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 끄적끄적2018. 10. 4. 09:16

오후 1시 45분.

비가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한다.

보겔도, 보힌도 오래 머물지 않았던 이유는

혹시라도 빈트가르(Vintgar) 협곡을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블레드에서 보겔과 보힌, 그리고 다시 블레드로 돌아가 빈트가르 들렀다 류블라냐까지...

가능하지 않은 일정이긴 했지만 혹시나 싶었는데

비가 오는 걸 보고 힘들겠구나 생각됐다.

저 멀리 잔뜩 흐린 하늘 아래 보이는 보겔산을 향해

나홀로 작별인사를 하고 버스를 기다렸다.

 

 

다행히 버스는 금방 왔다.

운전기사분께 버스티켓(3.60uro)을 사고 자리에 앉은 시간은 오후 1시 55분.

버스에 앉자마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다행이다.

타이밍 참 좋았다.

예전 대관령길을 생각나게 하는 꾸불꾸불한 산길을

운전하는 기사님의 솜씨는 가히 예술적이더라.

블레드에 가까울수록 흐렸던 하늘도 점점 맑아져

또 다시 빈트가르 협곡을 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감이 생겼다.

다리상태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아주 가학적인 기대감.

게다가 블레드 정류장을 잘 못 내리는 바람에

호수 1/3 바퀴를 또 다시 걸어야했다.

다행히 비는 멈췄지만,

절뚝거리는 다리는 너덜거린다.

뭐 죽지야 않겠지만...

(그런데...솔직히 정말 죽을 것 같긴 했다.)

 

 

게스트 하우스에 맡긴 짐을 찾아 류블라냐행 버스를 기다렸다.

또 다시 한 두 방을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금방 폭우로 변했다.

비는 오고, 버스는 안 오고,

작은 터미널엔 투어버스에서 타고 내리는 사람들까지 있어 혼란스러웠다.

이러다 버스나 탈 수 있을까 싶은 순간에

거짓말처럼 버스가 내 앞에 섰다.

기사님께 티켓(6.3uro)을 사서 자리에 앉으니 긴장감이 확 풀린다.

발바닥은 불이 붙은 느낌이다.

그날의 메모에는 이렇게 써있엇다.

"빈트가르는 때려 죽인데도 못갔겠다..."

아무 생각이 없다.

류블라냐에 도착하면 무조건 쉬겠노라 작정하고 또 작정했다.

내일 아침엔 피란(Piran)으로 떠나야하니

방전된 체력을 충전하는게 급선무다.

그렇게 피곤한대도 잠은 안오더라.

창문에 붙어 흐렸다 맑아지는 하늘과 풍경에 사로잡히다보니

1시간 반이 훌쩍 지나갔다.

류블라냐 도착.

남은 오후는 욕심부리지 말고 그냥 푹 쉬는 걸로..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