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2. 8. 8. 08:19

재미도 있고 나름대로 의미도 있는 책을 한 권 봤다.

개인적으로 여러 사람이 우루루 몰려서 토막토막 써내려가는 글을 좋아하지 않는데

이 책은 강연을 그대로 옮겨서 그런지 현장감 있다.

그리고 지금의 우리 현실에 대한 깊은 성찰과 고민 솔직한 담론들도 만날 수 있다.

2010년 겨울부터 2011년 여름까지 진행된 정동문예아카데미 팔로우(Follow)특강을 모은 책 <@좌절 + 열공>

좌절과 열공이라는 조합이 좀 뜬금없이 느껴졌는데

책을 읽으면서왜 이런 주제의 조합을 선택했는지 이해가 됐다.

총 9명의 강연자들은 당대의 현실과 밀접한 관계을 맺고 있는 지식인이자 살아있는 현장인이다.

실제로 강연을 들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늦게나마 책으로 접할 수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 좌절 - 좌절의 시대,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조  국 : 시민사회의 좌절, 좌절이 좌절을 부르는 사회

정혜신 : 좌절의 심리학, 좌절을 치유하는 놀라운 명약, '공감'

김진숙 : 노동자의 좌절, 대중의 역동성을 살려 낸다면, 좌절은 없다

도종화 : 시인의 좌절, 시대의 좌절 - 아이러니한 '좌절의 연금술'

강  풀 : 예술가의 좌절, 좌절 '그까이 꺼!' 좋아하면 이긴다

 

@ 열공 - 이 시대, 우리가 진짜 열나게 공부해야 하는 이유

강신주 : 철학하는 즐거움, 왜 우리는 철학을 공부해야만 하는가?

정희진 : '인문학 위기 담론'의 위기, 인문학의 위기는 언어의 위기, 재현의 위기

엄기호 : 인문학, 길 잃은 세상에서 길찾기 - 땀에 젖은 지폐를 거부하는 사회에서 길찾기

김진혁 : 지식채녈e 탄생의 진화, 우리 사회의 새로운 공부 방식, 지식채널 e

 

조국, 김진숙, 도종화, 엄기호의 강연을 주목해서 읽었다.

"접시꽃 당신"의 도종환 시인은 단지 서정시인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좀 부끄러웠다.

내가 안다는 게 얼마나 일부분에 불과한 건지...

그의 시 "담쟁이"를 읽으며

이 좌절의 시대에 해답을 주는 시라고 생각했다.

 

담쟁이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엄기호의 강연은 기회가 되면 꼭 들어보고 싶다.

글을 읽으면서 뭔가가 내 속에서 한꺼풀 벗겨지는 느낌이었다.

의미 없이 흘러가는 시간 크로노스의 시간과

의미로 충만한 키이로스의 시간을 읽으며 나는 섬득했다.

나는 오랫동안 "유령"이었구나 싶어 암담했다.

말할 수 없고, 자기의 고통을 드러낼 수도 없는 존재,

자기의 고통을 얘기했을 때 아무도 안 들어 주는 존재인 유령!

더불어 이 시대 전제가 유령의 집에 사는 유령의 시대라는 데에 절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가 사는 건,

강신주의 말처럼 사랑이라는 막중한 무거움 때문인지도

혹은 엄기호의 말처럼 우연에 열려 있는 경험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짧은 글과 말 속에 세상을 짊어지고 갈 수 있는 엄중한 화두가 담겨있다.

이 한 권의 책을 나는 내내 두 귀로 경청하듯 읽었다. 

두루두루 9번 놀랄 수 있었던 건 오로지 9명의 지식인, 행동가 덕분이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힘차게 깨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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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건 굉장히 막강한 힘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없어지면 그 사람이 슬퍼할 테니까 오래 살아야 됩니다. 삶의 이유를 여러분 자신한테 찾으면 무조건 망가집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야 되고 그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살아야 됩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작품처럼 우리 자신은 가볍습니다. 언제 무거워지냐면 사랑하는 사람을 목마 태우듯이 어깨에다 짊어질 때입니다. 그럼 무거워집니다. 그 무거움이란 건 내가 원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 때문입니다. 그러면 의외로 가는 길이 가벼워집니다.                .............  강신주

 

예측 가능한 경험은 진짜 경험이 아닙니다. 경험이라고 얘기할 수 없습니다. 알랭 바디우의 표현을 빌리자면 '저기에는 열정은 없고 쾌락만 남아 있는' 겁니다. 위험을 감수하는 경험, 우연이 있는 경험일 때 우리는 열정을 바칠 수 있습니다. 반면 위험이 제거되고, 우연이 제거되어 있을 때 우리가 받을 수 있는 건 오로지 쾌락뿐입니다.

 

경험에는 우연이 개방되어 있기에 가장 핵심적인 위험은 바로 아무것도 경험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겅험은 체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경험의 반대가 체험입니다. 체험은 통제가 됩니다. 어떤 프로그램이 있고 뭘 보게 될지 어떻게 되는지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체험은 새로운 걸 알게 되는 과정이 아니라 확인하는 작업일 뿐입니다.

 

우리의 경험이 우연에 열려 있을 때 우린 극단적으로 경험이 없는 걸 경험합니다. 재밌는 사실은 그걸 통해서 우리가 경험하게 되는 건 '경험' 그 자체 입니다. 아무것도 못 했다는 것에서 경험이라는 게 무엇인가를 경함할 수 있는 겁니다. 이건 사실 두려운 일입니다.

우리는 왜 경험이 죽어 버린 시대에서 살까요? 바로 두렵기 때문입니다. 두렵기 때문에 경험이 죽어 버린 시대를 살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말로는 이런 표현도 잇어요. '경험의 가장 큰 특징은 죽음과 닮아 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경험을 했을 때는 추상화가 될 수 없습니다. 지나가 버리는 것에 격력히 저항하게 됩니다. 그때 우리가 보게 되는 게 바로 죽음입니다. 결국 불멸하는 건 없다는 사실을 경험하게 됩니다.                      ............  엄기호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