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끄적 끄적...2011. 12. 9. 06:20
집 - 병원 - 다시 병원 - 그리고 집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 유일한 위로와 휴식은 김훈의 <흑산>이었다.
비교적 책을 빨리 읽는 편이지만 이 책은 조금씩 조금씩 사흘에 걸쳐 읽었다.
지하철로 이동하는 시간이 그래도 가장 오랫동안 책을 붙들고 있을 수 있는 시간.
간절하니 모든 게 절박해진다.
김훈의 문체 역시도 그런 간절한 절박함이 날숨과 들숨으로 들낙거렸다.
처음 김훈의 글을 읽을 때
그의 문체는 마치 어려운 상전을 대하듯 허리가 절로 굽혀졌다.
읽으면서 때로는 비굴했고 때로는 난감했다.
나는 이유도 모른체 멍석말이 당해는 하인처럼 주인의 벼락같은 매질 앞에 쩔쩔맸다.
역사와 나란히 말을 주고 받는 허구의 세계가 손을 뻗으면 잡히듯 가까워 두려웠다.
군더더기를 용서치 않는 가차없이 잘려진 강팍한 문장이 단정해 섬득섬득했다.
글이란 이런 거구나 턱없는 비굴에 혼자 아득히 절망했다.
아무렇게도 잡아 올려지는 잡어(雜魚)처럼 나는 일순간 비천한 몸이 되어 버둥댔다.
대체 김훈이 뭐라고!



그런데 지금...
나는 지금 오롯이 그의 문장 안에서 위로받고 있다.
사학죄인 정약전의 흑산도 유배길을 함께 건너며
나는 비릿한 해풍에 빳빳하게 말려지는 느낌이었다.
비린 것이 지천인 곳에서 그 비린 삶 속에 뒹구는 인간과 버려진 생이 부러워 몸둘바를 몰랐다.
나는 비릿한 생물의 펄덕임을 바라보는 것도 죄스러웠다.
김훈은 하쟎았다.
그러나 그 하찮음이 거친 풍랑처럼 배를 흔들었다..
그러니 김훈의 하찮음은 더 이상 하쟎음이 아니다.
하쟎음일 수 없다.
그 하쟎음은 위대했고 거대했다.

성근 눈발이 눈에 밟힌다.
그 눈발을 목격하며
나는 내내 하찮음에 대해 생각했다.
강팍함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병(病)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언제쯤 병(昞)해지는가?
나의 병(病)을 병(昞)하지 못함에서 비롯됐다.

흑산도 홍어같은 아침이다.
톡 쏘는 독기가 차갑게 매섭다.
나는 아직
멀.었.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