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2. 8. 13. 08:23

<바람의 화원>, <뿌리깊은 나무> 이정명이 새로운 소설을 출판했다.

이번 소설의 화두는 윤동주 시인이다.

드라마로도 대성공을 거둔 위의 두 소설을 제외한 다른 소설들은 사실 실망스러웠다.

나름대로 오랜 침묵끝에 이정명의 새 책이 나왓다고 해서 기대하고 있었다.

그것도 성공한 전작들처럼 2권이라니 뭔가 다를 것도 같았다.

(2권이라는 정형화의 늪에 내가 길들여졌나?)

 

1917년 12월 30일 중화민국 종북부 간도성 화룡현 명동촌에서 출생.

1945년 2월 16일 그토록 바라던 해방을 여섯 달 남겨놓고 형무소에서 사망.

29세의 짧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 시인 윤동주.

확실히 그의 삶은 현재를 사는 우리에겐 일종의 비밀스런 금서(禁書)이자 갚을 길 없는 빚이다.

 

<별을 스치는 바람>은 

윤동주가 하라누마 도주라는 이름과 645번이라는 수형번호로 수감됐던

호쿠오카 형무소의 한 간수 스기야마의 살인사건으로 시작된다.

조선인을 상대로 악명 높은 고문을 가했던 고문관이자

형무소에 들어오고 나가는 모든 우편물을 심사했던 검열관 스기야마.

그를 죽인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하나씩 밝혀지는 진실들과 음모들.

그리고 거대한 거짓과 그 이면에 감춰진 진실들...

(출판사 홍보문구처럼 허접한 표현이 봉두난발한다...쩝!)

 

픽션과 팩트의 경계!

이정명은 팩션 소설에서 일종의 일가를 이루고 싶어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전작들만큼 치열한 고증이 없는 것 같아 좀 아쉽다.

이번 소설은 픽션쪽에 더 많이 기운 것 같다는 게 개인적인 의견!

실제로 이정명에게 작가적인 상상력이 무궁무진했던건 아닌가 짐작한다.

그래도 윤동주가 동료 간수들의 대필 엽서를 통해 검열관을 서서히 설득했다는 설정은 대단하다.

(그건 확실히 강력한 최면이었고 깊은 중독이었다.)

문장은 사람의 영혼을 들여다보는 거울이란다.

그 문장을 통해 벗어날 수 없는 반복적이고 집요한 유혹으로 검열관을 교화시킨 윤동주!

...... 그것이 글이 지닌 힘일지도 모른다고, 모든 변화는 글에서 시작되었다. 한 줄의 문장이 사람을 변하게 했고, 한 자의 단어가 세상을 변화시킨 것이다 ......

문장의 미로에 빠져본 사람은 안다.

결국 그 문장에 끝장이 난다는 것을.

미로 속에서 헤매다 광인(狂人)이 되거나 혹은 그 문장을 섬기는 구도자가 되거나 둘 중 하나다.

시(詩)가 말(言)의 사원(寺)이라는 표현은 그래서 신성한 경전의 문구가 되기에 충분하다.

이 이야기의 진짜 주인공은 그래서 윤동주가 아닌 일본인 간수 스기야마일 수밖에 없다.

윤동주에게 교화된 스기야마,

그의 무자비한 폭력은 그러니까 처참한 상황을 피하기 위한 유일한 보호막이었다.

...... 스기야마가 죄수들의 이마를 찢어 놓은 것은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죄수들이 그렇게 두려워했던 가혹한 매질로 그들의 목숨을 지켜온 것이다.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입힌 상처였다 ...... 

스기야마의 죽음으로 더이상 보호받을 수 없게 된 윤동주는 결국 의무조치 대상자가 되어  

일본의 생체실험에 이용된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가 알고 있는 결말에 이른다.

그러나 아는 것과 이해하고 기억하는 일은 별개의 문제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총탄도 포탄도 아니란다.

그건 다름 아닌 바로 "글"이란다.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고 사람들을 죽이는 데에는 단 한 줄의 글만으로도 족하단다.

생각해보면 역사 속에 서 있는 우리 모두는

그래서 글을 통해 전승되고 이어진다.

이정명이 윤동주를 다시 깨워낸 건 그의 말대로

진실을 기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억하기 위해서인지도 모르겠다.

 

광복절이 가까워서일까?

이 이야기를 읽는  동안 실제 책의 내용과 줄거리보다 나는 조금 더 암울했고 쓸쓸했다.

29살.

그의 나이는 두고두고 멍울진다.

그보다 한참은 더 살았음에도 마냥 허접한 내 인생 또한 두고두고 면목없다.

죄가 너무 크다.

 

* 문장이 사람을 정말 바꾸기는 하는 모양이다.

  이정명의 소설을 읽고 이렇게 반성문을 쓰고 있으니...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