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끄적 끄적...2015. 7. 13. 08:34

빗소리를 들으며 걸었던 기억이 아득하다.

언제부터인가 길을 걸을 때나 대중교통을 탈때면 내 귀엔 항상 이어폰이 꽃혀있었다. 

일종의 자발적인 고립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런 때 듣는 음악은 평소보다도 훨씬 집중이 잘되기도 했다.

비오는 토요일 저녁.

투명 비닐 우산을 쓰고 나섰는데

우산에 부딪치는 빗소리에 청량감이 느껴졌다.

꽤 리드미컬했고, 꽤 다정했고, 꽤 섬세했다.

아...

그러니까 그도안은 이어폰때문에 이 소리들을 다 놓쳤던 거구나...

생각해보니,

어린 시절 나는 비만 오면 밖으로 나가는 아이였다.

우산도 없이 물웅덩이를 첨벙거리는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덕분에 몇 번 꾸중을 듣기도 했지만

비맞는게 참 좋았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 냄새에 점점 민감해지면서 비오는 날이 마냥 좋지만은 않더라.

비오는 날 특유의 비릿한 몸냄새와

여기저기 부딪쳐오는 젖은 우산의 습격(?)

(대중교통 안에서 젖은 우산을 가지고 다닐 때는 꼭 접어서 들었줬으면 좋겠는데...)

 

그동안 까마득히 잊고 있었구나.

이렇게 경쾌하게 톷통 튀어오르는 빗소리를...

아무도 없는 산책로를 주인처럼 혼자 차지하고 꽤 오래 걸었다.

태풍때문에 바람의 방향은 가늠할 수 없었고

덕분에 옷은 축축하게 젖었지만

그 작은 일탈의 시간들이 꽤 부유했다.

항상 운동하는 사람들과 오고가는 자전거로 가득했던 산책로가

태풍때문에 조용하다.

오랫동안 혼자 걸으면서 얼마나 행복했던지...

 

사람은,

입에 뭔가를 넣어야 배가 부른 것은 아니다.

때로는 잘 차려진 한끼 식사보다

이런 작은 일상에서 느끼는 포만감이 훨씬 더 크다.

배부른 여유.

주말의 태풍 속에서 난 오랫만에 아주 부유하고 풍족했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