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
일시 : 2014.03.11. ~ 2014.05.11.
장소 : 충무아트홀 대극장
원작 :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
극작 : 왕용범
작곡, 음악감독 : 이성준
연출 : 왕용범
출연 : 유준상, 류정한, 이건명 (빅터 프랑켄슈타인)
박은태, 한지상 (앙리 뒤프레) / 리사, 안시하 (줄리아)
서지영, 안유진 (엘렌) / 이희정 (슈테판)
강대종, 신재희 (룽케) 외
제작 : 충무아트홀
창작뮤지컬 <프랑켄슈타인> 두번째 관람.
그래도 첫 관람보다 냉정해지긴 했지만,
이 작품... 여전히 잘 만들었다!
물론 기시감을 느끼게 하는 라이센스 작품들에 대한 잔상이 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노골적인 카피의 수준은 아니라 그다지 거부감은 없다.
<모차르트 오페라 락>, <모차르트>, <엘리자벳>, <레미제라블>, <지킬 앤 하이드>, <두 도시 이야기>, <프로듀서스> <잭 더 리퍼>, <드라큘라>기타 등등 기타 등등...
(대충 생각나는대로 적었는데도 꽤 많긴 하네...)
뿐만 아니라 인트로에 나오는 천지창조나 비너스의 탄생, 인체비례도 때문인지 대가들 작품들도 다수 떠오른다.
도입 부분의 전쟁장면은 윌리엄 세들러의 "워털루 전투"와 드라쿠루아의 "전쟁의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
(물론 등장인물의 수는 턱도 없지만 아무래도 "혁명"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앙리를 되살려내는 빅터의 모습과 빅터를 보듬어 앉는 엘렌의 모습에서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이
까뜨린느의 "산다는 건"은 길게 떨어지는 조명 때문인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수태고지"가 떠오른다.
그냥... 뭐. 지극히 개인적으로 그렇다는 거다.
그리고 하나 더!
전체적인 스크린 영상과 무대, 조명에 고심의 흔적이 역력하다.
특히나 점점 붉게 변하는 눈을 인트로 영상으로 보여준 건 대단히 인상적이고 의미심장했다.
이 작품은 어떤 캐스팅으로 보든 크게 실망할 일은 없을테지만
배우에 따라서 느낌이 이렇게까지 다를 수 있다는 게 참 흥미롭고 신비롭다.
이건명 빅터는 군인같은 느낌에 원리원칙주의자 같았는데
류정한 빅터는 내면의 욕망과 바람이 순간순간 악의 형태로 드러내는 장면들이 꽤 있었다.
물론 처음에는 아니었겠지만 빅터가 앙리의 목을 진짜 원했을지도 모르겠다는 확신이 나도 모르게 생기더라.
시티컬할 정도로 날카로운 고음은 과학자의 예민함이 느껴졌고
음산하고 기괴한 저음은 숨겨진 욕망을 보여줬다.
창조주에 도전하는 인간.
이보다 더한 불경이 있을까?
우리가 지금 "프랑켄슈타인"이라는 단어를 괴물의 고유명사로 인식하게 된 건
어쩌면 그 불경한 욕망에 대한 삼엄한 경고인지도 모르겠다.
창조라는 것.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건 반드시 무언가를 파괴해야만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파괴의 뒤엔 그 흔적을 복구하기 위한 또 다른 파괴가 기다린다.
거듭되는 창조의 행위가 이젠 연쇄적인 파괴로 이어지고
그 파괴는 어느새 하나의 유기체가 되어 서서히 깨어난다.
바야흐로 "괴물"이 탄생되는 순간이다.
그 일련의 과정들을 류정한이라는 배우는 지금껏 그가 해왔던 모든 캐릭터를 총동원해서 아낌없이 보여준다..
류정한이라는 배우가 왜 초연 전문 배우라는 타이틀을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지
그 이유를 다시 한 번 알게 만드는 작품이고 역할이고 표현이었다.
줄리아와의 듀엣 "그대 없이는"는 정말 오랫만에 들은 최상의 달달함이고
고음과 저음을 오가는 "위대한 생명 창조의 역사가 시작된다"는
아마도 세 명의 빅터 중에서 가장 좋지 않을까 싶다.
(유준상 빅터는 아직 보지 못했지만...)
그리고 자크!
이건명은 자크를 어리숙하고 조금은 우수꽝스럽게 표현했는데
류정한은 상당히 게이스럽게 표현했다.
재미있는 건 그게 와일드한 에바와 대비되면서 결국은 또 다른 공통점을 끌어내더라.
남성성과 여성성이 거세된 자크와 에바의 잔인함은
야수의 그것보다 훨씬 맹렬하고 가차없었다.
"몬스터"의 괴물성을 부추기는 진짜 리얼 "몬스터".
류정한 자크와 서지영 안나가 보여주는 공포는 확실히 프랑켄슈타인이 창조한 괴물보다 보다 몇 수는 위더다.
앙리와 괴물 역의 한지상.
그의 표현은 "늑대인간"을 떠올리게 한다.
누구나 마음 속에 미처 크지 못한 아이가 숨어 있다는데
한지상이 만들어낸 괴물이 딱 그랬다.
단 한 번도 사랑이라는걸 받아보지 못한, 그래서 그게 도대체 뭔지도 모르는 그런 아이.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에서 비롯된 야수성과 공포가 느껴졌다.
박은태가 표현하는 괴물은 "사랑"에 대한 기억을 품은,
그래서 그걸 다시 찾고 싶은 간절함이 느껴졌다.
그래서 박은태 괴물은 너무 아프고 슬프다.
기억을 간직한 자가 혼자 감당해야 하는 뼈아픈 고통, 그게 있다!
한지상은 이유도 모른채 세상에 혼자 내던져진, 그래서 살기 위해선 어떻게든 버텨야 하는 처절함이 있다.
녹슨 쇠파이프를 긁어내는 듯한 소리와 불규칙한 숨소리가 그가 지나온 행보를 그대로 말해주는 것 같았다.
한지상은 야수성을 품고 있는 동적한 공포고
박은태는 끌어앉고 고뇌하는 정적인 공포다.
그래서 한지상의 괴물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주먹이 불끈 쥐어지고
박은태의 괴물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한지상 괴물에겐 이해와 인정이,
박은태 괴물에겐 위로가 필요하리라는 생각이 들더라.
"괴물"이라는 굴레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끝없이 스스로 존재의 이유를 물어야만 하는 존재.
그 존재가 나는 참 서럽고 아프고 안스러웠다.아마도 그날의 공연을 끝마치고 나면,
한지상은 온 몸의 힘이 다 빠져나와 물에 젖은 솜뭉치같은 상태가 될 것 같고
박은태는 감정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해 엄청나게 고통스러워 할 것 같다.
괴물도 짠하고
두 배우 너무 많이 짠하다.
너무 독한 캐릭터를 만나 이렇게 온 몸으로 상대하고 있으니...
그리고 보석보다 더 빛났던 아역들.
(이날 공연의 아역은 오지환, 김민솔 이었던듯)
정말 정말 정말 정말 너무 잘하더라.
노래도 연기도 너무 잘해서 말그대로 "괴물"을 보는 것 같았다.
(아역도 캐스팅 보드에 올려주면 참 좋겠는데...)
특히 어린 줄리아와 어른 빅터가 시간과 공간을 거슬러서 마주하는 장면과
(이 장면에서 류정한의 연기 정말 좋더라.)
괴물과 길잃은 꼬마와의 대면 장면은 감탄스러울 정도다.
아역들이...
결단코 아역이 아니다.
이 작품은 어쩌자고 아역들까지 이렇게 "괴물"로 만들어 버렸을까?
모든 배우들이 다 한결같이 무섭고 아름답다.
<프랑켄슈타인>
볼 때 마다 너무 아프고
볼 때 마다 너무 슬프고
볼 때 마다 너무 힘겹다.
그래서 더 외면을 할 수가 없다.
단언컨데 한동안 이 작품이 나의 가장 아픈 손가락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