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5. 12. 18. 08:32

정확히 말하면 한 권은 읽은 책이고

한 권은 지금 읽고 있는 책이다.

그런 책이 있다.

읽을때 음악이 함께 해야만 하는 책이 있고

조용한 연주곡조차도 방해가 되는 책이 있다.

 

 

일본 메이지대학 교수 사이토 다카시의 <혼자 있는 시간의 힘>은

오랫동안 우리나라 베스트셀러에 올라있는 책이다.

베스트셀러를 신뢰하는 편도, 무작정 외면하는 편도 아니라서 읽어봤는데 개인적으론 특별함이 없었다.

더 정직하게 말하면 이 책이 왜 우리나라에 베스트셀러로 올라와 있는지 의문이다.

지금껏 나왔던 책들과 다른 내용이 없고

심지어는 일본인들만 알 법한 자국 문학작품의 인용은 당황스럽다.

어쩌면 내가 이미 혼자 있는 시간의 힘을 너무 잘알고 있어서인지도 모르겠지만

잠깐의 특별함도 느껴지 못했다.

대신 지금 읽고 있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는 저절로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집에서, 지하철에서, 일하면서까지 틈틈이 읽고 있는데

그 잠깐의 시간을 풍요롭고 가치있게 만든다.

김훈에게서 느끼는 감정이 나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해 마치 내 일기장을 들춰보는것 같았다.

그리고 번역가 김화영의 <시간의 파도로 지은 성>은 꼭 읽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만들었다.

지금 반 정도 읽었는데 다 읽고 나면 첫장으로 다시 되돌아갈 것 같다.

심지어 이 책에 소개된 책들을 읽고 싶어서 지금 안달이 났다.

이런 류의 책.

정말이지 너무 좋다.

무뎌지는 머리와 가슴에 도끼처럼 박히는 책.

쪼개지고 벌어져 마침내 밑둥이 넘어가도

카프카의 말은 옳았다.

책은 도끼다!

 

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우리가 그 책을 읽는 거지?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되는 거야 

                                                                                                - 카프카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10. 27. 05:56
제목만 봤을 때는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헌사같은 책이라고 생각했다.
글을 쓴 저자는 현재 메이지 대학교 문화부 교수 사이토 다카시.
소개글에 말의 권위자라고 나와 있는데 솔직히 어떤 의미의 표현인지는 잘 모르겠다.
좀 거하게 말하자면,
하루키의 소설 뿐만 아니라 일본의 현대문학 속에 등장하는
사랑에 대한 느낌과 그 언어적 표현에 대한 통찰이다.
참 묘한 건 객관과 주관 그 중간의 어디쯤에서 적당히 감성적으로 쓰여진 글이다.
살짝 시니컬하기도 하고 관조적이기도 하면서 때론 열정적이다.
사랑한다면, 사랑하고 싶다면, 사랑했다면,
일본 소설 속 사랑 언어에 주목하라...
딱히 그러고 싶진 않았는데 읽다보면 그 표현들에 주목하게 된다. 이상하지?



part 1 쿨한 사랑 -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년의 핀볼>

part 2 나쁜 사랑
<금각사> 미시마 유키오
<산시로> 나츠메 소오세키
<겐지 이야기> 무라사키 시키부

part 3 보통 사랑
<지금 만나러 갑니다> 이치카와 다쿠지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카타야마 쿄이치
<선생님의 가방> 가와카미 히로미
<전차남> 나카노 히토리


기억하기 딱 좋은 편수인 10편의 일본 소설이 나온다.
물론 이야기의 줄거리를 무시할 순 없지만 
여기선 각각의 소설에 나오는 어떤 부분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고 소박하게 쓰고 있다.
나는 이 책들을 읽으면서도 이런 부분들을 놓쳤었구나 새삼 성긴 책읽기에 웃음이 나기도 했다.
때론 이런 책들이 묘하게 가슴에 담길 때가 있다.
고민하지 않고 소풍처럼 읽을 수 있는 적당히 평화롭고 한가한 책이...



가끔 생각하게 된다.
"사랑"이라는 건 말일까? 행동일까? 감정일까?
이 모든 것이라고 대답하겠지만 어쩐지 그 시작은 말(고백)이 아닐까?
표현되어지든, 표현되어지지 못하든.

그리고 나는 사랑을 하고 있었다.
그 사랑은 몹시 복잡한 곳으로 나를 끌어들이고 있었다.
주위의 풍경에 마음을 쓸 여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고백을 세상을 다르게 보고, 다르게 느끼게 한다.
극도의 무관심이든, 극도의 관심이든
고백의 순간 이제 더이상 처음과 같을 수는 없게 되는 것.

나의 외로움이 너의 외로움이 되는 것,
망연히 벽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흘려야 했던 것, 왜 너를 사랑했냐고,
왜 나를 사랑했냐고 따지고 싶어도 따질 수 없는 것,
한 번이라도 더 보고 헤어질 것이라고 후회해도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는 것,
그것을 입 밖에 내밀 수 없었던 사랑이라는 것.

너와 나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
그래서 그 경계의 끝에서 비록 누군가 너덜거리게 된데도
사랑이 두려운 남자도 여자도
모두 운명같은 사랑을 꿈꾼다.
운,명.같.은.사.랑.
얼마나 대책없는 단어끼리의 조합인가!

하도 사랑, 사랑하기에
그것이 뭐가 그렇게 대단하기에 난리냐 싶어
사랑을 해봤지만 그 감정 별 것 아니던데,
라고 말하면서도 사랑 없이 못 사는 것이 사람인지라,
누군가 사랑, 그것은 말이야, 서두를 떼기만 해도 또다시 두근거린다.


아닌 척 하면서도 그만,
이 문장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사랑, 참...
또 다시 모질구나... 싶어서...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8. 23. 05:38
세계사의 흐름을 다섯 가지 코드로 분석한 역사서다
당연히 역사학자가 쓴 책일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다.
이 글을 쓴 사이토 다카시는 일본 메이지대학 문학부 교수다.
그렇다면 팩션류의 글일까?
이번에도 아니다.
아주 재미있고 그리고 쉽게 이해되는 정말 착한(?) 역사서다.



욕망 (Desire)
1. 세계를 양분하는 근대의 원동력 : 커피와 홍차
2. 세계사를 달리게 하는 양대 바퀴 : 금과 철
3. 욕망이 사람을 움직인다 : 브랜드와 도시

모더니즘 (Modernism)
1. 근대화의 힘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2. 자본주의는 기독교로부터 생겨났다.
3. 경시된 근대의 '신체'

제국주의 (Imperialism)
1. 야망이 만들어낸 '제국'이라는 괴물
2. 성공하는 제국. 실패하는 제국
3. 세습은 제국 붕괴의 첫걸음

몬스터 (Monsters)
1. 현대세계를 지배하는 자본주의
2. 20세기 최대의 실험, 사회주의
3. 위기가 만들어낸 파시즘이라는 괴물

종교 (Religions)
1. 세계사를 움직이는 일신교 3형제 :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2. 암흑이 아니었다! - 재인식되는 중세
3. 이슬람에 대해 우리가 잘못 알고 있던 것들



책의 마지막 부분에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 강사 우석훈의 해제도 흥미롭다.
이 책을 두고 "백과사전적 지식의 귀환"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아주 딱 들어맞는 표현이다.
한 분야에 대해서 깊게 파고 들어가는 전문가적인 지식이 아니라
전반적인 흐름을 쉽게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는 글이다.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게 해준다는 의미다.
흩어져 있는 퍼즐들이 하나로 맞춰지는 재미랄까?
5개의 코드를 다시 세 개씩 세분화해서 설명하는 방식도 간소하니 좋다.
때로는 비교하는 방식으로,
때로는 역사를 풀어서 이해시키는 방식으로.
또 때로는 자신의 생각을 꽤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으로 책을 엮어간다.
큰 틀 안에 나름대로 변화가 많아 읽는 동안에 지루할 틈이 없다.
"시선을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이 책도 확실히 어느 정도는 지배적이리고 할 수 있겠다.
사회주의, 자본주의, 파시즘 등 자칫 딱딱하고 정치적일 수 있는 부분까지도
재미있고 부드럽게 설명한다.
몰랐던 이슬람 종교가 가지는 "느슨함"을 알게 됐고
종교의 이면에 숨어있는 끝나지 않는 제국주의 욕망을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유일신을 믿는, 사랑을 최우선으로 손꼽는 일신교 3형제(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는
왜 늘 다툼과 분쟁이 끊이지 않을까?
한번쯤 궁금해했던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해답을 주기도 한다.
반대를 위한 반대 "파시즘"의 아이러니와
노동자를 해방한다는 사회주의가 오히려 노동자를 국가의 노예로 만드는 현실,
붕괴된 소련의 모습에 대한 설명도 독자의 이해를 쉽게 끌어낸다.
색다른 시각을 갖게 하는 놀라운 책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누구라도 한 번즘 읽어보면 괜찮을 책 (^^)
상식을 조금 넓혀준다고나 할까?
혹 전문가를 꿈꾼다면 나머지는 자신이 할 몫이다.
사실 이만큼만이라도 알고 있다는 게 어딘가?
상식이 무너진 시대에... (?)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