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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5.25 달동네 책거리 47 : <유진과 유진>
  2. 2008.12.21 달동네 책거리 15 : <엄마를 부탁해> 2
달동네 책거리2009. 5. 25. 14:52

<유진과 유진> - 이금이

 유진과 유진 (푸른도서관 9)

지독한 공황상태에 빠져있었던 주말이었습니다.

전직 대통령의 투신 자살이라니....
또 다시 아픈 대통령의 역사를 소유하게 된 우리들.

그 소유에 대한 책임을 어쩌면 우리는 사는 내내 생각하고, 오래오래 갚아나가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구라도 벼랑 위에 서면 어쩔 수 없이 그 아래를 바라볼 수밖에 없게 된다는 걸 또 잊고 있었던 건 아닌지...

생각이 많았고, 두서없는 생각들로 맘이 무거웠고, 그래서 지독한 두통까지도 감수해야 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상처”

사람이 살아간다는 건,

제 맘에 수 없이 많은 상처를 내고 스스로 치유하는 과정의 반복이라는 생각.

그 치료의 방법이 극복이든, 해방이든, 혹은 망각이든,

어째든 우리는 소망합니다.

단지 “파괴”만은 아니기를......

추락을 꿈꾸는 아니 지금 추락하고 있는 사람이 말합니다.

“아직은, 아직은 괜찮아! 문제는 그 다음이야!” 라고...

추락하는 중에는 오히려 평온할 수 있습니다. 허공 속에 자유를 느낄 수도 있겠죠.

그 다음은.....

잠시 후, 고된 몸이 드디어 바닥에 닿게 되는 그 다음은...


유진과 유진!

같은 유치원을 다닌 두 아이는 유치원 원장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합니다.

같은 성(姓)과 같은 이름을 가진 두 아이,

중학교 2학년이 된 그들은 다시 한 반에서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작은 유진은 큰 유진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네요.

혹시 이 아이 동명이인일까요?


이 책은,

동화작가로 유명한 이금이가 쓴 청소년 도서입니다.

참 아프고 심각한 내용이죠. 더군다나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딸”을 둔 세상 모든 “엄마”들이 두려워하는 현실에 대한 고발이기도 하죠.

우리처럼 이미 다 큰 사람들의 눈에 이 소설은 분명 별 재미없어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시사성 강한 고발의 대사가 있는 것도 아니라 오히려 밋밋한 상황처럼 느껴질지도요.(이미 우리는 현실이라는 임펙트 강한 실제상황을 너무 많이 알고 있으니까요...)

단지 제가 말하고 싶었던 건,

“상처”를 바라보는 그리고 치유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깁니다.

성폭력을 당한 아이,

그 아이를 당신은 어떤 눈으로 보시겠습니까?

“깨진 그릇!”

그래서 살던 동네를 떠나 아무도 모를 거라 믿는 곳으로 피난을 가게 만드는 시선?

겨우겨우 피해 달아났는데 시간이 지나 그 사실을 알게 된 누군가가 이야기합니다.

“그런 경험을 가진 아이는 문제가 있다”

우르르.... 한 세계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네요.

그러나 이 말은 정확한 표현은 아닙니다.

“그런 경험을 가진 아이는 나에게 문제가 된다!”

이런 말을 듣는 순간, 내가 만든 그런 아이는 신화 속 이카로스가 되어 어깨 위로 날개를 펼칩니다.

오직 상처로만 만들어진 날개를 단 이카로스...

태양을 향해서 녹아버릴 밀랍날개를 달고 더 높이높이 날아올라야만 하는 내가 만든 그런 아이......

그 아이의 추락을 같이 지켜보시겠습니까???


누군가를 비난하고 손가락질 할 때,

우리는 비난의 자유를 생각하기 이전에, 비난의 책임부터 먼저 생각해야만 했습니다.

내 입에서 시작되는 것들에 대한 책임!

내 말이, 내 시선이 누군가의 육체를 순식간에 무너뜨려 그 형체조차 구별하지 못하게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

우리는 지난 주말에 또 하나의 사례를 갖게 된 셈이네요.

종이인형!

어린 시절 가지고 놀던 종이인형을 기억하시나요?

한 장의 종이 위에 그려진 예쁘고 화려한 드레스와 외출복들, 어깨에 달린 조그만 접이를 넘겨 하나하나 종이 인형에 입혀줬던 기억.

그렇다면 그것도 기억하시나요?

예쁜 인형과 화려한 드레스를 뒤집어 보면

그 뒤엔 아무것도 없었다는 사실...


누군가 내 뒷면을 보고 있는 것 같아

내내 마음이 섬뜩하네요...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8. 12. 21. 10:55

  <엄마를 부탁해> - 신경숙


 

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그녀가 낸 작품들은 모조리 읽었습니다.

하다못해 산문집까지도...

제게 있어 신경숙은 질투의 대상이이기도 했고, 동경의 대상이기도 했고, 그리고 실망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그녀만의 독특한 감성과 글쓰기에 얼추 젖어버렸다고 할까요?

하지만 분명한 건 지금의 제 느낌들이 작가로서의 그녀에 대한 종착역은 결단코 아닐 거라는 사실입니다.


이 사람...

평범한 일상을 너무 아프게 써 어느 날은 혼자 화가 났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면은... 나를 들여다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뜨끔한 자괴함과 부끄러운 속내를 들킴에 대한 막무가내의 억지였던 건 같네요.

“풍금이 있던 자리”

가령 그녀의 글쓰기는 그렇습니다.

풍금이 있는 자리가 아니라 풍금이 있던 자리인 거죠.

화자가 바로 <나>여야 하는 이야기를 그녀는 <당신>으로 바꿔놓습니다.

그녀의 모태 신앙 같은 도시 정읍, 그리고 차마 분명한 이름조차 갖지 못한 체 등장하는 이니셜의 인물들...

게다가 대화조차도 문장부호 없이 그대로 써버리는 당혹감...

<리진>이라는 소설을 통해서 잠깐 다른 방식의 글쓰기를 시도했던 그녀가 다시 초기작으로 돌아왔네요.

지극히 “신경숙다운” 소설과 함께요...


철들기 시작한 딸들 중 “엄마”라는 이름에 가슴 아프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이 책은 모태로부터 시작된 자식들의 원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총 5장으로 되어 있는 이 책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엄마를 잃어버린지 일주일째다”.....

지독한 두통과 점점 잃어가는 기억들, 수시로 찾아오는 통증을 숨기고 노부부는 자식이 있는 서울로 올라옵니다.

예전의 우리네 아버지들의 발걸음.

아내와 같은 속도로 함께 나란히 걸어가는 게 마치 무슨 대단한 흉이라는 되는 냥 성큼성큼 앞서 갑니다.

자식들의 마중을 마다하고 지하철을 탄 남편의 등골이 순간 오싹합니다.

글조차 읽지 못하는 그 아내가 열차를 타지 못했던 거죠.

성급히 남편은 남영역에서 되집어 전철을 타고 서울역으로 향합니다.

그러나 아내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렇게 4명의 다 큰 자식들은 속수무책으로 어미를 잃습니다.

 

각각의 장은 큰딸, 맏아들,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다시 큰딸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큰딸의 이야기는 “너(2인칭)”의 시점으로, 맏아들의 이야기는 “그(3인칭)”의 시점으로, 아버지의 이야기는 “당신(2인칭)”의 시점으로, 그리고 어머니의 이야기는 “나(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엄마를 찾는 전단지를 만들기 위해 모인 가족들은 서로에게 긁힌 상처를 드러내며 새로운 상처를 만듭니다.

그들에게 던져진 화두 두 가지!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나?”

“엄마가 홀로 남겨지고 있을 때 나는 무엇을 했는가?”

이제 그들은 전단지를 보고 연락한 내용을 따라 엄마를 찾아 헤맵니다.

그들이 찾아간 곳은 예전에 그들의 첫 직장이 있었던 곳이고, 본인 명의의 첫 집을 장만했던 곳 등, 모두 그네들의 흔적이 스친 곳이기도 합니다.

엄마는 정말 그 곳을 다녀갔던 걸까요?

파란 슬리퍼에 뼈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상한 발을 끌고...


우리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엄마에겐 사연이 없다고... 엄만 그냥 처음부터 엄마일 뿐이라고...

어쩌면 이해할 마음조차도 미처 갖지 못할 만큼 자식으로서의 이기심이 너무 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엄마에게도 돌아가 편히 쉬고 싶은 집이 있었을 테고, 그리고 그 엄마에게도 무릎을 베고 누우면 다독여 줄 엄마가 일평생 필요했을 거라는 걸, 우리는 정말 알고 있었을까요???

그런 엄마가 어느 날, 우리들에게 말합니다.

“나는 이제 갈란다... 잘 있으시오”


엄마를 잃어버린 지, 9개월째...

작가인 큰딸은 이탈리아 성 베드로 성당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녀는 그 곳에서 여동생의 편지를 떠올리며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 앞에 섭니다.

“....... 엄마는 엄마가 할 수 없는 일까지도 다 해내며 살았던 것 같아. 그러느라 엄마는 텅텅 비어갔던 거야. 나는 엄마처럼 못 사는데 엄마라고 그렇게 살고 싶었을까?......”
감히 누가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까요?

“엄마니까....엄마란 다 그런 존재니까....”

저는 죽어도 이렇게 말 할 순 없을 것 같습니다.

소리조차 죽이며 흐느꼈던 내 어미의 아픈 통곡과 내 손을 붙잡고 놓지 않던 내 어미의 거친 손이 지금 저를 여기에 있게 했으니까요...

결국,

이 책은 또 제 이야기이기도 한 셈이네요.


피에타 상...

죽은 예수를 품에 안고 고통과 절망의 순간을 이겨내고 있는 성모 마리아.

어미의 무릎, 제 2의 모태 속에서 아들은 드디어 평온을 맞이합니다.

어미의 손길이 스치기만 하면 이제 모든 고통과 절망은 사라져 흔적도 없어질 테죠.

비로소 모든 잃은 생명 또한 비옥해져 싹이 틀 것이며 자라나 열매를 맺게 될 겁니다.

내 어머니...

어미의 생명은 그렇게 나에게로 옮겨옵니다.....

아무래도 저는 이제 제 자신에게도 말해줘야 할 것 같습니다.

“엄마를 부탁해...” 라고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