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동네 책거리2009. 4. 27. 22:49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2> - 오주석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2


지난번에 책 읽어주는 남자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오늘은 그림 읽어주는 남자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미술사학자 오주석!

제가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사람 중 한 분입니다.

2005년 2월 5일 49세 나이로 1년 반의 백혈병 투병 끝에 타계한 우리나라 유일무이한 미술사학자였죠.

강의도 재미있게 하기로 유명했던 분이고, 또 글을 읽고 있으면 박학다식하다는 게, 해박하다는 게 어떤 건지 절감하게 만드는 분입니다.

그림, 그것도 옛 그림에 거의 문외한인 제게 옛 그림에 대한 신비로움과 오묘함을 단지 한권의 책만으로도 가슴 절절하게 전달해줬던 분이기도 하죠.

그가 타계한지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그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3권의 책이 그의 이름으로 출판되기까지 했습니다.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 분은 계속 불멸의 삶을 이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그리고 저 또한 그 불멸의 삶이라는 게 아주 오랫동안 계속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기도 하구요.

이 책은 그가 타계한지 정확히 1년 후인 2006년 2월 5일 출판됐습니다.

미완인 책을 함께 모여 끝내 엮은 사람들의 심정이 어땠을지를 생각하면 가슴 한켠이 먹먹해집니다.


“옛 그림 한 점은 이를테면 옛 조상과 같다”

그분은 그랬습니다. 한 점 한 점의 그림을 그렇게 경건하게, 소중하게, 그리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그윽히 바라봤고 그리고 그 이야기를 전해줬습니다.

“옛 그림 속에서 그린 이의 숨겨진 마음을 찾는 숨바꼭질에도 빛과 그늘이 있다. 보일 듯 말 듯 오래도록 찾아봤어도 도무지 알 수 없어 마음이 어두웠던 적도 있고, 술래잡기 끝의 발견처럼 하찮은 것 같아도 제 맘에 너무 좋아 크게 외치고 싶어 바르르 떤 적도 있다”

그림을 이해하면서 마음이 어둡기도, 바르르 떨기도 했다는 작가.

지극한 것은 서로 닿아있다고 했던가요?

아무래도 그림 스스로 그에게만은 비밀을 풀어줬던 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림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은 참 좋겠구나!’ 생각했었는데,

그림과 술래잡기를 하고 마침내는 그린 이의 숨겨진 마음까지 발견해내는 사람이라면 평범한 사람이라고 말하긴 아무래도 힘들 것 같습니다.

책을 읽는 순간순간,

그림에 대한 그 “앎”이라는 게 단순히 그림을 해석하고 분석하는 게 아니기에 때론 무섭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한 점의 그림으로 사람을 읽고, 시대를 읽고, 문화를 읽고, 그리고 전후 역사를 읽고.... 

그림이 마치 신내림 된 듯한 느낌이네요.

도통의 경지, 접신의 경지 그 너머까지로 말입니다.


이 책에 소개된 그림은 모두 6점입니다.

김홍도의 <송하맹호도>, <마상청앵도>

정선의 <금강전도>

적양용의 <매화쌍조도>

민영익의 <노근묵란도>

작자 미상의 <이채 초상>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혹은 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제 깜냥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부분임을 고백합니다(부끄럽다고 말하기에도 너무 부족하기에....)

그래도 이 그림들의 선별에는 왠지 의미가 있는 듯 여겨집니다.

서민의 삶 속을 파고 든 풍속화가, 진경산수의 사실주의 화가, 긴 유배의 생활 중 애뜻한 아비의 정을 딸에게 보내는 시대를 앞선 지식인, 나라 잃은 설움을 안고 불운한 삶을 마친 마지막 선비,  그리고 누군지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 그린 최고의 초상화까지...

조선의 중, 후기 역사를 고스란히 그림을 통해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그림을 읽어주면서 그 시대 전체를 전달해주고 있는 셈이죠.

독특하고, 그리고 다양한 방법으로...

어쩌지 이 글을 엮을 당시 이분의 심사가 좀 복잡했던 건 아니었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도화선이 되는 책이나 사람을 이야기 할 때,

전 항상 이 분의 글들을 떠올립니다.

청계천변의 “정조능행반차도”를 유심히 들여다보게 한 것도, 간송미술관을 찾아가게 한 것도, 그리고 북한유물전을 놓치지 않고 관람하게 한 것도 따지고 보면 다 이분의 글을 통해서였던 것 같네요.

시선의 확대였다고 할까요?

그림은 그려진 실체뿐만 아니라 여백까지 모두 읽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 여백을 읽는 방법,

이 책을 읽고 나면 희미하게나마 알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난 다음에 박물관에 꼭 가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옛 그림 앞에서 아마 미소가 번지실거예요.

제가 꼭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그 느낌은 말이죠, 책을 읽는 즐거움과는 또 다른 즐거움입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

저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이 분,

자신이 정성껏 읽은 그림의 작가들을 이젠 모두 만나보지 않았을까요?

어쩐지 어딘가에서 깊게 깊게 사랑받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림 읽어줬던 남자, 오주석......



   <김홍도 - 송하맹호도>

  <김홍도 - 마상청앵도>

 
<정선 - 금강전도>

  <정약용 - 매화쌍조도>

  <민영익 - 노근묵란도>

  <이채 초상>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