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3. 3. 25. 08:26

지식소매상 유시민이 정치를 그만 두겠노라 선언했다.

솔직히 너무나 반가웠다.

그가 정계은퇴를 선언해서 반가웠던 게 아니라

(정치인으로서 유시민에 대해서라면 나는 잘 모른다.)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의 후반부를 기쁨으로 충만한 삶이 되게 하기 위해 돌아간다는 그의 결절이 반가웠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건 또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어쩌면 나는 그의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일종의 부러움과 질투의 시선으로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더라도!

지식소매상으로서의 그의 글들을 다시 읽을 수 있다는 건,

확실히 큰 즐거움이자 행복이다.

정치은퇴를 선언하면서 함께 나온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읽으면서

정치에 대해서 잘 모르는 나조차

우리나라 현실정치의 참담함이 막막하다.

 

...... 내게 정치는 내면을 채우는 일이 아니라 소모하는 일이었다. 이성과 감정, 둘 모두 끝없이 소모되는 가운데 나는 인간성이 마모되고 인격이 파괴되고 있음을 매일 절감했다.

나는 정치의 일상을 즐기지 못했다. 글쓰기는 지성과 영혼을 건드리는 작업이지만 정치는 국가권력을 다루는 사업이다. 국가권력의 본질은 합법적이고 정당하다고 간주되는 폭력이다. 합법적이고 정당하다고 인정되는 폭력이라 할지라도, 폭력으로는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거나 마음을 행복하게 할 수 없다. 정치가 해야 할 일은 합법적이고 정당한 폭력을 선용함으로써 사람들이 저마다 원하는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권력이 걸려 있기 때문에 정치는 글쓰기와 달리 거의 언제나 살벌한 대결과 가시 돋힌 공격, 분노, 경쟁심, 질투, 굴욕과 같은 감정의 격동을 동반한다 ......

 

그의 말대로 그는 정치가로서 실패했는지도 모른다.

권력투쟁으로서의 정치가 내포한 "비루함과 야수성"을 인내하고 소화할 힘이 너무 부족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안철수를 그렇게 염려하는지도...

대한민국 정치의 비루함과 야수성을 이렇게 잘 알고 있는 그가 굳이 현실 정치를 택했던 이유는 도대체 뭘까?

유시민은 이 질문에 대해 책으로 답한다.

"지난 10년간 정치는 내 직업이었다. 내 일이었다. 그런데 글쓰기와 달리 정치는 내게 일인 동시에 놀이일 수는 없었다. 정치활동의 일상적 과정이 내게는 즐겁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치를 직업으로 삼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원래 직업이란 안정적 수입을 가져다주는 생업을 의미한다. 적어도 내게는 정치가 생업으로서 적합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왜 정치를 했는가? 내게 정치는 연대의 한 방법이었다. 연대는 아픔과 기쁨에 대한 공감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과 손을 잡고 사회적인 선과 미덕을 실현하는 행위이다. 그런 점에서 내게 정치는 스무 살에 야학교사를 한 것과 방식만 다를 뿐 본질은 같은 것이었다."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라!"를 외치는 유시민에게 정치란,

존엄과 신뢰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그리고 존엄과 품위는 자기 힘으로 삶을 이끌고 가야 생길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은 무엇으로 그들의 존엄과 신뢰를 국민들에게 보여줬고, 또 앞으로 보여주게 될까?

안타깝게도 희망적인 답을 기대하기엔 아직 요원하다.

"존엄"은 "가치(value)"를 따질 수 없는 것이라는데 대한민국의 정치는 폭력을 휘두르면서까지 "가치" 하나에 목숨을 건다.

고귀하고 위엄있는 정치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제발 "조폭정치"라는 오명만이라도 씻을 수 있다면 나는 정치인들을 진심으로 존경하겠다!

"가치"를 중시하겠다면 소속정당의 가치를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의 가치를 위해서

핏발을 세우고 주먹질을 하길 진심으로 바래본다.

진심으로 "타인의 고통과 기쁨에 공명"하면서 "함께 사회적 선을 이루어나가는 최고의 행복"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한 번이라도 누릴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런 "신념"을 가진 정치인이 나와주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 사람들은 저마다 옳다고 믿는 삶의 원칙이 있다. 그런 것을 모두 합쳐서 신념이라고 하자. 나름의 신념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삶의 목표와 방법을 설정하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행위의 준칙을 세울 수 있다. 그런데 신념의 역할은 인생의 철학적 토대를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신념은 때로 삶 그 자체가 된다. 사람은 신념을 위해 살기도 하고 신념을 위해서 죽기도 한다. 신념은 단지 머리에 든 생각에 머무르지 않는다. 일, 사랑, 놀이가 되고 아름다운 사회적 연대와 참혹한 국가 범죄를 만들어낸다. 이렇게 신념은 누군가의 인생 전체를 채우기도 한다.

신념에 따른 삶과 죽음이 훌륭하려면 먼저그 신념이 훌륭해야 한다. 신념 자체가 훌륭하지 않으면 그 신념을 따르는 삶도 훌륭할 수 없다.... 훌륭하게 살기 위해서는 훌륭한 신념을 가지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삶에서 더 중요한 것은 신념 그 자체보다는 그것을 대하는 태도이며 그 신념을 실천하는 방법이다. 신념이 잘못된 것이 아닌 경우에도 그것을 실현하는 방법을 잘못 선택하면 삶이 죄악의 구렁텅이에 빠진다.

고결한 이상, 바위처럼 굳건한 신념은 아름다울 수 있다. 그러나 올바른 이상과 신념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을 써도 정당하다는 생각은 자신과 타인의 삶을 치명적으로 위협한다 ......

 

정치인 유시민은 그의 고백처럼 확실히 "실패"했다.

신념을 실천하지 못했고, 신념을 지키지 못했고, 신념과 끝까지 동행하지 못했다.

게다가 "연대"에도 실패했다.

유시민이 현실정치에 패배했음을 나 역시 인정한다.

그러나 신념을 배반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을 붙들고 놓치 않는 것 역시 어리석고 무모한 일이다.

굳이 인생시계의 후반부를 들먹이지 않더라고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행복해야 한다.

즐거워야 한다.

아름답게 사랑해야 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는에 대한 대답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답을 먼저 찾으면 그 길이 조금은 보이지 않을까?

 

이 글을 쓸 때 유시민이 어떤 심정이었을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나는 그가 새로운 "연대"를 시작했노라 믿고 싶다.

그는 다시 글을 쓰면서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그리고 연대할 것이다.

그래서 반갑다.

지식소매상 유시민의 귀환이!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