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1. 6. 29. 06:39

2010년 10월 27일 집필을 시작해서 그해 12월 26일,
꼭 두 달만에 이 소설을 썼다고 청년작가 최인호는 말했다.
“내가 쓰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불러주는 것을 받아 적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경외감을 느낄 때도 있었다” 라고도...
그러나 뭔가에 홀리듯 이 소설을 쓸 때,
최인호는 2008년 5월 발병한 침샘암으로 투병중이었고 지금도 계속 투병중이다.
암치료를 위한 방사선 치료때문에 발톱과 손톱이 빠져 동네 약방에서 고무골무를 사다가
손가락에 끼우고서 20매에서 30매 분량의 원고를 매일같이 직접 만년필로 원고지에 썼단다.
"몸은 고통스러웠으나 열정은 전에 없이 불타올랐다" 는 작가의 말에
나는 문득 벼락이라도 맞은 느낌이다.
이렇게 뜨겁고 치열하게 공포에 가까운 열망으로 업을 사는 사람이 있구나...



한 가정의 모범적인 가장이자, 번듯한 금융회사에 다니던 평범한 사회인 K는
어느날 잃어버린 핸드폰을 찾으러 가면서
이곳 아닌 다른 세계와 뒤섞인다.
아내도, 딸도, 심지어 집안에서 기르던 강아지조차도
왠지 짜여진 극본에 의해 연기를 하고 있는 것만 같다.
매일 눈 뜨고 살았던 일상인데 어느날 이 모든 것들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진다.
울리지 않아야 할 자명종이 울려 잠이 깨고,
항상 쓰던 스킨은 전혀 본 적 없는 브랜드의 제품으로 바뀌어져 있다.
뭔가가 달라졌다. 분명히 어딘가가 틀어졌다.
내 공간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아니 진짜 나는 어디로 가버렸을까?
균열을 매우려는 K의 추적은 그렇게 시작된다.

K=K1+K2

...... 나는 곧 '나'가 되었으며 K1과 K2는 합체하여 온전한 하나의 'K'가 되었다. 온전한 K는 하늘과 땅이 가라지기 전의 알파, K를 낳은 아버지의 아버지, 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할아버지, 그 할아머지의 그 할아버지의 아버지들이 태어나기 전의 태초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였다 ......


도플갱어(Doppelganger).
뫼비우스의 띠(Ringwanderung)
도플갱어를 만나면 진짜가 죽게 된다고 했나?
Autoscopy 환자에게서 도플갱어 현상이 나타나면
그것 역시 죽음이 가까워졌음을 알리는 징조라는데...
어느날 갑자가 내가 낯설게 느껴지고
"낯선 나"와 "또 다른 나"가 만나게 된다면?
2박 3일간의 혼돈 속에서 K는 자신의 정체를, 자신의 위치를 찾았을까?
K의 모습은 내 모습의 투영이기도 하다.
끝없이 부정하고, 끝없이 배신하고, 끝없이 새롭게 창조하는,
살아있는 이 시대의 모든 K!
그들이 순간 저벅저벅 일사분란한 병사들처럼 도열해서 일제히 내게 다가오는 것 같다.
K는 월요일 아침 출근하는 지하철역에서 자신이 만났던 모든 사람들과 작별한다.
K는 사라졌을까?
아니면 본래의 K로 비로소 돌아갔을까?
어쩌면 이것 역시도 뫼비우스의 띠인지도 모르겠다.

최인호는 이 소설을 쓰면서
창작욕에 허기가 진 느낌이었다고 했다.
두 달 동안 줄곧 하루하루가 "고통의 축제" 였노라고...
그 하루하루 최인훈 역시도 숱한 K의 분신들과 만났으리라.

최인훈의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절박하다.
그리고 삶에서 절박함을 이겨낼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어쩌면 최인훈은 소설은 앞으로 더 절박해질지도 모르겠다.
그가 또 다시 시작할 모양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