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so해도 괜찮아2017. 3. 13. 13:37

다시 책이 읽히기 시작했다.

그래서 주말 내내 도서관에서 빌린 5권의 책을 읽었다.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일부러 수월하고 편하게 읽힐 책들을 골랐는데

전부 유럽에 관한 책이다.

각각 다른 관점에서 쓴 여행 에세이 네 권과

유럽 역사와 문화에 대해 자세하게 쓴 인문학서 한 권.

다섯 권 중 세 권을 책을 읽었는데

전문 번역가가 쓴 유럽 여행기와

히치하이킹과 카우치서핑으로 유럽을 여행한 남자의 기록과,

유럽의 번화가가 아닌 골목을 기웃거리며 찍은 사진집에 가까운 에세이.

그 중 몇 곳은 내가 다녀온 나라 내가 기웃거린 골목길이었다.

울컥... 반가움이 몰려왔다..

나 역시 스스로를 골목성애자라 부를 정도로 골목길을 사랑한다.

그래선지 길을 잃는 것에 걱정하지 않는 편이다.

어차피 전부 다 모르는 길이고, 전부 다 처음 가보는 길이라 '길을 잃다'라는 표현은

아무래도 정확한 표현이 아닌 것 같다.

남들 다 사는 현지 유심칩도 안사고

구글맵조차 out of mind인건

영어가 유창해서도,

길을 찾는 촉이 유달리 발달해서도 아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성인군자도 절로 화가 치밀게 만드는 마성의 길치다.

게다가 엄청 소심하고 겁도 산더미처럼 많아서

혼자서 호기롭게 음식점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도 못한다.

술은 아예 못마셔 현지의 펍문화를 경험해본 적도 없고

야경을 찍기 위해 한 밤 중에 삼각대를 들고 나서는 대범함도 없다.

그러니까...

여행지에서의 내 모습은 다 fake다.

무섭지만 무섭지 않은 척,

겁나지만 겁먹지 않은 척,

배고프지만 배고프지 않은 척,

힘들지만 힘들지 않은 척.

씩씩한 척, 강한 척, 대범한 척, 괜찮은 척.

 

그런데...

나는 그 fake들이 참 좋다.

누군가는 허세라고 말하겠지만

그건 허세가 아닌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버티기다.

무서워하고 힘들어하고 겁에 질려버리면

낯선 곳에서의 한 걸음은 그대로 다 공포가 되버릴테니까.

(적어도 내 성격엔.)

그래서 여행서를 읽으면서도 글쓴이의 fake를 목격하면 그게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이 사람도 나와 다르지 않다는거.

그게 편안한 동지애를 느끼게 해준다.

(글쓴이는 기분 나쁠까???)

 

떠날 준비...

해야 할 것 같다.

책으로는 도저히 채워지지 않는 허기.

그게 속을 헛헛하게 만든다.

여행은 결국 허기란다.

그래서 공항은 섭십장애를 앓는 사람들로 가득하다고.

처방전을 들고 치료제를 찾아 비행기에 오르는 사람들.

돌아오면

그들의 속은 뻥하고 뚫리겠지!

좋겠다.

 

나는 지금 한창 섭식장애 중인데...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