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2. 1. 18. 05:57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여간해서는 지치지 않을 기세다.
아마도 집 어딘가에 글을 쓰는 우렁각시를 숨겨놓고 있는 건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1년마다 2~3권의 책을 뚝딱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느냐 말이다.
덕분에 한동안 질적인 문제로 이 허접한 독자가 극심한 혼란을 느끼고 있긴 하다.
이제 더이상 참신하다거나 기발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건 베르베르의 글에선 일종의 불행이다.
예전에 했던 말을 조금 바꿔서 다시 하고 있는 듯한 지능적인 되새김 화법!
어쩐지 사기당하고 있다는 찜찜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 사람이 왜 우리나라에 이렇게 선풍적인 인기일까?
솔직히 점점 의심되기 시작했다.
딱 그즘에 읽게 된 베르베르의 새 책 <웃음>



솔직히 재미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박장대소 후 급작스럽게 죽은 인기 코미디언.
그 사건을 자살이 아닌 타살로 믿는 여기자.
웃음의 기원을 찾아 떠난 여정에서 하나하나 밝혀지는 웃음의 미스터리.
원탁의 기사나 프리메이슨같은 비밀 결사대 유머 기사단과 성서 비슷한 문구들.
정말 어딘가 파란 목갑에 들어있는 살인소담(殺人笑談)이 있을 것 같은 착시감까지...
베르베르가 모천(母泉)으로 조금 돌아온 것 같다.
웃음이라는 소재로 기발한 이야기를 만들었다.
신기한 건 미스터리 소설이긴 한데 읽는 내내 범인이 누군지가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범인의 추적이 스토리의 중심이 아니라 웃음의 기원을 찾는 근원적 추적이
바로 스토리 자체이기 때문이다.
확실히 독특한 구성이다.

웃음이 하나의 에너지가 된다는 베르베르의 말에는 전적으로 동감!
......이제 권력은 대중의 웃음을 관장하는 사람들의 것이 되었어요. 그들은 매스 미디어 세계의 하위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이죠. 그런데 이 하위 계층이 실제로는 지배층이에요. 그들의 지배를 보장하는 것은 불행을 잊게 하거나 상대화하는 능력, 그리고 따분한 세상을 사는 사람들의 기분을 풀어 주는 능력이죠. 권태에 대한 두려움은 이제 핵심적인 두려움이 되었어요. 내가 보기에 사람들을 웃게 하는 것은 오늘날 가장 위대한 힘이에요. 어떤 힘도 그 힘을 능가하지 못할 겁니다......
베르베르의 지적은 정확하다.
우리나라도 개그콘서트 류의 개그프로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초등학생들까지 개그맨들 흉내를 내는 걸 보고 있으면
격세지감과 함께 문득 두려움마저도 느껴진다.
웃음이 하나의 강력한 에너지임은 분명히 맞는데
어쩐지 득보다는 엄청난 해약의 형태로 자리잡는 것만 같아서...
외경심이 극단의 형태로 보여지게 될 것 같아 두렵다.
웃음을, 유머를, 개그를
점점 그저 단순히 미소로 바라보게 되지는 않는다 .
해학과 풍자를 밑바탕에 둔 촌철살인의 미학은 사라지고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의 극단의 몰살(歿殺)만 살아있다. 
이러다간 정말 웃음가스가 치료가 아닌 일상에서 필요한 때가 금방 올 것 같다.
가끔은 웃으면서 죽을 수 있다는 건 축복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은 듯.
성적인 에너지 에로스, 죽음의 에너지 타나토스, 웃음의 에너지 겔로스.
이제 내게 남은 에너지는 어떤걸까?
베르베르의 신작을 읽으면서
나는 내게 남은 에너지를 생각했다.
웃음이,
싹 가신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