조롱이다. 
 
일주일 동안 나는 미국 생활의 자명한 진리 중 하나를 깨닫게 됐다. 일단 인기를 얻으면 어디서나 그 사람을 찾는다. 미국 문화에서 고군분투하는 사람은 늘 무시된다. 고군분투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취급되기 일쑤다. 발행인, 잡지 편집자, 제작자, 갤러리 주인, 에이전트들을 설득하려고 필사적으로 앴는 사람은 낙오자로 취급될 분이다. 성공할 수 있는 길은 각자 찾아내야 하지만, 그 누구도 성공을 이룰 기회를 얻기란 쉽지 않다. 명성을 얻지 못한 사람에게 기회를 줄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의 재능을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이 있더라도, 자기 판단만 믿고 무명의 인물에게 지원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그런 까닭에 무명은 대부분 계속 무명으로 남는다. 그러다가 문이 열리고 빛이 들어온다. 행운의 빍은 빛에 휩싸인 후로는 갑자기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고 반드시 써야 할 인물이 된다. 이제 모두 그 사람만 찾는다. 모두 그 사람에게 전화한다. 성공의 후광이 그 사람을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그러서였나?
더글라스 케네디가 미국인이면서 영국에 사는 이유가...
어쩌면 벤은 케네디 자신의 대리인인지도 모르겠다.
미국의 스타 산업에 대한 염증과 허상.
이 소설 속에는 미국 문화 전반에 대한 은근한 조롱과 비웃음이 깔려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빅 픽처>란 제목에도 암시성이 있는 것 같다.
아무리 사실적으로 찍었다고 해도
사진(picture)은 찍은 사람의 의도와 왜곡이 담겨있다.
그리고 그 사물이 커질수록(big) 왜곡은 심해진다.
어차피 그 전부를 온전히 담을 수는 없기 때문에...



사진 전시회 오프닝 행사.
새로운 연인 앤의 앞에서 그는 전처 베스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는 황급히 자리를 피한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기자 루디와 함께 달아나듯 도망치다 교통사고를 당하고 자신은 가까스로 빠져나온다.
다음날 발행된 신문의 헤드라인에 기사!
"천재 작가 게리 서머스 교통사고로 사망"
벤은 앤과 함께 했던 오두막에서 혼자 중얼거린다.
"나는 이제 또 죽은 사람이 됐다"
또 다시 반전이다.
벤은 어떻게 될까?
(궁금한 사람은 직접 책에서 확인을...)
영화로 만들기에 딱 좋은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이미 만들어졌고  프랑스에서 11월에 개봉했단다.
현재 프랑스에서 최고 인기라는 로맹 뒤리스가 주연이고 (누군지는 모르겠다)
우리나라에서 꽤 유명한 가트린느 드뇌브도 출연한다.
(국내에 개봉하면 꼭 챙겨봐야겠다.)
인생을 몇 번씩 다른 사람으로 살 수 있다면?
그 최종 결말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지금 내 상태로는 꽤나 부러울 따름이다.
하긴 이런 걸 꿈꾸기엔 내가 가진 재능(?)이라는 게.
참 치명적으로 전무(全無)하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08.30 06:42
요즘 베스트셀러로 한창 인기있는 책이다.
2010년 5월 24일 1판 1쇄를 발행하고 두 달 반 만에
41판을 찍어낸 히트작이다.
더구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몹시도 정의로운 제목을 내세우고 말이다.
저자 마이클 샌델은
27세에 최연소 하버드대학교 교수가 된 사람이란다.
1980년부터 30년간 하버드대에서 정치철학을 가르치고 있고
그의 정의(justice) 수업은 현재까지도 20여 년 동안
하버드대 학생들 사이에서 최고의 명강의로 손꼽히고 있다고 한다.
책의 겉표지에 나와있는 강의 모습은 이 말을 실감하게 한다.
제목이 주는 정의로움때문에(?) 읽는 동안 고전을 면치 못할까봐 걱정했는데
정말 놀랍다.
아주 재미있고 그리고 무지 지적인 책이다.



이 책에는 "정의"를 이해하는 세 가지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첫번째는 공리주의 시각으로
정의란 행복의 극대화, 즉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제러미 벤담과 존 스튜어트 밀의 이론을 들어 설명한다.
두번째는 자유와 연관시키는 시각으로
정의란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라고 말하다.
두번째 해석은 다시 자유지상주의의 견해와 자유주의적 평등주의 견해 둘로 구분된다.
전자는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한 이마누엘 칸트를
후자는 평등을 옹호한 존 롤스의 이론을 내세운다.
마지막 세번째는
저자가 좋아하는 방식이라고 밝힌 미덕과 연관시키는 시각이다.
정의란 미덕을 키우고 공동선을 고민하는 것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적인 견해다.
저자는 책의 초입부에
사회가 정의로운지 묻는 것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 이를테면
소득과 부, 의무와 권리, 권력과 기회, 공직과 영광 등을 어떻게 분배하는지 묻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정의로운 사회란 이것들을 올바르게 분배하는 사회라는 뜻이다.
그리고 책에서 언급한 "행복한 도시를 위해 지하실에서 영양실조로 쇠약해져가는 아이"의 비유는
섬뜩하고 정직하다.
어쩌면 정의를 우리가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소위 말하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으로...
그런데 아이의 입장이라면 그 실상이 얼마나 잔인하고 참혹한 일이겠는가!
절대 다수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이 일은 과연 정의로운가?



상당히 어려운 문제를
다양한 주제와 다양한 예시를 들어가며 아주 흥미롭게 설명하고 있다.
소수집단 우대정책, 대리 출산, 낙태, 동성혼, 징집, 자원군 등
사회에 찬반이 갈리는 직접적이면서 상당히 조심스러운 문제에서부터
자동차 수리, 유리창 닦기 등과 같은 비유를 통한 해석까지 그 범위 또한 방대하다.
말 그대로 거침없이 지적이다.
(화려한 문학적 구사 없이도 이렇게 충격적이게 아름다울 수 있다니...)
끊임없이 질문을 해서 읽는 이들로 하여금 적지 않은 딜레마에 빠지게 하는데
그 지적 갈등 과정 역시나 상당히 재미있고 즐겁다.
계속되는 딜레마 속에서도 어느 틈에 읽고 있는 이의 생각까지도 하나씩 정리하게 만든다.
상당히 괜찮은 명강의를 직접 듣고 있는 떨림과 흥분이랄까?
명성뿐인 책이 있고, 명성 그 이상인 책이 있는데
이 책은 확실히 후자에 속한다.
한 번 읽는 것으로 끝날 책이 아니라 두고두고 몇 번씩 읽어도 좋을 책이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올 책이고
읽을 때마다 새롭게 알게되는 것들이 끊임없이 나타날 그런 책이다.
충분히 그리고 확실히...

 <하버드대 강의 모습>

정말 멋지고 환상적인 책을 만났다.
이런 게 책이다!!!
이 책 한 권 속에 완벽히 넋을 잃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08.05 06:32
7월 28일에 드디어 <1Q84> book 3 가 출판됐다.
선주문 예약판매만으로도 베스트셀러에 진입했다고 했던가?
우리나라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골수팬들은 참 많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러면서도 무라카미 하루키와 무라카미 류가 같은 사람인 줄 알고 있는 사람도 많다는 사실 ^^
무라카미 하루키는 내게는 좀 늦게 글발(?)이 붙는 편이다.
좋아하는 작가에 포함되어 있지는 않지만 새 책이 출판되면
외면하지는 않고 읽게 되는 그런 작가다.
그래도 어쨌든 일가를 이룬 작가임에는 틀림없다.
늘 생각하는 건데,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읽고 있으면 그런 느낌이다.
양털을 뒤집어 쓰고 우물에 웅크리고 앉아 맥주를 마시는 기분.
자발적인 시원한 고립이긴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많이 불편한 느낌!



노란색의 커다란 달, 그리고 초록색의 작은 달
두 개의 달의 뜨는 1Q84의 세계.
책의 구절처럼 이 세계에서 모든 건 암시와 수수께끼로 혹은 누락되고 변형된 형태로만 말해야 한다.
일부러 정리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흩어트린 이야기.
책 속의 인물들조차도 그 사실을 확실히 알고 있다.
눈을 뜨고 있는데 아무것도 안 보고 있는 상태.
"정말 기묘한 세계로군. 어디까지 가설이고 어디서부터 현실인지 그 경계가 갈수록 모호해져."
"이건 원래 내가 속한 세계가 아니야."


<1Q84> book 1과 book 2를 읽으면서는 큰 느낌이 없었다.
혼란스러웠고 솔직히 말하면 이게 다 뭔가 싶기도 했다.
그런데 book 3를 읽는 동안은 확실히 달랐다.
아주 쉽고 편안하게 집중해면서 읽을 수 있었다.
뭐지? 나도 달이 두 개 뜨는 세상에 들어와 버린 건가?
이야기는 여전히 인물을 중심으로 흩어져 있지만 통일성은 있다.
"선구"의 리더를 살해하고 숨어있는 아모마메는 그 살인의 밤에 수태를 한다.
남자와의 접촉없이 수태한 그녀는 그 아이가 20년 전부터 만나지 못한 덴고의 아이임을 확신한다.
(이 부분 무지 성경적이지 않나? 수태고지까지는 아니지만...)
교단은 리더의 사망으로 새로운 후계자이자 '목소리를 듣는 자'가 필요해졌다.
그리고 그들은 아오마메, 덴고 그리고 뱃 속의 작은 생명 모두를 모조리 손에 넣으려 하고 있다.
'목소리를 듣는' 새로운 시스템으로서.
선구측이 제안하는 협상을 거부한 아오마메는 필사적으로 다짐한다.
덴고를 만나 둘이 함께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작은 것을 지키겠노라고...



그 둘은 아오마메의 바람처럼 만나게 될까?
우여곡절을 겪긴 하지만 결국 그들은 만난다.
그리고 아오마메가 1Q84의 세계로 들어왔던 처음 복장 그대로
이번에는 수도고속도로 비상계단을 역으로 통과함으로써
덴고와 함께 달이 하나 뜨는 세계로 들어간다.
여기서 중요한 건,
"돌아간다"는 게 아니라 "들어간다"는 사실이다.

...... 이곳이 어떤 세계인지, 아직 판명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구조를 가진 세계이건 나는 이곳에 머물 것이다. 아오마메는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는 이곳에 머물 것이다. 이 세계에는 아마도 이 세계 나름의 위협이 있고, 위험이 숨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세계 나름의 수많은 수수께끼와 모순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어두운 길을 우리는 앞으로 수없이 더듬어가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좋다. 괜찮다. 기꺼이 그것을 받아들이자. 나는 이곳에서 이제 어디로도 가지 않는다.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는 단 하나뿐인 달을 가진 이 세계에 발을 딛고 머무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하고 싶었던 건 이것이었나?
아마 그래서 읽은 이들의 의견이 분분한건지도 모르겠다.
역시 무라카미 하루키다 라는 사람과 결말에 실망했다는 사람이 팽팽하다.
사실 약간 교과서적이고 교훈적인(?) 결말이긴 하지만
나는 나쁘지 않았다.
이야기를 쫒아가다 보면 결국 이렇게 되겠구나 하는 걸 감지할 수 있기 때문에
어쨌든 제 갈 길을 갔다고 생각된다.
단지 해결(?)되지 못하고 죽어간 인물들은 좀 안스럽긴 하다.
아마도 이야기가 여기서 끝이 난 것 같지는 않다.
남겨진 암시와 수수께끼들이 아직 버젓히 존재하고 있기에...
그리고 리틀 피플 6명에 의해 지금 한창 만들어지고 있는 공기 번데기도 있기에...
여기가 "끝~~!"이라며 종지부를 찍어도 딱히 상관없긴 하지만
나는 아무래도 book 4가 계속 나올 것 같다.
어쩌면 그 이상의 긴 이야기가 나올게 될지도...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07.22 06:27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 <단 하루만 더>의 작가,
미치 앨봄의 신작 <8년의 동행>을 읽다.
그의 첫번째 책이자 공전의 베스트셀러가 됐던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처럼
이 책 역시도 실화라고 미치 앨봄은 밝혔다.
그는 작가가 어떤 책에 대해 단정적으로 말하기란 힘든 일이지만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자신이 쓴 책들 중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말하기도 했다.
8년이라는 세월을 거쳐 완성된 실제 이야기라...
뭐가 있겠지! 아니면 그가 독특한 글쓰기의 패턴을 이어가고 있는건지도...



앨버트 루이스(Alberr lewis)와 헨리 코빙턴(Henry Covington)
사는 것도 다르고 인종도 다르며 한 번도 서로 만나 본 적이 없는 두 남자의 이야기,
그럼에도 타인의 삶을 변화시켰다는 공통점을 지닌 두 남자의 이야기.
2000년 봄, 미치 앨봄이 강연을 마치고 나오던 어느날,
여든 두살인 유교대 랍비 앨버트 루이스로부터 뜻밖의 부탁을 받게 된다.
"내 추도사를 써 주겠나?"
언제나 타인에게 추도사를 했던 랍비를 위한 추도사...
그리고 쓰레기통 뒤의 어둠 속에서 자신을 살려준다면 삶을 하나님에게 바치겠다고 약속하는 한 남자 헨리.
교도서 복역, 마약판매와 복용의 전과 경력이 있는 그는
"내 형제는 내가 지킵니다"라는 교회의 목사가 되어 있다.
미치 앨봄과 그 두 사람을 각각 따로 만나서 잉야기하게 되지만
그 둘은 서로 비슷하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이 이야기하고 있듯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 우리는 서로 다른 것 같지만 사실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
그것이 타인을 가족처럼 보듬고 사랑해야 하는 이유다.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으니,
삶이란 너무나 위대한 여정 아닌가 ......

전작들과 비슷한 방식, 비슷한 이야기라
느낌과 감동(?)까지 비슷하다. 
"인간"이라는 이름의 연결된 "공동체"의 의미와 존재 이유.
그 안에 종교도 믿음도 삶과 죽음도 모두 담겨있다.
책의 내용은 별다를 것이 없긴 하지만
인물들이 나누는 짧은 대화들이 따뜻하다.
특별한 담론이 아닌 일상어인데 가슴 속에 차곡차곡 담긴다.
아마 그래서 미치 앨봄도 이런 글쓰기를 계속 하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사실은 자신이 따뜻해지고 싶어서... (^^) 
그 마음이 세 개의  자선단체를 운영하게 하는지도...
노블리스 오블리제, 미치 앨봄!



"아름답지 않은가?"
"네?"
"인생 말이야!"

행복의 비결이 뭔가요?
만족할 줄 아는 것.
그게 다인가요?
감사할 줄 아는 것.
그게 다인가요?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해서, 자신이 받은 사랑에 대해서, 그리고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것들에 대해서.
그게 다인가요?
그래, 그게 전부야.

사람들이 죽음을 앞에 두고 제일 두려워하는 게 뭘까요?
이런 거겠지. 죽음 다음엔 뭐가 있을까? 나는 어디로 가게 될까? 그곳은 내가 상상하던 그런 곳일까?
맞아요. 그럴 거예요.
그래, 하지만 또 다른 게 있지
뭐요?
사람들에게 잊히는 것.

우리 가족이 함께 찍은 사진이야.
죽음의 망령이 내 곁을 어슬렁거리는 느낌이 들 때마다 이 사진을 들여다본다네.
가족들 모두 카메라를 보고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이렇게 중얼거린다네.
'앨, 자네 괜찮은 삶을 살았어. 이들이 있으니 자넨 죽어도 결코 죽는 게 아니야.'라고.

저들은 영영 산 자들의 기억에서 지워졌고,
아예 존재한 적도 없는 사람들과도 같으며,
그것은 마지막 숨이 끊어지는 것보다 더욱 커다란 상실이라네.
그들은 두 번째 죽음을 맞는 것이라네.    - 토머스 하디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06.17 06:34
소설 노동자 김탁환과 과학콘서트 정재승이 만나서 책을,
그것도 소설책을 썼단다.
뇌 과학자와 팩션 소설가가 만나 쓴 미래소설.
일단은 귀가 솔깃한 내용 아닌가?
이 두사람의 인연은 KAIST에서 시작된다.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인 정재승.
그리고 좀 의외라고 생각될지 모르지만 소설가 김탁환이 KAIST 교수로 오면서
우연한 술자리에서 이 이야기가 시작됐다고 한다.
1990년대 초에 사건이 하나 있었단다.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서울대공원에서 한 여자가 남자 친구에게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여달라며
사자 우리에 손수건을 던진 후 가져오라고 했단다.
그런데 이 남자,
사랑에 눈이 멀었는지 어땠는지 모르지만 사자 우리 안을 들어갔단다.
그 최후는.... 뻔하지 않겠는가?
결국 남자는 사자에게 처참하게 죽임을 당함으로써 엽기적인 결말이 백주대낮에 발생하게 된거다.
나중에 이 남자의 시신을 부검했더니 그의 입 속에서 사자털이 잔뜩 나왔다나.
인간의 "생존 본능"이 그 상황에서 사자를 물어뜯게 만들었다는 거다.
그리고 이 세기의 사건은 과학자 정재승의 뇌리에 각인되어 화두가 되었단다.
소설을 써 보고 싶다는 생애 첫 충동을 일으킬만큼...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순간,
엄청난 분노와 함께 미친 듯이 덤벼대는 인간의 폭력 성향.
이 "생존 본능"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낼 수는 없을까?
로봇에게 생존 본능을 코드화해서 자신을 분해하거나 부수려는 존재에게 맞서 분노하게 만드는 일이 가능할까?
소설 <눈먼 시계공>은 그러니까 정재승의 화두에
김탁환의 캐릭터가 만나면서 이야기가 되어 세상에 나온 셈이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 <데몰리션맨>을 떠올리게 하는 소설이다.
지방 자치제가 활성화되고 국가보다 지역 내 기업의 경제적 영향력이 증대된 2049년의 세계에서는
국가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특별시 체제로 재편하는 게 유행처럼 늘어나게 된다.
인간과 사이보그, 그리고 로봇이 함께 공존하는 세상.
마치 월드컵과 K-1을 연상시키는 로봇 배틀원 경기에 열광하는 사람들.
그리고 의문의 연쇄 살인 사건.
발견되는 시체는 하나 같이 뇌가 사라진 상태다.
피해자의 뇌에 남겨진 기억을 끌어내 범인을 잡았던 비밀 수사대 스티그마팀은 당혹스럽다.
뇌가 깜쪽같이 사라져버렸으니...

 <김탁환과 정재승>

이야기는 로봇 격투 경기와 살인 사건이 함께 맛물리면서 긴박하게 이어진다.
이야기 자체는 아주 흥미롭고 재미있다.
책장을 금방금방 넘기게 만들만큼...
김탁환이야 탁월한 스토리텔러로 유명한 사람이고
정재승 또한 입담 있는 과학자로 여러 편의 베스트셀러를 쓴 작가이기도 한다.
바이오 및 뇌공학자로 실제 소설의 내용과 비슷한 연구를 하고 있는 정재승의 과학적 상상력도 재미있다.
인간의 뇌와 로봇의 완벽한 인터페이스.
예전에는 결코 가능하지 않을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충분히 가능할거란 쪽으로 변했다.
(딱히 이 책 때문에 그렇게 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세상은 늘 불가능을 현실화시키는 걸 계속 봐왔으니까...)
Impossilbe! 그건 아무것도 아니라는데...
정말 그렇게 되고 있음을 절감하고 체감한다.
기계와 인간이 몸을 섞는 그런 시대가 온다면,
우리는 어찌됐든 그걸 새로운 진화와 혁명으로 받아들이게 될까?
로봇의 머리에 인간의 머리를 이식하게 된다면
그 존재를 사이보그가 아니라 인간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을까?
입력된 코드에 의해 계산과 통계를 통해 행동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해서 행동하게 된다면...

이 소설에서는 인간의 "분노와 증오"를 격투 로봇에게 이입시킴으로
폭발적인 에너지를 내도록 프로그래밍 시킨다.
일부러 극심한 공포와 자극 속에서 사람을 살해함으로써
인간의 뇌에 저장되어 있는 그 살해 순간의 분노를
엄청난 폭력으로 분출시키는 프로그래밍.
기억은 세포를 바꾸고 세포의 변화가 곧 기억이 된단다.
그러니 기억은 과거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 존재한다.
SF적인 상상이라고 치부해버리기엔 세상은 너무 멀리까지 와 있다.
그러한 세계에서 나는 살아갈 수 있을까?
책장을 덮은 뒤끝은 영 찜찜하다.
당신의 전두엽엔 어떤 기억이 저장되어 있는가?
언젠가는 누군가 당신의 분노와 증오의 기억을 노리게 될지도 모른다.
다들 머리를 조심하라!!!!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05.18 06:50
어떤 면에서 보면 자국 프랑스에서보다
우리나라에서 더 대중적인 인기를 받고 있는 베르나르 베르베르.
그의 새로운 책 2권이 나왔다.
처음엔 한국인이 주인공이라는 그 장편이 출판됐구나 싶었는데
(그것도 주인공 이름이 우리나라에서 그의 책을 전담에서 출판하고 있는 
 열린책들 출판사 사장의 아들 이름에서 따왔단다 ^^)
그건 아니고,
베르나르의 약간은 허무맹랑하고 황당한 상상력을 모아놓은
단편, 중편 17편이 담긴 책이다.
베르나르라는 작가는 나에게는 참 극과 극을 오가게 하는 작가다.
<타나토노트>, <개미>, <파피용>, <신> 같은 작품들은 참 대단하다 싶은데
<인간>, <나무>, 그리고 신작 <파라다이스>는 뭐랄까,
좀 평이하고 솔직히 쉽게 돈 벌려고 쓴 책이란 생각도 든다. (죄송 ^^;;)
이런 상상력이 베르나르의 그 숱한 베스트셀러들의 모태가 된 거라
본인 스스로는 끔찍히 사랑스럽겠지만 나는 그닥......
그의 책에서 "깊이"를 보겠다는 건 아니지만 특히 중, 단편들은
왠지 속이 빈 껍데기를 들여다 보고 있는 것 같아 좀 당황스럽다. 



심각한 환경 오염으로 석유, 석탁 연료 사용이 불법화 된 세계의 새로운 교통수단의 등장.
페달 자동차와 투석기를 이용한 좀 과격하고(?) 황당한 장거리 이동 방법,
스스로 생식과 복제가 불가능해진 불임의 인간들이
어느날 남자는 꽃처럼 꽃가루로 사정을 하고 그 꽃가루를
나비가 여자의 생식기에 묻힘으로써 탄생되는 새로운 아기들.
좀 엽기적인 내용이긴 하지만 급기야 나비를 유혹하기 위해
인간들은 유행을 창조하고 몸을 장식하게 된다.
지구상에 여자들만 남고 남자들은 전설 속으로 사라진 시대의 획기적인 과학 창조물 난생인간.
거대하고 강력한 상표의 힘으로 전 지구가 민영화가 된다면?
영국, 미국, 프랑스 라는 국가명이 사라지고
애플국, MS국, 나이키국, 아디다스국이 생겨
전쟁이나 국경 논쟁도 상표 유지를 위해 발생하게 된다면?
그런데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이런 세계를 이렇게 설명한다.
"있을 법한 미래, 있을 법한 과거"라고...
그런데 나는 베르나르가 만들어낸 이 세계만큼은
기발하고 참신하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좀 불쾌하고 불편했다면 나의 상상력이 현저하게 부족한걸까?



다른 나라에서 출판된 책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특이한 것은,
안에 있는 삽화들이 전부 우리나라 일러스트레이터 5명에 의해 그려졌다는 사실이다.
책이 출판된 나라마다 이렇게 했다면,
베르나르는 참 정치적(?)이고 사업가적인 수완이 상당한 작가라고 하겠다.
어쩌면 그런 비작가적인(?) 수완이
2010년 3월 22일 초판 1쇄 발행된 <파라다이스>를
불과 18일만인 4월 8일에 
초판 18쇄를 발행하게 만들었을지도...
아마도 베르나르에겐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베스트셀러 작가로서의 입지를 확고하게 하는 진정한 <파라다이스>가 아닐까 싶다.

이 책에서 내게 얻은 유일한 화두 하나!
"완벽한 농담은 여러 차례 버려 낸 강철 검과 같다.
 찌르고 자르고 베기도 한다. 그것도 단 번에..."

그리고 이 화두는 내가 베르나르에게 바라는 바람이기도 하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