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고 끄적 끄적...2011. 11. 30. 06:30
지난 토요일이 엄마 생신이셨다.
그냥 생신도 아니고 고희.
잔치도 하고 여행도 보내드리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아빠와 엄마의 고희는 살면서 내내 가슴에 사무칠 것 같다)
12월 5일에 세브란스 병원에서 수술하기로 한 아빠.
꼭 이유가 이게 전부는 아니지만 엄마는 아무 것도 안 하시겠단다.
그래서 한정식집을 예약해서 가족끼리 저녁 식사를 했다.
알고 있을까?
사진 찍는 다는 핑게로 내가 음식을 잘 못 먹었던건,
가슴 속이 이미 무거운 돌덩이로 꽉 차 있어서라는 걸...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옛 말!
정말 하나도 틀린 거 없다.
부모님의 다섯 가지는 도대체 언제쯤이면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의연한 가지가 될까?
말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내가 제일 많이 흔들리는 몹쓸 가지기 때문에...
나는 고작 이만큼의 시간도 막막하고 아득한데
부모님은 70년이 넘은 시간을 어떻게 견뎌왔을까?
나는 살가운 말을 할 줄도,
팔짱을 끼며 부모에게 애교를 부를 쭐도
그리고 귀염성있게 따북따북 이야기를 할 줄도 모른다.
부모님은 이런 자식이 서운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나는 부모 가슴에 풀리지 않는 매듭인지도 모르겠다.



엄마, 아빠 앞에 맘이 편안해질 날이 올까?
아마도 그건 다음 생에서나 가능한 일...
나는 스스로 아픈 손가락이다.
그래서 항상 어쩔 줄 모른다.
잘 차려진 음식 앞에서 내내 나는 먹먹했다.
부모님는 여전히 내 생명줄이다.
내가 아직 인간일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내가 아직 자식이기 때문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1. 5. 26. 06:07
한국과 미국의 엄마를 읽다.
<엄마를 부탁해>는 이제서야 읽은 건 아니고
다시 손에 잡은 책이다.
아무래도 내가 지금 어떤 울림을 찾고 있는 중인가보다.
치치고 힘들 때 위로받을 수 있는 완벽한 장소는 역시 엄마,
그 품 속이다.


전미 그리고 영어권에서 출판돼 호평을 받고 있다는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엄마를 잃어버린지 일주일째다...
첫문장부터 사람의 마음을 무장해제시키면서 억장을 무너뜨린 책.
이 책은 내게 살면서 계속 곱씹으며 몇 번씩 읽게 될 책 중 한 권이다.
책 속의 엄마는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나는 이 이야기가 마냥 현실처럼 느껴져
어쩐지 서울역 역사를 지날 때도 몇 번씩 두리번거리게 된다.
뼈가 드러나는 발로 파란 슬리퍼를 신고 있는 그 엄마가 꼭 어딘가에서 아직 헤메고 있을 것 같아서...
모녀관계는 서로 아주 잘 알거나 타인보다도 더 모르거나 둘 중 하나란다.
뜨끔하다.
나 역시도 그렇지 않은가 말이다.
엄마라는 말에는 친근감만이 아니라 나 좀 돌봐줘 라는 호소가 배어 있다는데
참 열심히 모른척 하며 사는 사람이 바로 딸들이다.
정말 엄마들은 이 모든 걸 어떻게 매일매일 감당하며 살았을까?
박소녀라는 할머니의 이름은 그래서 더 서럽다.
...... 너에게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였다. 너의 엄마에게도 첫걸음을 뗄 때가 있었다거나 세살 때가 있었다거나 열두살 혹은 스무살이 있었다는 것을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너는 처음부터 엄마를 엄마로만 여겼다.처음부터 엄마로 태어난 인간으로...
그 엄마가 말한다.
...... 나는 이제 갈란다 ...... 라고.
죽어서도 이 집 사람으로 있는 것은 벅차고 힘에 겹다고.
오십년도 넘게 이 집서 살았으니까 이제는 좀 놔달라고.
나는 그냥 내 집으로 가서 쉬겠다고...
그 엄마가 자신의 엄마의 무릎을 찾아 태어난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또 다시 이기적으로 "그럼 나는...." 이라고 묻는다.

...... 내가 태어난 어두운 집 마루에 엄마가 앉아 있네. 엄마가 얼굴을 들고 나를 보네...엄마가 파란 슬리퍼에 움푹 파인 내 발등을 들여다보네. 내 발들은 푹 파인 상처 속으로 뼈가 드러나 보이네. 엄마의 얼굴이 슬픔으로 일그러지네. 저 얼굴은 내가 죽은 아이를 낳았을 때 장롱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네. 내 새끼. 엄마가 양팔을 벌리네, 엄마가 방금 죽은 아이를 품에 안듯이 나의 겨드랑이에 팔을 집어넣네. 내 발에서 파란 슬리퍼를 벗기고 나의 두발을 엄마의 무릎으로 끌어올리네. 엄마는 웃지 않네. 울지도 않네. 엄마는 알고 있었을까. 나에게도 일평생 엄마가 필요했다는 것을......

엄마!
엄마가 가버리면...
그럼 나는 이제 어떻해?


처음에 사람들은 아들을 보고 부러워했다.
18개월도 안 된 아이가 신문을 읽고 책의 내용을 줄줄이 말할 때
사람들은 그 아이를 천재라고 불렀다.
그러나 아이의 천재성은 그렇게 활자 속에서만 살아있다.
일반적인 신체발달도 따라오지 못하고 또래 집단 속에서 어울리지도 못하고
아들은 구석에서 언제나 조용히 책장만을 넘긴다.
아이의 세계는 오로지 책 속에, 활자 속에만 있다.
아스퍼거 증후군(Asperger syndrome)
사회적 상호작용에 어려움을 겪고
관심사와 활동에 상동증이 나타나는 자폐 스텍프럼 장애(ASD)의 일종.
다른 ASD와는 달리 일반적으로 언어능력이나 인지발달 지연을 발생하지 않지만
서투른 동작과 특이한 언어사용이 보고된단다.
책 속의 벤 역시도 초고도 비만과 배설조절 능력 상실, 화가 나면 과격한 행동을 한다.
너무나 자랑스러웠던 아이가
이제는 숨기고 싶은 괴물로 변해버린 상황.
오랜 싸움 끝에 눈물로써 엄마가 내린 결론은,
아이를 (이제는 아이라고 하기엔 이미 장년에 속하지만 엄마에게 모든 자식들은 여전히 언제나 아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거였다.
내 아이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
그래서 아이를 평범하게 만들려는 숱한 시도들을
이제 엄마는 중단할 것이다.
그리고 모자(母子)는 서로 공존하고 의지하면서 평화롭게 사는 방법을 하나하나 배워갈 것이다.
아마도 확실히!

새상의 모든 엄마들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엄마는 상식적으로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살아온 인생이 아니란다.
엄마가 할 수 없는 일까지도 오직 엄마라는 이유때문에 다 해내며 살아온 존재가 바로 엄마다.
우리에게 엄마의 존재는 어떤 의미일까?
절대로 엄마처럼은 살지 않겠다고 여러번 다짐하는 자식들은, 아니 나는!
결코 모르는 게 아니었다.
단지 언제나 열심히 모르는척 하려고 최대한 외면했을 뿐이라는 걸.
어떤 엄마도 결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는 걸
우리는 영원히 잊어버린 척 살기로 작정했는지도 모르겠다.
잊어버렸기에
그래서 잃어버렸는지도...

세상 모든 엄마들을...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정말 어떻게 해야 하나...
정말...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4. 28. 06:33
그의 첫 소설 <고래>를 읽으면서 얼마나 신선한 재미를 느꼈었던지...
날 것들에 대한 생명감 가득한 이야기...
(그 "날 것"이란 다름 아닌 모두 "사람"들이다)
"어~~~어~~ 이런 인물들로 현대 소설이 가능해?"
원시적이라는 생각까지 들게 했던 소설 속 인물들 때문에
읽으면서 많이 놀라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의 두번째 소설을 서점에서 봤을 때 
그래서 나는 반가웠고 함께 귀가(?)를 선택했다.
잠시 본의 아니게 아껴뒀다가(?) 어제 드디어 읽었다.



강간죄로 교도소를 다녀온 52세 120kg 큰아들,
영화인지 뭔지를 하다 완전히 망해먹고 알코올중독자가 되어 돌아온 48세 둘째아들,
바람을 피우다 이혼을 당해 딸과 함께 친정으로 쫓겨온 42살 막내 딸...
일흔이 넘은 엄마의 집으로 이런 가족 구성원이 모인다면?
평균나이 49세 후줄근한 중년이 되어 한 집에 모인 삼남매의 끼니를
일흔의 어미는 다시 챙겨주기 시작한다.
그것도 극악스럽고 온갖 종류의 "고기"를 끊이지 않고....
(마치 고기와 승부라도 보는 듯이...)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고,
콩가루도 이런 콩가루가 없다.
책을 읽으면서 이 어머니의 기구함이 참 처량스럽긴 한데,
그렇다고 이 어머니 역시 마냥 기구한 운명이라며 불쌍하게만 여길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젊은 시절 외간남자와 눈이 맞아 자식들들 팽개친 채 야반도주를 했고, 
이 사실을 사십 년간 자식들에게 감쪽같이 덮어둔 채
배다른 자식(형과 나)과 씨 다른 자식(나와 여동생)을 억척스럽게 한집에서 키워온 어머니시다.
하나씩 흩어졌던 그 자식들이
다들 무참히 깨져서 지금 25평 아파트에 떨거지처럼 담겨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어떤 이야기가 나온다고 해도 다 코믹이겠다 싶다.
실제로 이 소설을 읽으면서 오랫만에 박장대소를 했다.
그러면서도 뒤가 구린 듯한 이 느낌은 뭐지?
너무 현실적이라서 캥기는 기분마저 든다.
이게 과장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 머리털이 쭈뼛 서기도 한다.



이 막장의 콩가루 집안 사람들이
상당히 읽는 사람을 뜨끔거리게 만든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엔 문학적인 모습을 띄기도 한다.
그것도 겁없이 권총 자살한 대문호 헤밍웨이에 빗대서 말이다. 
...... 자신의 몸으로 직접 실감할 수 잇는 것만이 참다운 실존이라고 생각했던 헤밍웨이의 경우는 어땠을까? 그는 온전히 자신의 으지대로 산 것일까? 전쟁터를 전전하고 파리와 쿠바, 스페인과 아프리카를 떠돈 것도 모두 자신의 선택이었을까? 그래서 그는 행복했을까? 물론 행복한 순간들도 있었을 것이다. 파리에서 보낸 칠 년, 가난한 문학청년으로서의 수줍음과 막막함, 첫 아내와의 달콤한 시간들, 문학에 대한 열정..... 하지만 순수했던 시절은 모두 지나가고 그는 무언가에 코가 꿰어 여자를 갈아치우고 더 많은 짐승을 살해하고, 미친 듯이 먹어대 돼지처럼 몸무게가 늘어나고 거친 영혼은 더욱 황폐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머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던 것이다......
각 장의 소제목은 영화 제목을 가져다 썼는데
(처음엔 꼴에 주인공이 영화감독이라고.... 라고 끌끌 혀를 찼었다
  이상하다. 읽을수록 점점 이 가족들과 유사해지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런 된장!)
이게 또 은근한 조롱의 뉘앙스를 풍긴다.
이 소설은 그러니까.
인간의 밑바닥을 들여다보는 공통점에 대한 이야기다.
처음엔 뭐 이런 집안이 다 있냐 싶었는데
지금 내 말하는건가 하는 부분들이 자꾸 등장한다. (이런 "삐리리"한 경우가...)
아주 교훈적이고 근엄하게 조목조목 따지는 것보다
이렇게 불시에 옆구리를 치고 들어오는 한 방이 더 강력한 법.
 그래도 결론은 어쨌든 착하다(?)
...... 나는 언제나 목표가 앞에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 이외의 모든 것은 다 과정이고 임시라고 여겼고 나의 진짜 삶은 언제나 미래에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 결과 나에게 남은 것은 부서진 희망의 흔적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헤밍웨이처럼 자살을 택하진 않을 것이다. 초라하면 초라한 대로 지질하면 지질한 대로 내게 허용된 삶을 살아갈 것이다. 내게 남겨진 상처를 지우려고 애쓰거나 과거를 잊으려고 노력하지도 않을 것이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겠지만 그것이 곧 나의 삶이고 나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천명관!
이 사람한테 또 제대로 한 방 먹은 것 같다.
<고래>와 <고령화가족>
천명관의 그 다음의 이야기가 미리부터 궁금해진다.
이 사람 글은 참 많이, 그리고 거하게 펄떡거린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찍고 끄적 끄적...2010. 1. 19. 05:54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 심순덕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 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 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썩여도 끄덕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한밤중에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엄마에게도 젊음이 있었다는 걸 쉽게 잊습니다.
엄마라는 존재는...
단 한 번이라도...
여자였던 적도, 청춘이었던 적도,
친구와 함께 깔깔 웃는 꿈 많은 소녀였던 적도
결코 없었던 것처럼
처음부터 엄마는
 그저 엄마였다고만 생각했습니다.
세상에 처음부터 엄마로 태어나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외할머니의 영면 소식을 들으며
엄마... 엄마... 를
낮게 부르며 우는 내 엄마를 보며
나는 어이없게도 생경한 그 모습이 낮설어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엄마가 엄마를 부를 때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고서는
문득 두렵고 서러웠습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엄마는 그래도 되는 사람이라고
맘 속에 정의를 내리고 있었던걸까요?
사실은... 사실은...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사람이었는데...
엄마의 오래된 청춘을 들여다보며
나는 감히 목조차 매이지 못합니다.
엄마...
고운 소녀였던 엄마는
하필이면 이 모진 딸의 엄마가 되어
아픈 시간들 내내 가슴 치며 감내하고 있을까요?
엄마라는 존재 앞에
나는 고개조차 들지 못합니다.
그러나
당신 때문에...
못난 내가 아직 딸일 수 있음이
한없이 죄스러워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엄마...
다음 생을 기약할 수만 있다면
나는 꼭 당신의 엄마로 태어나고 싶습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태아의 세계는 어디까지일까?
좁은 엄마의 배 안에서
아이는 지금 어떤 세상을 기다리고 꿈꾸고 있을까?
꼬물꼬물 그 작은 움직임에도
모든 부모는 세상에 다시 없을 세상 전부를 느낀다.


 
알았을까?
누군가의 배 안에 새생명이 품어지기까지
가슴속으로 더 많은 아픔과 두려움 그리고 박찬 감동이
깊게깊게 품어진다는 걸...

어떻게 만나질까?
궁금해하는 내게
뚝. 뚝. 뚝.
작은 태동으로 대답하는 현명하고
아름다운 아기야.



그 작고 이쁜 입으로
뭐라고 내게 말하는거니?
너는 내게 지금 천사의 음성을 전하고 있구나.
내가 못 알아 들어 혹 맘 상하진 않았니?

너의 고운 얼굴 속에서
너의 작은 움직임 속에서
나는 평화보다 더 깊은 평온을 느낀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09. 11. 6. 06:30
처음 읽었던 핀란드 작가의 소설이다.
아르토 파실란나,
핀란드의 국민작가라고 한다.
왠지 하루종일 자일리톨 껌을 징걸징걸 씹으며
우울과 고독함에 젖어 있을 것 같은 나라 핀란드.
(우울하긴 하지만 그래도 건강한 치아를 생각해서 항상 자이리톨 껌을.... ^^)
실제로 핀란드 사람들의 가장 고약한 적은 "우울증"이란다.
살인은 단지 100여 건인데 비해 매년 1500여 건의 자살이 발생한다는 나라 핀란드.
이 소설은 이런 우울의 핀란드를 배경으로
놀랍도록 재미있는 블랙 유머를 선사한다.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묘한 깊이감이 있는 소설.
이 소설은 두 사람의 만남에서 시작된다.
네 번의 파산선고를 받은 사업가와 현직 대령
아이러니하게도 이 두 사람의 첫만남은 자살의 순간이다.
같은 목적으로 찾은 시골의 한적한 헛간에서의 만남.
이 만남에서 집단 자살 여행이라는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살기 위해서, 혹은 죽기 위해서
아니면 단순한 호기심과 재미를 위해서
그들과 동참하는 동행자가 생기고
최고급 신형 버스에 올라탄 이 33인은 죽을 곳을 찾아
함께 여행을 시작한다.



자살에 대한 이야기를
이런 유쾌한 터치로 그것도 끝까지 유머와 반전의 묘미까지 잃지 않고
쓸 수 있다는 게...
나는 집단자살보다 더 끔찍하고 무섭다.
책을 읽지 않아도
이야기의 결말은 이미 알 수 있지만
그 확실한 결말을 앎에도 불구하고
내내 재미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게 놀랍다.
등장하는 캐릭터를 내 주위의 누군가에 맞춰보는 퍼즐의 즐거움까지 은근히 소유하다...
얼마전엔 이 원작을 가지고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새롭게 각색해 뮤지컬이 만들어지기도 했었는데

<남한산성>에서 인조로 분했던 배우 성기윤이 대령으로 분했었다.
실제로 뮤지컬을 보지 않았지만 진지했을 그의 모습이 상상돼 살짝 웃음이 머문다.
어쨌든 집단 자살 여행의 끝은 강력한 삶으로의 복귀다.
당연하지 않은가!!!



제 3회 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최민경의 <나는 할머니와 산다>
좀 흉흉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유쾌하다.
청소년소설이라 깊이감은 많이 떨어지지만 분명 참신함은 있다.
책을 읽기 전에는
할머니(귀신)가 수시로 등장해 이야기를 휘젖고 다니진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이 책 속엔 귀신으로서의 할머니의 음성은 단 한 줄도 없다.
하지만 분명 주인공은 염연히 할머니와
그것도 이미 돌아가신 할머니와 산다.

이상한 빙의 현상!
(빙의현상이긴 하되, 간접적인 빙의현상... 이해가 될까?)
그러나 기억할 것은,
이 책은 어쨌든 청소년문학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깊이감이 부족하다느니, 유치하다느니 평하지 말자.
당신의 중학교 시절을 생각해보라.
읽다보면 당신의 중학교 시절보다 책의 주인공이 훨씬 더  성숙한 존재임을 알게 된다.
기억나는가?
그 때, 당신이 얼마나 유치했는지...
그리고 그 유치함이 얼마나 심각하고 절실했었는지를...




6살에 입양돼 이제 16살이 된 조은재.
아빠의 실직은 벌써 2달을 넘어서고 있고 
치매가 있던 할머니는 동네 공사현장 물웅덩이에 빠져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
이런 심각한 상황들이 아주 유머러스하게 전개된다.
아이스럽게 유쾌하다.
진짜 엄마와 가짜 엄마를 논하는
주인공의 성숙함 또한 귀엽고 이쁘다.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의 몸에 들어오는 건 뭔가 할 일이 있기 때문이란다.
당신이라면 어떻까?
그 할 일을 하라고 온전히 자신의 몸을 내 줄 수 있을까?
어른이 된다는 건 피곤한 일이란다.
항상 무슨 일인가로 마음을 졸이며 살아햐 하기에...
그래...
사실은 정말로 말도 하기 싫을 정도로 피곤하다.
그렇다고 이미 어른이 되어버렸는데 
이제와서  못해먹겠다고 반납할 수도 없는 노릇.

현실을 인정하고 믿자!
그걸 믿는 동안은 생도 함께 빛날 것이라는 당돌한 16살 소녀의 말을 기억하며...
살자! 살자! 살자!
이것 말고 더 좋은 다른 방법이 없다면
어차피 누구든 살 수 밖에는 없다.

Posted by Book끄-Book끄
한 생명이 한 생명을 품는 것도
위대함 그 이상인데
한 생명이
두 생명을 품는 건
세상 말로 감히 이야기하지 못할 경건함.



엄마 배 안,
두 개의 작은 공간 속에
사이좋게 함께 있는 두 생명.



함께 포개지고 엮어지면서
그 마음 역시나
더 애뜻하게 포개지고 엮어지겠지!
한 아이의 웃음을 한 아이가 따라 웃어주며,
한 아이의 눈물을 한 아이가 위로해 주면서
그렇게 두 몸
한결같이 서로 키워내겠지.



서로 다퉈 등 돌려 모른 척 하고픈 날도 있겠지만
늘 그랬듯 서로 마주보며
서로를 자신인 듯 다시 바라볼테지.
그러다 같은 날 세상 나오면
내것, 네것 나누지 않고
그저 같은 한마음 그 기억을 떠올리며
두 배, 세 배의 사랑을 키워낼테지.

두 아가야 !
너희 두 몸 속엔 세상 그 무엇으로도 감히 끊어내지 못할
크고 단단한 연결끈 하나 있단다.
비록 보이지 않는다 해도
그렇게 연결된 너희 둘은
세상을 두 배 더 멋지게 만들 수 있다는 거 알고 있니?

그러니
언제나
누구보다
힘차게
힘내렴 ! ^^


Posted by Book끄-Book끄
그냥 끄적 끄적...2009. 7. 2. 13:23
늦게 집에 갔더니
컴퓨터 책상 위에 두 장의 편지(?)가 놓여 있다.
무지 이뻐하고 사랑하는 두 조카의 편지



위의 오빠가 하는 걸 보고
동생이 그대로 따라 했을 걸 생각하니
혼자 미소가 절로...
하루의 피로가 씻기는 기분 !



블로그에 간혹 녀석들 그림을 올리고 보여주면
자기들 그림이 컴퓨터에 나온다고
무지 신기해하며 좋아하는 조카들.
이제는 먼저 이렇게 선수를 치기도 한다.
나도 어쩔 수 없는지라
내 조카들이 세상에서 제일 귀엽고 예쁘기 그지 없어서.....

아침엔 엄마가
두 녀석들이 썼다며 편지를 보여주신다.



가끔은 (사실은 너무 자주)
이 녀석들이 이모보다 더 할아버지, 할머니께 애뜻하구나 싶어
많이 민망하고 부끄럽다.
"아이는 어른의 교사"라던데....
이 녀석들
이렇게 자꾸 나를 가르친다.

딸의 자리가
이모의 자리가
고모의 자리가
그리고 내가 차지하고 있는 그 모든 자리가
새삼 은근한 책임감으로 다가온다.

이 녀석들 알까?
이모가 참 많이 반성하고 있다는 걸... ^^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6. 29. 06:30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 장영희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사람에게는 그 사람 각자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시련과 고통만 찾아온다고 합니다.

그러나 누구든 생각하게 되죠.

“이건 정말 너무 심한 거 아냐?”

때론 신조차도 그 공평성에서 살짝 벗어나신 게 아닌가 하며 야속하고 원망스러운 마음이 생길 때도 분명 있습니다.

여기 우리가 보기엔 참 힘든 삶을 사는구나 생각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생후 1년 때 앓은 척수성 소아마비로 두 다리의 자유를 잃은 1급 장애인.

2001년 유방암 판정, 방사선 치료로 완치.

그러나 다시 2004년 척추암으로 전이, 2년간의 투병 생활.

1년 만에 다시 간으로의 암 전이....

그렇게 다시 시작된 투병 생활 중에 그녀는 이 책을 씁니다.

결국 책의 출판을 하루 앞 둔 5월 9일 57세의 일기로 타계를 한 문학 전도사.

장.영.희!

<문학의 숲을 거닐다>로 잘 알려진 서강대 영문학 교수 장영희.

<내 생애 단 한번> 이후 9년 만에 내놓은 에세이집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은 그렇게 그녀의 유고작이 되어 이 세상에 출판됐습니다.

그녀는 “천형(天刑)의 삶”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에 주눅듬 없이 자신의 삶이 “천혜(天惠)의 삶”이었다고 당당하게 고백하며 오히려 그들의 지친 어깨를 다독입니다.

어쩌면 병상에서 이 글을 쓰면서 그녀는 정말로 “살아온 기적”들을 되짚어 보면서 “살아갈 기적”을 간절히 꿈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카르페 디엠!
(carpe diem :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하라! 매 순간이 당신 삶의 마지막인 것처럼... )

그녀는 계속되는 장애와 긴 투병 생활 속에서도 진정으로 카르페 디엠의 삶을 하루하루 실천하며 온 몸으로 느꼈던 사람으로 기억됩니다.

세 번째 암 판정 이후 그녀는 말합니다.

"신은 우리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하기위해서 넘어뜨린다. 나 역시 넘어질 때마다 어떻게 다시 일어서야 할지를 생각한다."

그녀가 찾아낸 방법은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열심히 살며 잘 이겨냄으로써 아름다운 기적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녀의 글 속엔 스스럼없이 장애와 투병의 흔적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 글들은 모두 하나같이 밝고 심지어는 유머러스하기까지 합니다.

양지바른 곳에 쪼그리고 앉아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던 유년의 기억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 만큼요.

이야기가 끝날까봐 조마조마하며 “그래서~~~”로 되묻던 그 어린 기억...

60을 바라보는 여자가 도대체 이렇게 귀엽고 순수해도 되는가 싶은 만큼 깨끗하고, 밝고 그리고 심지어 장하기까지 합니다.

장영희! 이 여자!

급기야 깰 수 없는 내공으로 집을 짓고 말았네요.

가끔 우리는 저울질을 합니다.

마음의 장애와 신체의 장애 둘 중에 어느 게 더 치명적인가를...

그딴 저울질이나 하고 있는 제게 “날 좀 봐라! 나는 그 두 가지를 완벽하게 다 가지고 있다!”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그녀를 처음 알게 됐을 때의 당혹감이라니...

내 “배부름의 옹졸함”이 드러나는 걸 보면서 스스로 얼굴 화끈거리기도 했더랬죠.

문학 전도사, 희망 바이러스, Positive thinking 의 실천가!

그녀의 이름 앞에 붙는 이 단어들이 제게는 문학박사, 교수, 영미문학사의 간판보다 더 애뜻하게 다가옵니다.


그녀가 타계했다고 했을 때,

저는 그녀의 어머니가 걱정됐습니다.

두 다리를 못 쓰는 둘째 딸을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매일 업어서 등하교시켰던 어머니. 비가 오면 부서진 우산살이 딸에게 향할까봐 그 우산살의 방향을 매번 자신에게 향하게 해 옴 몸을 적셨던 어머니. 진눈깨비 내리는 날이면 행여 딸을 학교에 못 데려다주게 될까봐 새벽에 일어나 연탄재를 부숴서 집 앞 골목길에 뿌려놓았던 그 어머니.

역시 그녀도 어머니가 마음에 걸렸던 모양입니다.

임종 직전 노트북 컴퓨터로 어머니 이길자(82) 여사에게 남긴 짧은 편지에 그 마음이 그대로 담겨있습니다.

이 몇 줄의 글을 그녀는 혼미한 정신과 싸워가며 3일간 아주 힘겹게 썼다고 합니다.

"......엄마, 미안해. 이렇게 엄마를 먼저 떠나게 돼서.
  내가 먼저 가서 아버지 찾아서 기다리고 있을게.
  엄마  딸로 태어나서 참 좋았어.
  엄마! 엄마는 이 아름다운 세상 더 보고 오래오래 기다리면서 나중에 다시 만나......"

눈을 감는 마지막 순간에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마지막 말도 “엄마 !...”

이 두 글자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 또한 옴 몸의 힘이 빠졌습니다.

세상의 모든 딸은 모든 어머니에게 빚을 지며 살고 있다는데......

저 역시도 어머니의 두 손에서 다시 삶을 시작했기에 그녀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말한다면 허세일까요?

그녀는 짧지만 참 긴 삶을 성실히, 그리고 최선을 다해 살아냈습니다.


“흔적이 남는 사람”

저는 장영희라는 사람을 그렇게 기억하렵니다.

지치고 힘들어 혼자 징징거리고 있을 때 그녀는 어느새 제게 말합니다.

"...... 그렇게 야단법석 떨지 마라. 뼈만 추리면 산다.
 아무리 운명이 뒤통수를 쳐서 살을 다 깎아 먹고 뼈만 남는다 해도 울지 마라.

 기본만 있으면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살이 아프다고 징징대는 시간에 차라리 뼈나 제대로 추려라. 
 그게 살 길이다......"

먼저 간 사람들은 믿음을 가지고 떠난다고 합니다.

남겨진 사람들이 자신이 못 다한 사랑을 해주리라는 믿음, 진실하고 용기 있는 삶을 살아주리라는 믿음,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 주리라는 믿음, 그래서 나중에 다시 만날 때까지 이곳에서의 귀중한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리라는 믿음....

그 믿음에 걸맞게 살아가는 것은 이곳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몫이라고 그녀는 말합니다.

서로 치고받고 싸우기도 하지만 또 서로 도와 가며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이 세상.

나쁜 운명을 깨울까 봐 인생을 내내 살금살금 걷듯이 살아간다면 좋은 운명 또한 평생을 살아도 깨우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나쁜 운명, 좋은 운명 모조리 다 깨워 가며 저벅저벅 당당하게, 큰 걸음으로 걸으며 살아내라고 평생을 휠체어와 목발에 의지해 살았던 한 여자가 말합니다.

두 발의 자유를 잃고 신체의 구석구석을 원치 않았던 동반자에게 차례차례 내주면서도 매 순간을 세상 누구보다 큰 걸음으로 걸었던 한 사람...

그녀가 “살아온 기적”을 보면서

저 또한 “살아갈 기적”을 부지런히 탐하게 됩니다.

이제 넘어져 또 다시 뼈가 부서진다고 해도 더 이상 징징대지 않으렵니다.

그 시간에 오히려 더 열심히 뼈를 추려야겠죠.

하나라도 더 잘, 더 제대로 추려내야 잘 맞춰질 수 있을 테니까요...


모든 사람의 모든 순간이

전부 온전한 “기적”임을 기억하며...

Posted by Book끄-Book끄

세상이 결코 이쁘지 않고 힘들어도
요 이쁜 입들은
항상 희망을 먼저 말하고,
행복을 함께 이야기하고
거움만을 노래했으면 합니다.




많은 시간 세상 속을 살아내면서
혹 마음이 무거워 지치고 힘들 때
처음 "엄마" 했던
그 첫 말의 용기
더 나은 곳을 향해
희밍의 꿈을 먼저 말하는
그런 입술이 되길 기도합니다.



아가 !
내 입에서 처음 나온 말들은
그대로 열매가 될거란다.
그 마지막 한 마디까지 탱탱하고 알찰
선한 말들의 출발지 !

아가 !
내 입은 아직 작지만
내 입술이 들려줄 꿈은
그래서
아주 크고 넓단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