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0. 4. 19. 06:31
윤대녕의 소설을 읽으면 맘이 설렌다.
뭐랄까?
완벽함이 주는 불안감 대신 불안감이 주는 묘한 안도감이 느껴진다.
윤대녕식 신파를 나는 긍정하고 그리고 이해한다.
손쓸 수 없을 만큼 쏟아지는 대설처럼
그렇게 몰아치듯 그의 단편집을 읽었다.
<대설주의보>



1. 보 리
2. 풀밭 위의 점심
3. 대설주의보
4. 꿈은 사라지고의 역사
5. 오대산 하늘 구경
6. 도비도에서 생긴 일
7. 여행, 여름
7편의 단편들은 마치 단단한 눈덩이처럼 서로 뭉쳐있다.
어딘가 은밀한 사람들, 어쩐지 처연하기까지한 불륜들.
정말 그에겐 모든 우연이 "필연"이었던건 아닌가?
윤대녕의 불륜을 나는 도저히 손가락질할 수 없다.
그냥 질끈 눈 감아버리는 수밖에...



누군가는 말했다.
윤대녕의 인물들은 병들어 견디고 견디며 죽는다고...
내게도 그의 글들은 그렇다.
일몰무렵에 일출 명소에 와 있는 것 같은 막막함 같다고...
윤대녕의 일상은 폐허이면서 동시에 안도감이며 푸른 보리싹같은 생명력이라고...
어느새 나도 그에게 은밀한 공감을 느끼며
더 은밀한 협약으로 공모로 유대를 품는다.
폭설로 길이 끊인 곳에 덩그라니 남아 있어도
길을 떠날 수 있고 그래서
결국은 기다리는 혹은 기다렸던 사람을 만나게 될 거라는 믿음.
그 믿음이 푸짐한 눈발보다 더 푸짐하다.
그러나 눈은 여전히 차다.
그게 결국은 세상 모든 사람의 일생이다.

이 사람의 글은 내겐 그랬다.
아득하면서도 어딘지 모르는 평온함을 주는 느낌.
<은어낚시통신>도, <눈의 여행자>도,
<옛날 영화를 보러 갔다>도,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도...
그의 연애는 매번 분간할 수 없는 환상이고
일상은 파삭하게 건조한 무감(無感)이다.
그의 글은  그래서 미안하게도
너무나 나를 닮아있다.
폭설 속에 길을 잃었으면서 하얀 눈 속을 부작정 걷고 있는 사람.
그 사람이 꼭 나 같아 아프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