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6. 3. 25. 07:50

의심의 여지가 없다.

주제 사라마구는 위대한 작가다.

이건 누가 뭐래도 변하지 않는 확고한 진실이다.

신약성서를 비튼 <예수복음>을 읽으면서도 혀를 내둘렸는데

그는 자신의 마지막 작품 <카인>에서는 구약을, 아니 우리가 "여호와"라고 부르는 그 신성불가침의 영역을

가차없이, 실랄하게, 그리고 유감없이 고발한다.

나는 유신론자다.

교회에는 안나간지 오래됐지만 종교란에 "기독교"라고 적는 기독교인이다.

(이단이나 사이비는 아니지만 독실한건 아니고 뭐 나이롱 신자... 그 쯤 ....)

 

동생 아벨을 죽인 카인이 여호와를 향해 갖는 의문은 상당히 정당해보인다.

카인의 번제가 아벨의 번제보다 정성스럽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여호와는 아벨의 번제를 선택했다.

카인은 말한다.

"주께서 아벨이 죽도록 내버려두신 것보다 큰 신성모독은 없다"고!

이 발언만으로도 심히 놀라운데

바로 여호와가 공동책임을 인정하는 뉘앙스까지 풍긴다.

"너는 나를 피해 유리하는 자가 될 것이나, 아무도 너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

 

시간여행자가 되어 세상을 떠도는 카인.

또 다른 여러 현재들을 지나오는 동안 여호와에 대한 카인의 의심은 확고해진다.

아들 이삭을 번제로 죽이려는 아브라함을 보며

도대체 무슨 하나님이 아버지더라 자기 아들을 죽이라고 명령하냐며 분개하는 카인은

불타는 소돔과 고모라를 바라보면서는

죄없는 아이들까지 왜 죽어야 하는지를 이해할 수 없다 고백한다.

정직한 욥의 믿음을 실험하기 위해 사탄과 거래하는 여호와를 향해 의롭지 못하는 카인은 묻는다.

"여호와가 자신을 믿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데 왜 사람들이 여호와를 신뢰해야 하나요?"

 

어쩌면 기독교인들은 이 책을 보고 사탄의 책이라며고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카인의 질문과 분노는 정말 부당한가?

소위 독실한 신자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은

카인과 같은 의문을 품어본 적이 없었을까?

여호와의 전지전능함과 공평함에 반기를 들고 싶다는 생각,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을까?

 

 

아주 독실한 기독교인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분은 스스로를 무신론자로 말한다.

적어도 대한민국이라는 곳에서는 신은 죽었다고...

솔직히... 반론을 재기할 수가 없었다.

(어찌됐든 난 기독교인인데...)

 

카인이 내린 결론은 이렇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사랑하지도 않고

누군가 행복해지는 걸 눈뜨고 못보는게 분명하다고!

이 모든 죽음에 대해 도대체 누가 여호와를 벌할 것이며,

왜 아무도 하나님께 책임을 묻지 않느냐고.

인류의 역사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오해의 역사이니

하나님은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우리는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이 책을 읽는 동안 여러 차례 머릿속이 백지상태가 됐다.

답답함에 연달아 2번을 읽었고

아마 앞으로도 몇 번은 더 읽게 될 것 같다.

결론은... 없다.

카인은 여전히 또 다른 현재 속에 있다.

그리고 그 옆에 나 역시 있다.

 

너는 진실로 카인, 아우를 죽인 그 비열하고 악한 자로구나.

당신만큼 비열하고 악하지는 않습니다.

 

오, 주여!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