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2. 6. 20. 08:01

그런 책들이 있다.

읽고 난 후에 바로 첫 장으로 다시 되돌아가 되읽기를 시작하는 책과,

한 번 읽고 난 후 일주일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읽게 되는 책.

전자에 해당하는 책이 김주영의 <잘가요 엄마>였고

후자에 해당하는 책이 박범신의 <은교>였다.

그러나 두 부류의 책에은 공통점이 있다.

결코 2번의 읽기로 끝나지 않고 언제든 현재 진행형의 책읽기로 급변할 소지가 다분하다는 사실이다.

이런 책은 거의 항상 읽을 수록 다른 것들이 보이고,

읽을 수록 깊어지고,

읽을 수록 먹먹해지고,

읽을 수록 살붙이 같아 진다.

일흔 셋의 김주영이 쓴 참회의 사모곡.

단지 소설만이 아니었기에 더 남루하고 곡진하고 애잔했는지도 모르겠다.

 

어머니는 나에게 크나큰 행운을 선물했다. 어머니와 내가 함께한 시간 속에서 어머니는 나로 하여금 도떼기시장 같은 세상을 방황하게 하였으며, 저주하게 하였고, 파렴치로 살게 하였으며, 쉴새없이 닥치는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어머니가 내게 주었던 자유의 시간이었다. 그것을 깨닫는 데 너무나 많은 시간이 걸렸다. 아니 어머니께서 우리와 유명을 달리하고나서야 비로소 그것을 깨달았다.

 

철부지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내 생애에서 가슴속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진정 부끄러움을 두지 않았던 말은 오직 엄마 그 한마디뿐이었다. 그 외에 애가 고향을 떠나 터득했다고 자부했었던 사랑, 맹세, 배려, 겸손과 같은 눈부신 형용과 고결한 수사 들은 속임수와 허물을 은폐하기 위한 허세에 불과하였다. 이 소설은 그처럼 진부했었던 어머니에 대한 섬세한 기록이다.

 

마지막 장에 있는 작가의 말을 나는 몇 번이나 되읽었는지 모른다.

확실히 지상의 모든 자식은 어머니라는 존재에 갚을 수 없는 부채를 지고 있다.

아마도 그건 윤회나 부활을 거듭해도 결코 탕감될 수 없는 부채이리라.

다른 모든 것들은 단시 허세에 불과했다는 일흔 셋의 김주영의 고백이

나는 절절했고 그리고 섬득했다.

나란 존재가 평생 어머니를 파먹고 사는 무간지옥의 아귀(餓鬼)임이 분명할 것 같아서... 

 

이 소설은 작가 김주영 어머니에 대한 글이란다.

실제로 그의 모친이 2007년 정부에서 주는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 수상자로 결정되는데

어머니는 시상식장에 끝내 올라오지 않으셨단다.

작가의 어머니가 남긴 말은 소설 속 어머니의 말과 정확히 일치한다.

 "골목마다 종갓집이 버티고 있는 이런 괴팍스런 동네에서 사내를 두 번씩이나 갈아치웠다고 입들을 흔들비쭉거리고 눈총받고 살아왔는데, 장한 에미상을 받았다면 그 사람들 배꼽을 잡고 웃을라."

작가는 소설을 쓰면서 어머니의 이야기를 거의 사실 그대로 쓰느라 오히려 어려웠노라 고백했다.

사실과 허구 사이를 계속 고민하다 결국 사실을 선택했노라 말했다.

일흔이 넘긴 나이에 이제 더 이상 숨기고 자시고 할 것이 없었노라고...

일흔의 노구(老軀)가 남긴 어머니에 대한 참회곡.

"내려오셔야 하겠습니다"

성씨 다른 동생에게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아들은 무허가 화장터에서 어머니의 뼈와 살을 태우고 그 재를 고향땅에 흩부린다.

어미의 죽음에 이렇게 형식적이고 무덤덤한 후레자식이 있다니...

나는 홀로 어이없이 분개했다.

(내 속이 한 마디 한다. 너라 잘해라!)

아들은 어미를 보낸 후 동생과 보내는 짧은 시간 속에서 다시 어머니를 만났다.

지상에서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이뤄지는 모자(母子) 간의 화해는,

일종의 부러움이자 지독한 시기였다.

참회할 것만 가득한 나는

지워지지 않을 원죄(原罪)처럼 꾸역꾸역 이 책을 읽어냈다.

가슴 속에 옹이 하나 굳게 남겨둔 채...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