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2. 1. 20. 06:00
8년 만에 만들어진 여섯번째 단편집이라고 했다.
작가 신경숙은 이 단편들이 특별하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청탁을 받아서 쓴 게 아니라 자신이 쓰고 싶을 때마다 자발적으로 쓴 작품들이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책을 만들면서 그녀는 새삼 알게 됐단다.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서로 연결되어 있는지도 모르는 체 우리는 서로의 인생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7편의 글을 읽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어쩌자고 그녀는 조목조목 나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했을까!
책 장을 넘기는 손이 힘겹다.
그녀의 글들을 나는 점점 수월하게 읽어내기 힘들어진다.
몰래 침잠되어 있는 깊게 숨겨놓은 한 부분을 기어이 뚝 건드리는 것 같다.
매번 그녀는 왜 내게만 이렇게 잔혹한가!
책을 읽고 나면 그녀가 만든 익명성의 그들과 이니셜의 그들이
내 꿈 속에 들어와 나를 흔든다.
내가 너라고...

세상 끝의 신발
화분이 있는 마당
그가 지금 풀숲에서
어두워진 후에
성문 앞 보리수
숨어 있는 눈
모르는 여인들



개인적으로는 이십대보다 삼십대가 좋았고 삼십대보다는 사십대가 된 지금이 나쁘지 않다. 이유는 단 하나다. 연애감정에서 멀어졌다는 것, 그토록 막연하고 불안하고 죽을 것 같은 고통스런 감정들이 모두 다 연애감정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었으련만 마음이 연애감정에서 멀어지자 자유로워졌다. 쓸쓰란 자유. 그 자유가 나쁘지 않았다.....내게는 영원히 찾아올 것 같지 않았던 평화가 거기 있었다. 다시 한 사람을 향한 격정 속에 빠져서 매 순간을 휘둘리고 싶지 않다. 한 사람을 욕심내는 일은 격정만 주는 게 아니라 절망을 함께 준다. 그래서 가차없이 그 사람에게 상처를 입혀버리기도 한다. 그 격정과 절망 속에 다시 나를 밀어넣고 싶지 않았다.

익명성의 삶, 이니셜로 불리는 삶에 대한 로망.
어느날 내가 K가 되어, A가 되어, S가 되어 그 도시를 떠돌게 될 것만 같은 기시감!
혹은 정이나 채여도 상관없겠다.
나 역시도 언어장애와 식이장애를 가진 관계장애인이다.
격정과 절망 속에 나 역시 더이상 나를 밀어넣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는 단절을, 결별을 선택했다.
그렇게 해서 조금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생각만틈 많이 자유로워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나는 내 선택들이 옳았음을 안다.
정말 내 이야기였을까?
그녀는 이 이야기들를 도대체 어떻게 온전히 꺼내왔을까?
겹쳐지는 이력(履歷) 앞에 나는 손수무책이다.
내 한 손이 완벽히 나를 배신하고 다른 행동을 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심정.
그랬나!
"그가 지금 풀숲에서"의 그의 아내처럼 나도 외계인손증후군을 겪었던걸까?
어쩌면 "화분이 있는 마당"에서처럼 귀신이 차려진 밥을 달게 먹으며 담소를 나눴을지도 모르겠다.
현실을 때론 넘기 힘든 벽으로 가려진 이물(異物)의 삶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신경숙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 우울하고 고독한 시대에도 문학이 있다는 것!
그래서 나는 아직 설렌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