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1. 1. 13. 05:31
기욤 뮈소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우리나라에 정말 고마워해야 한다. ^^
매번 책이 출판되면 광속으로 베스트셀러에 진입시키는 두 사람.
한 번도 내 돈 내고 구입한 적은 없지만
어찌됐건 출판이 되면 읽게 되는 책이다.
희한하다.
굳이 찾아 읽는 것도 아닌데...



좀 미안한 발언이긴 하지만
생긴 것과 다르게 "하이틴 로맨스"스러운 글을 쓰는 기욤 뮈소.
이 사람 책이 개인적으로 기대되는 북리스트에 올라간 적은 한번도 없다.
그러나 나름대로 재미는 확실히 있다.
이 사람의 모든 책들은 영화화에 대한 소망이 담뿍 담겨있다.
(아마도 조만간 판권으로 한 밑천 잡지 않을까 싶다)
<종이 여자>는 지금까지 읽은 기욤 뮈소의 소설들과 별반 다르지 않지만
그래도 가장 읽을만한 소설이었다.
(기욤 뮈소의 책은 그래도 다 읽었다.)
개인적으로 뒷부분을 반전으로 마무리한 게 맘에 든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기윰 뮈소만큼 Killing Time에 적당한 소설을 쓰는 사람도 없는 것 같다.
서너시간을 뚝딱 지나가게 만드니까...
기욤 뮈소는 이 책을 자신의 소설들 중에서 가장 애착이 많이 가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그럴만하다 싶다.
많이는 아니지만 기존의 소설들과는 약간은 다르니까.



집필에 몰두하다 보면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많았다. 글쓰기에 빠져 살다 보면 현실의 자리를 허구에 내주는 적도 많았다. 내 소설속 영웅들이 너무나 현실적이다 못해 내가 가는 곳마다 나타나곤 했다. 그들의 고통, 회의, 행복이 온전히 내 것이 되어 집필을 끝내고 나서도 쉽게 현실세계로 돌아오지 못했다.

소설 속 주인공인 베스트셀러 작가 톰의 말이다.
사랑하는 여자와 헤어진 톰은 예고된 3부작 마지막 책을 쓰지 못하고 방황한다.
그러다 만나게 된 "빌리" (내가 요즘 "빌리"라는 이름만 들어도 무한 애정 상승이다. ^^)
그런데 이 여자가 다름아닌 톰의 소설속 등장인물이다.
인쇄 불량 파본책에서 떨어진 여자.
"빌리"는 말하다.

우리 거래를 하는 게 어때요? 나는 당신이 오로르를 되찾아 오는 걸 돕고, 당신은 날 위해 3부작 소설의 마지막 편을 쓰는 거예요. 내가 다시 책 속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으니까...

현실에서 이런 일을 겪게 된다면?
솔직히 환장하게 좋을 것 같다.
나 역시도 한번쯤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은 인물들이 꽤 많으니까...
작가도 그렇겠지만 책을 읽는 독자도 가끔 그렇다.
현실의 자리를 허구에게 내주기도 한다.
책을 완성시키는 건 작가가 아니라 독자란다.
그 말엔 전적으로 공감한다

근본적으로 책이란 게 뭘까? 종이 위에 일정한 순서에 따라 글자를 배열해 놓은 것에 불과해. 글을 쓰고 나서 마침표를 찍는다고 해서 그 이야기가 존재할 수 잇는 건 아니야. 내 책상 서랍에는 아직 출간되지 않은 미완성 원고들이 몇 개나 들어 있어. 난 그 원고들이 살아 있는 거라 생각 안 해. 아직 아무도 읽은 사람이 없으니까. 책은 읽는 사람이 있을 때 비로소 생명을 얻는 거야. 머리속에 이미지들을 그리면서 주인공들이 살아갈 상상의 세계를 만드는 것, 그렇게 책에 생명을 불어넣는 존재가 바로 독자들이야.
책이 서점에 깔리는 순간부터 책은 내 소유가 아니다. 그때부터 책은 독자들의 소유가 되는 거야. 나한테서 배턴을 넘겨받은 독자들이 주인공들을 자기화하지. 그러고는 자신의 머릿속에서 새롭게 주인공들의 세계를 만들지. 독자가 자기 방식으로 책을 해석해 내가 애초에 의도했던 것과 전혀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도 종종 있어. 하지만 그건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어.


프랑수아즈 사강이 그랬단다.
책 읽는 시간은 언제나 도둑맞는 시간이라고...
그래서 지하철 안이 세상에서 제일 큰 도서관이 되기도 한다고... 
Posted by Book끄-Book끄
그냥 끄적 끄적...2011. 1. 11. 06:16
조카가 전화를 해서 꼭 일찍 들어와야 한단다.
이모한테 줄 게 있다면서...
꼭.꼭.꼭. 이라고 말했다.
뭐냐고 물었더니 이모 생일 축하 카드를 만들었단다.
훗!
또 빵 하고 터지고 만다.
이 녀석들 아니면 내가 과연 웃을 일이 있을까?



나름대로 입체카드다.
작년까지는 이 녀석이 "생일"이라고 썼었는데
이번엔 "생신"이라고 썼다.
이제 조카가 보기에도 "생신"이라는 단어를 써야 할 만큼
이모인 내가 나이를 먹었나 싶어 좀 막막하긴 하다.
생일이 뭐 "아자 아자 파이팅!" 할 일인가는 모르겠지만
조카가 그러라고 하니까 아마 당분간은 파이팅을 좀 해야 할 것 같다.



방학 중인 녀석의 소일거리로 아마도 이 카드만들기가 당첨됐겠지만
이런 작은 잔망스런 선물이 솔직히 참 고맙고 이쁘다.
조카녀석들은 말한다.
"우리 이모는 우리 없으면 못 살야! 우리를 아주 많이 사랑해서~~"
완전 이 녀석들한테 딱 걸렸다.
이모에게 줄 선물이 아직 하나 더 있는에 아직 완성하지 못했단다.
뭐냐고 물었더니,
이모는 책을 좋아하고 책을 많이 읽으니까 이모가 읽을 책을 쓰고 있다 말한다.
<해바라기의 꿈> 이라나?
조카를 이뻐하는 게 다 쓸데 없는 짓이라고 주변에선 충고(?)하지만
이런 녀석들을 어떻게 이뻐하지 않을 수 있을까?
딸바보 보다 더 심각하다는 조카 바보.
그러나 난 기꺼이 조카 바보가 되보련다.
아마도 조카들은 내게 운명적인 사랑인가 보다. ^^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9. 25. 06:12
소설 <친절한 복희씨> 이후 4년만에 출판된 박완서의 산문집.
솔직히 말하면 나는 산문집은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여기에 하나를 더 보태자면,
나는 작가 박완서를 무지 좋아한다.
서점에 가면 박완서의 책이 모여있는 코너를 들러
꼭 한번쯤은 내 손으로 스다듬어 보게 되는 그런 작가다.
그래서일지도 모르지만 박완서의 산문집을 앞에 두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손에 잡는다.
당신의 산문집은 따뜻하다.
정성이 가득 담긴 방금 한 따뜻한 집밥을 한 숟가락 가득 퍼서 입 안에 넣는 것 같다.
달달하고 그리고 편안하다.
집밥이 주는 포만감은 오래오래 지치고 힘들었던 고약한 허기를 냉큼 달랜다.



1부 - 내 생애의 밑줄
2부 - 책들의 오솔길
3부 - 그리움을 위하여


이 글들을 쓰면서 작가 박완서는 또 한 번 자신의 길을 반추했으리라.
전쟁의 공포도 혈육의 죽음도 겪어보지 못한 내게도
그녀의 일생은 안스럽고 안타깝다.
그래서 그녀는 작가가 되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녀의 글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내내 보듬어 안는 게 아닐까?

...... 쓰는 일은 어려울 때마다 엄습하는 자폐의 유혹으로부터 나를 구하고,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지속시켜주었다 ......

하나의 생명의 소멸은 그들에게 있어서는 우주의 소멸과 마찬가지란다.
80의 생애동안 수많은 우주의 소멸을 지켜봤을 박완서 선생.
이기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모든 것들이 다행스럽다.
그 모든 소멸로부터 내가 위로받고 있으니까...



특히 2부와 3부의 내용들이 진솔하고 담백하다.
당신이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인 2부는
김훈의 <남한산성>을 읽으면서 실제로 혹독한 추위를 느꼈다는 부분이 나온다.
자신의 과거사와 묘하게 일치되는 추위는 결국 박완서의 몸을 아프게 한다.
책은 정말로 그럴 수 있다.
책으로 살갗을 도려내는 추위를 실제처럼 체감할 수도 있고
책으로 늙은 몸에 젊은 피를 수혈받아 영생을 꿈꿀 수도 있다.
확실히 나는 그 사실을 전적으로 믿는다.

3부의 글들.
김수환 추기경 선종, 문학의 대모 박경리 선생의 추모글,
그리고 나목의 화가 박수근에 관한 이야기.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막상 활자로 인쇄된 글로 보니
부모잃은 아이의 막막함이 더 많이 느껴진다.
80의 나이로도 그럴 수가 있구나...
진심으로 놀랐고 당신의 마음이 부럽기까지 하다.

기억이 많은 사람은.
또 얼마나 행복할까?
부러움이 절망처럼 밀려온다.
훔치고 싶다... 훔치고 싶다...
당신의 기억 모두를...
정말로 그럴 수만 있다면...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10. 4. 22. 08:19

<그건, 사랑이었네> - 한비야 

그건 사랑이었네

저는 개인적으로 목소리 크고 수다스러운 사람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왠지 시비를 걸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말이죠.
그런 저의 기준으로 따진다면 일단 "한비야"는 좋은 점수를 받기가 아무래도 어려운 사람이죠.
참 많이 일을 만들어서, 참 많이 지치지도 않고, 참 많이 치열하게, 참 열심히 하면서 사는 사람, 한비야!
얼마 전에는 가을에 함께 커피를 마시고 싶은 지식인 2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1위는 안철수, 3위는 공지영이었죠)
“바람의 딸”로 지구를 걸어서 세 바퀴 반이나 돌아야 했고, 돌아와서는 다시 우리나라도  돌아줘야 했고, 그 뒤엔 불혹의 나이로 주위의 반대를 뿌리치고 중국으로 날아가 어학공부도 해야 했고, 그런 과정들을 또 몇 권의 책으로 열심히 써내야 했고...  다행히(?) 그 책들이 나란히 베스트셀러에 올라서 어느 정도 수확도 있었겠지만 말이죠.
참 복 많은 사람이라고 무작정 생각하기도 했었죠.
그녀의 책들을 차례차례 읽으면서도 솔직히 별다른 감흥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하기도 했었죠.
“한비야와 나는 참 궁합이 안 맞는 상대구나” 라고...
이제와 10년 넘게 안 맞았던 궁합이 돌연 한 권의 책으로 찰떡궁합이 된 건 아니지만 분명 그녀에게 받은 메시지가 있음을 부정할 순 없습니다.
사람은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고 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했던가요!
“무릎팍 도사”에 나와 강호동 앞에서 “조조조조~~~”을 외치던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자주 “울울울울~~~”에 빠져 있던 저는 웃을 수밖에 없었죠.
우리 둘이 만나면 완벽한 “조울증”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예전에 읽었던 그녀의 책 <중국견문론>에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길을 모르면 물어보면 될 것이고, 길을 잃으면 다시 돌아가 처음부터 시작하면 될 것이다“라고...
그러니까 일단은 떠나보라는 말이었죠.
떠나라는 이야기만 들어도 온 몸이 저릿저릿했던 저는 그녀를 향한 노골적인 부러움과 시기심만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건 둘의 궁합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을 거란 생각도 이제와 하게 되네요.
<여행서>로만 익숙했던 한비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온전히 여행서 같지 않았던 그녀의 글들.
투박하고 촌스러운 문체, 심지어는 너무나 개인적인 말투들을 남발하는 걸 보면서 사이비 작가라는 생각까지도 들었습니다.
그런 그가 급기야 더 개인적인 책을 냈네요.
<그건, 사람이었네>
책의 서두에서 밝혔듯 그녀는 이 책을 언니로써, 누나로써 동생들에게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마음으로 편하게 썼다고 밝혔습니다.
“청춘”들을 위한 글!
아마 이 책의 다른 이름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래서 ‘내가 지금 청춘인가?’하는 애매한 시기의 사람들(?)에겐 어쩌면 이 책은 특별한 이야기가 아닐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제가 굳이 소개하는 이유는 단 하나,
그녀의 눈부신 “청춘” 때문입니다.
40의 나이에 중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날 때도 기겁을 했었는데, 51살의 나이로 미국 보스턴 테프츠 대학에서 본격적인 구호 이론을 공부하겠다며 또 다시 작년 9월 유학의 길을 떠났습니다.
....... 현실 불가능한 일이라고 해도 단 한 번도 이룰 수 없는 꿈을 꾸어보지 않은 청춘, 단 한 번도 현실 밖의 일을 상상조차 하지 않는 청춘, 그 청춘은 청춘도 아니다. 허무맹랑하고 황당무계해 보이는 꿈이라도 가슴 가득 품고 설레어보아야 청춘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야말로 눈부신 젊음의 특권이 아니겠는가? ......
그녀의 글처럼 도무지 그녀의 “청춘”은 끝이 날 줄 모르네요.
9년간 함께 했던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도 그만 두고 그녀는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갔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청춘”이라는 건 “나이”와는 하등 상관관계가 없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린 청춘”은 생동감과 활기참, 그리고 도전 정신이라면, 시간을 지나온 “성숙된 청춘”은 지식과 지혜, 명석함으로 비롯된 현실감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늦은 시작이 두렵지 않은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그 두려움을 이기는 방법을 아마도 그녀 한비야는 알아버린 것 같습니다.
이기지 못했다면 적어도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함께 동행하는 방법을 알게 됐는지도요.
그리고 그 방법 중 하나에는 그녀가 항상 말하는 “1년에 100권 책읽기”도 분명 포함되어 있을 겁니다.

“책”
제게는 심장이 뛰고 가슴이 설레는 최고의 단어입니다.
어릴 적 제 꿈 중의 하나는 책을 읽다 눈이 멀어버리는 것이었죠. 그리고 이 어린 꿈이 “오르한 파묵”이라는 터키작가에게 맹목적인 사랑을 품게 만든 이유이기도 합니다.
참 어이없고 황당하게 들리겠지만 그런 소망을 품었던 때가 정말 있었습니다.
제가 “책”이라는 세계에 대해 품고 있는 생각과 정확히 일치하는 생각을 그녀 한비야도 하고 있습니다.
...... "독서"의 즐거움이란 책 읽는 그 자체뿐만이 아니라 도서관에 가서 책을 찾는 기대감, 찾아내서 빌려올 때의 뿌듯함, 이미 대출된 책의 차례를 기다리는 설렘, 점심을 굶어가며 모은 돈으로 서점에 가서 내 책을 사는 기쁨, 그 책을 책장에 꽃아 놓고 보는 흐뭇함, 그 책을 누군가에게 빌려주고 돌려받는 날까지 괜히 조마조마해지는 조바심까지를 포함한다......
저는 이런 마음을 “판타지”라고 이름 붙이기도 했습니다.
대학에 들어가 처음으로 아르바이트해서 받은 돈으로 제일 먼저 한 일은,
조정래의 <태백산맥> 10권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종로서적에서 이틀에 나눠 5권씩 구입해 들고 오면서 내가 세상에서 제일 큰 부자가 된 것만 같았습니다. 얼얼했던 손의 기억도 아직까지 생생합니다.
그리고 그 책은 여전히 지금까지도 제 손길을 받고 있죠.(이 책 정말 많이 읽었네요......)
사람이 사람으로서 품위를 지키며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물의 최소량은 하루에 15리터라고 합니다.
저는 그 자리에 하루에 “15장의 책읽기”가 포함되는 날이 꼭 왔으면 좋겠다고 꿈꿉니다.
책이 없었다면,
아마도 저는 참 재미없게 그리고 참 많이 힘들게 세상을 살아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이유로 책은,
저에게 있어 생명의 또 다른 숨구멍입니다...

* 문득 궁금해집니다.
  당신에게 “책”은 무엇입니까?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12. 21. 05:55
 <천만 개의 사람꽃> - 임종진


천만 개의 사람꽃 


사진작가 임종진.

전 이 사람을 김광석이라는, 10여년에 훌쩍 세상과의 이별을 선택한 통기타 가수를 통해 알게 됐습니다.

2008년 2월에 나온 <김광석 그가 그리운 날에>라는 책이 바로 그 인연이죠.

“한겨레신문”의 사진기자로 오랫동안 일했던 임종진은 떠나버린 김광석을 그리워하며 짧았지만 여운 깊었던 그와의 만남과 함께 나눴던 생각, 마음의 교감들을 이 책을 통해 고백했었습니다. 십여 년 동안 혼자 간직했던 생전의 젊고 다정했던 김광석의 모습들을 이 책을 통해 만날 수 있었죠.

서른의 대표곡이 된 김광석의 노래 “서른 즈음에”...

이미 그 나이를 한참 전에 넘겨버린 저는,

20대엔 절대 공감하지 못했던 이 노래가 지금은 가끔 내 지난 모습의 반추처럼 느껴집니다.

김광석이란 가수의 목소리에 달라붙어있던 그리움과 아련함의 깊이를 이해하기엔 20대의 시간은 아무래도 너무 활기찼겠죠.

사람들로부터 떠나 버린 가수 김광석, 그리고 사람들에게로 늘 떠나는 사진작가 임종진.

그 두 사람은 공통점은 그러나 “그리움”이었습니다.

디지털이 지배하는 세상에 여전히 구식 필름 사진을 고집하는 사진작가 임종진.

그는 “달팽이 사진작가”라는 별명을 자랑스러워하는 온기 가득한 사람입니다.

그가 찍은 사진들을 보면 아프고 다정한 사람들의 모습에 울고 웃고 희망을 걸게 됩니다.

사진을 찍는 이유...

어설프지만 저 역시도 사진 속에 담기는 멈춤에 넋을 잃는 사람이기도 하죠.

아직 내공이 부족하기에 제 카메라 앵클의 시선은 여전히 풍경입니다. 사람을 그 모습 그대로 담아낸다는 게 아직까지는 영 자신이 없기 때문이죠. 더 오래, 더 많은 시간이 지난다면 가능한 일이 될까요?

6차례 방북 취재로 김정일 최고위원장에게 “남녘 사진작가”라는 별칭까지 받기도 했고, 반전평화팀의 일원으로 이라크 그 화염의 도시 속을 다니다 민병대에 스파이로 오인돼 생사의 갈림길에 서기도 했답니다.

위기의 상황에서 번번이 그를 살렸던 건 한 장의 사진에서 비롯된 인연이었죠.

어쩌면 그의 사진 속엔 담겨있는 "생명“이 그의 생명을 지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천만 개의 사람꽃>

2008년 가을에 출판된 이 포토 에세이집에는 인도, 캄보디아, 티베트, 네발, 이라크, 그리고 우리나라의 생명 품은 사람들이 모습이 담겨져 있습니다.

“사람은 꽃보다 아름답다”는 노랫말처럼 이 책속에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 속에는 희망 품은 웃음이 꽃처럼 만개해있습니다.

그리고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나라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출생부터 고통을 짊어진 아픈 생명들의 채 피워지지 못하고 꺾일 숱한 꽃들도 있죠.

품질 좋다는 이라크 석유의 최대 매장지 남부지역 바스라.

1991년 1차 걸프전 당시 퍼부은 수백만 발의 열화우라늄탄으로 이 지역의 신생아 30%는 선천성 백혈병이나 치명적인 기형 장애를 안고 세상에 태어납니다.

아기의 첫 울음으로 남자아이야 여자아이냐를 가늠하지 않고 병이 있느냐 없느냐를 가늠하는 것이 일상의 모습이 되어 버린 곳. 아무런 병 없이 태어난 아이들도 대부분은 극심한 영양실조와 부족한 의약품으로 얼마간의 삶만이 허락될 뿐입니다.

그리고 어미는 아이를 맘껏 안아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지는 향기를 바라보기만 합니다.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난 어린 꽃은 만개의 소원을 피워내지 못한 채 봉오리 그대로 세상 속에 삼켜집니다.

알까요?

그 봉오리가 한 귀퉁이라도 벌어진다면 그 순결한 향기를 우리도 맡을 수 있었다는 걸...

기껏해야 평균 수명 15세.

꽃이 집니다... 꽃이 집니다...

맘껏 피지도 못한 어린 꽃들은 무슨 영문인지도 모른 채 그렇게 향기를 거둬갑니다.

미안하다는 말조차도 감히 할 수 없는 한 사람의 시선이 조용히 또 한 장의 책장을 서둘러 넘길 뿐입니다.




사람은 “추억을 기록”하기 위해, 그래서 “오래 기억”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 걸까요?

사진에 담긴 멈춰진 시간 속에서 그러나 저는 움직임을 봅니다.

사람의 시선은 늘 다른 방향을 향하고 기억 또한 왜곡과 변형을 거듭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기억하는 것들에 대한 의심과 불신이 생기기도 하죠. 누구라도 결국은 자신에게 유리하게만 담겨지는 기억...

사진은 그러니까 그 기억 속에 일부러 던져지는 모난 돌멩이와도 같습니다.

섬뜩한 파문이 일죠.

이 사진 속의 너의 기억은 온전히 사실인가?

사진이 내게 물어 옵니다.

그래서 때로는 한 권의 책보다 한 장의 사진으로 더 많은 것들을 읽고 이해하게 됩니다.

사람의 감각 중 가장 강력하다는 시각.

예전에 저는 본다는 것에 대해 지독히 넌더리냈던 적이 있습니다.

내 눈 앞에 보여지는 모든 것들이 믿을 수 없었고 믿고 싶지도 않았기에 그냥 그대로 눈이 멀어버려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사람이 되길 소원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 봤던 흑백 사진집 한 권.

사진작가 최민식 선생님의 <인간(HUMAN)>이라는 책이었죠.

그 책을 보면서 저는 내가 보는 세상에 넌더리내야 하는 게 아니라 나라는 인간에 넌더리내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뭉턱뭉턱 올라오던 울음 때문에 책장을 넘기기가 얼마나 아프고 서러웠던지...



 
신문을 들고 있는 장애우는 아직까지도 신문을 들고 한 팔을 휘저으며 한 다리로 뛰고 있을 것만 같고, 아직도 저 아주머니는 생선을 벌여놓고 비닐로 비를 피하며 다음 생계를 위한 장사를 하고 있을 것만 같고, 아직도 작은 나무통 속에 아기는 조각난 군밤을 작게 오물거리며 허기를 채우고 있을 것만 같아 지금도 눈 밑이 붉어집니다.

이 책, <천만 개의 사람꽃>도 느낌은 조금 다르지만 탄피 더미 속에 앉아 있는 아이의 분노에 찬 눈빛,  붉은 막대사탕 하나를 들고 찬란한 미소를 보내는 천진한 눈빛의 아이를 보고 있으면 왠지 미안해지고 안스러워집니다.

사진은 권력이라고 했던가요?

매번 사진이 휘두르는 진실의 권력 앞에 여지없이 무너지게 되네요.

그리고 한 장 한 장 사진 옆에 적혀 있는 임종진만의 단상들도 많은 화두를 던져줍니다.

프로패셔널한 사진작가의 수줍고 단정한 글들은 일부러 꾸며 쓴 것이 아니라 비록 서툰 표현들이지만 다정하기까지 하죠.

글이라는 건 꼭 잘 써야 전달되는 게 아니라는 걸 다시 한 번 느끼게 됩니다.


# 천사의 새치기


조금 피곤한 어느 늦은 오후였습니다.

처음엔 요 녀석에게 별 관심이 없었답니다.

그 옆에 아주 귀여운 놈이 따로 있었거든요.

가만히 지켜보면서 눈을 마주치다가

적절한 때를 봐서 한 컷 건지려고 했지요.


그래, 이제 되었구나 싶어 슬쩍 카메라를 들어 셔터를 누르는 순간, 살살 눈치만 보며 기웃거리던 요 녀석이 불쑥 뛰어든 겁니다.

이때다 싶었던 거지요.

도저히 내칠 수 없는 환한 웃음을 코에 걸고 뛰어들었으니 어쩌겠습니까.

마냥 따라 웃을 수밖에요.


어딜 가나 천사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 기운을 줍니다.

때론 해맑은 소녀였다가 개구쟁이 소년의 모습이기도 하고

때론 늙은 농부의 여유로움과 갓난아이의 천진스러움이기도 하고

때론 길바닥 걸인의 형상이기도 합니다.


캄보디아 씨엠립의 한 골목길에서 천사는 그렇게 나타나

지친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었습니다.


임종진 그가 찍은 천만 개의 사람꽃과 천만 개의 단상들을 보며 저도 함께 말했습니다.

“요놈, 요놈, 요 이쁜놈!”

어쩌면 당신도 당신의 멈춰 있는 기억 속에 조용한 움직임을 주는 한 장의 사진을 이 책에서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 누구에게 닿아 꽃을 피웠을까요?

조용히 떠올리고 싶습니다.

어떤 향기를 남겼는지를......



Posted by Book끄-Book끄
찍고 끄적 끄적...2009. 12. 9. 06:22
조카가 상을 받았다고 와서 자랑을 한다.
한 녀석은 스케이트 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았고
한 녀석은 독서기록장으로 표창장을 받았다.



약간 통통한 이 조카 녀석은
지금 스케이트에 열공중이시다.
그 덕분에 살도 빠지고 있는 중이란다.
출발해서 얼마 안 가 넘어졌다는데
벌떡 일어나서 계속 스케이트를 타서 2등으로 들어왔단다.
승부욕 하나는 정말 끝내주는 조카다.
본인 스스로도 대견스러워 하는 얼굴로
매달과 트로피를 보여 준다.
스케이트장에서 1시간 동안 스케이트를 신은 체로
일어서보지도 못한 잼뱅이 고모로써는
마냥 신기할 뿐 ^^



무지 똘망똘망한 한 조카 녀석은 전화로 이모에게 말했다.
"이모! 나 표창장 받았거든! 이모 컴퓨터에 꼭 올려줘~~"
전화로 표창장 내용을 꼼꼼히 읽어준 조카.
우리 조카들은 어느 정도 예술적인 재능(?)이 있는 것 같다.
책을 읽는 것도 좋아하고, 쓰는 것도 좋아하고.
그림을 상당히 잘 그리는 조카도 있다.
집안 내림이라고 우기고 싶다. ^^
녀석들은 내게 말한다.
"왜 맨날 책 읽어?" 라고...
그래선가?
내 방에 들어오는 조카는 의례 책을 한 권씩 들고 들어온다.
"나 여기서 책 봐도 돼요?"
이런 이쁜 소리를 하면서....
조카들에게 책 읽는 이모, 고모로 기억된다는 거...
참 괜찮은 즐거움이다.
지금처럼 조카들이 자라서도 늘 책을 좋아하고 가까이 했으면 하는 바람.
그러려면 나도 열심히 좋은 책들을 읽어야겠지!
아자, 아자! 파이팅!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09. 10. 22. 05:57
오랫만에 황홀하게 지적이며, 탐욕스럽게 흥미롭고
문학적으로 탐미적인 책을 만나다.
아직도 손과 머리 속에 끈적거리며 달라붙어 있는
치명적이게 관능적인 소설
클라스 후이징의 <책벌레>



책 속에서 길을 읽고 미아가 되지 않기 위해서
책장을 펼친 사람은 극도로 조심해야만 한다.
잔잔한 긴장감이 온 몸의 숨통을 서서히 조이는 그런 느낌.

요한 게오르크 티니우스 그리고 팔크 라인홀트.
책을 읽기 시작했다면 반드시
공평하게 동행해주어야만 하는 두 사람!
단 한명이라도 손을 놓치거나 감정적으로 치우치게 된면
아마 미궁 속으로 깊게 빠져버릴지도 모른다.
빠져나올 수 있다고 믿는가?
그렇다면 그건 단지 당신만의 착각일 뿐이다.



요한 게오르크 티니우스!
"책을 펼칠 때면 언제나 그의 주변세계는 베일에 가려졌다"
그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신시키는 하나의 힘이었던 "독서"
책에 대한 지독하고 집요한 애착,
중독에 가까운 도서수집벽을 가진 목사.
그는 급기야 책을 소유하기 위해 목사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몇 번의 살인을 저지른다.
아무런 죄의식 없이...
(심지어 그의 장모까지도... 아주 태연하고 자연스러워 심지어 경건함까지 느껴진다.)
더 많은 책을 사기 위한, 더 많은 책을 소유하기 위한 살인.
그의 목사관 윗층은 책의 천국으로 지상 위에 재림한다.



다른  한 사람, 팔크 라인홀트!
우연히 고서점에서 구입한 티니우스의 전기를 읽은 그는  
의도적으로 그리고 자발적으로
티니우스의 복제품으로  변한다.
(물론 그는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요소까지 모방하지는 못하지만, 거의 치명적인 상태로까지는 만든다.)
티니우스가 쓴 책 5권을 전부 소유하게 된 팔크 라인홀트.
그는 티니우스의 책들을 텍스트화시켜 열개의 글의 양탄자를 탄생시킨다.
기호학적이며, 비밀스럽기까지 한 텍스트들.
방 안에 홀로 칩거한 채 오로지 텍스트에만 빠져드는 라인홀트.
그 모습은 한창 열렬한 연애에 빠진 사람의 모습과 정확히 일치한다.
전희, 사랑, 애무, 쾌락과 욕정, 그 뒤에 남은 허무와 극도의 피로감.
그는 티니우스가 남긴 텍스트 전부를 컴퓨터 안에서 분석하면서
또 다른 텍스트들를 출산한다.
드디어 열번째 출산으로 독서의 비밀을 알아낸 라인홀트.
그리고 그는 비밀을 혼자만 간직하고
자신이 만든 열번째 양탄자를 타고 그곳을 떠난다.
방 안에 홀로 남겨진 컴퓨터가 켜지면
커서와 같은 모습의 그가 화면 가장자리 저쪽으로 서서히 사리진다.



황당한 소설이라고 느껴질까?
그러나 이 책을 다 마셔버리고 나면(책의 표현데로)
분명 충격적이라 입을 다물지 못하게 되리라.
활자 증후군들의 식욕을 제대로 자극하는 책.
거북한 소화불량에 빠지더라도
탐욕스럽게 남김없이 먹어버리고 싶은 그런 책이다.



누군가는 신성모독에 대한 이야기할지도 모르겠다.
예수를 떠올리게 하는 티니우스의 행적들.
그리고 12제자를 떠올리게 하는 라인홀트.
단지 신비주의 소설이라고 단정짓지는 말기를...
그러기엔 이 책이 가진 것들이 너무 깊고 넓다.

후후훅 이 책을 마셔라!
죽음을 이기는 독서의 환희와 전율.
당신의 최후의 책벌레가 된다.


책을 읽고 나면 이 말에 적적으로 공감하면서
심지어 두 사람의 가장 가까운 동행자가 되기를 자처하게 될지도... 



아주 흥미롭고 재미있는 한 대목.
가만 보고 있으면 이 공통점들은 정말로 적절하다.

* 책과 창녀(정부)의 공통점
1. 책과 창녀는 둘 다 침대로 데려갈 수 있다.
2. 책과 창녀는 시간을 뒤바꾸어놓는다. 그들은 낮을 밤처럼, 밤을 낮처럼 만든다.
3. 책과 창녀에게는 일분일초가 귀중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알지 못한다.
   그들과 좀더 가까워질 때에야 그들에게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가 그들 안에 잠겨드는 동안 그들은 시간을 재고 있다.
4. 책과 창녀는 예전부터 각각 불행한 사랑을 하고 있다.
5. 책과 창녀 - 그들에게는 빌붙어 살면서 괴롭히는 남자들이 있다. 책에게는 비평가가 있다.
6. 책과 창녀는 공공건물에서 산다 - 특히 대학생에게 그렇다.
7. 책과 창녀 - 그들이 맞이한 종말을 본 사람은 드물다. 그들은 퇴락하기 전에 사라지는 경향이 있다.
8. 책과 창녀는 어떻게 해서 지금처럼 되었는지 얘기하길 좋아하고, 그럴 때면 거짓말도 잘한다.
   그들 스스로 그 거짓말을 믿어버릴 때도 적지 않다.
   여러 해 동안 '사랑하는 마음에서' 모든 것에 열중하다가 어느날부터인가 비대히진 몸뚱이를 안고 거리를 나선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무엇인가 알아보려고' 그 주변을 돌아보기 위한 것이라는 식이다.
9. 책과 창녀는 손님을 끌 때 등을 내보이길 좋아한다.
10. 책과 창녀는 자식을 많이 낳는다.
11. 책과 창녀 - '허구한 날 기도하는 늙은 어멈도 젊었을 땐 창녀'였다.
    오늘날 청소년들의 필독서 중에서 한때 평판이 나빴던 책들이 얼마나 많은가!
12. 책과 창녀는 꼭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드잡고 싸운다.
13. 책과 창녀 - 책의 각주는 창녀의 양말 속에 감추어진 지폐와 같다.



"Habent sua fata libelli"
책들은 저마다 운명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독자가 어떻게 읽는가에 따라서 책들은 운명을 달라진다.
건전한 애서벽과 병적인 장서벽!
이제 내가 선택한 차롄가?
나 역시나 내가 만든 양탄자 속으로
하나의 텍스트가 되어 실종되고 싶다.

모든 독서의 끝은 결국 
지독한 그리고 완벽한
"실종"으로의 희망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09. 10. 15. 06:41

"여행" 같은 책이 있다.
누구도 동반하지 않고 떠나는
혼자만의 짧은 여행같은 그런 책.



"요시모토 바나나"
열대 지방에서만 피는 붉은 바나나 꽃을 너무나 좋아해서
"바나나"라는 pan name을 만든 그녀
그리고 느긋하게 몽환적이며
부도덕적이게도 아름다운(?) 소설
무지개



눈부신 햇살과 새하얀 모래,
투명한 바다와 레몬색 상어
그리고 아내가 있는 한 남자에 대해
처음부터 하나하나 천천히
그러나 집요하게 생각하는
한 여자의 감정의 기록.
타이티섬와 동경(東京)
그 생경한 국적(?) 안에서 길을 찾아가는
그녀의 감성과 내면의 언어들.



고갱을 생각하게 하는 화려한 색채의 그림들.
그런데 어쩐지 그림 속 그녀들의 표정과 입매는
사뭇 비밀스럽다.
그럼에도 감추고 있는 것을 너무나 강렬하게 말하고 싶어하는 욕망의 눈빛
문득, 그 이야기를 전부 들어주고 싶어진다...



뜨거운 이국의 햇살 아래
차가운 열정을 만나는 느낌이라고 할까?
다 읽고 나면 나른해지는 자신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 두 사람,
불륜일지라도 왠지 인정해주고 싶어진다.
참 위험한 마음의 고백...



그런 사람이 있다.
죽어가는 식물에게 선명한 생명의 색을 돌려주고
무관심으로 거칠어진 동물의 털에 반짝반짝 윤기를 주는 사람
그리고 그런 작은 생기들로
은밀하게 대화를 주고 받는 사람.
죽어가는 생명들에게 조금씩 조금씩, 그러나 눈치 챌 수 있게 생명을 불어넣는 사람
정말 그럴수도 있겠구나 인정하게 된다.
이런 방식으로 대화를 나눌 수도 있고
이런 방식으로 사랑을 키워갈 수도 있겠구나...
그래서 결국 단념을 확신하기 위한 떠난 여행에서
오히려 더 큰 확신을 가지고 다시 돌아가는 사람도 있겠구나.
그리고 돌아오길 바라는 기다리는 마음도 있겠구나...



불륜을 미화하려는 동의의 표현은 아니지만
이 소설의 결말이 내겐 다행스럽고도 동시에 위험하게 다가온다.
그래도 여행 속에서 얻은 마음이기에
조금은 이해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 책,
끈질기게 몽환적이다.
다 읽어버린 지금쯤은
꿈에서 깨어나야 하는건가?

이렇게 차갑게 관능적일수도 있구나...
열대의 뜨거운 햇빛,
반짝이는 에메랄드 물빛 속에서
내 몸 구석구석도 레몬빛 관능으로 느리게 헤엄치고 싶다.
파라다이스를 향한 차가운 열정으로...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09. 10. 14. 06:43
떠나간 아버지에 대한
같은 길을 가는 딸의 깊은 헌정.
이 책은 그렇게 애뜻하고 따뜻하다
그리고
비를 맞고 있는 혼자된 아이를 보는 심정처럼 
가슴 한켠이 찡하고 아리다.
아버지와 딸
참 멀고도 먼 관계
그러나 일단 소통이 시작된다면
그 어떤 관계보다도 처연해지고 숙연해지는 관계 



누구보다 건강하기로 유명한 아비는 어느날
속초 휴가 중에 심장마비로 세상과 이별한다.
그리고 소아마비 딸은 1년 후 아비를 생각하며
아비의 남겨진 글들을 하나 둘 모아 아비의 이름으로 책을 낸다.
그리고 그 딸 역시도 얼마 전 암세포에게 몸을 내준 체
아비를 만나러 하늘 여행을 떠났다.
딸은 홀로 남겨질 어미에게 말을 남겼다.
먼저 가서 아빠랑 기다릴테니 좋은 거 더 많이 보고 오시라고... 



딸은 아비와 같은 영미문학을 전공해서
아비처럼 책을 번역하고,
아비처럼 자신의 책을 쓰고,
아비처럼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었다.
딸은 항상 자신의 길의 멘토가 되어 주었던
아비의 뒤를 따라 걸으며
그렇게 자신의 길 또한 만들어 갔었는데.....
이제 두 사람은 모두 향기로 남는 사람이 됐다.
그러나 향기처럼 사랑 또한 남는 것.



소소한 일상과 친구들과의 정담,
자신이 사랑한 번역의 일과 풍경들
그리고 영미문화권 작가들에 대한 짧은 만남까지...
이 책은 일상을 아주 정갈하고 단정하게 담아내고 있다.
누구라도 손에 들고 읽으면 아랫목에 앉아 있는 듯한
따뜻한 안도감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글.
어쩌면 사람이 살아간다는 건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온기를 나눠주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가족에게도, 주위에도, 사물에게도.
그렇다면
난 아직 한참은 멀었다는 생각...
온기가 담긴 한 권의 책!
그 책이 주는 가르침은
늘 그렇듯 집요하고 그리고 언제나 예리하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09. 10. 12. 06:27
와~~
사람 미치도록 주눅들게 만드는 책.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치도록 사랑스러운 책
두 가지 감정 속에서 정신 못차리게 만드는
마력과 매력을 함께 가지 지독한 책을 만나다.



그 제목조차도 미치토록 황홀한 책.
호모 부커스 이권우의 서평집 <죽도록 책만 읽는>
이 한 권의 책 속에서
무려 100여권의 책을  만날 수 있는 행복감.
짧은 글이지만 참 많은 깊이와 재미를 담고 있다.
이 정도로 책을 소개할 수 있으려면
내공이 어느 정도 쌓여야 하는 거지?
묘한 시기심마저도 어쩔 수 없이 갖게 된다.



문학,  인문, 자연과학, 철학, 사상, 종교
생식과 번식, 천문에서 신화와 고전까지
심지어는 읽기와 쓰기의 부분까지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부분은 광대하고 무한하다.
"비밀을 아는 순간 같은 마술가가 된다"고 했던가?
비밀을 전부 알게 된 건 물론 아니지만
어쩐지 마술사 옆의 어시스트라도 된 것 같다.
책을 읽는 동안 내 무지에 불편했고,
아직 한참은 책을 더 읽어야 하겠구나 좌절했고,
그리고 더불어 행복했다.
이 계절에 읽기에 딱 좋은 책이란 생각 ^^ 



 사랑이란, 두 사람의 공동 경험이다. 그러나 여기서 공동 경험이라 함은, 두 사람이 같은 경험을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랑을 주는 사람과 사랑을 받는 사람이 있지만, 두 사람은 완전히 별개의 세계에 속한다. 사랑을 받는 사람은 사랑을 주는 사람의 마음속에 오랜 시간에 걸쳐 조용히 쌓여온 사랑을 일깨우는 역할을 하는 것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그는 자신의 사랑이 고독한 것임을 영혼 깊숙이 느낀다..... 아주 이상하고 기이한 사람도 누군가의 마음에 사랑을 불지를 수 있다. 선한 사람이 폭력적이면서도 천한 사랑을 자극할 수도 있고, 의미 없는 말만 지껄이는 미치광이도, 주군가의 영혼 속에 부드럽고 순수한 목가를 깨울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떤 사랑이든지, 그 가치나 질은 오로지 사랑하는 사람 자신만이 결정할 수 있다.                                                                         - <슬픈 카페의 노래> 카슨 매컬러스



굳이 좋은 책이 무엇인가 정의한다면, 읽고 나서 지은이와 논쟁을 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책이라 할 수 있다. 굳이 무엇을 올해의 책으로 뽑아야 하는지 말해야 한다면, 우리 시대의 고민을 끌어안고 그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뜨거운’ 책이어야 한다고 할 수 있다. 

고작 책을 창 삼아 세상과 소통하려는 나 같은 사람은, 말하자면 관음증 환자에 불과하다. 책에 새겨진 다른 사람의 욕망을, 책장을 커튼 삼아 훔쳐보는 책벌레들.


본디 작가는 유목인이다. 한곳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곳을 향해 움직여야 한다. 뿌리내리는 자에게 예술혼은 깃들지 않는다.

이상하지?
나와 비슷한 표현과 감정들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묘한 기시감까지...
작가 이관우가 알게 된다면 식겁할지도 모르지만
어딘지 닮은 나를 본다.
그래선가?
이 책은 제목부터 낯설지 않다.
그리고 다 읽고 난 지금은 어느 부분 내 일기 같은 느낌도 든다.
재미있고 흥미롭다 이런 공감대.
"돞아보다"
아마도 이제 나도 그 세계 속에 들어가게 되려나 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토끼굴처럼
나를 다른 세상으로 이끄는 출입구가 되어 주다.
그래서 기꺼이 그 안으로 들어가기로 결정하다...
다행이다. 행복해서....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