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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19 달동네 책거리 41 : <책 읽어주는 남자>
  2. 2009.03.01 달동네 책거리 32 : <쌍둥이별>
달동네 책거리2009. 4. 19. 23:00
 
<책 읽어주는 남자 > - 베른하르트 슐링크


오늘도 역시 특별한 책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자극적이고, 관능적이며 모호하고, 몽환적인 책, 심지어 무기력하기까지 한 책.
먼저, 작가 베른하르트 슐링크
법대 교수이자 판사이면서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네요.
개인적으로 이 작가의 이력이 참 재미있습니다.
판사가 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라....
논리적이고 너무나 현실적인 직업의 판사, 그리고 비현실과 상상 세계의 탐험자인 작가... (우리나라에도 어느 날 이런 조합이 한 번 나타나주면 참 좋겠습니다)
올 2월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가 바로 이 책을 가지고 만든 영화죠.
지금 시중에 나와 있는 책은 책 표지가 “케이트 윈슬렛”의 모습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예전에 출판된 책의 표지는 지금과는 많이 다릅니다.
빨간 배경 한 켠에 그림이 보이네요. 한 남자의 손. 여자의 벗은 몸에 손을 올리고 있는 성장한 남자의 손. 책의 뒷면으로 가면 그림 전체를 볼 수 있습니다.
꽤 오래전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표지가 좀 더 강렬한 빨간색이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림은... 약간 카툰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나쁘지 않습니다. 책의 내용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여서요.
그 손은,
그러니까 한 여자를 읽고 있는 중입니다.
이제 막 그녀의 첫 페이지를 넘기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왠지 떨리네요. 마치 주인공의 간절함처럼...


한 남자가 있습니다.
세 번, 이 남자는 “한나”라는 이름의 한 여자와 일생동안 세 번 관계됩니다. 그것도 아주 깊게 그리고 은밀하게 마지막엔 지배적으로 말이죠.
첫 번째는 15살 어린 소년이었을 때였습니다.
학교에서 귀가하는 길에 소년은 느닷없는 구토 증상을 경험하죠. (이 부분, 참 재미있습니다. 예전 책엔 “황달”이라는 병명으로 나오는데 지금 책은 “간염”이라고 나오네요. 해석의 오류였을까요?)
오물로 더럽혀진 소년을 데리고 들어가 깨끗이 씻겨 집까지 데려다 준 사람이 바로 36살의 그녀, “한나 슈미츠” 입니다.
도덕성에 대한 비판의 여지가 지금도 여전히 뜨거운 감자처럼 이야기되고 있지만,
어쨌든 15살 소년은 36살 한나를 통해 육체적인 성에 눈 뜨게 됩니다.
결과는 뻔하죠, 꼬마(그녀가 그를 그렇게 부릅니다)는 도무지 그녀 곁을 떠나지 못합니다. 급기야 학교 공부도 소홀하게 되죠.
그런 소년에게 한나는 말합니다.
“공부를 하지 않으려면 다시는 찾아오지 마!”...
그들에겐 어떤 의식 같은 절차가 있습니다.
책 읽어주기, 샤워, 사랑 나누기, 같이 누워 있기
그녀는 항상 그에게 책을 읽어줄 것을 요구합니다. 모든 의식의 시작은 “책 읽어주기” 거기에서부터 시작되는 셈이죠.
수영장에서 친구들과 함께 있는 소년을 본 그녀는 다음날, 사라져 버립니다. 살고 있던 집을 비우고 승진시켜주겠다는 전차 회사도 그만둔 체 갑자기 사라집니다.
그러나 그녀의 실루엣은 그대로 소년에게 남겨집니다.

다시 그녀를 보게 된 건,
나치 강제 수용소와 관련된 법정에서였죠.
그녀는 가스실행 인원 선별 작업을 수행하던 여자감시원 중 한명으로 기소되어 있습니다.
다른 모든 피고인들이 문서와 보고서는 한나가 썼다고 주장합니다. 그녀는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심지어 스스로 시인하기까지 합니다. 결국 종신형을 선고받죠.
그러나 그는 알게 됩니다.
그녀가 글을 쓸 줄도, 읽을 줄도 모른다는 걸...
그는 그 상황을 바꾸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기로 결정합니다.
자, 이제 그도 더 이상 자유로울 순 없게 된 셈이네요.
법정에서 한나는 판사에게 되묻습니다.
“당신 같으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라고...
어쩌면 그는 판사를 향한 질문을 자신에게 돌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나에게 향하는 손가락질에 개입하지 않고 그 손가락질을 자신에게 돌림으로써 스스로 수치심의 고통을 선택한 것처럼 말이죠.

세 번째 그녀와의 대면,
그는 지난 10년간 한나에게 책을 녹음해서 보냈습니다. 그러나 단 한번도 편지를 보내진 않았죠. 심지어 그녀가 편지를 보냈을 때조차도 그는 답장을 쓰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교도소장이 그에게 연락을 합니다.
그녀의 사면을 알리면서 18년 동안 갇혀 지낸 한나의 사회적응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하죠.
한나에게 우편물을 보낸 유일한 사람이 바로 그였으까요.
마침내 사면되는 날 아침, 한나는 스스로 목을 매 자살을 합니다. 그녀가 남긴 유품들을 정리하던 그는 오래된 신문 기사를 발견합니다.
자신의 고등학교 졸업 사진이 실린 신문 기사를 말이죠.
교도소장이 말합니다.
“그녀는 당신과 함께 글 읽기를 배웠어요....”

문맹은 미성년 상태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한나는 그를 통해 읽고 쓰기를 배움으로써 드디어 미성년에서 성년으로 성장한 셈이죠.
그가 한나를 통해 비로소 성년이 된 것처럼...
그렇다면 이 책,
사랑에 대한 책일까요?
전 사랑 보다는 지독한 그리움에 대한 책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한 사람의 일생을 관통한 강렬한 그리움. 그 날카로운 대한 기록이라구요.
때론, 누군가에겐 패배가 승리가 될 때가 있습니다.
평생 한나의 실루엣에 휘감겨있던 그.
이제 그는 고향에 돌아온 셈이네요.
약간의 위장도 이젠 필요하지 않을 테죠. 완전히 자신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자유를 손에 쥐었으니까요. 그녀의 자유 그리고 그의 자유 모두를 말입니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을 뿐만 아니라 그녀를 선택했다”
그의 고백입니다.
이쯤 되면, 당신의 표정 또한 궁금해지네요....


*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영화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는, 케이트 윈슬렛에게 2009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의 영예를 안겨줬습니다.

그런데 이 배역에 많은 사연이 있었다는 사실 아세요?

원작자는 처음부터 케이트를 주연으로 원했는데 당시 한창 촬영중인 영화가 있어 그녀 스스로 캐스팅을 고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스티븐 달드리 감독과 <디 아더스>에서 함께 작업했던 니콜 키드먼에게 그 역이 돌아갔고 촬영이 시작됐다고 하네요. 그러나 그녀의 임신으로 촬영은 중단되고 말죠.

그 사이 전작의 촬영을 다 마치고 쉬고 있던 케이트 윈슬렛에게 다시 한나 역이 돌아가게 된 거라고 합니다. 결국 그녀는 이 역으로 아카데미의 꽃이 됐구요.

소년을 연기한 데이비드 크로스 역시도 사연이 있네요.

촬영 시작 당시 그는 미성년자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작진들은 영화가 공개되었을 때 닥칠 후폭풍을 염려해서(의외로 미국이란 나라 보수적이쟎아요...) 영화에 등장하는 베드신은 그의 18세 생일에 급히 촬영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영화 시사회 후 몇몇 장면들에 대해 윤리적 비난을 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원작을 보면, 처음엔 강한 거부감이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끝까지 다 읽고 나면,

처음 생각과는 분명 달라져 있을 거예요.

궁금하지 않으세요?

대체 어떤 내용이 기다리고 있길래 달라지게 되는지.....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3. 1. 22:45
 <쌍둥이별> - 조디 피콜트


 쌍둥이별


자, 이제 상상을 한번 해보겠습니다. 그것도 아주 진지하고 절실하게...

당신은 여자고, 엄마고 그리고 전직 변호사였습니다.

소방관인 남편과 개구쟁이 아들, 인형같은 딸을 가진 당신은 일보다 가정이 더 소중하기에 변호사를 미련 없이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되어 있죠(그리고 그 결정에 결코 후회한 적 없이 살고 있습니다)

딸이 두 살이 되던 어느 날,

멍이 든 딸을 데리고 병원에 간 당신은 믿어지지 않는 말을 듣게 되죠.

당신의 사랑스런 딸이 전골수구백혈병이라는 희귀 혈액암에 걸렸다는 사실을요. 이제 막 두 살이 된 당신의 딸에게 지금 의사는 5년여의 시한부 인생을 선고합니다.

자, 이제 당신은 무얼 하시겠습니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야기의 발단은 이렇습니다.

어쩌면 드라마에 이에 “또 백혈병” 타령이냐고 이마를 찌푸리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 책은 그렇게 말하기엔 너무 엄청난 사실을 품고 있습니다.

현재의 생명과학의 성과와 그 진실의 이면에 대한 고발이기도하죠.

과거와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발전한 현재의 의료과학과 그리고 인간 생명 윤리에 대한 권리가 지금 저울의 양 끝에 서있습니다.

......유전자 조작에 의한 인간 복제......

엄마는 딸을 살리기 위해 전문의를 찾아가 완벽한 유전자 일치자가 될 배아(기증자)를 뽑아 임신을 합니다.

드디어 가족의 세 번째 아이가 태어나죠.

여자(엄마)는 스스로 고백합니다.

“내가 이 앨 계획한 건 이 아이의 언니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야”라고...

이제 이 목적에 합당한 딸, 안나의 삶이 시작됩니다.

태어나자마자 재대혈을 시작으로 언니 케이트가 재발했을 때, 다섯 살 어린 안나는 림프구를 세 번이나 뽑아 기증해야 했습니다. 림프구가 소용이 없어지면 이식을 위해 골수를 뽑아야 했고, 케이트가 감염이 됐을 땐 과립구를 기증해야 했으며, 또 다시 재발했을 땐 말초혈액 줄기세포를 기증해야 했습니다.

몇년간 호전의 기미도 보였지만 가족의 바람과는 달리 케이트의 몸 기관들이 하나하나 망가지기 시작합니다.

이제 13살이 된 안나는 언니에게 신장을 기증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안나는 말합니다.

“언니에게 기증할 때마다 난 아파도 참아야했어. 몸에 주사를 꽂은 채 골수가 뽑히는 걸 그저 바라만 봐야 했지. 멍이 들고 뼈가 욱신거려도 어쩔 수 없었어. 내 몸속 줄기세포를 더 많이 발화시키는 주사를 맞을 때도 입 다물고 있어야 했지...... 난 기니피그가 되는 게 지긋지긋해. 내 기분이 어떤지 아무도 묻지 않는 게 지긋지긋해...”

안나는 급기야 부모를 상대로 의료 해방 청구소송을 하게 됩니다. 자기 몸의 권리를 위해 부모를 고소하게 된거죠.

상대편 변호사는 엄마!...

........이쯤 되면 이 가족....

해체를 넘어서 파괴가 되어 간다고 생각되시겠죠!

하지만 만약 당신이라면,

이 상황 속의 엄마가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시겠어요????


이야기는 한 단락씩 서로 다른 화자에 의해 서술되고 있습니다.

엄마, 아빠, 안나, 케이트, 제시(아들), 변호사, 법정후견인...

그래서 어쩌면 이 모든 사람들의 말에 다 공감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엔 읽을수록 나도 모르게 화가 났습니다.

아무리 아픈 아이를 살리고 싶은 마음이 강하다 해도 자신이 낳은 또 다른 아이에게(철저한 계획으로 만들어진 자식이라 해도) 무조건적이고 계속적인 희생을 요구해도 되는 걸까?

자식을 위한 최선이란 명목으로 부모가 하는 결정이 자식들 중 한 아이만 위한 일이라면 그게 정말 옳은 결정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마도 엄마에게 저 역시도 단단히 화가 났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돌덩이 밑에 깔린 희생자 안나가 너무 안타까워 가슴이 답답했던 건지도...

그러나 책을 읽어갈수록,

엄마를 더 이상 비난하지 못하게 되는 나 자신을 만나게 됩니다.

엄마의 선택과 결정이 옳지 않다고 말하기가 점점 힘겨워 집니다.

그리고 혼돈에 빠지게 되죠.

정말 뭐가 옳은 거고, 누가 정당한지가....


누군가는 고작 13살 아이가 어떻게 변호사를 만나 소송을 걸 수 있느냐며 아이에 대한 “조숙”에 대해 말하고 싶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야기 속의 안나라면 그럴 수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안나는 누구보다도 언니 케이트를 사랑하고 좋아합니다.

언니의 치료로 인해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하지 못하는 안나에게 언니는 가족이면서 동시에 가장 친한 친구이기도 하니까요.

그런 안나가 어떻게 언니에게 “이제 그만 하겠다!!!”고 외칠 수 있었을까요?

여러 차례 주저하기도, 후회하기도 하면서도 안나는 결코 그 생각을 바꾸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고백하죠.

“내 속에는 언제나 언니가 살아 있기를 바라는 내가 있을 뿐 아니라 때로는 자유롭기를 바라는 무서운 나도 있다. 나는 언니가 살아 있기를 원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언니에게서 헤어나기를 원한다. 언니는 어른이 되지 못한다 해도 나는 어른이 되어 살고 싶다”

그런 이유로 언니의 죽음은 안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일이자, 또한 가장 좋은 일이 되기도 하죠.

이런 말을 듣는다면 이제 안나가 섬뜩하게 느껴질 차롄가요?

어린 13살 안나가 이런 말을 하면서까지 소송을 계속 이끌어 나가는 이유는 바로 다름 아닌 “언니” 케이트의 소망이 그 원동력입니다.

케이트는 안나에게 말합니다.

“더 이상 괴물로 살고 싶지 않아, 이제 그만 가고 싶어...”

그리고 점점 망가져 가는 신장으로 인해 중환자실에서 누워 있는 케이트를 몰래 찾아간 안나는 언니에게 이런 말을 듣습니다.

“고맙다!”고...

(울컥, 안나와 케이트 때문에 마음이 아립니다...)


“쌍둥이별”

밤하늘을 보면 다른 별들보다 유독 더 밝아 보이는 별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 별들이 바로 쌍둥이별이라네요. 두 별은 서로의 궤도를 도는데, 때로는 한 바퀴를 도는 데 거의 백 년이 걸리기도 한답니다. 그리고 이 두 별은 엄청난 중력을 일으켜 다른 것들이 들어올 여지를 주지 않는다고 하네요.

마치 몸의 일부를 공유하는 샴쌍둥이처럼...

안나와 케이트.

누가 남아 세상을 살아가든 어쩐지 그 둘을 분리해 낸다는 건 이제 영원히 불가능할 것만 같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남아 세상을 살게 될까요?


* 이 이야기도 역시나 지금 영화로 제작되고 있다고 합니다.

<노트북>의 닉 카사베츠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주인공 엄마 역은 카메론 디아즈. 안나역엔 애비게일 브레슬린, 그리고 안나의 변호사론 알렉 볼드윈이 나온다고 하네요.

제목은 원작 그대로 <My sister's keeper>로, 6월 미국 개봉 예정작입니다.

아무래도 꼭 챙겨보게 되지 않을까 싶네요.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