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끄적 끄적...2015. 10. 27. 08:13

2015년 10월 27일 새벽 0시.

신해철 사망 1주기에 발표된 윤종신의 송가.

신해철 솔로 1집에 수록됐던 "고백"은

나 역시도 신해철 1집에서 가장 좋아했던 곡이다.

"무한궤도" 해체후 신해철이 발표한 솔로 1집은

하도 많이 들어서 테이프가 늘어날데로 늘어났었다.

하나밖에 없는 라이오테크를 차지하기 위한 고분분투도 대단했었고

그의 노래만으로 앞뒷면을 가득 채워 녹음한 테이프는 부적처럼 끼고 살았었다.

심지어 심각한 길치인 내가 처음으로 콘서트장이라는 곳엘 가게 만든 사람도 신해철이었다.

낯가림 심한 내가 그것도 혼자서!

대학가요제에서  "그대에게"를 부를 때부터 신해철은 내겐 불변의 구원이었다.

그래서 지금 나는 아프다는 표현이 무색할만큼 아프다.

그려지는 통증은 참아질 수 있는데 잡히지 않는 통증은 가슴 속에 낙인처럼 새겨진다.

나를 구원해준 라젠카가 그립다.

 

 

공개된 윤종신의 "고백"을 들으며

나느 또 다시 허둥댄다.

비가 내린다.

이 비는 아마도 영원히 그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영원히...

신해철의 목소리도,

윤종신의 목소리도,

전부 아득하다.

 

But I'm still believe.

Hear, You stand for me!

So I can live.

 

 

고백

 

쉽게 사랑아라 말하고 쉽게 돌아서곤 했었지

나에겐 사랑이란 말은 그저 나 자신에게 한 말이었어

처음 너를 본 순간부터 나는 이미 알고 있었지

내 삶의 끝까지 가져갈 단 한 번의 사랑이 내게 왔음을

내 말을 들어봐

이제 난 다시는 거짓 사랑을 얘기하지 않아

아주 오랫동안 기다린 사랑을 이젠 난 찾았어

이제 난 다시는 헛된 사랑을 얘기하지 않아

많은 세월에 바래져도 언제나 난 너를 사랑해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10. 27. 05:56
제목만 봤을 때는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헌사같은 책이라고 생각했다.
글을 쓴 저자는 현재 메이지 대학교 문화부 교수 사이토 다카시.
소개글에 말의 권위자라고 나와 있는데 솔직히 어떤 의미의 표현인지는 잘 모르겠다.
좀 거하게 말하자면,
하루키의 소설 뿐만 아니라 일본의 현대문학 속에 등장하는
사랑에 대한 느낌과 그 언어적 표현에 대한 통찰이다.
참 묘한 건 객관과 주관 그 중간의 어디쯤에서 적당히 감성적으로 쓰여진 글이다.
살짝 시니컬하기도 하고 관조적이기도 하면서 때론 열정적이다.
사랑한다면, 사랑하고 싶다면, 사랑했다면,
일본 소설 속 사랑 언어에 주목하라...
딱히 그러고 싶진 않았는데 읽다보면 그 표현들에 주목하게 된다. 이상하지?



part 1 쿨한 사랑 -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년의 핀볼>

part 2 나쁜 사랑
<금각사> 미시마 유키오
<산시로> 나츠메 소오세키
<겐지 이야기> 무라사키 시키부

part 3 보통 사랑
<지금 만나러 갑니다> 이치카와 다쿠지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카타야마 쿄이치
<선생님의 가방> 가와카미 히로미
<전차남> 나카노 히토리


기억하기 딱 좋은 편수인 10편의 일본 소설이 나온다.
물론 이야기의 줄거리를 무시할 순 없지만 
여기선 각각의 소설에 나오는 어떤 부분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고 소박하게 쓰고 있다.
나는 이 책들을 읽으면서도 이런 부분들을 놓쳤었구나 새삼 성긴 책읽기에 웃음이 나기도 했다.
때론 이런 책들이 묘하게 가슴에 담길 때가 있다.
고민하지 않고 소풍처럼 읽을 수 있는 적당히 평화롭고 한가한 책이...



가끔 생각하게 된다.
"사랑"이라는 건 말일까? 행동일까? 감정일까?
이 모든 것이라고 대답하겠지만 어쩐지 그 시작은 말(고백)이 아닐까?
표현되어지든, 표현되어지지 못하든.

그리고 나는 사랑을 하고 있었다.
그 사랑은 몹시 복잡한 곳으로 나를 끌어들이고 있었다.
주위의 풍경에 마음을 쓸 여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고백을 세상을 다르게 보고, 다르게 느끼게 한다.
극도의 무관심이든, 극도의 관심이든
고백의 순간 이제 더이상 처음과 같을 수는 없게 되는 것.

나의 외로움이 너의 외로움이 되는 것,
망연히 벽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흘려야 했던 것, 왜 너를 사랑했냐고,
왜 나를 사랑했냐고 따지고 싶어도 따질 수 없는 것,
한 번이라도 더 보고 헤어질 것이라고 후회해도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는 것,
그것을 입 밖에 내밀 수 없었던 사랑이라는 것.

너와 나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
그래서 그 경계의 끝에서 비록 누군가 너덜거리게 된데도
사랑이 두려운 남자도 여자도
모두 운명같은 사랑을 꿈꾼다.
운,명.같.은.사.랑.
얼마나 대책없는 단어끼리의 조합인가!

하도 사랑, 사랑하기에
그것이 뭐가 그렇게 대단하기에 난리냐 싶어
사랑을 해봤지만 그 감정 별 것 아니던데,
라고 말하면서도 사랑 없이 못 사는 것이 사람인지라,
누군가 사랑, 그것은 말이야, 서두를 떼기만 해도 또다시 두근거린다.


아닌 척 하면서도 그만,
이 문장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사랑, 참...
또 다시 모질구나... 싶어서...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8. 17. 06:40
만약 이 책이 뼈가 있고 살이 있는 형이상학적인 존재라면
나는 이 책의 단어 하나 하나까지도 전부 오도독 오도독 탐욕스럽게 씹어 삼켜
그대로 내 몸 안에 고이고이 간직하고 싶다.
탐이 나도록 아름답고
겁이 나도록 관능적인 소설 <은교>
이 이야기를 사랑이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누군가의 심장에 칼을 쑤셔박는 심정으로 쓴 노시인의 긴 고백의 글은
여기 이렇게 한 사람의 심장뿐만 아니라 온 몸에 칼 이상의 것을 쑤셔박았다.
그래, 어쩌면 이 글에는 정말 차가운 폭력성이 담겨 있는지도 모르겠다.
생로병사가 없는, 아니 생로병사를 이기는 관능.
그 관능은 시간을 이키는 칼이며,
그러므로 최종적으로 누군가의 죽음을 부른다.
신생(新生)의 폭설같은....



이 이야기는 <살인 당나귀>라는 제목으로
작가 박범신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wacho)를 통해 연재했던 소설이다.
(당나귀는 소설 속 노시인의 몰고 다니던 오래된 코란도이가도 혹은 시인 자신이기도 하다)
한 달 반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폭풍같이 써내려간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가 제목을 바꿔 <은교>로 출판됐다.
<고산자>를 발표한 후 박범신은 말했었다.
"감수성을 충분히 해방시키는 아름답고 슬픈 연애소설을 준비중" 이라고...
그리고 그는 <은교>라는 작품을 책으로 출판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지난 37년 동안의 작가 생활을 주마등처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내 안의 다양한 욕망과 감수성을 반영했기에 앞으로도 오랫동안 남는 소설일 것 같다." 라고.
그리고 나 또한 거기에 한 마디를 덧붙인다.
내게도 이 이야기가 그렇다고.....
<촐라체>, <고산자> 그리고 이 책 <은교>까지.
박범신은 3권의 책을 "갈망의 삼부작"이라고 이름 붙였다.
<촐라체>에서는 히말라야를 배경으로 인간 의지의 수직적 한계를,
<고산자>에서는 역사적 시간을 통한 꿈의 수평적인 정한을,
그리고 <은교>에 이르러, 비로소 실존의 현실로 돌아와
존재의 내밀한 욕망과 그 근원을 감히 탐험하고 기록했다고 느끼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한 마디 당부를 한다.
'밤에만' 쓴 소설이니, 독자들도 '밤에만' 읽기를 바란다고...
나 또한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이 책을 손에 잡고 있을 때는 대부분 밤이었다.
책을 읽는 동안 가슴은 뜨거웠고
생각은 차가웠다.



69살 노시인 이적요가 17살 계집아이 한은교에게 느끼는 감정을 읽으면서 누구도 감히 비난하진 말자.
부도덕하다고, 혹은 추잡하다고 손가락질하지도 말자.
그걸 "사랑" 아니라면 도대체 뭐라고 이름 붙일 수 있을까?
시인의 노트와 그의 제자가 남긴 노트, 그리고 시인의 변호사 Q.
이 책은 세 사람의 목소리가 번갈아 가며 등장한다.
이야기의 중심은 모두 "은교" 였던가?
혹은 노시인 "이적요" 였던가? 아니면 그의 제자 "서지우" 였던가?
모든 예술과 문학의 시작이 질투라면,
그래, 이 세 사람의 관계는 그대로 예술이고 문학이다.
시인의 노트에 남겨진 글들은
그리고 어떤 시들보다도 아름답고 황홀하다.
단어 하나 하나가 전부 살아서 나를 수시로 꿀꺽 꿀꺽 삼켜버려 읽는 동안
많.이.두.려.웠.다.



자신이 사망한지 1주기가 되는 날 발표하라는 시인의 노트.
그 속엔 두 가지 비밀이 쓰여있다.
자신이 은교를 사랑했다는 것과, 그리고 자신의 제자 서지우를 죽였다는 것.
그럼으로 해서 자신이 판 암굴 속으로 스스로 걸어들어가 죽음을 선택한 노시인.
그의 머리맡엔 은교가 선물한 작은 토끼 인형이 놓여 있었다.
총.총.총. 뛰던 은교의 발소리를 떠올리게 하는 토끼...
평생 시(詩)만을 써온 시인 이적요가
서지우라는 제자의 이름을 통해 발표한 포르노그래피 소설.

...... 어쨌든 나는 사람들이 '천박한 것'이라고 비난하도록 획책해 쓴 그것이, 시인 이적요의 작품이라고 까발겨질 날이 언젠가 올 거라고 예감했고, 그 작품이 마침내 책이 되어 나왔을 때, 본능에 따른 나의 또다른 충동, 예컨대 나와 나의 시세계가 얼마나 하찮은가 하는 것을 세상에 극적으로 까발리는 과정 안에, 돌입했다고 느꼈다.... 결국은, 시인으로 성역화해온 나의 '빛나는 성취'를 스스로 시궁창에 버리고 싶은 자학의 한 수단으로, 서지우를 대리인 삼아 내가 '당신들 문법'에 맞춰 포르노그래피 소설을 썼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

문학은 어떤 이에겐 질병이라고 했던가?
그래서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그런 사람도 있다고...
노시인은 자신의 제자를 두고 이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자신 또한 고백한다.

...... 내가 세상이라고, 시대라고, 역사라고 불렸던 것들이 사실은 직관의 감옥에 불과했다는 것을, 시의 감옥이엇다는 것을 알았다. 나의 시들은 대부분 가짜였다 ......

그리고 이 말은 은교라는 한 아이를 사랑함으로써 시작된 고해성사로 끝을 맺는다.

...... 너를 만나고 비로소 나의 진짜 얼굴을 스스로 보게 된 셈이다. 세상 사람들은 그러므로 나의 '진짜' 얼굴을 보아야 한다. 시인 이적요는 '전략'에 따라 자신의 '우상화'를 염두에 두고 시를 써온 '가짜 시인'이었고, 불과 열입곱 살 된 소녀를 통절하게 간음하고 싶었으며, 질투심에 눈이 멀어 끝내 제자를 죽인 사람이다. 어떻게 그 사실을 다 묻어두고 무덤 속에서나마 그 모든, 시끄러운 우상화를 받아들일 것인가. 인생의 마지막에 너를 통해 만나 경험한 본능의 해방이야말로, 나의 유일한 인생, 나의 싱싱한 행복이었다. 그게 바로 나 이적요다. 이적요는 본능을 가진 인간이었을 뿐 신성을 본 적도 만난 적도 없다. 그러하니, 아무도 더이상 내게 속지 말라...... 그리고 내 무덤에 짐승이라고 침을 뱉고 살인자라고 돌을 던지라. 그것이 나의 마지막 소망이다 ......



책은 지독히도 탐욕적이고 관능적이며
동시에 문학적 은유들로 넘실댄다.
누군들 맘 속에 자신만의 처녀이자 자신만의 등롱인 "은교"가 없을까?
맘 속에 간직한 신성(神性)에 가까운 영원한 신부 "은교"
그렇다면 그 "은교"에게로 향하는 길이
멸망으로 이르는 좁고 어두운 길이라 한들 누군들 간절히 가고 싶지 않을까!

...... 은교를 만나면서 나는 보다 젊어지고 싶었다. 그게 죄인가. 그 애를 통해 아직도 생피처럼 더운 나의 욕망을 확인했을 뿐, 나는 아무런 범죄도 저지르지 않았다. 나의 은닉된 욕망에게 형벌을 선고할 수 있는 자는 그러므로 나뿐이다 ...... 아니, 청춘이 될 수 없을지라도 청춘인 듯이, 나는 젊은 저들과 오지게 맞장을 뜨고 싶었다 ......
 
숨통을 조여오면서도 숨통을 트이게 하는 문장이다.
이 아름답고 지독한 연애 이야기를 나는 또 어떻게 감당할까?
사랑, 질투 그리고 음모라는 통속적인 단어로 이 소설을 말하고 싶진 않다.
이 소설은...
그대로 한 편이 시이고
그대로 한 점 풍경화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읽게 되는 이여!
반드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으니, 그것은 
눈빛이다.
그들의 눈빛!
그리고 당신의 눈빛!

은교는 나에게 슬픔과 함께, 생애에 경험해보지 못한, 청춘의 광채와 위로를 주었다.
사.실.이.다.
나는 어느새 이적요가 되어 늙은 관 속에 내 몸을 누인다.
누윈 몸은 고요했으며 더불어 편안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찍고 끄적 끄적...2010. 3. 27. 06:19
기세등등하게 계속되는  꽃샘추위.
그 추위 속에 어린 생명이 피어나다.
연약한 대롱 속에 얼음 박이진 않을까?
쪼그려 바라보는 맘이 짠해진다.
이른 아침 만난 작은 생명들은
제 몸을 웅크려 추위를 버텨낸다.
조금만 늦게 나오지 그랬니...
혼자 안스러워 또닥또닥 맘을 담는다.



어리고 순한 이른 꽃들이 피우는 색은
완벽한 거짓말 같다.
시간과 나이를 지나오면서
점점 무감해지고 모른척하게 되는 원색의 풍요.
작은 꽃들이 피우는 색은
가끔씩 섬뜩하리만치 강렬하고 예리하다.
결국은 고백한다.
"그래, 내가 졌다! 늬들 참 이쁘구나..."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7. 27. 06:25
 <메신저> - 마커스 주삭


메신저


마커스 주삭!

2008년 <책도둑>이란 2권의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상당히 새파랗게 젊은 작가! (고백컨대 개인적인 시기심 엄청 심난하게 들어있습니다)

순서가 좀 많이 뒤바뀌긴 했지만 <책도둑>보다 먼저 쓴 그의 책 <메신저>가 뒤늦게 번역돼  우리나라에 소개됐네요.

<메신저>라....

제목에서부터 이미 너무 많을 걸 말하고 있는 것 같아 문득 걱정부터 앞섭니다.

“어라! 이 사람, 도대체 메신저라는 제목을 이렇게 대놓고 정면에 내세우고 얼마나 재미난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그런데 이 걱정은 역시나 쓸데없는 기우였습니다.(그리고 이 부분에서 한 번 더 개인적인 몹쓸 놈의 시기심 등장합니다....)

재미! 

여기서 개그콘서트 달인 김병만의 말투를 잠시 빌리렵니다.

“재미요? 그거 안 읽어 봤으면 말을 마세요~~”


에드 케네디.

19년 동안 내내 별 볼일 없이 오히려 한심의 축에 더 많이 몸을 담그고 살아온 불법 택시 운전사를 이제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더불어 소위 노는 물이 같은 세 명의 절친들까지도요.

2명의 남자 친구들 리치, 마브, 그리고 1명의 여자 친구 오드리(비록 일방통행이긴 하지만 에드가 짝사랑하고 있는 오랜 친구랍니다 ^^)

우연히 은행 강도를 붙잡아 졸지에 잠시 동네 우상이 된 에드는 어느 날 우편함에서 세 개의 주소가 적힌 다이아몬드 에이스 카드 한 장을 받게 됩니다.

별 볼일 없던 에드가 메신저로서의 삶이 시작되는 순간이네요.

카드에 적힌 주소로 찾아간 에드는 그곳에서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받게 될 세 명의 사람들을 한명씩 만나게 됩니다.

밤마다 자신의 아내를 강간하는 남자와, 이미 한참 전에 죽은 남편 지미를 그리워하며 살고 있는 노년의 밀라, 그리고 매일 아침 맨 발로 달리기를 하는 소녀 소피까지...

어쨌든 이 세 명에게 성공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한 에드. (그 과정은 책을 통해 직접 확인해보라고 말한다면 좀 얄미울까요? 그래도 그리 하렵니다... ^^)

왠지 모를 평온함과 행복감에 잠깁니다.

매일 밤 엄마가 아빠에게 강간당하는 모습을 봐야만 했던 딸 안젤리나가 어느날 에드에게 했던 말이 생각나네요.

“우릴 구해주러 왔나요? 노력은 해줘서 고마워요”

애드가 첫 번째로 전달한 메시지는 아마도 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는 모든 "노력", 그 자체였는지도 모르겠네요.


집으로 돌아온 에드에게 또 다시 클럽 에이스 카드 한 장과 짧은 편지가 건네집니다.

“고향의 돌에게 기도하라”

에드는 이 일에 선택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잠시 소망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이 일이 자신에게 주어졌음을 점점 인정하게 되고 결국 해야만 하는 일들을 하나하나 실행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어렵게 찾아낸 “고향의 돌”에 적혀 있는 세 명의 이름.

토마스 오라일리 신부의 텅 빈 성당을 사람으로 가득 찬 축제의 장으로 만들고, 아이스크림 하나로 생계에 지친 어린 어머니 앤지 카루소의 마음을 위로하고, 그리고 비록 온 몸에 멍이 들긴 했지만 개빈 로즈의 금이 간 형제애를 회복시키는데도 성공합니다.

두 번째 메시지는 "관심"이었을까요?


세 번째 카드인 스페이드 에이스도 에드를 찾아 왔네요.

역시나 3명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작가들 이름이네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온 에드는 책 제목과 책에 표시된 페이지를 연결해 드디어 세 개의 주소를 알아냅니다.

이 메시지 안에는 어쩌자고 에드의 어머니도 포함되어 있네요.

살짝 금이 간 부분을 애써 외면하며 지내고 있는 어머니와 아들.

“왜 날 그렇게 미워하세요?”

아들의 질문에 어머니는 답을 합니다.

“왜냐하면 널 보면 그 사람이 생각나거든. 넌 여기 있어. 바로 그게 문제야”

어머니는 자신의 남편이 그랬던 것처럼 아들이 이 구질구질한 동네를 떠나지 못하고 죽게 될까봐 싫었던 겁니다. 오히려 둘째 아들보다 더 뛰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못한 게 말이죠.

망연자실해있는 아들에게 어머니는 한 마디 말을 더 남깁니다.

“사랑이 아주 커야만 너를 이렇게 미워할 수 있는 거야”

세 번째 메시지는 이해를 통한 "감사"였던 것 같네요. (어디까지나 제 생각입니다)

힘들긴 하겠지만 에드는 어머니를 이해하게 될 것이고 그리고 결국은 감사하게 될 거라는 걸 믿습니다. 다른 두 명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에드는 혼자 생각합니다.

“장소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예요. 만일 내가 이곳을 떠난다 해도 먼저 여기서 더 나은 사람이 된 다음에 떠날 거예요.”라고...


네 번째 카드, 에드의 손에 남겨진 하트 에이스에는 세 개의 영화 제목이 적혀 있습니다.

<옷가방>, <캣 벌루> , <로마의 휴일>

어쩐지 드라마틱하고 로맨틱하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그런데 이 세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 혹은 배우의 이름이 바로 에드의 별 볼일 없는 세 명의 친구들 이름과 일치합니다.

영화 순서대로 리치, 마빈, 오드리까지...

이제 에드는 순서대로 이들의 메신저가 돼야만 합니다.

늘 함께 너저분한 방에 모여 허접한 카드놀이로 시간을 보냈던 친구들.

항상 너무나 친하기에 잘 알고 있었다고 내내 착각했던 친구들에게서 고백되는 "진실"들.

그러네요. 세상 모든 사람에겐 누구나 비밀이 한 가지씩은 있다는 거.

그 비밀을 폭로가 아니라 고백해야만 비로소 진실이라는 자유와 만날 수 있게 된다는 거.

어쩐지 이 네 명의 친구들이 이제는 우정 그 이상의 울타리를 얻게 될 것만 같습니다.


에드는 이제 마지막 카드가 될 조커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안에 담길 세 명의 사람은 과연 누가 될지....

그러나 전달 된 마지막 카드 조커에는 지금까지의 방식과는 다르게 3명이 아닌 단 한 사람의 주소만이 쓰여 있습니다.

“시핑 스트리트 26번지”, 바로 에드 자신의 집 주소죠.

책의 남은 페이지가 얼마 없는데 이 이야기는 이제야 진짜 시작되려는 것 같습니다.

에드는 과연 마지막까지 메신저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에드의 집,
한 남자가 그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을 자신이 준비했다며 그 남자는 에드에게 말합니다.

“내가 그런 건 네가 평범함의 전형이기 때문이야.

 너 같은 녀석이 일어서서 그 모든 사람들을 위해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도 모두 할 수 있을 거 아냐.

 모두가 자신의 능력 이상의 일을 하며 살 수 있을 거 아냐.

 어쩌면 나도 그렇게 살 수 있을 거 아냐”

에드는 묻습니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남자는 대답합니다.

“계속 살아, 에드! 책만 여기서 멈출 뿐이야”

소설에 나오는 대사 치곤 꽤 독하네요.

그러나 이 책이 환상 혹은 한 여름 밤의 꿈이라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않길 당부드립니다.

왜냐하면 에드가 받은 마지막 카드 조커는, 사실은....

에드드가 아니라 책을 읽고 있는 바로 당신에게도 전달된 메시지니까요.

자, 지금쯤이면 당신은 에드의 메시지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

준비가 되어있다면 당신이 받은 마지막 메시지는 과연 무얼 품고 있을까요?

이쯤 되면 저 역시도 당신이 받았을 그 메시지가 진심으로 궁금해집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09. 7. 10. 06:03
J.M 쿳시의 소설 <추락>
이 작가의 책은 처음으로 읽어봤는데
충격적이다. 그리고 강렬하다.



소설의 원래 제목은 <치욕>이라 하는데
난 이 제목이 더 이 책의 내용을 대변하는 것 같다.
백인과 흔인의 문제
흑인에 의해 강간당하는 남아프카에 사는 백인 여성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땅에 남기를 선택한 딸



누군가를 그런 표현을 썼다.
"아이스 피겔로 얻어 맞은 는낌"이라고.
J.M 쿳시....
그의 책을 탐하게 될 것 같다.
신비하고 모호하고 그리고 명석한 사람
1940년 생, 단 아홉권의 책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는 사람.
가장 타협하지 않는 작가이자
가장 분명하고, 가장 용감한 작가!
심지어 그가 시상식장에 나타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스웨덴 한림원은
그에게 "노벨문학상"을 줄 수 밖에 없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나는
이 책 한 권으로 그 고백을 100% 이해했다.



아비도 딸도.
이 책은 이해되지 않는 것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너무나 강렬하게 살아있다.
책 속 곳곳을 팔딱거리며 뛰어다니는 생명력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찍고 끄적 끄적...2009. 5. 26. 23:32
누군가의 꽃은 지고...
또 누군가의 꽃은 피다.
붉어라.
꽃잎. 꽃잎. 꽃잎



붉게 피어나는
눈물들아.
네 생의 치열함이
여기 내게도 전해진다.




알고 있을까?
나 역시
꽃잎처럼 뚝...뚝...
붉은 눈물 흘리고 싶었다는 걸



야윈 손 뻗어 붙잡은 게
단지 허공뿐 일지이라도
의지하고 싶었다고....
위로받고 싶었다고...



붉은 꽃잎 뚝...뚝... 흘리며
붉은 고백 소원하던
어느 날 !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2. 3. 22:18
 <막스 티볼리의 고백> - 앤드루 손 그리어


막스 티볼리의 고백 


오늘은 참 특별하고 슬픈 사람에 대해 말해보려고 합니다.

“시간 역행자”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혹 있으신가요?

70세 노인의 몸으로 세상에 태어나 갓난 아기의 몸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 그러나 마음과 생각은 시간의 흐름 그대로인 사람... 35살 지점에서만 자신의 몸과 생각이 유일하게 만나지는 그런 사람이요...

일생동안 “앨리스”란 여자와 세 번의 사랑에 빠졌던 사람...

그리고 자신이 아들 “새미”를 키우는 그녀의 집에 양자로 입양돼 살아야만 했던 사람...


주인공 “막스”가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은 아이의 몸이 신의 저주를 받은 거라 생각했습니다. 이제 우리도 조금씩 짐작할 수 있게 됩니다. 그의 삶이 어떠하리라는 것을요...

그가 아이였을 때 어머니는 말합니다.

“사람들이 네 나이가 얼마쯤이라고 생각하면 그에 맞춰 행동해야 한다.”라고.


이 이야기는,

1930년 4월 어느 날, 꼭 열두 살 소년처럼 보이는 막스가 쓰는 편지로 시작됩니다.

......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열두 살 소년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때는 총을 들고 가스 마스크를 쓴 스물두 살의 멋진 청년으로 보였다. 그전에는 지진이란 재앙 속에서 사랑하는 여인을 찾아 나선 삼십대 남자였다. 그리고 그전에는 열심히 일한 사십대, 세상을 두려워한 오십대, 그렇게 세상에 태어난 시기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늙어갔다.” ......

그는 이 편지를 통해 남들과 다른 이유로 고독과 슬픔 속에서 일생을 살아야 했던 비극적인 날들과 평생 동안 계속됐던 앨리스에 대한 절절한 사랑을 고백합니다.

처음 막스가 앨리스에게 반한 건 그의 나이 17살, 앨리스가 14살 때였습니다.

앨리스에게 “아저씨”란 호칭으로 불려야 했던 막스는 그녀의 어머니와의 충동적인 사랑을 하게 됩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가 딸마저 유혹하려고 하는 파렴치한이라 생각한 앨리스의 어머니는 결국 이사를 하게 되고 그들은 그렇게 스치듯 헤어지죠.

시간이 흘러 막스의 몸과 마음이 딱 일치하는 35살 무렵에 두 사람은 우연히 재회하게 됩니다. 그가 어린 시절 알았던 아저씨라는 걸 모르는 앨리스는 그를 사랑하게 되고 마침내 그 둘은 결혼을 합니다.(그때 막스는 앨리스 앞에 다른 이름으로 나타나게 되거든요.)

행복한 시간도 역시 흘러가기에 막스는 앨리스보다 점점 더 어려질 수밖에 없는 자신의 운명을 피하지 못합니다.(피할 방법이 있었다면 그는 정말 뭐든 했을 겁니다. 악마에게 자신의 영혼을 파는 파우스트처럼요...)

또 다시 떠나야 했던 막스는 이제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앨리스” 옆에 있습니다.

그녀와 자신의 아이 “새미”의 친구로, 그리고 아내의 양자로...

그런 그가 남긴 마지막 편지에는 "너무 짧은 인생. 슬픔만 가득한 인생. 그러나 난 내 인생을 사랑했소"라고 적혀 있습니다.

도저히 세상을 제대로 살아 낼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이 이런 최후의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건...

역시나 “사랑”이라는 통속의 그러나 절실한 이유 그 하나였습니다.

겉모습은 반바지를 입은 어린 아이의 모습이지만 지혜로운 노인의 시선으로 삶을 관조하는 막스의 고백은 시간이라는 상대성과 외모의 허망함, 그 교차와 어긋남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이 세상 어딘가에 시간 역행자가 꼭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꾸며낸 사실인지, 정말 역사적인 사실인지 모르겠지만 책의 내용 중 일정 부분은 시간 역행자들이 실제로 소개되어 있기도 합니다.

실제로 이런 사람이 어딘가에 살고 있다면...

그건 분명 뚜렷한 공포가 될 겁니다.

그것도 자기 자신만이 평생 끌고 가야하는 비밀스런 공포...

이런 생각을 해 보면 비록 소설 속의 인물이긴 하지만 그런 인생을 살아낸 “막스”가 위대해보이기까지 합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다".

비록 토막난 인생일지라도 “막스”는 순간순간 분명 누군가의 삶에서 소중한 존재였음을 저 또한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각각의 장마다 주인공은 다른 이름으로 불려지게 되죠.

1부에서는 “티볼리”로, 2부에선 “막스”로, 3부에선 “아르가스”라는 이름으로 불려 졌던 주인공은 4부에서는 “리틀 휴이”가 되어 여전히 앨리스의 곁에 있습니다.(휴이는 그의 상황을 모두 알고 있는 가장 친한 친구입니다.)

친구 휴이의 아들 행사를 하면서까지 사랑하는 이의 곁에 남고 싶었던 그의 마음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을까요?

심지어 그는 친구 휴이에게 자살을 종용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야만 아비를 잃은 그가 앨리스의 양자가 되어 그녀의 곁에 있을 수 있을 테니까요...

이런 끔찍한 상황까지 만들어가면서 사랑하는 이의 곁에 남고 싶어 했던 주인공의 마음...

휴이에게 어린 모습을 가진 막스가 말합니다.

"난 이제 남편이 될 수 없어! 아버지도 못 된다고!" "쉬잇! 난 아들이 될 거야. 잠시 동안이라도."

분명 그는 끔찍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로서는 달리 선택할 방법이 없는 절실한 마음이었기에 차마 응원한다고는 말하지 못할지언정 잠시 눈길을 돌림으로써 그를 인정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샛강 갈대숲 사이를 떠돌던 작은 배에서 죽음으로 생을 마감하는 리틀 휴이 “막스”.

시간을 거슬러간 남자, 티볼리이자 막스이며, 아르가스이자 리틀 휴이로 평생을 한 여자만을 사랑하며 비밀을 간직한 체 죽음을 택한 그의 마지막 모습.

그에게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모두에게(심지어 우리에게까지) “사랑”이란 뭐였을까를 묻게 만듭니다.

“비극”이라고 이름 붙여진 모든 것들...

그러나 저는 결코 그를 비극적으로 살았다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것 또한 그의 “선택”이었음을 인정해야 그가 덜 비극적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사람들을 꿈꿉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내 인생의 어느 시점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그러나 누군가에겐 그 타임머신의 꿈이 공포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거, 혹시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모든 상상과 환상은 공포와 절망의 바탕 위에 시작되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는 작은 배 안에 누워 꿈을 꾸고 있지 않을까요?

그의 아들 새미와 사랑하는 여인 앨리스와 함께 다정하게 손잡고 산책하는 모습을요.

혹 어는 샛강 작은 배 안에 아직 그의 꿈이 누워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희망합니다.

이제 그 꿈은 더 이상 시간 역행자의 모습이 아니었으면 하고요...

* 2월 12일에 드디어 영화도 개봉을 하네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브레드 피트와 케이트 블란쳇 주연으로 올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도 올라와 있는 작품입니다.
   <조디악>과 <패닉 룸>을 만든 데이빗 핀쳐 감독이 매가폰을 잡았습니다.
   어쩐지 기본 이상은 해 줄 것 같은 예상이네요.  지금 브레드 피트는 이 영화 홍보를 위해 안젤리나
   졸리, 그리고 그들의 숱한 아이들과 함께 일본에 머물고 있다고 하네요.
   좀 잠깐 여기도 들려주지 싶긴 한데...
   브레드 피트가 연기할 시간 역행자의 모습...
   일단은 매력적이긴 할 것 같습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1. 10. 14:55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1,2> - 현각

 

책 이미지

 

오늘은 좀 색다른 책을 소개해 드리려구요.

개인적으로 여러번 읽었던 책이고, 그리고 제가 즐겨 사람들에게 선물했던 책 중 하나였는데 현재는 절판이 돼서 여러 가지로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는 책입니다.(절판된 이 책이 우리 병원 도서관에 있답니다.^^)

1964년 태어난 현각이라는 스님이 2002년에 출판한 <만행>이라는 책입니다.

현각(폴 뮌젠이라고 해야 할 것 같네요, 아직 수도자가 되기 전이니까 ^^)은 카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전형적인 엘리트 미국인입니다. 그리고 예일대를 졸업하고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석학들이 모인다는 하버드 대학원을 졸업한 그야말로 수재 중 한 사람이죠.

독실한 카톨릭 가풍에 형제도 꽤 많습니다. 게다가 형제들 모두 엄청난  엘리트들입니다. 부모님들은 그가 한국에서 구도자의 길을 가겠다고 했을 때 실망했다고 합니다. 부모는 그가 오히려 신부가 되길 바랬다고 하더군요.

참 종교라는 거...

우리가 "베리타스"라고 말하는 진리을 추구하기 위해 희생과 고행, 그리고 절제를 향해 그것도 기쁜 마음으로 나아가는 사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명적인 희생과 끔찍한 전쟁이 수반되기도 하는 종교적인 분쟁...


개인적으로 전 기독교인이지만 이 책은 거부감이 느껴지는 내용이나 불교를 강요하는 교리를 해석한 책은 아닙니다.

그냥 개인적인 고백을 담은 책, 그렇지만 그 개인적인 고백들이 누구나 고민하고 공감했던 내용들이며 그래서 혹은 어떤 이유였든 심각하고 처절하게 고민했던 내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책을 읽은 어떤 분은 최루성 글이란 표현을 쓰더군요.

눈물샘을 극도로 자극하는 것도 아니고, 펑펑 울게 만드는 엄청난 감동적인 사건들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지만 이 책은 확실히 그렇습니다.

사람을 울게 만드는 아니 눈물이 촉촉히 스며들게 만드는 책입니다.

많이 혼란스럽고 힘들었을 때 만났던 책이었고, 그래서 저에게는 제 살점같은 느낌이 드는 너무 애뜻한 책임을 고백하게 되네요.


이 책은 현각 스님의 지나온 삶이 마치 여행기처럼 서술되고 있습니다. 미국 뉴저지주 중산층 가정에서 시작하여 예일대학과 하버드대학원, 다시 뉴욕, 파리, 보스턴을 경유해 중국의 남화사를 거쳐 한국의 화계사와 계룡산 신원사에 오기까지 계속되는 한 인간의 고민의 행보가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오죠.

책에는 그의 전생에 대한 언급도 잠깐 나옵니다.

이상하게 한국과 관련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는 그...

아직 스님이 되기 전에 한 노스님에게 들었다고 하네요.

그가 전생에 조선독립군이었는데 죽으면서 다음 생에는 큰나라에 태어나 조선을 위해서 일하겠노라는 다짐을 하면서 죽었다는....

이 부분이 전 참 천진하게 들렸고 그래서 이 분이 지금 이렇게 구도자의 길을 천진하게 가는구나 조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먹먹한 가슴을 안고 사는 사람이 나 뿐만은 아니구나... 많이 위로 받기도 했구요(어쩐지 저의 고백서 같네요..)


현각 스님은 자신의 삶 전체를 만행의 과정으로 이해합니다. 숭산 큰스님의 강연을 듣고 스님이 되는 과정을 ''오직 진리를 찾아 떠나는'' 만행의 또 다른 행로라고 말하죠.

특히 중산층 미국인의 안정된 삶을 포기하고 사랑하는 약혼자와 헤어지면서 한국불교의 파란 눈의 승려가 될 때까지 겪었던 내용들을 서술할 때는 너무나 인간적이라 차라리 승려가 되지 말라고 말리고 싶기까지 했습니다.

그의 눈에 비친 숭산 큰스님의 삶을 읽는 것 또한 감동적으로 다가옵니다.

세계 4대 성불로 알려졌던 숭산 큰스님은 1927년 태어나서 1994년 11월 30일 입적한 분으로 우리나라에서보다는 외국에 더 많이 알려진 분입니다.

그 분이 쓰신 <선의 나침반>이라는 책은 모든 불교 수행자들이 꼭 찾아 읽는 책이라고 하네요(현각스님은 이 책을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도 했답니다)

폴이 스님이 되겠다고 했을 때 숭산 큰스님이 물었다고 하네요.

“형제는 있느냐?”고...

있다고 대답하자 다행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자신은 외아들이라서 어머님이 많이 힘들어 하셨다고... 하지만 폴 당신에겐 형제가 있으니 그 얼마나 다행이냐고..

모든 것을 초월한 큰스님의 입에서 나온 말이 전 너무 파격적으로 들려 사실 멍해지는 느낌마저도 있었답니다.

깨달은 사람도 출가 전의 일이 가슴에 담아있구나 싶어서....


현각 스님은 만행이 특별히 어려운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만행은 ''순간순간 우리의 마음을 열어 주는 모든 것''이라고 말하죠.

그 분은 또 말합니다.

"걷고 이야기하고 먹고 차를 마시고 사람을 만나고 시장에 가는 모든 것. 뺨에 스치는 바람을 느끼고 질주하는 차를 바라보는 것. 친구와 악수하며 감촉을 전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수행이고 만행(萬行) 이다."라고....
내 주위가 얼마나 만행할 것 투성인지....
비록 부족함일지라도
이제서야 알게 되
그 "앎"에 의해 평온합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찍고 끄적 끄적...2008. 12. 24. 06:35





밤 눈 오는 길...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흩어지는 눈...
기억을 부르는 눈.
당신의 기억은 유효한가요?
조용한....
질문...



사실은....
대답하고 싶었다고....
길 위의 눈에게
던지는
은밀한 고백...

흩어지는 게...
사리지는 게...
어디
눈 뿐이겠느냐고....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