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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0.22 <책벌레> - 클라스 후이징 2
  2. 2009.07.06 달동네 책거리 53 : <혀> 4
읽고 끄적 끄적...2009. 10. 22. 05:57
오랫만에 황홀하게 지적이며, 탐욕스럽게 흥미롭고
문학적으로 탐미적인 책을 만나다.
아직도 손과 머리 속에 끈적거리며 달라붙어 있는
치명적이게 관능적인 소설
클라스 후이징의 <책벌레>



책 속에서 길을 읽고 미아가 되지 않기 위해서
책장을 펼친 사람은 극도로 조심해야만 한다.
잔잔한 긴장감이 온 몸의 숨통을 서서히 조이는 그런 느낌.

요한 게오르크 티니우스 그리고 팔크 라인홀트.
책을 읽기 시작했다면 반드시
공평하게 동행해주어야만 하는 두 사람!
단 한명이라도 손을 놓치거나 감정적으로 치우치게 된면
아마 미궁 속으로 깊게 빠져버릴지도 모른다.
빠져나올 수 있다고 믿는가?
그렇다면 그건 단지 당신만의 착각일 뿐이다.



요한 게오르크 티니우스!
"책을 펼칠 때면 언제나 그의 주변세계는 베일에 가려졌다"
그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신시키는 하나의 힘이었던 "독서"
책에 대한 지독하고 집요한 애착,
중독에 가까운 도서수집벽을 가진 목사.
그는 급기야 책을 소유하기 위해 목사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몇 번의 살인을 저지른다.
아무런 죄의식 없이...
(심지어 그의 장모까지도... 아주 태연하고 자연스러워 심지어 경건함까지 느껴진다.)
더 많은 책을 사기 위한, 더 많은 책을 소유하기 위한 살인.
그의 목사관 윗층은 책의 천국으로 지상 위에 재림한다.



다른  한 사람, 팔크 라인홀트!
우연히 고서점에서 구입한 티니우스의 전기를 읽은 그는  
의도적으로 그리고 자발적으로
티니우스의 복제품으로  변한다.
(물론 그는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요소까지 모방하지는 못하지만, 거의 치명적인 상태로까지는 만든다.)
티니우스가 쓴 책 5권을 전부 소유하게 된 팔크 라인홀트.
그는 티니우스의 책들을 텍스트화시켜 열개의 글의 양탄자를 탄생시킨다.
기호학적이며, 비밀스럽기까지 한 텍스트들.
방 안에 홀로 칩거한 채 오로지 텍스트에만 빠져드는 라인홀트.
그 모습은 한창 열렬한 연애에 빠진 사람의 모습과 정확히 일치한다.
전희, 사랑, 애무, 쾌락과 욕정, 그 뒤에 남은 허무와 극도의 피로감.
그는 티니우스가 남긴 텍스트 전부를 컴퓨터 안에서 분석하면서
또 다른 텍스트들를 출산한다.
드디어 열번째 출산으로 독서의 비밀을 알아낸 라인홀트.
그리고 그는 비밀을 혼자만 간직하고
자신이 만든 열번째 양탄자를 타고 그곳을 떠난다.
방 안에 홀로 남겨진 컴퓨터가 켜지면
커서와 같은 모습의 그가 화면 가장자리 저쪽으로 서서히 사리진다.



황당한 소설이라고 느껴질까?
그러나 이 책을 다 마셔버리고 나면(책의 표현데로)
분명 충격적이라 입을 다물지 못하게 되리라.
활자 증후군들의 식욕을 제대로 자극하는 책.
거북한 소화불량에 빠지더라도
탐욕스럽게 남김없이 먹어버리고 싶은 그런 책이다.



누군가는 신성모독에 대한 이야기할지도 모르겠다.
예수를 떠올리게 하는 티니우스의 행적들.
그리고 12제자를 떠올리게 하는 라인홀트.
단지 신비주의 소설이라고 단정짓지는 말기를...
그러기엔 이 책이 가진 것들이 너무 깊고 넓다.

후후훅 이 책을 마셔라!
죽음을 이기는 독서의 환희와 전율.
당신의 최후의 책벌레가 된다.


책을 읽고 나면 이 말에 적적으로 공감하면서
심지어 두 사람의 가장 가까운 동행자가 되기를 자처하게 될지도... 



아주 흥미롭고 재미있는 한 대목.
가만 보고 있으면 이 공통점들은 정말로 적절하다.

* 책과 창녀(정부)의 공통점
1. 책과 창녀는 둘 다 침대로 데려갈 수 있다.
2. 책과 창녀는 시간을 뒤바꾸어놓는다. 그들은 낮을 밤처럼, 밤을 낮처럼 만든다.
3. 책과 창녀에게는 일분일초가 귀중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알지 못한다.
   그들과 좀더 가까워질 때에야 그들에게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가 그들 안에 잠겨드는 동안 그들은 시간을 재고 있다.
4. 책과 창녀는 예전부터 각각 불행한 사랑을 하고 있다.
5. 책과 창녀 - 그들에게는 빌붙어 살면서 괴롭히는 남자들이 있다. 책에게는 비평가가 있다.
6. 책과 창녀는 공공건물에서 산다 - 특히 대학생에게 그렇다.
7. 책과 창녀 - 그들이 맞이한 종말을 본 사람은 드물다. 그들은 퇴락하기 전에 사라지는 경향이 있다.
8. 책과 창녀는 어떻게 해서 지금처럼 되었는지 얘기하길 좋아하고, 그럴 때면 거짓말도 잘한다.
   그들 스스로 그 거짓말을 믿어버릴 때도 적지 않다.
   여러 해 동안 '사랑하는 마음에서' 모든 것에 열중하다가 어느날부터인가 비대히진 몸뚱이를 안고 거리를 나선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무엇인가 알아보려고' 그 주변을 돌아보기 위한 것이라는 식이다.
9. 책과 창녀는 손님을 끌 때 등을 내보이길 좋아한다.
10. 책과 창녀는 자식을 많이 낳는다.
11. 책과 창녀 - '허구한 날 기도하는 늙은 어멈도 젊었을 땐 창녀'였다.
    오늘날 청소년들의 필독서 중에서 한때 평판이 나빴던 책들이 얼마나 많은가!
12. 책과 창녀는 꼭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드잡고 싸운다.
13. 책과 창녀 - 책의 각주는 창녀의 양말 속에 감추어진 지폐와 같다.



"Habent sua fata libelli"
책들은 저마다 운명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독자가 어떻게 읽는가에 따라서 책들은 운명을 달라진다.
건전한 애서벽과 병적인 장서벽!
이제 내가 선택한 차롄가?
나 역시나 내가 만든 양탄자 속으로
하나의 텍스트가 되어 실종되고 싶다.

모든 독서의 끝은 결국 
지독한 그리고 완벽한
"실종"으로의 희망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7. 6. 06:25
<혀> - 조경란

혀
 

탐욕적인 소설. 그리고 유혹적이며 관능적인 소설.

조경란의 소설 <혀>는 식욕이라는 본능의 식탁 위에 또 다른 본능인 성욕의 재료를 푸짐하게(?) 그리고 노골적으로 차려놓습니다.

화들짝!

너무 정직하고, 그리고 적나라해서 때론 민망하기까지 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읽음직한 구미가 솔솔 당깁니다.

거식과 폭식, 그리고 떠나는 사랑과 시작되는 사랑, 이 모든 관계들....

누군가에게겐 세상의 어떤 맛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맛이 있듯이 어떤 사람으로도 도저히 대신할 수 없는 사람이 있기도 합니다.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됩니다.


13년 경력의 33살 요리사 정지원,

그녀는 “WON'S KITCHEN'이라는 자신만의 쿠킹 클래스를 운영하기도 했던, 꽤나 감각적이고 탐미적인 요리사였죠.

그런 지원과 7년 간 사귀던 건축가 석주가 그녀를 떠납니다.

그것도 그녀의 쿠킹 클래스에서 요리를 배우던 젊고 도발적인 모델 출신 이세연이라는 여자와 새로운 사랑에 빠져서 말이죠.

네, 이야기 자체는 참 진부한 치정관련 연예소설이죠.

그런데 그 표현이라는 게...

섬뜩할 만큼 사실적이고 노골적입니다.

함께 같은 꿈을 꿨던 그 사람을 잃은 그녀는 다시 예전에 일했던 “노베”로 돌아가 다시 요리를 합니다.

그곳에서 그녀가 만드는 하나하나의 요리 속에는 그녀 자신의 모든 심리상태가 함께 녹아들어갑니다.

그녀는 식욕에 대한 욕구마저 점점 사라지죠.

먹는 것에 대한 거부,

그것은 곧 관계에 대한 거부이며 더 심각해진다면 모든 인간관계에 대한 극단적인 파괴까지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식욕을 가진 자는 적어도 살아갈 의욕을 가진 자라고 말 할 수 있으니까요...

입으로 향하는 욕망을 스스로 거세시켜버린 사람.

그리고 결국은 사랑하는 사람이 새롭게 사랑하게 된 그녀의 혀를 잘라(이것도 일종의 거세) 요리를 한다는 그로테스크한 결말.

심지어 그렇게 요리된 혀는 아무것도 모르는 옛 연인의 마지막 만찬이 되어 그의 입 속에 한점한점 집어 삼켜집니다.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황홀한 맛을 남기면서요...


일류 요리사에겐 그들만의 묵시론적인 비밀이 있다고 하네요.

고객의 식욕을 채워주고 미각을 즐겁게 해주되 결코 만족시켜서는 안 된다는 묵시록.

한번 만족을 하게 되면 그 다음엔 더 큰 것을 원하게 되는 게 사람의 마음이기에 다음에 대한 기대를 반드시 남겨둬야 한다고요.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 100% 만족이 찾아온다면 결국은 금이 간 창유리를 통해 세상을 보게 되는 순간이 시작됩니다.

그리다 누군가 한 사람이 다른 방향을 바라보게 되면 남은 한 사람은 비참하고 함구적이고 잔인해지게 되죠.

그리고 남는 건 허기처럼 찾아오는 “분노” 뿐이죠.

그럴 때 입은 두 가지 중 한가지를 선택합니다.

폭식 혹은 거식

사람에게 사랑과 굶주림, 이 두 가지가 충족되지 않았을 때 나타나게 되는 극단적인 자기 파괴의 방법!

한쪽은 입 안에 몰아넣음으로 인해 속을 채워 마침내 터뜨리겠다는 폭발의 자기 파괴.

한쪽은 입을 닫음으로 인해 내부를 태우겠다는 발화의 자기 파괴.

둘 다 막상막하의 막장 스토리이긴 하지만,

그것보다 더 극단적인 건 주인공 지원처럼 그 분노를 타인에게 쏟아내는 것일 겁니다.

이별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어쩌면 누구와도 사랑을 해선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엄마 뱃속의 태아에게서 가장 먼저 생기는 기관이 바로 “입”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사람이 가장 먼저 느끼게 되는 맛은 “쓴맛”이구요.

그러고 보니 사람이 나이를 먹어 간다는 건, 입 속으로 쓴맛의 기억을 자꾸 더하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입이 갖는 사회성과 책임감!

어쩐지 좀 입이 천근 무게로 다가오네요.

온순해보여도 입 속엔 칼과 맞먹는 무기가 있다고 합니다.

치아와 혀.

당신이 입이 기억하고 있는 맛은 무엇입니까?

문득 그게 궁금해지네요.... ^^

 

* 이 책의 내용이 파격적이고 충격적인만큼 문단에서도 큰 파란을 일으킨 문제작입니다.

  다름 아닌 “표절” 시비로요.

  현재까지 명확한 결론은 나지 않은 상태입니다.

  논란의 핵은 주이란이란 신인 작가가 조경란의 <혀>가 자신의 신춘문예 응모작인 동명의  단편소설 <혀>
  를 표절했다는 글을 올리면서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그 단편소설의 심사위원 중 한 명이 바로 작가 조경란이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그 소설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심사위원의 모든 소설을 다 심사하는 건 아니라
  면서요....)

  왠지 주이란의 단편소설 <혀>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표절논란에 시비를 논할 깜냥은 되지 못하지만 어쩐지 흥미진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디까지나 문학적인 궁금증이죠.

  어설픈 활자증후군, 호모 북커스의 호기심 발동이긴 합니다만... ^^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