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1. 3. 23. 05:45
2010년 8월 27일 소설가이자 번역가, 평론가, 신화연구가였던 이윤기의 갑작스런 사망 소식은
내겐 엄청난 충격이었다.
심장마비라고 했다.
얼마 후엔 이런 소식도 있었다.
양평에 있는 집필실 책상 서랍에 그대로 책으로 출판할 수 있는 원고가 남아있노라고...
그리고 2011년 그의 소설집과 산문집이 유고집이란 부제를 달고 동시에 출판됐다.
소설집 <유리 그림자>와 산문집 <위대한 침묵>.


"죽음은 죽는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잊히는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이렇듯 잊히지 않고 있으니, 그 떠난 자리가 참 아름답다."

산문집 속에 담긴 이 글귀는 그의 영면으로 드디어 완성되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책을 안 읽어본 사람이 우리나라에 있을까?
그가 쓴 그리스 로마 신화는 재미있었고 그리고 그 재미보다 더 유익했었다.
그래서 인기있는 연재소설을 기다리듯 1권을 읽고 2권을,
2권을 읽고는 3권을 기다렸었다.
재미와 유익함 뒤에는 박학함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독특한 이력들과 다방면에 걸친 글쓰기...
그래, 어쩌면 그때부터 이윤기는 신화의 세계 속에 사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상하게도 그는 이국의 나라 신화를 이야기 할때조차도 뭔지 모르게 구수하고 다정했다.
그 숱한 어렵고 긴 인물의 이름이 이상하게도 그의 글 속에선
바둑이와 재미나게 노는 철수나 영희 같았다.
거대한 몸짓의 그리스 로마 신화가 동구밖 과수원길 이야기처럼 느껴졌었다.
신화를 상대한다는 박학함의 타성을
그는 다정하고 명쾌한 글을 통해 호기있게 깨부쉈다.
그리고 이 모든게 1999년 2월 흑해가 내려다보이는 터기의 "흐린 주점"에서 시작된 것임을
이 책을 읽고 알았다.

...... 그렇다, 나도 나의 흑해를 건너자!
나의 목적지는 그리스였다. 로마였다.
그다음 해인 2000년에는 한국으로 돌아와 그리스와 로마 신화 책을 썼다. 반응이 좋았다. 내가 퍽 자랑스럽게 쓰거니와, 이런 우여곡절 끝에 나의 신화 책은 200만 명에 가까운 독자들 손에 들어갔다.
터키의 흐린 주점에서, 나의 흑해를 건너야 한다고 결심하지 않았으면 나는 어찌 되었을꼬! 나의 신화 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좌절해 잇는 젊은이들을 위해서 쓴다. 흑해는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

 


그가 남긴 37편의 글은은 소소하고 다정하고 평범한 일상들의 기록이다.
작가 이윤기의 글이 아니라 생활인 이윤기의 글!
(그래서 더 눈밑이 붉어진다)
그는 경기도 양평의 집필실 주면에 1000 여 그루의 나무를 심고 가꾸면서
개인적으로 참 멋진 신화 속에 지냈던 것 같다.
글 여기저기에 자연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깊다.
...... 한 번도 "꽃"으로 피어보지 못한 채 나는 "잎'으로만 살았다. 그래도 잘 살고 있느니 젊은이들이여, 힘들 내사라 ......
중학교 졸업후 거의 모든 것을 독학으로 배우고
신춘문예는 당선이 아닌 가작으로 입선하고
대학도 중퇴를 해버린 이윤기의 "잎"같은 푸른 말에 나는 덩달아 위로받았다.

나는 어쩐지 그가 신화 저 너머의 세계에서
제우스나 바쿠스, 헤라클라스나 큐피트와 함께 옹기종기모여 술잔을 치고 있을 것만 같다.
이윤기가 한국에서 이들의 유명세에 한 몫 단단히 했으니
아마 그들도 고마워하며 술잔을 넙죽넙죽 받아넘기고 있지 않을까?
어쩌면 그들 옆에서 이윤기는 개구진 웃음을 웃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제우스의 지팡이와 번개, 바쿠스의 포도주가 담긴 술병, 큐피트 활을 보면서
또 다른 이야기꺼리를 생각하고 있을지도...
그 뒷얘기를 다 들을 수 없음이
이젠 왠지 분하고 억울하다.
신화와 침묵의 세계!
이윤기는 자신이 왔던 곳으로 그렇게 돌아갔다.
그가 없는 신화의 세계란...
어쩐지 밍밍한 맹탕같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