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5. 3. 18. 08:14

마드리드 나흘차.

아침에 일어나니 발가락이 사단이 나있었다.

커다란 물집이 세 개나 자리잡고 있는 것이...

하긴 삼일동안 국가대표 상비군이라도 된 듯이 걸어다녔으니 사단이 날만도 했다.

고민하다 물집을 터트리고 밴드로 감싼 뒤 두꺼운 양말을 신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7시 정각에 조식을 먹으려고 식당으로 내려갔다.

마드리드에 있는 4박 5일 동안 내가 묶었던 호텔 Regente.

그랑비아 대로변에 있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도, 늦게까지 돌아다니기에도 괜찮았던 호텔.

그리고 무엇보다 조식이 깔끔하고 맛있었다.

서울에서는 아침은 커피 한 잔으로 끝이었는데

여행만 가면 아침을 연말 회식 수준으로 먹게 된다.

조식이 그날의 유일한 한끼가 될 확률이 높아서도 그렇지만

유럽의 치즈와 빵은 내 입맛에 잘맞아서 자꾸 손이 가게 되더라.

(그래서 이번엔 작정하고 덩어리 치즈를 몇 개 사왔다)

그리고 역시나 커피.

스페인에 있는 동안 "카페 콘 레체"를 하루에도 몇 잔씩 마셨는데

Regente 호텔은 테이블마다 뜨거운 커피와 우유가 셋팅되어있어 정말 원없이 마셨던것 같다.

커피머신이 아니라 자기 취향대로 농도를 조절해서 마실 수 있다는게 큰 장점.

아침을 먹으면서 보통 4잔의 커피를 마셨는데

첫 잔은 커피보다는 우유를 많이 넣어 위에 자극되지 않게 마셨고

다음 잔부터는 커피의 농도를 늘려가면서 마셨다.

그러니까 매 잔마다 다른 맛의 커피를 즐겼던 셈.

스페인을 여행하는 동안 마드리드 Regente 호텔에서 마신 커피가 가장 맛있었던건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일거다.

일종의 나만의 레시피 ^^



이날이 동생과 조카가 마드리드에 도착하는 날이라 아침 일찍부터 분주했다.

호텔 프런트에 부탁해서 조금 일찍 싱글룸에서 트리플룸으로 짐을 옮겼고 

(3일 동안은 운좋게 더블룸을 싱글룸 가격으로 있었다.)

조식을 먹고 바로 마드리드 왕궁을 둘러보기 위해 호텔을 나섰다.

마드리드 왕궁은 원래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궁전이었다는데 화재로 소실됐다.

후에 펠리페 5세가 그 자리에 베르사이유 궁전을 닮은 궁전을 지으라 명령해서 만들어진게 지금의 모습.

터키의 톱카프 궁전도 베르사이유 궁전을 모델로 만들었다고 하던데

당시 베르사이유 궁전이 유럽의 황제들에겐 일종의 선망의 대상 혹은 왕권의 상징이었던 모양이다.

왕궁 앞 오리엔테 광장에 서있는 기마상은 펠리페 4세 기마상.

후대에 세워진건지 선대왕에 대한 헌정의 의미였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5세가 아니라 4세라도 좀 의아했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공원에도 왕궁 앞에도 사람이 거의 없어 혼자 주인 행세를 하며 돌아다녔다.

광장 주변엔 말 탄 경찰들이 순찰을 돈다는데 아침 일찍이라 그런지 흔적도 없더라.

덕분에 혼자 실없이 이 끝에서 저 끝으로 뛰어다니고, 

펠리페 4세 기마상의 앞태, 뒷태, 옆태를 자세히 감상하고,

왕궁 창살 너머 여기 저기 원없이 기웃거리고,

열린 문틈에 머리도 들이밀어보고...

잔뜩 지푸린 하늘 아래에서 혼자 놀기의 진수를 펼쳤다.

펠리페 4세가 말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그랬겠다.

"아침부터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저 여자사람.... 정체가 도대체 뭐니?" 



왕궁 뒷편에는 아르메리아 광장이 있고

그 건너편에는 알무데나 대성당이 자리잡고 있다.

그냥 지나칠뻔 했는데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있는 성자상(聖子狀)에 끌려 안으로 들어갔다.

성자상이 꼭 이렇게 말하는것 같았다.

"들어와..."

성당 내부는 화려함보다는 따뜻함과 평온함으로 가득했다.

아침 햇살을 가득 담은 주제단 앞에 한참을 앉아있었다.


종교라는건,

결국은 위로의 손길이더라.

나약해서가 아니라 위로받기 위해 사람들은 종교에 의지하게 된다.

내가 지금 낯선 스페인 땅에서 위로받고 있는 것처럼.

그래서 이 여행이 내겐 전지전능한 "종교"고 "구원"이다.

이 위로의 시간을 지나고 나면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을테다.

그리고 그 힘으로 다시 삶을 시작하게 될테고...

사람들은...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고 구원한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