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2. 7. 13. 08:05

드디어 <토지>를 완독했다.

그야말로 방대한 분량이었고 장구한 역사였고 대단한 노고였다.

<태백산맥>, <장길산>, <아리랑> 처럼 10권으로 된 대하소설을 읽고 나서도

한참이나 그 뿌듯함과 마치 뭔가를 해낸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하는데

토지는 무려 21권의 분량이었다.

작가 박경리가 문학적으로 어떤 일을 해낸건지

읽으면서 그 경외감이 들었다.

박경리는 위대한 사람이다.

단지 <토지>를 탈고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미 범인일 수 없다.

내 기억에 드라마도 두 번 제작됐던 것 같다.

1980년대 KBS에서 제작했었고 그 때 서희 역을 최수지였다.

(지금 뭘하고 사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2004년 SBS에서 제작했었고 김현주가 서희 역을 했었다.

드라마에 대한 기억은 그러나 전혀 없다.

작가 박경리는 문학을 업으로 삼는 후배들에게 참 많은 것을 남겼다.

지금도 원주에 있는 "토지문학관"에는 매일 박경리가 김매던 논밭을 보며

열심히 글을 쓰고 있는 작가들이 많으리라.

둥지 속에 있는 어린 새처럼.

 

 

...... 외치고 외치며, 춤을 추고, 두 팔을 번쩍번쩍 쳐들며, 눈물을 흘리다가는 소리 내어 웃고, 푸른 하늘에는 실구름이 흐르고 있었다  .......

 

장구한 <토지>의 21권의 마지막 문장이다.

오랜 억압이 일시에 풀렸을 때 사람들은 어떤 심정이 될까?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나는 맥이 순간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장중하고 비장한 마무리를 예감했던 것도 아닌데

평사리의 최서희가 되버렸다.

온 몸을 위감은 쇠사슬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지는 느낌.

후련하면서도 아득했다.

일시에 혼백이 잠시 몸을 빠져나간듯한 혼몽함.

그래서 일부러 다른 책을 얼른 펼쳤다.

빠져나와야 할 것 같아서... 

<토지> 5부작은 참 이력도 분분하다.

1부는 1969년부터 1972년 9월까지 "현대문학"에 연재,

2부는 1972년 10월부터 1975년 10월까니 "문학사상"에,

3부는 1978년부터 "주부생활"에 연재

4부는 1983년부터 "정경문화"와 "월간경향'에 나눠서 연재

5부는 1992년부터 "문화일보"에 연재해서 1994년 8월 15일 완결됐다.

무려 25년 동안 6개 문예지와 잡지를 거쳐온 셈이다.

이 긴 시간동안 이야기의 흐름을 놓지 않고 산다는 게 어떤 느낌일까?

때론 지긋지긋했을테고 때론 감당하기 버거울 수도 있었겠다.

잉크를 채우는 만년필로 원고지에 꾹꾹 자필로 이야기를 엮었을 박경리의 손끝이 마냥 위대하고 신성스럽다.

10병 중 8병의 잉크를 다 쓰고 열리지 않은 2병의 잉크를 사용하기 위해

박경리는 뚜껑에 송곳을 대고 구멍을 뚫었단다.

그러면서 안심했단다.

그 심정 감히 불경스럽게도 조금 이해가 된다.

개인사도 결코 수월하지 않았던 박경리.

아마도 그는 다른 세상에서도 이곳에서처럼

자신이 키운 고추를 타고 갈무리하면서 만년필을 꾹꾹 눌러 글을 쓰고 있지 않을까?

 

지금 이 순간에도 문학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면,

그가 누구든그들의 인생엔 아무런 죄 없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9. 25. 06:12
소설 <친절한 복희씨> 이후 4년만에 출판된 박완서의 산문집.
솔직히 말하면 나는 산문집은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여기에 하나를 더 보태자면,
나는 작가 박완서를 무지 좋아한다.
서점에 가면 박완서의 책이 모여있는 코너를 들러
꼭 한번쯤은 내 손으로 스다듬어 보게 되는 그런 작가다.
그래서일지도 모르지만 박완서의 산문집을 앞에 두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손에 잡는다.
당신의 산문집은 따뜻하다.
정성이 가득 담긴 방금 한 따뜻한 집밥을 한 숟가락 가득 퍼서 입 안에 넣는 것 같다.
달달하고 그리고 편안하다.
집밥이 주는 포만감은 오래오래 지치고 힘들었던 고약한 허기를 냉큼 달랜다.



1부 - 내 생애의 밑줄
2부 - 책들의 오솔길
3부 - 그리움을 위하여


이 글들을 쓰면서 작가 박완서는 또 한 번 자신의 길을 반추했으리라.
전쟁의 공포도 혈육의 죽음도 겪어보지 못한 내게도
그녀의 일생은 안스럽고 안타깝다.
그래서 그녀는 작가가 되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녀의 글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내내 보듬어 안는 게 아닐까?

...... 쓰는 일은 어려울 때마다 엄습하는 자폐의 유혹으로부터 나를 구하고,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지속시켜주었다 ......

하나의 생명의 소멸은 그들에게 있어서는 우주의 소멸과 마찬가지란다.
80의 생애동안 수많은 우주의 소멸을 지켜봤을 박완서 선생.
이기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모든 것들이 다행스럽다.
그 모든 소멸로부터 내가 위로받고 있으니까...



특히 2부와 3부의 내용들이 진솔하고 담백하다.
당신이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인 2부는
김훈의 <남한산성>을 읽으면서 실제로 혹독한 추위를 느꼈다는 부분이 나온다.
자신의 과거사와 묘하게 일치되는 추위는 결국 박완서의 몸을 아프게 한다.
책은 정말로 그럴 수 있다.
책으로 살갗을 도려내는 추위를 실제처럼 체감할 수도 있고
책으로 늙은 몸에 젊은 피를 수혈받아 영생을 꿈꿀 수도 있다.
확실히 나는 그 사실을 전적으로 믿는다.

3부의 글들.
김수환 추기경 선종, 문학의 대모 박경리 선생의 추모글,
그리고 나목의 화가 박수근에 관한 이야기.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막상 활자로 인쇄된 글로 보니
부모잃은 아이의 막막함이 더 많이 느껴진다.
80의 나이로도 그럴 수가 있구나...
진심으로 놀랐고 당신의 마음이 부럽기까지 하다.

기억이 많은 사람은.
또 얼마나 행복할까?
부러움이 절망처럼 밀려온다.
훔치고 싶다... 훔치고 싶다...
당신의 기억 모두를...
정말로 그럴 수만 있다면...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8. 17. 05:49
<도가니> - 공지영 

 

도가니

 

아직도 너무나 열혈청년(?)인 이 시대의 슈퍼우먼 아줌마 작가 공지영!

(왠지 공지영이란 작가 앞에는 이런 버라이어티한 소개말이 꼭 붙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녀가 또 한 권의 책을 출판했습니다. (참 많이, 그리고 쉬지 않고 각종 책을 출판하는 그녀의 저력(?)은 일단 누구라도 대단하다 하겠습니다.)

2008년 11월 26일부터 2009년 5월 7일까지 Daum에서 연재됐던 인터넷 소설 <도가니>는 다시 약간의 수정을 거쳐 출판돼 지금 서점가 베스트셀러 1위를 달리고 있는 중입니다.

한때 “공지영 신드롬”이란 말이 있었더랬죠.

마초적이며 돈키호테같은 그녀의 글들을 잘 대변하는 표현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이미 고인이 된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은 “공지영 신드롬”에 대해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자기만 알고 편한대로 살아가려는 젊은이들에게 사회에 대한 관심을 이끌고 아무렇게나 사는 걸 반성하게 만드는 착한 소설이라는 뜻이 담긴 이 말을 긍정적으로 이해한다”라고...


이 소설의 출발은 2005년 TV에서 방영된 시사고발 프로그램이었다고 합니다.

실제 광주의 한 장애인학교에서 있었던 사건에 대한 고발이 바로 이 소설의 시작이죠.

우리게 알게 되는 모든 이야기는,

결국은 진실과 거짓, 그리고 선과 악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범한 자 혹은 평범한 자의 이야기...

그리고 그 속에서 분명 흥분이나 감격 같은 게 마구 들끓는 “도가니”같은 사건들을 수없이 만나게 되는 거구요.


늘 안개에 쌓여 있는 몽환적이고 희미한 도시,

그래서 가끔 현실조차도 몽롱하게 흐려보이는 도시, 무진(霧津)!

안개 속에 농밀하게 섞여있는 비밀스러움, 숨김, 비도덕적이고 불쾌한 냄새들. 책의 표현대로 야만의 냄새를 풍기는 무진의 한 청각장애인학교로 한 남자가 부임합니다.

아내의 인맥을 붙잡고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이 불쾌감 가득한 무진시 자애학원에 기간제교사로 내려온 강인호.

학교발전기금으로 작은 거 5장을 당당히 요구하는 행정실장(그것도 다른 사람이면 큰 거 한 장을 받아야 하는데 당신 아내 덕에 그 반만 받겠다는 엄청난 은혜를 내리면서 말이죠), 청각장애인 위한 학교임에도 불구하고 수화를 거의 하지 못하는 33명의 교사들, 그리고 첫날부터 느껴지는 학생들의 눈에 담긴 노골적인 노기와 분노들.

불과 한달전 한 여학생이 운동장 끝 절벽에서 추락해 사망한 사고가 있었고 어제는 어린 남학생이 달리는 기차에 치여 죽는 사고가 발생한 곳.

그 아이의 주머니에선 교장 이강석과 생활지도교사 박보현의 이름이 적힌 피묻은 쪽지가 발견됩니다.

그러나 두 사고 모두 짙은 안개로 인한 실족사로 처리되죠.

중2 담임으로 부임한 강인호와 반 아이들과의 첫 만남,

분노로 가득한 학생들 중 한 아이가 망설이다 필담으로 말합니다.

“우리는 누가 그애를 죽였는지 알고 있어요....”

그리고 퇴근길에 여자 화장실에서 들려오는 명확하지 않은 비명소리....

학교 관계자는 강인호에게 말합니다.

“우리와 얼굴 생김새는 같지만 청각장애인은 수화를 쓰는 이방인, 다른 민족”이라고요.

그러면서 거짓말도 그들 민족의 풍습이라고 덧붙입니다.

자, 이 학교에 뭔가가 있긴 한 것 같네요.

강인호. 이 사람은 이 학교에 있는 선생님들 거의가 다 그렇듯 그저 몇 달만 이곳에서 버텨내면 서울에 번듯한 학교의 교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 사람 선택을 해야겠네요.

모로는 척 외면할 것인가, 아니라면 그 상황 속으로 들어갈 것인가!

그런데 중요한 건, 상황 속으로 들어가겠다는 건 분명한 “개입”의 의지를 표명한다는 사실입니다.

스스로 결정을 했든 혹은 상황에 의해 그렇게 됐든 간에 말이죠.


자애(慈愛)학원!

학교의 이름과는 달리 이 학원의 실상은 기숙하고 있는 학생들을 철저히 자해(刺害)하고 있는 학교였습니다.

그것도 말로 표현하지 못하고 소리치지 못하는 청작장애인들을 상대로 야만적인 성추행과 성폭행이 자행되는 그런 곳이죠.

참 더럽고 추잡한 이 충격적인 이야기가 더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건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바탕으로 쓰여진 이야기라는 사실입니다.

학원의 원장 이강석, 행정실장 이강복(두 사람은 쌍둥입니다), 그리고 생활지도교사 박보현, 이 세 사람은 학교의 학생들을 초등학생 때부터 성폭행해온 인물들입니다.

청각장애가 지적장애까지 가지고 있는 아이에겐 심지어 한 번 관계할 때마다 과자를 사먹으라며 천원씩의 돈을 주기도 했죠.(완전한 형태의 매춘이죠)

심지어 어린 남자 아이도 예외는 아닙니다.

강인호와 무진시 인권운동센터 서유진은 몇몇의 사람들과 함께 자애학원을 고발하고 매스컴에 알리는 듯 본격적인 싸움을 시작합니다.

법정에 선 아이들에게서 나오는 진술들은,

하나같이 너무나 구체적이며 너무나 끔찍하기만 하죠.

누군가는 말합니다

“그렇게 점쟎고 사회적으로 좋은 일을 많이 하는 분들이 그럴 리가 없다고, 이건 누군가의 음모라고.....”

누군가의 음모?

이 표현만큼 현실성 없고 막무가내인 말도 없을 겁니다. 이 단어 자체가 그저 “소설”이죠.

그런데 이 소설같은 단어가 우리나라에서는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음로론”이라는 그럴싸한 테두리를 달고서요...

음모론까지 나왔으니 또 누군가는 눈에 불을 켜고 상대방의 해묽은 약점을 들춰내기 위해 사돈의 팔촌까지 찾아내겠군요.

“내가 널 이렇게까지 해집어 놨는데 어디까지 버티는지 한 번 보자”

이 소설 <도가니> 속엔,

지금 자행되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추잡한 일들이 전부 들어 있습니다.

불쾌하고 더럽고 추잡한 인간의 모든 행태.

단순히 장애인의 성적학대, 성폭력의 문제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그 보다 더 근본적인 인간의 야만성에 대한 이야기죠.

소유한 자의 야만성, 소유하지 못한 자의 야만성.

밟는 자의 야만성, 밟히는 자의 야만성.

숨기는 자의 야만성, 드러내려는 자의 야만성.


작가 공지영은 이 소설을 쓰면서 행복했다고 합니다.

그녀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거짓말이라고 하네요.

그렇다면 사람들이 전부 진실을 말해야 무섭지 않는 세상이 될텐데 진실이 가진 가장 큰 단점은 그게 몹시 게으르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이유로 자주 너무 늦게 도착하게 되죠.

진실을 참고 기다리던 사람들은 결국 하나씩 지쳐서 포기하게 되고 급기야는 잊는 방법을 선택하기에 이릅니다.

그들에게 “인권”을 외면했다고 손가락질 할 수는 도저히 없을 것 같습니다.

“인권”이라는 거, 어쩌면 스스로가 가진 인간의 “야만성”을 억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건 아닌지...

“학원 원장의 인권과 장애아들의 인권이 같은 줄 알았어요?”

어쩌면 우리 내면의 일부도 이 말에 분명 동의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이라면 이제 어떻게 하렵니까?

모른 척 외면하시겠습니까? 아니면 개입하시겠습니까?

당신의 선택에 따라,

이 책의 결말은 확실히 다르게 다가올 것입니다.

펄펄 끓어오르는 <도가니>가

지금 여기서 당신을 선택을 기다립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8. 12. 6. 20:27

<환각의 나비> - 박완서


환각의 나비 
 

이상하게도 전 작가 박완서가 너무 좋습니다.

국민어머니라고 불리우는 텔런트 김혜자씨 같은 느낌이라면 이해가 되실까요? 대한민국 여류소설가의 국민 어머니...(작가가 국민 어머니가 되는 날이 정말이지 현실로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얼마 전 대작가 박경리님이 타계했을 때 참 많이 아파하던 모습을 기사에서 본 적이 있는데요, 아무래도 박경리라는 대가의 남겨놓은 빈자리에 대한 의무감과 책임감이 그녀의 머릿속 일부에는 자리하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사람들은 모두 한 번쯤은 작가가 되기를 소망한다쟎아요.

“박완서”는 그런 모든 사람에게 분명 로망으로 다가 옵니다.

더불어 이 나이에 무슨 작가를... 내가 글을 쓸 수 있을까?... 하고 망설이는 사람에게 분명 그럴 수 있음을 보여준 분이기도 하니까요.

40이라는 정말 늦은 나이에 작가로 데뷔한 박완서.

그녀의 글은 그래서 처음부터 세월이 묻어나고 따뜻함이 묻어납니다.

어떤 평론가는 말하기도 합니다.

“박완서가 이룬 공적의 하나는 여성의 이야기를 '여류'의 사슬에서 구해낸 것"이라고...

전 좀 다르게 말하고 싶기도 합니다.

박완서의 글을 읽고 있으면 여성이라는 존재와, 여자라는 성의 중요성이 새삼 느껴지면서 그 여성이 갖는 책임감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참 불편한 작가기도 하죠.

그런데 불편한 내용을 그녀는 참 온화하고 따뜻하게 써내려갑니다. 그러면서도 어느 순간에 신내림 같은 몽환적인 굿판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작가라는 이름의 신비감.

그야말로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모두 겪은 그녀의 이야기는 저겐 소설이 아니라 역사로 다가옵니다.


이 책은 5편의 단편을 모아 놓은 책입니다.

그리고 읽다보면 불편함이 느껴지는 줄거리가 참 많습니다.

그런데 더 불편한 것은 그런 일들이 정말, 실제로, 버젓히 현실에서 일어났던 일이고 그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죠.

이 책의 주인공들은 모두 여성입니다.

그 여성들이 이제 입을 열어 말하기 시작하죠.

사회적인 문제와 역사적 진실에 대한 고증, 한국 전쟁과 유신 정권, 낙태와 남아선호사상으로 전락한 성 감별. 노부모에 대한 젊은이들 자식들에 대한 속내..

<그 가을의 사흘 동안>, <꿈꾸는 인큐베이터>...

수록되어 있는 5편의 단편들 모두 다 대단하지만 전 특히 이 두 편을 읽으면서 몸에 소름이 돋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이 두 편을 탈고하고 작가 본인도 한동안은 힘들어하지 않았을지...

잠깐 두 편을 소개해 드릴께요.

 

<그 가을의 사흘 동안>

왠지 말랑말랑하고 감상적인 내용일 것 같죠.

하지만 제목이 주는 느낌과는 반대로 이 단편의 내용은 점점 섬뜩해집니다.

강간과 낙태의 기억에 평생을 짓눌린 한 여의사에 대한 이야깁니다.

한국전쟁 중에 미군 병사에게 강간당한 후 낙태 수술을 받은 주인공은 1953년 봄, 서울 변두리에 산부인과를 열게 됩니다.

그 후 30여 년 동안 낙태수술 전문으로 하게 되고 그러다 그 일대에선 꽤 유명한 낙태전문 의사가 됩니다. 제법 업소를 통해 알게 된 단골들(?)도 많고.

병원 정리를 사흘 앞두고 과거를 회상하는 식으로 전개되는 이 이야기는 일종의 자학극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네요.

평생을 “죽임”의 일에 매진하던 주인공은 병원을 정리 하기 전에 단 한 번 생명을 받아보고 싶어집니다.

그게 사흘이란 남은 시간과 맞물리면서 주인공은 거의 히스테릭한 상태까지 자신을 내몰게 되죠.

평생을 '원치 않는 아기'를 죽였던 자신에 대한 철저히 자학.

그녀는 그런 자학을 통해서라도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었고 동시에 지금까지 계속됐던 자신의 행동을 용서받고 구원받고 싶었겠죠.

사람이란 참 가혹한 존재고 무시무시한 존재입니다.

인간이 또 다른 인간의 형태를 잡아먹는 모습이라니...

하지만 이런 자학의 책임감마저 지금의 시대에는 차라리 선량하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지금은 인간의 형태를 잡아 먹는 게 아니라 인간 그 자체를 잡아먹는 일도 비일비재하니까요.


<꿈꾸는 인큐베이터>

이 단편은 그릇된 남아 선호사상과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진실 같은 통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장남과 결혼해 딸만 둘을 내리 낳은 주인공이 섯째 아이를 임신하게 됩니다.

시어머니와 시누이의 권유, 그리고 자기 자신의 암묵적인 동의로 주인공은 양수검사를 받게 됩니다.

“세상에, 이렇게 편한 방법도 다 있네...”

두 사람의 감동에 찬 응원(?)에 검사를 받은 그녀는 얼마 후, 배 안의 태아가 딸임을 알게 됩니다.

또 다시 가족의 응원(?)을 받으며 주인공은 생명을 잃습니다.

그 뒤  이어진 임신... 위의 과정 반복을 통해 이번 태아에게  “태어남”이 허락됩니다.

이렇게 아들을 낳게 된 그녀에겐 이제 "후천적인 남성 성기"가 생기게 된 셈이죠.

그녀는 변합니다. 그동안 공손한 며느리, 착한 올케였던 그녀는 쌀쌀하고 무도한 여자로 돌변해 자신의 후천적 남성 성기를 가차 없이 가족들에게 휘두르죠.

“난 아들 있는 여자다~~~~!!!”

모든 어머니는 아들을 통해 당당해질까요?

그냥 그 시대엔 그랬다고 치부해버리기엔 왠지 씁쓸합니다.

이 여자...

파괴가 되든, 재건이 되든 어떻게 되겠죠?

이 여자가 어떤 모습이길 바라시나요?


이런 내용들...

참 불편하시죠?

하지만 정말 더 불편해야 할 건 현실도 아직 그렇다는 사실입니다.

지금도 누군가의 모체는 더 이상 태아의 유토피아가 아니라 인큐베이터에 불과하다는 사실.

그런데 이 인큐베이터는 생명을 살려야 하는 자신의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고 완성되지 않는 생명을 척척 내뺕어 버립니다.

꿈꾸는 인큐베이터로 가득한 세상.

어쩐지 인류멸망보다 더 큰 재앙처럼 느껴집니다.


<엄마의 말뚝2>,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환각의 나비>

나머지 3편들도 어쩌면 읽는 이를 다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그 불편함 속에 뭔가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불편함의 미학”이라고 할까요???

현실이 불편하지 않다면 그만큼 자신이 치열하게 살고 있지 않다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좀 다른 형태의 불편함 만나는 거...

내 앞의 현실로 만나는 것 보다는 그래도 다행이다 싶습니다.

그런데 그렇더라구요.

불편함을 내내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거...

일부러 찾아 만나보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어쩐지...

물귀신 같은가요?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