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1. 5. 6. 06:33
<내 젊은 날의 숲>을 읽고 오래 전에 읽었었던 <남한산성>을 다시 손에 잡다.
시대도, 이야기도 전혀 다른데 왜 나는 두 이야기에서 동질감을 느꼈을까?
어쩐지 두 이야기의 태(胎)가 같은 것 같다.
"임금이 남한산성에 있다..."
꼭꼭 씹어 삼키듯 여러번 반복되는 이 문장은
이야기 속의 매서운 칼바람과 된서리보다 더 날카롭고 눈물겹다.
홀로 우는 곡(哭)같은 문장이구나.
<남한산성>은...
말의 마디마디는 서럽고 참담하고 절절하고 아득하다.


김훈도 그러지 않았을까?
이 글을 쓰면서 내내 어디 한 곳이 부러진 듯 아프고
몸의 마디마디 끝으로 더 날카롭고 예리한 칼끝을 받아내는 그런 심정이지 않았을까?
역사를 되집는 건 용기도 오만도 아닌 무거운 책임감과 참회의 심정이었으리라.
현재를 살고 있다고 과거에 책임이 없을까?
간곡하고 단단한 단문들 하나하나를
나는 보이지 않는 산을 연거푸 넘는 심정으로 읽고 또 읽었다.
매 골마다 번번히 서러웠던 건 내가 우는 곡(哭) 때문이었다.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자는 것입니다."
거기다 예조판서 김상헌은 다시 내 발목을 잡는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힘으로 삶을 열어나가야 합니다"
이조판서 최명길이 나머지 한 발목마저 잡고 놓지 않는다.
"말이 준엄하고 가파르구나..."
인조의 말에 그만 덜컥 주저앉고 일어서지 못한다.
남한산성에 있었던 그들 뿐만이 아니었구나.
김훈은 남한산성안으로 나를 옮겨놓고 힘들게 한다.
어쩌자고 나를 이 속으로 밀어넣었나....


갇힌 성 안에서는 삶과 죽음, 절망과 희망이 한 덩어리로 엉커 있었고, 치욕과 자존은 다르지 않았다.
신생의 길은 죽음 속으로 뻗어 있었다. 임금은 서문으로 나와서 삼전도에서 투항했다. 길은 땅 위로 뻗어 있으므로 나는 삼전도로 가는 임금의 발걸음을 연민하지 않는다.
밖으로 싸우기보다 안에서 싸우기가 더욱 모질어서 글 읽는 자들은 갇힌 성 안에서 싸우고 또 싸웠고, 말들이 창궐해서 주린 성에 넘쳤다.
나는 아무 편도 아니다.
나는 다만 고통 받는 자들의 편이다


인조는 결국 성을 나왔다.
그리고 칸 앞에 무릎을 꿇고 치욕의 삼배를 올렸다.
칸은 청으로 돌아가는 길에 조선의 세자와 빈궁들을 볼모로 끌고갔다.
성을 나왔지만 항복했지만
인조는 또 다시 더 큰 성 안에 갇히고 말았다.
스스로 강자의 적이 되는 처연하고 강개한 자리에서
돌연 아무런 적대행위도 하지 않는 적막은...
치욕을 견디는 것보다 더 무겁고 치명적이다.
한 번도 역사 속의 인조를 가엾게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남한산성>의 인조는
서럽고 서러워서 자주 목에 매인다.
할 수만 있다면 칸 앞에 무릎꿇은 그를 일으켜세워
그 자리를 모면케 하고 싶다.

"당면한 일을 당면할 뿐이다..."

역사는...
참 잔인하게도 준엄하구나...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