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5. 9. 2. 08:28

현재 로마에는 세 개의 개선문이 있다.

콜로세움 옆에 세워진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북쪽 비탈길 위에 세워진 티누스 개선문,

그리고 포로 로마노에서 캄피돌리오언덕 길목에 세워진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 개선문이다

이 중 가장 오래된 건,

북쪽에 있는 티누스 황제 개선문이다.

 

 

티누스 개선문은 서기 70년 유데아 전쟁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고

티누스 황제 사후 그의 동생 도미티안스 황제에 의해 헌정됐다.

(형이 얼마나 좋았으면.... 대단한 형제애 ^^)

서쪽 벽면에 새겨진 조각을 보고 싶었지만 입구가 막혀있어 겉모습만 보고 돌아섰다.

오묘한 색채를 띠는 개선문도 물론 아름답지만 이곳으로 올라가는 비탈길이  마음에 폭 안겼다.

가파르지 않는 경사면에 넓지도 좁지도 않은 길.

그 길의 끝에 서있는 개선문은

외따로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포로 로마노 전체를 내려다보는 위엄이 있다.

대리석 표면이 햇빛을 받아 살짝 살색이 감돌아서인지

정물이 아닌 거대한 인물을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그야말로 아주 아주 오래된 조상님을 뵙는 느낌 ^^

 

로마에서 가장 처음 발견된 셉티마우스 세베루스 개선문은

로마 제국의 국운이 기울어가던 3세기 초에 세워졌다.

오리엔트 지방 정벌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옛모습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개선문 벽면에는 오리엔트 정벌 장면들이 빼곡하게 묘사되어 있고

상단에는 황제와 두 아들을 칭송하는 비문을 자세히 보면

네번째 줄이 지워져 있는게 보인다.

일종의 로마판 카인과 아벨이라 할 수 있는데 

권력다툼에서 승리한 형 카라칼라가 동생 제타를 죽이고 그 이름을 지워버린 흔적이다.

티누스 개선문은 의좋은 형제 버전이고,

이 개선문은 그 반대 버전이라고 하겠다.

살육의 비극이 서려있어선지 겉에 새겨진 조각들도 어딘지 흉흉해보인다.

 

 

콜로세오 입구에 서있는 로마에서 가장 큰 콘스탄티누스 황제 개선문.

나폴레옹이 로마 원정때 이 개선문을 보고 너무 탐이 나서 그대로 파리로 옮기려 했단다.

운반상의 문제로 뜻을 이루진 못했지만 도저히 포기가 안됐는지

이걸 그대로 본따서 개선문을 파리 상젤리제 거리에 세워놨다.

개선문 상단에 라틴어로 쓰여진 글의 내용은,

 

콘스탄티누스 황제에게 :

신의 영감과 숭고한 정신으로 나라를 위해 정의의 무기로 폭군과 그의 일파에게 복수하였으므로

이에 로마의 원로원과 시민은 승리의 증표로 이 개선문을 헌정했다.

 

그런데 사실 이 개선문은 재활용된 개선문이란다.

이전 시대 황제들의 기념물과 건축에서 떼어낸 조각들을 여기저기 짜집기 했다고...

아무래도 로마 원로원과 시민들의 헌정이라는게 진정한 의미의 헌정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긴 역사라는건 늘 누군가에 의한 일방적인 기록일 뿐이니까.

세상의 모든 픽션 중 기록으로 남겨진 역사만큼 가공할만한 위력의 픽션도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록"은 남는다.

모든 기록에 대한 욕망이.

문화를 만들고, 건축을 만들고, 예술을 만든다.

그리고 그게 고대 로마를 지금까지 살아있게 하는 유일한 힘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