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죄'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05.04 <내 젊은 날의 숲> - 김훈
  2. 2011.01.17 <비지니스> - 박범신
읽고 끄적 끄적...2011. 5. 4. 06:30
김 훈의 책을 읽으면
고인이 된 박완서 작가가 생각난다
(얼마전에 어머님의 뜻에 따라 전재산인 13억을 서울대에 기부한다는 가족들의 발표가 있었다.
 돌아가셔도 작가 박완서는 따뜻한 큰엄마의 모성은 지극하고 감동적이다.
 뒤늦게 작가가 안 되었다면 당신의 삶도 지키고 살아내기 힘들었을텐데...
 돌아가신 고인도, 가족들도 모두 진정한 '오블리스 노블리제'다.)
작가 박완서가 그랬다.
김훈의 버르장머리없는 짧막한 글을 보면서 내내 추웠다고, 
그리고 실제로 그 추위가 자신의 6,25 동난 때를 떠올리게 해서 실제로 몸에 감기몸살이 왔었노라고...
몸이 아프고 으슬으슬했을 때 나도 김훈의 책을 연겨푸 두 권 손에 잡았다. 
내 몸의 추위를 김훈이 글이 주는 더 큰 추위로 버텨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3주간 약봉지를 끌어안고 있다
겨우 김훈을 말한다.
그런데 정말 말할 수는 있는 건가?

<내 젊은 날의 숲>
오직 눈(目)뿐인 세상.
글이 아니라 한 땀 한 땀 정성으로 그린 그림을 보는 느낌이다.
세밀화 그 이상의 묘사에 나는 감히 감동을 운운하기도 벅차다.
아마도 나는 이 책을 한 열 번쯤은 읽게 될 것 같다.
그리고 그 매 번을 나는 당황하면서 아득할 것이다.
김 훈이란 작가를 절필시키고 싶을만큼 이 글은 내겐 언제까지라도 치명적일 것이다.
아주 명확하게 확실하게...
줄거리뿐만 아니라 묘사 하나하나를 따라가는 것도 아득하다.
이걸 어떻해야 하나...
작은 여백과 빈숨까지 다 보는 시선.
어떻게 그걸 종이위에 그대로 다 표현할 수가 있는가!
김훈은 괴물이다.
그리고 그는 펜을 든 화가다.


o 눈 덮인 숲속의 추위는 바라보기에 따뜻했다.
o 추위 속에서 나무들은 우뚝하고 강건했다.
o 얼음이 녹은 늪의 수면은 팽팽했고 거기에 물벌레 한 마리가 기어다녀도 물은 주름잡혔다.
o 숲이 수런거리는 소리와 나무의 입김으로 가득찬 시간.
o 눈 속에서 꽃이 필 때 열이 나는지 꽃주변의 눈이 녹아 있었다.
o 풀을 들여다보면서 내 몸속으로 흘러들어오는 식물들의 시간을 나는 느꼈다.
o 색깔들이 물안개로 피어나는 시간이었다.
o 완전히 사랑하고 이해해야만 볼 수 있는 빈틈.
o 본다고 해서 보이는 것이 아니고 본다와 보인다 사이가 그렇게 머니까 본다와 그린다 사이는 또 얼마나 
  아득할 것인가
o 백작약 꽃잎이 필때부터 꽃의안쪽에서부터 이미 추락을 예비하는 피로의 낌새가 보였다.
o 작약꽃은 피면서 동시에 졌고 지면서 또 피었다.
o 5월의 숲은 강성했다.
o 편지의 글씨체는 어려보였다.
0 꽃잎에 이슬을 매단 채 아침햇살을 받으면 패랭이꽃 이파리 끝까지 긴장하면서 쟁쟁쟁 소리가 날듯한 기
  운을 뿜어내는데 흐린 날 아침에 꽃은긴장하기 않았다.
o 여름의 숲은 크고 깊게 숨쉬었다. 나무들의 들숨은 땅 속의 먼 뿌리끝까지 닿았고 날숨은 온 산맥에서
  출렁거렸다.
o 꽃은 쳐다보는 사람을 향해서 피어있다.
o 꿈이 힘들어 보이네요
o 저물 때 숲은 낯설고 먼 숲의 어둠은 해독되지 않는 시간으로 두렵다.
o 멀리 보는 시선이 헐거웠다.
o 가엾고 투명한 다임잇소리
o 직접 보지 않았기 때문에 말은더욱 치열히지는 모양이다.
o 깊어서 끌어낼 수 없는 울음이 밴 흔들림이었다.
o 가을의 서어나무는 날마다 헐거워져서 안쪽이 들여다 보였다.
o 나무의 죽음은 느리게 진행되어서 살아가는 일처럼 나무는 죽는다.
   나무는 한 그루 안에서 늙음과 젊음이 순환하는 것이다. 나무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과는 다르다.
o 눈이 쏟아지는 날에 흐려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귀를 기울이면 보인다.
o 귀로 더듬는 세상의 모습
o 숲에 눈이 쌓이면 눈에 덮이는 익명성 속에서 나무들은 편안해 보였다.
o 숲에 내리는 눈은 바람에 따라서 풍경을 열었다가 닫고 지웠다가 다시 돌려놓는다.
o 숲속의 겨울 취위는 한군데로 뭉쳐서 강추위가 되지 않고 추위가 숲에 고루 퍼져서 나무들을 덮고 나무
  들은 추위 속에서 풋풋해 보였다.
o 울음이 너무 멀어서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다
.


공무원으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의 뇌물죄와 알선수재로 가족을 부양한 아비도
민통선 안 국립수목원의 계약직 전속 세밀화가가 되어
고요 속에서 꽃과 나무를 들여다 보는 딸도
그 딸에서 새벽마다 절박하게 무내용의 전화를 해대는 엄마도
다 아득하고 가엾고 그리고 시리다.
갓지은 고슬고슬한 밥에 묻혀 주먹밥으로 엉키고 뭉치는 아버지의 하얀 뼛가루를 읽는 건
차라리 고요함이었고 아늑함이었다고 해두자!
아버지의 죽음과 50여년 만에 늙은 여동생에게 인계된 쌍추쌈이 먹고 싶다는 어린 병사의 고요한 일괄 유골이  
서럽게... 서럽게... 겹쳐진다.

새들은 흩어진 따뜻한 주먹밥을 달게 먹었을까?
목울대가 시큰하다.
묵묵히 입 안에 온기를 넣으며 
나는 내내 고요하고 싶다.

* 조연주!
   박범신의 <은교>가 다 자라면 꼭 그녀 같을 것 같다.
   전혀 다른 두 작가가 만든 두 인물이 묘하게도 하나로 겹쳐진다.
   은교와 연주...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1. 1. 17. 06:00
작가 박범신이 말했다.
...... 작가로 36년을 살았지만, 문학은 내게 여전히 자유의 다른 이름이며 또 방부제이다. 일부 독자들은 아직도 '청년작가'라는 이름으로 나를 부른다. 나의 소망은 청년작가가 아니라 죽을 때까지 강력한 '현역작가'로 살아가고 싶다는 것이다...... 쓰는 행위를 멈추지 못하는 게 최근 나의 딜레마다. 소설의 자궁 속으로 들어가 '순직'하고 싶은 욕망이 내 속에서 날로 커지는 걸 보는 건 황홀하면서, 동시에 두렵다 ......

누구보다 열혈청년처럼 열심히 쓰고 있는 현역작가 박범신!
이야기로 만들어낸 꺼리들이 아직 그에게는 무궁무진한 모양이다.
그저 놀랍다.
어느 때는 너무나 순식간에 그가 책을 내는 것 같아 읽어내는 것 자체에 무섬증이 일기도 한다.
그의 몸이 전부 언어가 되어 책 속에 콕콕 들어 박힐 것 같아서...
작은 계집아이 "은교"를 만난 떨림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어느 틈에 <비지니스>가 눈 앞에 펼쳐져있다.
끔찍하게 자본주의적이면서
끔찍하게 서글픈 현실을 담고 있는 <비지니스>
간교하고도 잔인한 독재자인 자본의 품 안에서
사람들은 단지 실패한 자와 성공한 자, 두 종류만으로 구별된단다.
그리고 교육도 일종의 '비지니스'의 일종이고...
자식의 과외비를 위해 몸을 파는 유부녀와
부잣집의 숨겨놓은 잉여 재산만을 훔치는 전직 강력계 형사 타잔.
그 둘의 관계는 윤리적으로 공평하다.
소설속 그녀는 말한다.
"내가 원죄를 가졌든 그에게도 감춰온 원죄가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기뻤다..."



이 책을 재미있다고 말해야 하나 섬뜩하다고 말해야 하나.
많이 다르긴 하지만 영화 <황해>를 생각나게 한다.
평범한 사람이 살인자가 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
자본주의가 무서운 게 여기에 있다.
평범한 사람을 살인자로, 범죄자로 만들어 간다는 것에...
그것도 아주 쉽게!
이제 세상의 주인은 자본이고
그래서 삶의 유일한 전략은 비지니스란다.
섬뜩하고 무섭지만 그러나 확실히 진실이다.



평범한 주부가 몸을 파는 창녀가 되는 과정도 섬득하지만
강력계 형사가 도둑이 되는 과정이 씁쓸하다.

... 경찰에 몸담고 있던 그 시절의 그는 타협이라곤 할 줄 모르는 우직하고 정직한 사람이었다. 업소에서 뇌물을 주면 뇌물죄를 추가했고, 업소들과 내통하거나 뇌물을 받는 동료들은 가차 앖이 감찰부서로 넘겼다. 결과적으로 불법 영업을 일삼는 업주들은 물론 동료들에게까지 그라는 존재는 눈엣가시가 되었다. 그를 쫓아내려고, 업주들과 동료 경찰들이 짜고 파놓은 함정은 도처에 있었다. 그는 결국 음모에 말려들었고, 마침내 비리경찰로 몰려 경찰복을 벗지 않을 수 없었다. 터무니없는 모함이었지만 업주들과 동료 경찰들이 짜 맞춘 너무도 교묘한 함정이어서 빠져나올 길이 없었다 ...

몸을 팔아가면서 아들의 과외비를 내는 여자는 
아들이 자면서 이 가는 소리를 들으며 몸을 부르르 떤다.

... 아이가 이를 갈면서 걸어가야 할 벼랑길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기분이었다. 그것은 내가 몸을 팔면서까지 부추기고 내몰아온, 자본주의 무한 경쟁 사이로 난 광포하고 가파른 벼랑길이었다. 패배하면 죽는다, 라고 말해온 것이 나였고, 아비가 갔던 길을 답습하면 안 된다, 라고 채찍질해온 것이 나였다. 나는 그 애가 오로지 전사가 되기를 바랐다 ...

소설은 읽으면 읽을 수록 목줄기를 잡아챈다.
숨을 쉬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적나라한 현실을 들여다보는 건 참 참혹하다.

... 대도(大盜)로 알려진 '타잔의 정부'가 되는 일과 '자식의 과외비를 위해 몸 파는 어머니'가 되는 일 중에서 어떤 것이 더 비윤리적인 일인지를 알 수 없었다. 다른 게 있다면 '타잔의 정부'는 하나뿐이고 '과외비를 위해 몸 파는 어머니'는 이 도시에 여럿이라는 사실뿐이었다. '여럿'이라는 사실이 죄를 더는 길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 도시에서의 윤리성이란 안팎에서 일관되게 지켜지는 가치가 아니라, 지켜지고 있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어 얻어내는 가치였다. 쉽게 말해 들키면 반윤리, 안들키면 윤리라 할 수 있었다 ...

더군다가 작가 박범신이 작가의 말에 남긴 글이 더 가슴을 옭죄온다.
그는 지금  자본주의적 폭력성을 좀더 적극적으로 다룬 장편 소설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를 쓰고 있단다.
뭘 더 보여주고 싶은걸까?
"좀더 적극적으로"라는 표현이 문득 섬득하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