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로 간 코미디언'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10.08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 김연수
  2. 2009.11.11 <세계의 끝 여자친구> - 김연수
읽고 끄적 끄적...2010. 10. 8. 05:45
처음엔 그를 왜 문단에서 주목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1970년 출생한 아주 젊디 젊은 작가 김연수
그 나이에 과거가 있으면 얼마나 있고 사건이 있으면 얼마나 있다고
젊은 작가 한 명의 작품이 나올때마다 문단은 바빠지나 했었다.
1993년 <작가세계> 여름호에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
1994년 장편소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로 제3회 작가세계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굿빠이, 이상>으로 2001년 동서문학상,
소설집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로 2003년 동인문학상,
소설집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로 2005년 대산문학상,
2007년 단편소설 <달로 간 코미디언>으로 황순원문학상을 수상...
그의 이력은 문학상 수상작만 나열하는 것으로도 숨이 차다.
순서가 좀 뒤바뀌긴긴 했지만
<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읽었을 때도 의구심이 풀리지 않았었다.
그리고 읽은 그의 두 번째 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이 책을 읽고 생각을 바꿨다.
그의 책을 이제 다 찾아보리라!



가끔 생각한다.
그가 성균관대 출신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1991년의 그 시점에 대학생이 아니었다면...
(그 때 성균관대에서 권기정의 사망 사건이 있었다.
 아주 생생하게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성균관대 운동권 학생이었던 언니 때문이다.
 권기정의 시신을 지키는 무리 속에 우리 언니도 있었기에...)
어쩌면 김연수에게도 그 시절에 대한 부채 혹은 책임감 같은 것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마치 광주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소명처럼...
기억하고 그리고 기록해서 전하기 위해서.
그 때 서울 시내는 항상 매캐한 최류탄 가스로 가득했었고
도심은 백골단과 대학생들의 쫒고 쫒김으로 분주했었다.
명지대에서는 백골단의 쇠파이프에 맞아 학생이 사망했었고
(공교롭게도 명지대는 우리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어 그 사건도 아직까지 선명하다. 분향소를 찾아갔던 기억도...)
그리고 전대협의 북한행이 그 즈음이었고.
세계적으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때이기도 했다.
곰곰히 되집으니 내가 살아온 대한민국의 현대사도 전쟁 못지 않았구나 싶다.
그러니까 이 책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에는 이 모든 현대사들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처음엔 사랑이야긴가 했었다.
그런데 아니다.
사람 이야기, 그것이었다.
예전의 어느 인터뷰에서 작가 김연수는 말했다.
"써보니까 소설이라는 게 사람을 이해하는 문제더라고요. 대상은 실제로 살아 있는 사람일 수도 있고 문득 떠올린 사람일 수도 있죠"
사람에 대한 이야기...
사람 이야기 속의 실제 사건과 시간들이 나는 두렵다.



유대인 강제수용소에서 극적으로 생환한 뒤,
죽은 동료의 이름으로 개명하고 제3세계 망명객들의 후원자가 된 피아니스트 헬무트 베르크,
떠돌이 일용직 노동자에서 "광주의 랭보"로,
다시 혁명적 문화운동가 강시우로 "이 세상에 두 번 다시 태어"난 남자 이길용,
모범적인 고등학생에서 느닷없는 폭행을 경험하고 결국 자살에 이르는 정민의 삼촌,
서해 갯벌을 막아 논을 만들겠다는 만석지기의 꿈을 꾸다 간첩으로 몰려 실형까지 살게 된 주인공의 할아버지.
책 속엔 이렇게 유일하면서 둘이 되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읽으면서 나는 턱턱 숨이 막혔다.
한때 우리나라가 그랬었지.
(그렇다면 지금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누군가에 의해 내 인생이 날조되고 뒤바꿔지기도.
그래서 몽롱한 바보로 버려지듯 던져져버린
그런 삶들이 있었다는 거...
여기도, 저기도 갈 수 없었던 사람들.
나 자신일 수도, 나 자신이 아닐 수도 없었던 시간들.
소설로 읽어내는 그 사람들과 그 시간들은 아무리 해도 덤덤해지지 않는다.

문학동네에 이 소설을 연재하기 시작하면서 김연수는 말했다.
"때로는 한 사람이 세상 모두를 대신하는 경우도 있고, 이 세상 모든 것을 바라보면서 한 사람만을 생각할 때도 있다. 모든 사람은 단 한 사람이라고 말한 사람이 보르헤스라고 했던가. 확실하진 않지만 나는 보르헤스가 그런 말을 했다면 그게 옳은 말이라고 전해주고 싶다...... 모두에게는 각자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는 역시 운명과 사랑과 배신과 복수와 좌절과 슬픔과 기쁨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멀리, 아주 멀리 가면 풍경은 달라지지만, 역시 이야기가 말하는 바는 비슷하다.
작가로서 진심으로 바라는 일은 이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이 정말 많은 얘기를 들려주기를. 그리고 그 이야기를 읽은 사람들이 다시 내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해주기를....."
그가 쓴 또 다른 글에서 사람들은 또 어떤 이야기를 해줄까?
그가 생각하는 재능이라는 건 "집중력"의 문제란다.
얼마만큼 시간을 그 안에 쏟아 부울 수 있는지의 정도 차이가 재능이라고...
이제 나는 또 한 사람의 재능을 탐하기로 했다.
김.연.수.
그를 읽어야겠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09. 11. 11. 06:18
"사랑"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나?
아님 "기억" 혹은 "추억"들에 대한 오마쥬?
누군가는 자신이 계획했던 그대로의 삶을 살아가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항상 변수와 의외성에 의해
어쩌면 임기응변의 가지를 늘리며 살아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사랑"이 독한 건,
오래 기억에 담기기 때문에...
그래서 때로 살을 저미게 하고
때로는 현실 속에서 다른 세상을 바라보게 하기 때문이 아닐까?
사랑은 하는 순간에도 환상 속으로 걸어가는 거지만
끝나는 순간부터도 여전히 환상 속의 걸음마다.



"상실감 앞에선 기억 따위는 아무런 소용도 없다"고 했던가?
묵묵히 다가오는 9편의 단편들의 무게감에 어깨가 묵직하다.
따지고 보면 문제작들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너무나 개인적인 일들에 대한 기록.
익숙한 결험도 흔한 이야기도 사실은 아니다.
그런데도 "평범"한 우리네 일상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일종의 "데자뷰" 현상까지...
억지스럽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김연수라는 남성 작가에게
여성성에 대한 데자뷰가 있었던 모양.
그의 감성은 연했고 다정했고 그리고 부드러웠다.



18세의 찬란한 소녀를 향해
"여름 바다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늙어가고 있었다"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사람
(<기억할 만한 지나침>의 시작)
모든 일에는 흔적이 남게 마련이라는 단편 세계의 끝 여자친구>
한 일들은 마음에 남는 게 하나도 없는데
안 한 일들은 해봤자였다고 생각하는데도 잊히질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
하지도 않은 일들이 잊히지도 않는다고...
작가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이주 노동자의 떠듬떠듬한 한국어 발음처럼
어쩐지 생경하다.
그러나 그 생경함을 충분히 이해하게 만드는 낯선 친근함!!!
"김소진"의 글들이 생각났다.
우리 곁에 더 오래있었으면 참 좋았을 소설가 김소진을...
왜 그가 떠올랐을까?
그 수수께끼에 대한 대답을 찾아봐야 겠다.



<달로 간 코미디언>
붕괴와 상실로 실종되는 인간의 삶.
바보스런 슬랩스틱 코미디 안에 갇힌 인간의 삶이
문득 서럽고 처연하다.
아버지가 스스로 선택한 실종을 바라보며
딸은 그 사막 속에서 다시 아버지를 조우하게 될까?
한쪽 끝을 건드리면 다른 한쪽 끝이 열린다고 하는데...
새롭게 열리는 그 끝을 보면
아마도 작가는 모든 연결되는 이야기를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세계"라는 건 결국
나와 너, 우리에 의한 소통이라는 것.
세계를 거부하겠다면 방법은 간단하다.
"소통"의 끈을 끊으면면
모든 것은 거부된다.
밑바닥만큼 처연한 끝이라는 자리...
다시 시작되는 끝이라면 오히려 다행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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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 봤어 :
두 사람은 서로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는 고독 속에서 몇 달을 보내야만 했다. 고통을 피하려는 건 인간의 본능이다. 그러므로 때로는 고통을 피하려고 스스로 죽기도 한다. 해피에게는 아이없이 살아가는 삶이 가장 큰 고통이었다. 그럼에도 계속 살아가겠다고 마음먹게 되는 건, 희망을 찾은 게 아니라 희망을 버렸다는 뜻이었다. 그 사실만은 남편과도 공유랄 수 없었다.

해피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지나가고 난 뒤에도 저 불은 우리의 예상보다 좀더 오랫동안 타오를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 안에서. 내부에서. 그 깊은 곳에서. 어쩌면 우리가 늙어서 죽을 때까지도. 이 우주의 90퍼센트는 그렇게 우리가 볼 수 없는, 하지만 우리에게 오랫동안 영향을 미치는, 그런 불들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물론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그 불들을 보지 못하겠지만.

세계의 끝 여자친구 :
마흔세 살이란 이런 나이야. 반환점을 돌아서 얼마간 그 동안 그랬듯이 열심히 뛰어가다가 무득 깨닫는 거야. 이 길이 언젠가 한번 와본 길이라는 걸, 지금가지 온 만큼 다시 달려가야 이 모든 게 끝나리라는 걸. 그 사람도 그런 게 지겨워서 자살했을 거야.

웃는 듯, 우는 듯, 알렉스, 알렉스 :
수많은 첫 문장들. 그 첫 문장들은 평새에 걸쳐서 고쳐지게 될 것이다. 그들이 어디를 가느냐에 따라서... 그러부터 인생은, 쉬지 않고 바뀌게 된다. 우리가 완벽한 어둠 속으로 들어가기전까지 이야기는 계속 고쳐질 것이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제 그가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서 첫 문장은 달라질 것이다. 그는 어둠 속 첫 문장들 속으로 걸어갔다.

달로 간 코미디언 :
보지 못하게 되면서 시각적 세계가 사라졌듯이 그 시각적 세계 안에서 자신의 몸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존재, 투명인간의 존재, 유령의 존재가 됐다는 걸 알아차렸다.
내가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사람들은 내가 마치 거기에 없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마주 앉아 있어도 내 얼굴을 보지 않고 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어차피 나는 앞을 볼 수 없으니까. 그 말은 어차피 남들이 나를 볼 수 없으니까, 라는 말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내 존재 자체가 사라져요. 시각장애의 핵심은 내가 사라진다는 점입니다. 보여져야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슬픔은,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것들에 관해 이야기를 할 수 잇다면, 견뎌질 수 있다.
                                                                                        - 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

김연수 (작가의 말) :
나는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에 회의적이다. 우리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을 오해한다. 네 마음을 내가 알아, 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네가 하는 말의 뜻도 나는 모른다, 라고 말해야만 한다. 내가 희망을 느끼는 건 인간의 이런 한계를 발견할 때다. 우린 노력하지 않는 한, 서로를 이해하지못한다. 이런 세상에 사랑이라는 게 존재한다. 따라서 누군가를 사앙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이 행위 자체가 우리인생을 살아볼 만한 값어치가 잇는 것으로만든다. 그러므로 쉽게 위로하지 않는 대신에 쉽게 절망하지 않는 것, 그게 핵심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