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4. 3. 6. 08:12

오랫동안 벼려왔던 책을 이제야 읽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을 읽는다는게 두려워 내내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 읽게 됐다.

그냥 무심히 아무렇지 않게 집어들고 책장을 넘겼다.

그동안 버텨왔다는 게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빅터 플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아마도 이 책은 밀어냈던 시간보다 더 오래 나와 함께 하게 될 것 같다.

한번도 본 적은 없지만 SBS TV 프로그램 <짝>의 출연자가

마지막 촬영을 남겨놓고 숙소에서 자살을 했단다.

스물 여덟, 꽃보다 더 아름다울 나이.

만약 그녀의 손에 이 책이 쥐어졌었다면!

어쩌면 그녀는 살아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잃은 건 "생명"이 아니다.

생명 이전에 살아야 하는 이유, 살아 있어야 하는 이유를 잃었다.

 

2차 세계대전.

정신과 의사인 빅터 플랭클은 이름을 잃었다.

악명높은 나치의 강제수용소 아우슈비츠에서 그는 번호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하는 수감자에 불과했다.

죽음은 너무나 가까웠고,

그래서 수감자들은 타인의 고통과 아픔에 무감해졌다.

발진티푸스로 죽은 동료의 주검 앞에 슬픈 애도의 시간은 없었고

누군가는 그 사람의 주머니를 뒤져 혹시라도 남아있을지 모를 빵부스러기를 찾고

누군가는 이미 넝마가 되어버린 그의 옷과 신발을 벗겨냈다.

죽은 육체는 하나의 사물이 된다.

계단에 머리가 함부러 짓찧어지며 운반되 소각장으로 버려지는 쓰레기더미.

그 자리는 또 다른 번호로 채워진다.

번호와 번호는 그렇게 자리를 비우고 채운다.

 

이 세상에는 사람의 이성을 잃게 만드는 일도 있지만

더 이상 잃을 이성조차도 없게 만드는 일도 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살아남는 사람은 분명히 있다.

번호에 불과한 사물에서 이름을 가진 하나의 존재로 되돌아오는 그런 사람.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견딜 수 있다.

그 "의미'라는게 거창하고 대단한게 아닐지라도 말이다.

빅터 플랭클의 술회는 너무나 담담하고 단백하다.

그래서 읽는 내내 나는 오히려 평화롭고 평온했다.

 

피할 수 없는 시련 앞에서 당신은 어떤 태도를 취하겠는가?

이 책은 내 면전에서 거리낌없이 질문을 퍼붓는다.

아마도 대답을 찾을때까지

나는 계속 빅터 플랭클을, 아우슈비츠를 대면하게 될것 같다.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

비록 명확하게 이름 지을 순 없지만 내게도 그게 있음을 믿는다.

그걸 찾아봐야겠다!

아니 찾아야겠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