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동안 몸을 아프게 하는 이야기가 있다.
박범신의 <은교>와 <소금>이 그랬고
김현의 <남한산성>과 <내 젊은 날의 숲>이 그랬다.
입 안이 헐기 시작한건,
이 책을 읽기 시작하고 정확히 하룻밤이 지난 금요일 아침부터였다.
사실 그때까지 이 이야기를 어떻게 읽을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었다.
서둘러 읽어낼지 아니면 한 장 한 장 시간을 들여 읽어나갈지를...
그 사이 입안은 점점 더 심해졌고
지금은 물을 삼키는게 힘들 정도로 헐어있고 부어있다.
손가락으로 왼쪽 볼을 누르면 찌르는 통증이 깊게 파고든다.
아마도 앞으로 며칠은 더 견뎌내야 할 듯 싶다.
염증약과 진통제를 삼키며 나는 이 이야기 속의 "당신"을 생각했다.
주호백의 유일한 당신인 윤희옥을,
윤희옥의 당신이었던 김가인과 윤희옥의 당신이 된 주호백을,
김가인의 당신이었을 윤희옥을.
그리고 그들의 부식되지 않은 기억들을...
이야기 속에서 박범신은 말한다.
기억은 지속된다고.
심지어 어떤 기억은 스스로 번식하고 확장한다고.
원(願)이 깊어지면 원(怨)이 된다
한 번 원(怨)을 원(願)으로 믿게되면 삶의 방향은 엉망이 될 수밖에 없다..
일흔넷의 나이에 희옥은 비로소 주호백이라는 "당신"을 "공평"하게 사랑하기 시작했다지만
그건 희(喜)인지 비(悲)인지 나느 모르겠다.
가끔 두렵다.
생명력 짱짱한 "기억"이 미래의 나를 갉아먹으면 어쩌될까 싶어서..
그렇게 미래의 기억은 다 지워지고
과거의 기억에만 붙들려 있다가 급기야 나를 놓아버리게 되는건 아닐지.
내겐 주호백처럼 매화 나무 아래 사체를 유기해 줄 "당신"도 없는데...
지금 내 몸이 아픈 이유는
주호백의 마지막을 거둔 윤희옥의 "공평"이,
그 "공평"의 마디마디가 전부 이해되서다.
홍매 나무 아래 놓여진 의자에 앉아있는 여인.
촛점이 멈춰진 눈.
파킨슨병으로 제 멋대로 흔들리는 손과 발.
그리고 점점 꺼져가는 기억.
그 여인이 나의 과거고 현재고 미래같다.
공평하다는건,
얼마나 불공평한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