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6. 1. 15. 08:34

터키를 여행했던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터키, 정말 좋았어!"

터키를 두 번 여행한 나 역시도 이 말에 백반번 동감한다.

(그 중 한 번은 고작 이스탄불에만 있었지만)

그래서 늘 생각한다.

터키에 다시 가야지...

그래서 교통카드도 보증금을 환불받지 않고 그대로 가지고 왔다.

왜냐하면 나는 또 터키를 갈테니까.

작년에 스페인 여행을 계획할 때도 이스탄불에서 스탑오버를 할까 고민했었는데

터키항공료가 너무 비싸서 포기했었다.

입버릇처럼 사람들한테 터키에서 죽을거라고 이야기한건

농담이 아니라 정말 바람이다.

(그게 혹 객사(客死)라고 할지라도 진심으로 상관 없다.)

 

 

동네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해서 바로 대출한 책.

책을 쓴 유혜준은 동생과 함께 30일동안 터키를 여행했다.

왕복항공권과 이스탄불에 도착해서 3일간 묵을 호텔만 예약한 상태로.

(나도 언젠가는 꼭 그렇게 갈거다. 그때 일정은 최소한 45일!)

책 속에 나오는 사진들이 다 내 눈에 익숙한 곳들이라 책장을 넘기는게 힘들었다.

그 골목들과 가게들. 그리고 갈라타 다리와 카파도키아의 기암괴석들.

파묵칼레의 하얀 석회암들.

순간적으로 다시 터키로 돌아간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세상에...돌아간다니...

(그렇다면 지금 이곳에서의 일상은 단지 이방인 혹은 여행자의 삶이라는 뜻인가!)

터키...

이렇게 간절하게 다시 가고 싶은걸 보니

나는 꽂힌 수준이 아니라 제대로 저격당한 모양이다.

시름시름 앓겠다.

터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4. 3. 7. 07:40

맙소사!

또 다시 터키라니...

봇물터지듯 일저히 튀어오르는 터키를 향한 그리움.

또 다시 타는 듯한 갈증에 휩싸인다

이혜승의 <두 번째 터키>

동네 도서관에서 제목에 끌려 꺼내든 한 권의 책,

이 책을 집어든건 어쩌면 우쭐대고 싶은 자만심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 두 번째 터키라고! 나도 거기 두 번 다녀왔거든!'

 

그랬는데...

무참히 깨지고 형편없이 무너졌다.

그녀의 글에, 그녀의 시선에, 그녀의 일상에...

게다가 내가 그토록 바라고 바라는 생활 여행자가 되어 그곳에 살고 있다.

그녀에게 터키는 여행이 아니고 생활이다.

그게 눈물나게 나는 부럽다.

그것도 갈라타 타워를 올려다 볼 수 있는 골목. 바로 그 곳에.

 

이.혜.승

그녀가 들려주는 터키 이야기는 낯설고도 익숙했다.

터키인의 생활 깊숙이 쑥 들어가

그들과 오래 살아온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독백들이 참 따뜻했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동안

하얀 눈이 내린 터키를 보고 싶다는,

아니 그 눈을 내 두 발로 직접 밟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다.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릴 것 같은 길.

혼자임에도 풍요로울 수 있다는 걸 그 길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는...

어떻게 그곳에서 살아갈 생각을 했을까?

뭐가 그녀를 그곳에 발목 잡게 했을까?

그녀가 내 꿈을 훔쳤다!

비록 영원히 머무를수는 없을지라도

딱 1달 만이라도 그곳에 머물고 싶다.

관광객의 소음 속에 뒤적이며 구시렁거리고

햇빛 좋을 귀신같이 찾아내는 길냥이의 오수를 부러워하면서

예정없는 걸음을 오래 오래 걷고 싶다.

그렇게 뚜벅뚜벅 그곳에서 잠시 생활하고 싶다.

나른한 오후 같은 그곳.

하지만 나를 늘 명료하게 깨어있게 하는 그곳.

 터키는 내게 그런 곳이다.

나의 안과 밖을 가차없이 털어서 햇빛에 꾸덕꾸덕 마르게 하는 그런 곳.

그곳의 주소는 눈부신 햇빛 속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4. 1. 15. 08:11

2년마다 한번씩 자유여행을 가야겠다고 혼자 다짐했었다.

그리고 두번째 다녀온 자유여행.

원래 예정대로라면 스페인과 포르투칼을 여행하는 거였는데

동생네가 함께 가자고 조르는 바람에 그래도 익숙한 터키로 방향을 수정했다.

그냥 터키 일주를 할지, 이스탄불과 산토리니를 갈지 두 가지로 고민하다

아무래도 조카들이 초등학생이라 터키일주는 무리일 것 같아 이스탄불과 산토리니로 정했다.

결론적으론...

선택은 나쁘진 않았다.

여행하는 내내 날씨는 좋았고

특히 아테네와 산토리니에 머무르는 동안은

지중해의 햇빛 속에 두명하게 헹궈지는 느낌이었다.

walking and warlking의 꿈을 충분히 실행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짬짬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골목길을 기웃거렸던 시간들,

하늘과 바다를 바라봤던 시간들.

그리고 사람들의 모습들을 몰래몰래 훔쳐봤던 시간들.

길을 찾아 이리저리 우왕좌좡하며 시행착오를 반복했던 시간들이

지금은 다 추억 그 이상이 됐다.

그건 그러니까...

"힘"이다.

앞으로의 2년을 버텨내게 하는 힘.

 

아쉽게도 골목과 길, 풍경같은 다정한 사람들의 모습을 많이 담지 못했다.

이런 것들은 적어도 내게는 하나의 완벽한 "이야기"인데

이번 여행에서는 그 이야기에 충분히 귀기울이지 못했다.

산토리니에서 만난 "casablanca soul"

이 골목 앞에서 혼자 얼마나 웃었던지!

골목 입구에 앉아있는 상점 주인 아저씨에게도 풍부한 casablanca의 soul이 느껴지더라.

루멜리 히사르에서 한 어머니가 아장아장 걷는 아기의 손을 잡고 조심조심 계단을 내려가는 모습은

정말 홀릴듯 오래 쳐다봤다.

아름답고, 귀엽고, 따뜻하고, 다정해서...

이런 꿈같은 풍경들에 더 많이 귀길울여야 했었는데

내내 아쉽고 아쉬웠다.

 

 

아마도 변하지는 않을거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기전에 마지막으로 들르는 곳은

여전히 서점일 것이고

비행기가 땅을 벗어나면

창문을 통해서 서서히 드러나는 하늘길을 보며 여전히 설랠거고,

골목골목을 목적없이 서성이는 것도 여전할거다.

눈에 담는 것,

눈에 담기는것들에

점점 더 많이 선량해진다.

본다는 것,

그건 느낀다는 것과 동의어다.

한때 제일 절망적인게 시력을 잃는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을 읽으면서 그렇치 않다는 걸 알았다.

그래, 볼 수 없다는 건 확실히 치명적이긴 하다.

그러나 그리웠던 건 한 번이라도 봤다면

그걸 기억하면서 마음 안에서 두고두고 꺼내볼 수 있다.

사람은,

사랑때문에, 사람때문에 살 수도 있지만

기억때문에 살 수도 있다.

 

하여,

아무것도, 아무도 없는 나는

내 기억의 힘을 신앙처럼 굳게 믿는다.

그게 나를 살게 한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3. 12. 13. 08:27

터키와 나는 인연이 있지만

(정말 말도 안되게 혼자 우기는 중이지만...^^)

루멜리 히사르만큼은 매번 징글징글할 정도로 어긋났다.

한 번은 시간 계산을 잘못해서 문이 닫혔고

한 번은 근처에서 입구를 못찾아 한참을 해매다 문이 닫혔고

한 번은 주말에 차가 너무 막혀서 문이 닫혔을 것 같아 다시 되돌아왔고...

확실히 주말에 루멜리 히사르에 간다는 건 일종의 모험이다.

돌마바흐체에서 20~30분이면 충분한 이 길이 꽉 막혀

2시간이 후딱 지나가는 건 예사다.

(차라리 걸어가는게 오히려 더 빠를지도...)

그랬는데...

드이어 이번 여행에서 루멜리 히사르를 봤다.

물론 단번에 성공한 건 아니다.

오전에 돌마바흐체를 나와서 찾아가다 실패를 했고

(실패 이유는 참 어이없는 말이지만 버스 정류장을 못 찾아서...)

오기가 생겨 오후에 다시 도전했다.

솔직히 오후에도 거의 실패라고 생각하고 자포자기 했었다

여행서에 클로징 타임이 오후 4시 30분이라고 적혀었고 실제로 예전에도 그 시간에 갔더니 닫혀 있어서

그냥 인연이 없구나 또 다시 생각했다.

왠지 억울해서  입구라도 보고 가야 덜 허무할 것 같아 찾아갔더니 문이 열려 있었다.

믿어지지 않아서 매표소에 확인했더니 관람할 수 있단다.

나도 모르게 환호성이 나오더라.

(아마도 매표소 직원 깜짝 놀라지 않았을까 싶다...)

 

루멜리 히사르는 3개의 커다란 탑과 성벽,

그리고 성벽을 따라 13개의 작은 탑들이  

반대편 아시아쪽의 아나톨루 하사르와 함께 과거 군사적 요충지였던 곳이다.

이 두 성채 사이가 보스포러스 해협에서 가장 폭이 좁은 곳이라

이곳으로 적의 배를 유인해서 양쪽에서 대포를 쏴서 격침했다.

실제로 성채로 올라가는 길엔 과거에 사용했다는 대포와 탄환이 전시되어 있어

시간의 흔적을 가늠하게 한다.

(상상의 여지를 안겨주는 이런 소소한 전시들이 개인적으론 참 좋더라)

한적한 시간대라 사람들이 별로 없었던 것도 정말 행운!

성곽에 앉아서 바라본 보스포러스 제 2대교와 해협은...

아마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 모습을 보여주려고 그렇게 오랫동안 나를 애태웠나 보다..

그래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심통난 마음이 단번에 풀어졌다.

가파르고 좁은 계단때문에 내려가는 길은 무시무시하게 아찔했지만

모든 걸 다 잊게 만든 루멜리 히사르.

 

무슨 말이 필요할까?

쓸쓸하고 고즈넉해서 더 아름다웠던 그 곳!

 

그립다.

그립다.

참 그립다.

 

 

보스포러스 크루즈때 찍은 루멜리 히사르와 포스포러스 제2대교, 아나톨루 히사르의 모습.

여기가 바로 그 유명한 해협의 병목지역.

시리도록 푸른 물은

전쟁의 상흔까지도 기꺼이 끌어안고 흐른다.

그러나 기억하는 자에겐

역사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

마치 내게 묻는 것 같다.

너는 아직 살아있느냐고...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3. 12. 6. 08:00

이스탄불 구시가지에서 살짝 외곽에 위치한 카리예 박물관.

2년 전 이곳에 들어선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건 감탄과 황홀을 넘어 온 몸을 꼼짝달짝 못하게 만드는 경외감이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도 무슨 일이 있어도 이곳만은 꼭 다시 가리라 작정했다.

예전에 너무 어렵게 이곳을 찾아간 기억때문에

조카들과 동생을 데리고 또 다시 헤매지 않을까 걱정을 했지만

숨을 쉴 수조차 없었던 경외감을 다시 한 번 경험해보고 싶었다.

다행히 이번엔 아주 수월하게 찾아갔다.

에미뇌뉘에서 37E를 타고 에디르네카프에서 하차해서 길 건너에 있는 카리에 박물관을 바로 찾아서 들어갔다.

(도대체 나는 2년 전 왜 여길 그렇게 헤맸을까? 지금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카리예 박물관은 처음엔 "코라 성당"으로 불렸다.

그러다 오스만제국때 아야소피아처럼 자미로 바뀌면서 "카리예 자미"로 명칭이 바뀌었다.

미나레와 미흐랍도 그대 만들어졌단다.

"코라"이든"카리예"든 그 뜻은 전부 "교외(郊外)"를 뜻하는 그리스어와 아랍어라니

뭐 결정적으로 바뀐 건 사실 아무 것도 없다.

그래서일까? 이곳의 모자이크와 프레스코화는 보전이 잘되어 있는 편이다.

"교외"라는 단어 그대로 술탄 아흐멧 중심지에서 벗어난 지형적인 요인이

비극의 참상을 면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생각된다.

물론 오랜 시간이 지나서 자연스럽게 훼손된 부분도 있긴 하지만

정교함과 크기와 섬세함이 무시무시할 정도다.

이 성화들을 자세히 보려고 한국에서 짐을 챙길 때 일부러 망원경까지 넣었었다.

이번 여행에서 내 동생이 가장 좋아했던 곳!

동생은 이곳에서 파는 도록까지 사서 지금도 시간날 때마다 펼쳐본다.

분량도 꽤 되고 영어판이긴 하지만 그림 하나하나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있어서 꽤 유용한 도록이다.

(물론 사전을 곁에 두는 건 필수고!)

 

본관 정중앙의 황금색 성경을 들고 있는 예수의 모자이크.

머리쪽 황금빛 모자이크에 쓰에 있는 글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는  그리스어다.

햇빛을 받아 황금빛으로 보이는 예수님의 온화함이 그대로 가슴 안으로 들어온다.

이곳은...

정말 빛의 공화국이고, 빛의 유토피아고, 빛의 현신이다.

햇빛의 이동에 따라 모자이크화도 변한다.

작은 큐빅조각 하나하나가 마치 살아서 춤을 추는 것 같다.

경외감과 신비감이 종횡무진으로 함께 뛰어다닌다.

이곳에는 시간도, 공간도 다 사라진다.

단지 "나"와 대면하는 절대자만 있을 뿐.

 

예수의 모자이이크 왼쪽에는 천국의 열쇠를 쥐고 있는 베드로가

오른쪽에는 로마 세차례 선교여행을 했다는 사도 바울의 모자이크가 있다.

좌우에서 예수를 호위하는 느낌.

특히 사도 바울 모자이크는 햇빛을 정면으로 받고 있어서

작은 모자이크 조각 하나하나가 그대로 빛이더라.

뿜어져나오는 빛때문에 눈이 부셨다.

그대로 고해성사라고 해야 할 것 같은 심정.

모든 죄를 다 자백하고 나면 정말 내 안에 평안이 찾아와 줄 것 같아

그대로 무릎을 꿇고 싶었다.

 

이곳은 하루 온종일 있으라고 해도 전혀 지루하지 않을 곳.

오히려 보면 볼수록 신비감과 경외감에 말문이 막혀버리는 그런 곳이다.

침묵 속에서 그저 바라만 볼 뿐.

카리에 박물관.

그 신비한 시간과 공간 속으로...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3. 11. 29. 08:30

비잔틴 시대 전차 경주를 하던 경기장이었던 히포드롬 광장.

블루 모스크 정문과 트램길 사이의 이 광장을 하루에도 몇 번씩 지나가게 되지만

해저물녁의 이곳은 남다른 운치와 감회에 준다,

비잔틴 제국 시기에는 국가행사가 개최되던 중요한 이곳이

현재는 3개의 거대한 기둥과 카이저 빌헬름 샘만 오롯이 남아 여행자들의 눈길을 받아내고 있다.

카이저 빌헬름 샘은 안타깝게도 현재 보수중인지 전체가 가림막에 가려져있어 못봤지만

(이스탄불은 그야말로 보수의 천국이 되버렸다.)

2년 전에 보수중이라 보지 못했던오벨리스크는 이제서야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가장 남쪽에 있는 기둥은 16세기에 룩소르 카르나크 신전에서 가져왔다는데

원래 높이는 30m에 달하지만 현재 남아있는 건 20m 정도다.

너무 커서 운반을 위해 잘랐다는 이야기도 있긴 하던데

오벨리스크 하단 부분에 실제로 짤려나간 흔적이 여실히 보이긴 한다.

말이 20m지 그래도 실제로 보면 이 거대한 걸 도대체 어떻게 운반했을까 믿겨지지 않는다.

(인간의 욕심과 힘이란 정말 한계가 없는 모양이다.)

세 마리 뱀이 서로 엉켜있는 기둥도 원래는 8m 였다는데

현재는 상단 부분이 떨어져나가고 5m만 남아있다.

세 개의 뱀 머리는 

하나는 분실됐고,

하나는 이스탄불 국립 고고학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이번에도 조카들을 데리고 박물관에 직접 가서 뱀머리를 보고 왔다)

마지막 하나는 반출되어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단다.

터키도 불운의 역사를 가지고 있어선지 우리나라처럼 국외로 반출된 유물들이 참 많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수나 있을런지...

마지막 오벨리스크는 높이가 무려 32m!

원래는 외벽이 청동으로 덮여있었지만 십자군 침입때 동전을 주조하기 위해 벗겨내서

지금은 벽돌로 쌓은 외관만 우뚝 서있다.

어딘지 좀 흉뮬스럽기도 하고, 기괴하기도 하고...

그래도 높이가 주는 압박감은 이집트 오벨리스크를 뛰어넘고도 남는다.

 

 

해저물녁 오벨리스크 아래로 불이 하나 둘 켜지면

과거의 시간과 공간들이 성큼성큼 걸어나오는 것 같다.

이곳과 저곳이,

과거와 현재가 서로 만나고 있다는 느낌!

그래서였을까?

이스탄불에 있는 동안 해저물녁엔 항상 이곳에 머물렀던 것 같다.

 

이곳은 확실히 "소리"를 가지고 있다.

어쩌면 나는 늘 그 소리에 홀렸던건지도 모르겠다.

그 소리는,

지금도 여전히 나를 부르고 있다!

어서 빨리 응답하라고...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3. 11. 15. 08:30

노트르담 대성당보다 무려 700년이나 먼저 지어진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 아야 소피아.

실제 이곳 내부에 노트르담 대성당이 통째로 들어앉을 수 있을 정도라니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보고 있으면서도 도저히 가늠이 안 될 정도다.

바닥에서 천정까지가 무려 55미터고

황금색 돔에 마흔 개의 서까래, 마흔 개의 아치형 창문을 가진 이곳은

내랑과 외랑 이중의 배랑 구조로 되어 있다.

신의 영역과 인간과의 거리를 단절시키겠다는 경건함의 의미였을까?

커다란 청동문을 모두 닫아버리면 실제로 이곳은 완벽하게 고립된 신의 세계가 될 것 같다.

실내 공간을 묘하게 중앙에 집중시켜 실제보다 훨신 더 넓어 보이게 만든 착시현상.

그 비밀을 알면서도 2년 전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규모가 주는 압박감때문에 저절로 위축이 됐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곳곳이 보수 중이라서 원래의 그 규모를 명확히 알기는 솔직히 힘들다.

(이곳뿐만 아니라 이스탄불은 지금 현재 보수로 몸살을 앓고 있다.)

불과 2년밖에 지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2년이란 시간이 참 짧다고 생각했는데 변화 앞에선 참 긴 시간이구나 깨달았다.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아야 소피아의 상들리에.

천장에서부터 내려온 줄에 매달려있는 상들리에를 보고 있으면

위태로움과 평화과 함께 느껴진다.

그리고 성모마리아상 옆에 있는 거대한 두 개의 동판.

암호에 가까운 이 문자는 마호메트와 알라의 이름을 아라비아어로 써놓은 것이란다.

그림에 가까운 이 문자를 앞에 두고 느껴야 하는 막막함은

두번째 방문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감소되지 않았다.

읽을 수 없는 문자앞에선 어떠한 상상력도 감히 발동되지가 않는다.

암호같은 문자를 품고 싶다는 열망이 햇빛처럼 쏟아질 뿐...

 

 

아야 소피아의 모자이크화들.

여행을 계획하면서 망원렌즈를 굳이 구입했던 이유는 이 모자이크화들 때문이었다.

커다란 그림을 하나하나 채우는 섬세한 큐빅 조각들을 어떻게든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었다. 

기독교 성당에서 이슬람 사원으로 바뀌면서 훼손된 시간의 조각들도 조금 읽어보고 싶었다.

회칠로 덮어져야만 했던 비밀의 시간들을 어떻게 견디고 버텨왔는지 이해하고 싶었다.

그러나 막상 그림 앞에서의 현실은

난독증으로 괴로워하는 한 인간의 무지뿐이었다.

이곳을 몇 번쯤 더 와야 이 비밀의 끝자락이 열리게 될까?

결국 2층 회랑 한쪽에 있는 단돌로의 무덤 (Henricus Dandolo)에 애궃은 하소연만 해버렸다.

 

신의 모습을 어떻게든 이미지로 그려내려했던 기독교와

인간이 감히 어떻게 신의 모습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는 이슬람 문화의 교차는

이 넓은 아야 소피아에 특징적인 흔적들을 곳곳에 남겼다.

신을 감히 표현하지 못하고 신이 창조한 우주의 아름다움을

글자와 기하학 패턴으로 표현한 이슬람의 흔적을 보면서

어쩌면 이들이 더 경외심 가득한 종교에 몰입했던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2층 갤러리와 돔에 숨어있는 모자이크들과 그림들을 보면서 카메라 셔터를 쉬지 않았던 건

최대한 기억해서 오래오래 각인시키고 싶어서였다.

특별한 조명 없이도 아치형 창문을 통해 쏟아지는 햇빛만으로도 빛나는 저 작은 조각들은

하나하나가 다 들숨과 날숨을 쉬는 생명체였다.

어쩌면 인간이 오랫동안 꿈꿔온 불사(不死)의 삶이 여기, 이곳에 담겨져있는 건 아닐까?

저 작은 조각마다 그 수만큼의 인간이 기록되어 있는것 같아 가슴 속이 뻐근했다.

그럴 수 없다는 걸 알면서

나는 그걸 내내 읽고내고 싶었다.

어쩌면 내가 하나의 큐빅 조각이 되어 그곳에 박혀있고 싶었는지도...

 

아야 소피아.

그 자체가 하나의 위대하고 완벽한 경전인 곳.

나도 모르게 저절로 머리가 숙여지고 무릎이 꺾이는 곳.

그래서 누구라도 아야 소피아에 들어가면

자신만의 신과 대면할 수 있다.

그러니 부끄러움없이 기꺼이 마주볼 수 있기를...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3. 11. 14. 13:26

예레바탄 지하 저수지.

처음 이스탄불을 방문했을 땐 이곳을 아침 일찍 찾아갔었다.

이른 시간이라 관광객이 거의 없어 혼자 이곳을 독차지하며 다녔었다.

그러다 지하를 가득 채우던 내 발소리에 내가 섬득했고

솔직히 말하면 혼자서 메두사의 머리를 대면하는데 귀기(鬼氣)가 느껴저 눈도 마주치기가 힘들었다.

두번째 대면은,

다행이 늦은 오후라 관광객도 제법 많았다.

게다가 신기한 눈초리로 쫒아다니는 조카들 때문에

심지어 메두사의 머리도 전혀 무섭게 느껴지지가 않더라.

아이의 순수를 이길 수 있는 건 세상에 없는 모양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이번 여행에서

정말 엄청난 무기를 양쪽에 대동하면서 다녔던거다.

이곳도 두번째 방문이라고 조금 익숙해졌다.

여행을 가기 전에 댄 브라운의 <인페르노>를 읽어산지 소설 속 장면들이 눈 앞에 펼쳐졌다.

지하궁전 물 속에 들어가 뭔가를 찾아야 할 것만 같은 느낌.

내가 로버트 랭던도 아니면서...

예레바탄 입구에서부터 느껴지는 신비감과 오묘함은 2년의 시간이 흘러도 에전했다.

어두운 지하에 각지에서 가지고온 기둥들을 세우느라 노예들은 또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곳을 채우고 있는 물이사실은 죽음같은 노역을 견뎌낸 노예들의 눈물같아 바라보는게 뻐근하다.

공간이 주는 울림보다

역사가 남긴 흔적의 울림이 더 웅장하고 깊다.

정면으로 마주보는 사람을 돌로 만들어 버린다는 전설 속의 메두사의 머리가

그토록 오랜 세월 진흙 속에 묻혀있었던 이유도 사실은 그래서가 아니었을까?

차마 머리를 바르게 세우고 있을 수 없었던 메두사.

인간의 눈물은 신화의 힘을 뛰어 넘는다.

물에 잠긴 도시 "예레바탄"을 나오니

공교롭게도 이스탄불의 하늘은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것 같이 흐려있었다.

초겨울같은 쌀쌀한 날씨.

계속 날씨가 이러면 어쩌나 걱정이 될만큼 차가운 바람에 당황했다.

꼭 메두사의 저주 같았다.

예레바탄에서는 도저히 힘을 쓸수 없어 낯선 이방인의 틈을 노렸던건지도...

이 도시에서 돌로 변해버린다면!\나는 기꺼이 그곳에 오래 오래 서있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 메두사여!

그대 노여움을 이제 그만 내려놓으시길...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3. 9. 28. 05:44

원래 예정은 7시 30분에 호텔 조식을 먹고 줄서기로 유명한 돌마바흐체  궁전으로 빨리 출발하는 거였다. 그런데 큰조카놈이 조식을 먹다 사고를 쳤다. 뜨거운 찻잔을 바지 위로 떨어뜨려 식당룸을 발칵 흔들었다.주변의 투숙객들이 찬물을 가지고와서 바지위에 부어주고... 할 수 없이 동생과 큰놈은 숙소에 남고 여자조카녀석와 나만 돌아다니기로 했다. 숙소 바로 아래 있는 카페에서 얼음을 얻어서 전달해주고 시르케지역까지 걸어가서 교통카드를 충전한 뒤 트램을 타고 카바타쉬역에서 내렸다. 남겨놓고 온 사람들이 눈에 밟히긴 했지만 여기까지 와서 돌마바흐체를 안보고 갈 수는 없는거니까. 다행히 줄이 길지 않아 바로 들어갔고 영어 가이드 시간도 오래 기다리지 않은 편이라 운이 좋았다. 예전보다 천으로 가려진 부분도 훨씬 많아 왠지 을시년스럽긴 했지만 화려함과 웅장함은 여전히 사람을 기죽게 한다. 두번째라고 영어 가이드 설명도 이해가 더 잘되더라. 앨리자베스 여왕이 선물했다는 그랜드홀의 그 유명한 상들리에를 보면서  저걸 청소하려면 사람 꽤나 힘들게 했겠구나 생각하니 어쩐지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진정한 그들만의 세상! 

하렘구역은 생략하고 다시 숙소에 들러 피자로 점심을 해결하고 이번엔 루멜리 히사르로 향했다. 4시 30분이 폐관시간이라 길이 너무 막혀 조마조마했다. 예전에도 폐관시간에 걸려 닫힌 문만 보고 와서 이번에는 꼭 보고 싶었다. 버스에서 내리니 이미  4시 30 분이 넘었다. 허탈해하고 있는데 이게 왠일이지? 혹시나해서 입구에 갔는데 아직 열려있는거다! 빨리 들어오란다! 조카랑 둘이 너무 기뻐하면서 들어가서 정말 멋진 풍경을감탄하면서 많이 봤다. 활짝 열려있는 보스포러스의 푸른물을 높은 성채에서 내려다보니 왠지 세상의  주인이 된것만 같았다. 루멜리 히사르와 참 인연이 없구나 했는데 드디어 징크스가 깨졌다. 이렇게 멋진 장관이라 그렇게 쉽게 나를 받아주지 않았구나... 

돌아오는 길에 오르타쿄이에서 내려서 그 유명힐 쿰피르를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조카가 숙소에서 책을 찾아보더니 그래도 중요한 곳은 다 봤다고 좋아라 한다. 이제 하루밖에 안 남았다며 무지 아쉬워하면서... 그러네! 이제 하루 남았네. 내일은 체크아웃까지 충분히 쉬게하고 술탄아흐멧광장에서 출발하는 시티투어 버스를 타고 골든혼 쪽을 둘러볼까한다.Ho Ho Point에서 내려 피에르로티 언덕과 미니아투르크도 둘러보고...

어째ㅉ든 12 일간의 여행이 이제 다 끝나간다. 오늘 아침에 사고가 있긴 했지만 제발 끝까지 큰더이상 아무 사고없이 마무리되길 진심으로 바래본다. 지금 이스탄불은 자정이 다 됐다. 그리고 비가 내리고 있고... 터키에서 처음 만나는 비! 터키가 이번 여행에서 내게 많은걸 보여준다.우린 어쩌면 서로 조금씩 적응중인지도 모르겠다.혹시 이 도시가 내가 다시 돌아오길 바라는걸까? 그렇게 믿고싶다.아니 그렇게 믿으련다.기다려, 터키! 꼭 다시 돌아올테니까! 

이 세상에 나의 귀환을 기다리는 뭔가가 있다는건... 참 다행한 일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여행후 끄적끄적2011. 10. 21. 05:29
왕복 비행 시간을 빼면 터키에 머물렀던 시간은 고작 9일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고작"이란 단어는 그리움과 아쉬움, 되돌아가고픈 열망의 다른 표현이다.
그래, 처음엔 순전히 "오르한 파묵"이라는 작가 때문이었다.
(아직도 처음으로 읽었던 그의 소설 <내 이름은 빨강>을 선명히 기억한다.)
터키가 어디에 있는지, 어떤 나라인지도 전혀 모르면서
오르한 파묵이라는 작가 한 사람 때문에 그곳을 꼭 가리라 소망했고 계획했다.
9월로 일정을 잡고 비행기 티켓을 구입한 게 6월 말.
마치 전혀 여행갈 계획이 없는 사람처럼 아무 준비없이 일상에 허덕였다.
주변의 질문이 시작됐다.
"가긴 거는 거야?"
"페키지 여행으로 다시 알아봐!"
"아무것도 안 알아보는 거야?" ...
그닥 사교성이 풍부한 인간도 아니고 외국어에 능통한 것도 아니고,
하다못해 본능적인 길찾기 감각이 있는 것도 아닌 나를 사람들은 점점 더 불안해하며 바라봤다.
"한국에서도 여행 잘 안 다녀본 사람이..."
결정적인 말에 조금씩 마음이 뜨끔한 것도 사실이다.
철저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런데로 만족할만큼의 준비!
하고 싶었다. 해야겠다고 생각은 했다.
하지만 어쨌든 결론적으로 그러지 못했다.
출발하기 일주일 전에 배낭을 사면서 뭘 믿고 내가 이러냐 싶어 웃음도 났다.
인터넷 터키 배낭여행 동호회에 가입하고(그것도 달랑 한 군데만)
<프렌즈 터키> 한 권 보면서 대략의 루트만 잡았다.
터키 배낭여행 설명회에서 왠만한 책 한 권의 계획서를 가지고 온 사람들을 보면서 
거기서 나눠준 프린트 한 장만 들고 있던 나는 심하게 무안하기까기 했다.
아는 게 없어 질문도 못하는 내게 사람들이 말했다.
"배낭여행 많이 다녀보셨나봐요..."
차마 "아니요"라는 대답도 못하겠더라.
그 순간 생각했다.
어떻게든 되겠지!



터키는 배낭여행 초보자들에게 넉넉하고 따뜻한 나라였다.
동양 여자에 대한 과도한 치근댐이 있기 하지만
(피에르로티 올라가는 길에 계속 추근대며 쫒아오는 남자를 향해 급기야 버럭 화를 냈다)
대체적으로 따뜻했고 다정했다.
손가락으로 책 속의 지명을 짚어주는 어설프고 서툰 여행자에게
그들은 매번 친절하게 길을 알려줬고
심지어는 가던 길을 멈추고 정류장까지 동행해주기도 했다.
터키의 길 속에 빠져버린 이유가
사실은 이런 사람들의 도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길 위에서 어쩌지 못하고 헤매고 있으면 거침없이 누군가가 다가와 도와줬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곳이라면 다른 사람에게 물어서라도 알려줬다.
한국에 돌아와서 내내 그들의 도움이 고맙고 그립다.
지금도 눈 감으면 내가 걸었던 그 길들이 선연하다.
터키는 내겐 "길"이었다.
참 많이 행복하게 걸었고, 걸으면서 행복한 길이 보여주는 풍경들에 전율했고
그 길의 마디마디를 가슴에 담았다.
그 길 위에서 또 얼마나 많은 생각들을 했었는지...
터키여행을 다녀온 후
나는 얻은 것에 감사했다.
그리고 놔버리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결론지었다.
어쩌면 이 결론을 위해 오랜기간동안 여행을 되새김질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확실히 그랬다.
이제 난 좀 편해지련다.
그리고 나 혼자 단단해지리라.
 



초롱초롱한 별빛 같은 아이들의 눈빛에 눈부셨고
내내 빠져 있던 길 위에 주인처럼 떠있던 달을 보면서 황홀했다.
터키에 도착했을 땐 아주 작은 손톱달에 불과했는데 
어느새 떠나는 날 배웅하는 달은 만월에 가까워있었다.
달의 이지러짐과 가득참을 눈으로 매일 쫒으면서
나는 비워서 채워지기로 다짐했다.
그래, 이제 다 비우자!
앞으로 절대 다시는 채워질 수 없다고해도
비어있음으로 나는 고요하고 평온해지리라!

당연한 일이겠지만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5시에 기상해서 책을 읽고 여행기를 쓰고
6시 40분에 출근해서 하루종일 이쁘고 사랑스런 태아들을 검사하며 웃는다.
여전히 퇴근후엔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10시쯤에 집에 돌아오면 다시 책을 보고 컴퓨터 자판을 두드린다.
12시가 넘으면 그때서야 겨우 침대로 향한다.
그래도 내겐 이제 희망이 있다.
터키에 다시 가겠다는...
그래, 다시 돌아가리라!
그리고 그때는 아주아주 오래 그곳에 있으리라.
그래도 된다면,
그곳에서 오래오래
뿌리내리고싶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