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2. 8. 10. 08:16

김훈의 글들을 다시 읽고 있다.

단문이 주는 서늘함은 이 계절을 한기로 채우기에 충분했다.

김훈의 버르장머리없는 단문을 읽으면서 그 한기때문에 실제로 몸살을 앓았다고 작가 박완서는 말했다.

고 박완서는 김훈의 글 속에서 자신이 겪은 6.25의 한기를 다시 체화했다.

한 사람의 문장이 또 다른 한 사람의 몸에 한기를 줄 수 있다!

김훈의 문장을 읽으며 나는 경이로웠고 그리고 넌더리났다.

아주 오래전에 <현의 노래>를 읽었었다.

이해하기 난해했다.

읽으면서 나는 갑갑했고 그리고 토막토막 절망적이었던것도 같다.

<칼의 노래>가 성공하고 대통령이 읽었다며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을때는

대중의 중심없는 쏠림에 은근히 조롱도 했었다.

현학적이며 고답적인 사람이라고 폄하하며 멀리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지금 다시 읽은 <현의 노래>는...

절망적이었고 참혹했고 끔찍했다.

가야의 순장제도를 자세히 묘사한 시작은 일종의 경고이자 장엄한 레퀴엠이었다.

모든 것은 소리로 이야기되는가!

소리는 몸 속에 있지 않지만 몸이 아니면 빌려올 수 없는 게 소리란다.

소리는 곧 제자리로 돌아가고 그 자리는 바로 적막이란다.

소리는 거스를 수 없는 것이란다.

 

... 소리는 본래 살아 있는 동안만의 소리이고, 들리는 동안만의 소리인 것이오...... 살아 있는 동안의 이 덧없는 떨림이 어찌 능침을 편안케 하고 북두를 진정시킬 수가 있겠소. 소리가 고을마다 다르다 해도 쇠붙이가 고을들을 부수고 녹여서 가지런히 다듬어내는 세상에서 고을이 무너진 연후에 소리가 홀로 살아남아 세상의 허공을 울릴 수가 있을 것이겠소? 모를 일이오. 모를 일이로되, 소리는 본래 소리마다 제가끔의 울림일 뿐이고 또 태어나는 순간 스스로 죽어 없어지는 것이어서, 쇠붙이가 소리를 죽일 수는 없을 것 아니겠소? 죽일 도리가 없을 것이고, 죽여질 리가 없지 않겠소? 그 또한 모를 일이로되, 아마도 그러히지 않겠소......

 

신라에 의해 하나씩 무너지는 부족국가 가야의 두 장인(壯人) 야로와 우륵.

쇠의 흐름을 띠라 신라와 백제, 가야에 쇠의 힘을 매매(賣買)하는 대장장이 야로.

사라져가는 가야의 고을을 12줄 금(琴)에 담는 악사 우륵.

쇠는 소리를 이기지 못하지만

그러나 그 소리 역시 처연하다.

잊혀진 모국의 소리를 12줄 금(琴)에 담으며 우륵은 통곡하지 않았을까?

소리로 전해질 나라가 전설처럼 아득하지 않았을까?

신라에 의탁하면서 우륵은 제자 니민에게 말한다.

"금을 들고 더 깊은 지옥으로 들어가자"

지옥이라는 단어가 주는 천금의 무게가 순간 고스란히 내 어깨 위로 넘어왔다.

뻐근하고 깊게 들어와 오래 머무는 통증이었다.

쇠의 흔적은 소리의 흔적보다 오히려 가볍고 얕다.

미루지 못하고, 머뭇거리지도 못하는 소리는 목숨이다.

사람의 생이 다음 세대로 넘어가듯이

소리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 계속 현재를 살아낸다.

주인 없는 소리는 울리는 동안만 소리이고, 들리는 동안만 온전히 소리다.

 

...... 우륵의 몸이 소리 속으로 퍼져나갔고, 소리가 몸 속으로 흘러들었다. 몸은 소리에 실려, 없었던 새로운 시간 속으로 흘러나갔고, 흘러나간 몸이 다시 돌아와 줄을 당겼다 ......

 

마치 어딘가에 가야의 12줄 금을 뜯는 우륵이 아직 살아 있을 것 같다.

쉼없는 폭염의 서울 한복판.

그의 소리는 어디쯤에서 깊게 흔들리고 있을까?

주인없는 그 소리를 나는 오래오래 쫒고 싶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