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공원에서 중앙시장을 가려고 길을 물었더니
짧은 거리가 아니라면서 택시를 타란다.
걸어가고 싶다고 했더니
그러면 해안도로를 따라 쭉 걸어가면 된단다.
해안도로...
그 말이 너무 예뻐서 혼자 설풋 웃었다.
이틀 동안을 그렇게 걸어놓고서도 여전히 걷고 싶은 맘이 남아있었나보다.
천천히 걸으면서 오래된 기억들을 참 많이 떠올렸고 정리했고 보내줬다.
꼭 겨우내 덮은 무겁고 두꺼운 이불을 두 발로 뽀득뽀득 밟아 햇빛에 널어놓은 것처럼
나는 아주 잠깐 투명해졌다.
그러고보니 처음이다.
이렇게 배의 바깥에서 아무도 없는 배의 내부를 찬찬히 들여다 보는게.
오래된 피곤함은 나른함으로 물 위에 떠 있었고.
배의 아래를 긁는 물살의 소리가 청명했다.
이곳과 저곳을 연결하는 교통수단으로서의 배가 아니라
살뜰한 내 가족을 먹여살릴 생계의 배는
바라보는 것만으로 이미 거룩하고 육중한 무게였다.
바다를....
이제는 낭만이나 로망으로 바라볼 수는 없겠구나.
텅 빈 배를 기웃거리다 자국을 남기며 내려앉은 붉은 녹을 보니 가슴 끝이 묵직하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밥벌이의 위대함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나는 홀로 책임지는 밥벌이에도 이렇게 허덕이고 숨이 차는데...
내 고됨은 투정과 사치일 수 있음을
완강하게 매어있는 고갯배 앞에서 절감했다.
동피랑 벽화 마을.
궁금했다.
좁은 골목 골목 담벼락에 맨 처음 그림을 그린 사람이 누군지...
그 사람은 짐작이나 했을까?
자신이 그린 첫 그림으로 인해 동피랑이라는 마을이 통영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되리라는걸...
때론 아무 기대없이 시작한 작은 일이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아이와 함께라면 하루 종일 깡충거리며 뛰어 다닐 수 있는 곳.
그래서 동피랑에서는지루함조차도 속수무책으로 손을 놓아버린다.
햇빛도 벽화가 되고,
바람도 벽화가 되고,
바다도 벽화가 되고,
사람도 벽화가 되는 곳.
동피랑은 주소는,
그래서 꿈 속 어딘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