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혹은 이른 아침의 산책은
일종의 도발이다.
사람이 아닌 공간에서 비롯된 도발.
왠만하면 도발같은 강렬함은 피하겠다 주의인데
이 도발만큼은 예외다.
늘 더 강렬하고 독점적이길 바라서 문제다.
아침 6시,
류블라냐의 하늘과 햇빛은 사기에 가까웠다.
햇빛이 너무 강해서
카메라를 어디다 들이대든 다 역광의 역습이다.
그래도 괜찮다.
사진에 담긴 것보다 더 많은게 맘 속에 담겼으니까.
프레셰르노브 광장.
슬로베니아 국가를 작사한 민족시인 프레셰렌 동상 앞도 텅 비어있다.
첫 만남이 마지막 만남이었다는 그의 연인 유리아의 시선만 있을 뿐.
분홍색의 성 프란체스카 성당은 미사중이라 들어가지 않았고
대신 뒤돌아서서 트로모스토베, 트리플 브릿지를 내려다봤다.
이 모든 것들을 천천히 둘러봐야 하는데
시간이 부족하다.
아무래도 오늘 산책은 프리뷰쯤으로 생각해야겠다.
니콜라스 대성당에도 들어가보고 싶었지만
기도하는 사람만 들어오라는 삼엄한 문구에 멈춰섰다.
살짝 서운했는데 생각해보면 이게 맞는것 같다.
여헹지리더 타인의 고요함과 간절함은 지켜주는게 옳다.
성당 내부가 아니더라도 보고 느낄 것들이 저렇게나 많으니...
숙소로 돌아오는 길.
시장이 열리기 시작해 또 발이 묶였다.
짐을 늘리지 않겠노라 그렇게 다짐했건만
싱싱한 사과 앞에 그 결심이 무너졌다.
2.5유로에 산 저 사과는,
그날 하루 밥 대신 내 배를 채워준 충실한 만찬이 됐다.
그럼 됐지, 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