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필요 없다.
턱없이 얇은 옷 때문에 덜덜 떨면서 혼자 본 풍경이지만
경이롭지 않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몸은 내려가자는데 마음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그래서 이번에도 역시 몸이 먼저 항복을 선언한다.
스르지언덕 위에서
그렇게 두 발은 대책없이 꽁꽁 묶여있었다.
장엄한 풍경 앞에 결박(結縛)은 점점 더 절박해졌다.
석양을 배경으로 산을 오르고 내리는 케이블카는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 되고
불이 켜진 구시가지는 햇빛 속에서 본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신비로 반짝거렸다.
하늘과 바다가 만나고,
천천히 땅까지 합쳐지는 시간.
연극 <레드>에서 마크 로스코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침묵은 언제나 정확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