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11.12.02. ~ 2012.02.10.
장소 :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루
출연 : 김여진, 정애연, 정영주, 이지하
원작 : 이브 엔슬러 (Eve Enster)
연출 : 이유리
프로듀서 : 이지나
1998년 뉴옥 초연 이후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는 <버자이너 모놀로그>가 어느새 한국 초연 11주년이 됐다.
2001년 초연 당시엔 파격적인 소재와 대사로 특정 단어를 블라인드로 처리해서 보도하고 일부 관객은 음란물과 다를 바 없다며 항의하기도 했단다.
지금 이런 이력을 들으면 격세지감이 느껴지지만 초연될 당시엔 공연계에 꽤나 큰 이슈가 됐었다.
지금같이 음난물의 홍수 속에서야 이런 내용쯤은 그저 코웃음거리에 불과하겠지만 아직까지도 한국어 제목을 아무렇지 않게 발음하기엔 솔직히 난감함이 있다.
연극이 유명해지기 전에 책으로 먼저 읽었었다.
솔직히 그때는 별 감흥이 없었다.
연극으로는 어떨지 궁금했는데 11년이 지나서야 겨우 보게 됐다.
처음 공연했을 때는 출연하는 배우가 한 명이었다는데
지금은 세 명의 배우가 나온다.
(마치 공개방송 토크쇼같은 느낌이다.)
정애연, 정영주, 이지하.
배우 정애연이 다른 두 명의 출연자에 비하면 좀 부족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상당히 좋았다.
딕션과 감정표현, 말의 톤과 속도도 잘 조정하는 것 같다.
20년 가까이 뮤지컬만 했다는 정영주가 선택한 첫번째 연극 작품!
역시나 작품의 액센트 역할을 여기서도 여지없이 해낸다.
(정영주가 없었다면 다분히 밋밋하고 심각하게 느껴졌을 것 같다)
극단적인 감정 연기가 필요한 부분은 배테랑 연극배우 이지하가 꼼꼼히 채워준다.
신비한 우주, 보지 - 산부인과 의사가 들려주는 이야기 음모 - 30~40대 중산층 여성의 이야기 그가 그것을 보고싶어했기 때문에 - 20대 커리어우먼과 그녀를 사랑한 남자친구 이야기 작은 짬지 - 동성애자 이야기 홍수 - 성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70대 할머니 이야기 보지 워크샾 - 처음으로 경이로운 오르가즘을 경험한 40대 여성 이야기 긴 머리 남자 - 남편에게 폭행당하는 아내 이야기 말하라 - 위안부 할머니 이야기 My angry Vagina
9개의 모놀로그 중 개인적으론 이지하 부분이 제일 맘에 들었다.
이 사람 참 연기 잘하는구나 다시 한 번 절감하면서...
핀 조명 하나를 받으면서
덤덤하게 책을 읽어가다가
점점 격양된 감정을 드러내는 모습.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아름다웠다.
솔직히 나는 조금 더 적나라하고 솔직한 작품이길 기대했다.
11년의 내공이 쌓인 작품이니 조금 더 그랬어도 돼지 않았을까?
의도적으로 연출된 몇몇 장면들은 기름과 물처럼 이질감이 느껴진다.
누가 봐도 짜고 치는 고스톱이 분명한데 절대 안 짰다고 우기는 그런 구성들.
그리고 작품의 클라이막스에 해당되는 위안부 할머니 이야기 "말하라"는
너무 교육적(?)이라 오히려 불편했다.
너는 왜 이런 진실을 다 잊고 사니!
너 참 나쁜 사람이구나!
꼭 손가락질하면서 책망하는 것 같아서...
(당신들도 그렇게 살았쟎아요~~~ 라고 말하고 싶었다)
기대가 너무 컸었나?
어쩌면 이날 느닷없이 펑펑 내린 흰 눈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커다란 창가에 앉아서 한참을 바라봤다.
순간 땅으로 떨어지는 하얀 눈이 글처럼 읽혔다.
또박또박, 그 행간의 여백들이...
그리고 어쩔 수 없이 기형도가 떠올랐다.
그걸로 어쩌면 모든 건 이미 끝난 건지도 모르겠다.
눈 속에서 나는 나만의 모놀로그를 읊고 있었다.
총.총.총.
"열심히 하고자하는 성실함보다 절박함이 더 큰 동기가 됐다" 라고....
그는 그때 한창 <베토벤 바이러스>라는 드라마에서 "강마에"라는 도무지 비현실적인 인물을 너무나 현실적으로 살아내고 있을 때였다.
일부러 기억하겠다 작정한 것도 아닌데 우연히 보게 된 인터뷰 기사가 아직까지도 선명하게 담겨있다.
엄청난 이슈와 함께 "강마에 신드롬"을 만들어낸 <베토벤 바이러스>
이 드라마가 방영될 때,
신기하기도 하고 우습기까지도 했다.
전적으로 나라는 인간 때문에.
TV를 거의 보지 않는 나는 시간이 생기면 오히려 책을 손에 드는 편에 속한다.
그리고 확실히 책은 거의 모든 TV 방영물보다 훨씬 더 나를 웃게 만들었고, 그리고 내게는 훨씬 더 적극적이고 환상적이었기에... 그런 나를 늦지 않았을까 조바심치며 TV 앞에 주저앉게 만들고, 시간이 맞춰 귀가하게 만들고, 행여 놓쳤을 땐 기를 쓰고 다시 볼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게 만들었던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으로 그의 이름이 세간의 입에 오르내릴 때도, <하얀거탑>의 천재 외과 의사 "장준혁"을 연기했을 때도 난 한 번도 그 드라마들을 찾아보지 않았다.
이후에 그가 출연했던 <불량가족>, <꽃보다 아름다워> 두 편의 드마라 역시도 전혀 본 기억이 없다.
그런데 지금 나는 감히 그에게 열광한다.
그리고 나는 그 열광앞에 당당히 "감히"라는 말을 붙인다.
배우 김명민!
거기 없는 배우, 김명민!
그를 나 역시도 말하고 싶다. 2001년도 장진영과 함께 주연했던 <소름> . 내가 그를 배우로 처음 알게 된 영화.
영화를 좋아하는 개인적인 취향덕분이긴 해도 <소름>을 보고나서 궁금했다. “뭐지? 저 사람...” 그런데 아무도 그를 아는 사람이 없단다. 그리고 그의 불운은 잘 짜여진 극본처럼 배우를 향한 그의 노력들을 무참히 강타했다. 도박같은 삶... 어쩌면 배우들은 도박처럼 “단 한 번” 그 한탕의 희망에 목숨을 거는 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지금은 엑스트라, 카페 손님, 행인 1에 불과할지라도 언젠간 그래도 잭팟을 터뜨리게 될거란 은밀하고 처절한 희망 그리고 질투. 혹 극단으로 치달을 경우 여지없이 파괴되는 육신과 그리고 육신보다 더 피폐해지는 정신의 소유자가 될지도 모르는 사람들. 누군들 절망하는 삶을 꿈꿀까? 그게 배우의 삶이라면 누군들 그걸 원할까? 배우의 업은 평생을 떠도는 "유목민의 업"이란다.
나는 그 떠돔이라는 게 정처없는 방황이나 헤맴을 뜻하는 게 아니라 어디서든 정착하여 일구어내는 생명력의 다른 표현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다면,
배우의 책임감은 "정착",
바로 그곳에 있어야 하는 건 아닐까?
그리고
그에 대한 다큐를 봤다. 무...서...웠...다....
한번도 그를 두고 무서움을 생각했던 적이 없었는데, 그는 이제 내가 아는 최고의 공포가 됐다.
차이가 있다면 그가 주는 공포의 밑바닥에는 깊고 숙연한 존경심이 내재한다는 사실...
배우를 깊게 존경할 수도 있다는 사실,
이제 알게 됐다......
<내사랑 내곁에>라는 영화를 촬영하고 있는 그는 지금 루게릭병으로 몸이 마비되가는 "백종우"가 되어 있다.
그의 얼굴은 푹 꺼져 초췌했으며, 그의 육신은 힘을 잃었으며, 그의 눈빛엔 이미 그늘이 가득했다.
그의 모습에서 더이상 누구라도 이순신을, 장준혁을, 강마에를 떠올리진 못할 것이다.
정말 그는 완벽히 실종되버렸다.
단지 "백종우"만 있을 뿐....
그렇다면 그는 왜 매번 실종을 택하는가???
급기야 이제 나는 그가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왜 그는 매번 현실에서 사라져버리는가?
그가 그려낸 인물들은 “똥덩어리”를 외치는 비상식적이고 비현실적인 인물들조차 너무나 현실적으로 변해버리는데 그는 왜 도무지 현실적이지 않을까?
그가 현실적이면 그가 창조한 캐릭터들이 비현실의 세계로 되돌아가기 때문에?
영화를 찍고 있는 박준표감독은 말한다.
"미친 것 같아요....연기에"
미친듯이 그를 몰입하게 만드는 연기자의 길을 그는 떠나려고도 했단다.
과거의 기억을 말하는 그의 눈가는 이미 젖어있다.
50:50의 법칙!
나는 이걸 밑바닥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50:50의 상황을 뒤집은 건 단지 1% 노력뿐이라고...
일단 49:51의 상황으로만 만들어 놓으면 그게 추진력이 되어 100:0이라는 불가능의 영역에 내 깃발을 꽂게 될 것이라는 믿음...
밑바닥에 내려온 사람은 겁이 없단다.
더이상 나빠질 것이 없기에.
그러나 내 두 발로 그 밑바닥에 차고 다시 튀어오른다면 그 곳에서 반전이 시작될지도 모르는 일.
마치 그가 그랬던 것처럼...
"그는 정말 많이 말랐다" 지금 그와 함께 영화를 촬영하고 있다는 배우 김여진은 자신의 블로그에서 글을 남겼다. 얼마전 찍은 응급실 씬에서 그는 정말 환자 같았다. 온몸에 핏기라곤 하나도 없었고 추위를 탔다고.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몇번이나 '괜찮으세요?'라고 진심으로 묻게 되었다고 말한다.
57kg 그는 말한다.
"이건 무조건 말려야돼요!"
그의 최종 몸무게는 54kg이란다. 180에 가까운 그의 키를 생각할 때 그쯤 되면 그는 정말 앙상한 종우가 될 것이다.
또 다시 두렵다.
자신의 몸을 이미 백종우에게 그대로 다 내준 그가 아무렇지 않게 무조건 말려야 된다고 말한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마저도 감동하게 만들고 숙연하게 만드는 그가....
어떻게 현실적인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사람,
어쩌면 연기를 통해 신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조차도 나는 이제 그와 관련을 시킨다면 그대로 믿을 수 있을것 같다.
그는 카메라 앞에서 연습하는 건 정말 강심장을 가진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거라고 말한다.
자기는 그러지 못해 연습하고, 연습하고, 또 연습하는 거라고.
그가 말하는 그 "연습"이라는 곳에서 허구에 불과한 인물이 디테일을 갖는 실제 사람으로 변해 현실 속을 이렇게 뚜벅뚜벅 걸어다니게 되는 건가....
아니면,
우리는 정말 무시무시한 <괴물>을 한명 알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혹, 그가 정말 괴물일지라도
나는 그를 위해, 그가 입김을 불어 살려내는 캐릭터들을 위해 괴물같은 응원을 보낼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영원히 거기 없는 배우가 되어 줄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