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끄적 끄적...2011. 7. 22. 06:39

 


역시 차인표였습니다. 말 한마디에도 많은 사람들의 가슴과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가진 이가 바로 차인표라는 생각을 그를 10여년 넘게 만나오면서 갖게 됩니다. 이번에도 차인표의 발언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고 그의 말이 의미 있는 경종을 울렸다는 반응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큰 감동의 울림과 의미의 경종 진원지는 바로 생명의 소중함을 말하고 싶어 썼다는 소설'오늘예보'와 관련한 14일의 기자간담회에서의 차인표의 말이었습니다.

한 해 만 5,00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자살률이 OECD 국가중 1위를 차지한 2011년 한국의 현실에서 그는 말을 했습니다.

"인간 삶의 메뉴에 여러 가지가 있지만 자살은 포함돼 있지 않습니다. 자살은 결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세상을 끝까지 살아내는 것, 더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생명을 계속하는 것입니다"라고요.

어느 유명인의 강한 웅변보다도 강한 감동의 울림을 주는 말이었습니다. 그는 말을 이어갔습니다.

"(연예인들이) 아침 프로그램에서 너무 힘들어서 자살하려고 했다는 말을 너무 쉽게 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랍니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공감하지만 방송에서 해서는 안 될 말이죠. 자살을 하려고 했다는 것은 살인하려고 했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차인표의 이 말을 듣고 크게 공감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2010년 12월 14일에 기자가 쓴 '연예인들, 자살언급 너무하지 않나요'라는 칼럼을 떠올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력을 주는 연예인들이 방송에 나와 "너무 힘들어 자살을 시도했어요" "사업에 실패하고 나니 자살을 하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들더라니까요" "이혼으로 인한 우울증으로 자살을 결심했어요" 등 자신의 힘든 처지를 언급하며 '자살'을 너무나 쉽게 너무나 자주 언급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미니홈피 등을 통해 "죽고(자살) 나면 그 다음에 반성하실 거예요" 섬뜩한 자살 협박의 뉴앙스 마저 풍기는 발언을 하는 연예인까지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차인표의 방송에서의 연예인들의 자살에 대한 무분별한 발언에 대한 언급은 매우 의미 있는 경종을 울렸다는 생각입니다.

지난 2005년 2월 22일 스타 배우 이은주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후 안재환 최진실 박용하가 자살을 해 큰 충격을 줬고 급증하는 일반인들의 자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쳐 사회문제화가 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연예인들이 자살에 대한 언급은 더욱 신중해야하고 가급적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일부 연예인들이 방송의 각종 프로그램에 출연해 자신의 힘든 처지를 강조하기위해, 심지어는 동정적인 여론이나 인지도를 높이기위해 자살에 대한 언급을 시도때도 없이 행하고 있습니다. 방송사 역시 연예인의 자살언급이 사회나 대중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도 나몰라라 하며 연예인의 자극적인 자살 언급으로 눈길을 끌려는 데만 혈안이 돼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차인표의 연예인의 방송에서의 자살 언급에 대한 비판은 매우 의미 있는 지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예인들은 이제 방송에서의 자신들의 자살 언급이 다른 사람의 자살을 부추기는 무서운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으면 합니다. 또한 연예인들이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세상을 끝까지 살아내는 것, 더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생명을 계속하는 것입니다"차인표의 말을 가슴에 새겼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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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달도 훨씬 더 된 기사다.
연기자 차인표는 잘 모르겠지만
(그의 데뷔작 "사랑을 그대 품안에"의 손발 심하게 오그라지던 연기가 지금까지 기억나서....)
인간 차인표는 참 바르고 선한 사람이다.
유재석과 함께 안티가 없는 연예인으로, 혹은 개념 연예인으로,
닮고 싶은 연예인으로 항상 화자되고 있는 차인표.
며칠 전엔 신애라가 강호동의 무릎팍 도사에 나왔다는 기사를 보고 문득 1달도 지난 이 기사가 떠올랐다.
자신의 첫번째 장편소설 <잘가요, 언덕>을 출판했을 때 차인표는 말했다.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정말 힘들게 글을 쓰는 다른 작가들에 비해 쉽게 책을 출판할 수 있었다는 게 미안했노라고...
그리고 그의 첫 소설은 개인적으로 꽤 괜찮았다.
비록 그의 소설이 아직은 서툴고 다분히 동화적이었지만
정신대문제를 이렇게 오랫동안 고민하고 글을 쓴 그가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첫번째 소설을 엉덩이로 썼다고 했었나?
그 정도로 오랜 시간을 앉아서 고민하고 찾아보고 또 고민했다는 반증이리라.

 

차인표란 사람,
한 장면을 오래 그리고 깊게 각인시키는 사람 같다.
풀샷 속에서 아주 작은 한부분을 클로즈업 시킬 줄 아는 그런 사람.
그의 탈렌트적인 재능은 또 다른 의외의 곳에서 다른 모습으로  표출된다.
3편의 이야기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펼쳐진다는 <오늘 예보>는
위트와 유머 속에서 "자살금지!"라는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단다.
노숙자로 전락한 전직 웨이터,
일당 4만원을 벌기 위해 촬영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주식브로커 출신 보조출연자,
죽음 직전의 딸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도망자를 쫓는 것뿐인 퇴락한 전직 조폭.
차인표식 표현으로 옮기자면 함께 달리다가 땅바닥으로 쓰러져 버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란다.

"IMF로 힘들었을 때 한강변에서 울고 있는 남자를 보고 그냥 지나쳤어요. 계속 마음에 걸리더라고요. 봉사활동을 다니면서 만났던 수많은 인물들을 보고 느낀 단상도 많아요. 그리고 또 하나, 동료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지켜보면서 정말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들의 모습을 보고 대중들이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고 여길까봐 조급해졌어요. 이래선 안 되겠다, 지금이라도 빨리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싶은 갈망이 생겼습니다"


고통 속에 있는 사람에게 한 발짝 다가가 한마디의 말만 건네도 살아날 수 있단다.
무심코 툭 던진 말 한마디가 10년 후, 20년 후 어떻게 달라져서 돌아올 지 모르는 일이라고...
작가 차인표의 말은 사실 지극히 정직하고 당연히 옳은 말이다. 
자살은 결코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말...
주변의 평가가 어찌됐든
나는 작가 차인표의 발전과 다음 행보에 관심이 많다.
아직 읽지는 않았지만 그의 이번 책도 꼭 찾아서 읽겠노라 다짐하는 이유는
아마도 그의 "바름"에서 오는 전달력과 흡입력이리라.
첫 소설이 발매 3개월만에 서점가에서 사라져버린  참담한 실패(?) 이후에
그가  또 다시 책을 쓰게 된 이유는 "소통" 때문이란다.
작가와 독자가 서로 얼굴을 마주하면서 진심으로 공감하고 느끼게 되는 그 소통이
그에게 그 어떤 드라마나 영화의 반전보다 더 짜릿한 카타르시스였으리라.
그는 세 번째 소설도 쓰겠노라 말했다.
그리고 그 내용도 생각중이라고.
내겐 조금 더 특별하게 다가오는 작가 차인표!
아마도 나는 내내 그의 진념과 도전을 아름답게 응원하게 될 것이다.
더불어 그의 글이 대한민국의 자살율을 낮추는데 "베르테르 효과"로 작용하기를 간절히 기원해본다.

책임감을 가지고 글을 쓴다는 것,
그것은 위대한 도전이며, 
아름다운 집념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1. 5. 20. 06:00

그렇단다.
요즘 젊은이들은 트위터하느라 소통을 하지 못한다고...
오죽했으면 구글 사장 애릭 슈미트까지도 한마디 했을까?
"젊은이여! 컴퓨터를 꺼라!"
가끔이 아니라 아주 자주 생각한다.
지금 우리나라가 푹 빠져있는 쇼셜 네트워크를 진짜 소통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까를...
적어도 소통에는 가십거리의 고유가 아니라
정보의 공유가 있어야 한다.
우리가 소통이라며 목에 핏대를 세우며 주장하며 빠져있는 쇼셜 네트워크에서
과연 얼마만큼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가?



미국의 저명한 칼럼니스트인 윌리엄 파워스도 이 무시무시한 쇼셜 네트워크 시대에 일침을 가한다.
디지털 원주민에게 그들의 무기를 잠시 꺼 놓으라고...
속도를 벗어나면 깊이를의 세계를 발견할 수 있을거라고...
속도는, 디지털은 우리에게 너무도 많은 것을 앗아갔다.
가끔은 현실이 가상의 세계같이 느껴질 정도로.
이책의 part2를 읽는 것은 휴식같은 즐거움이었다.

가끔은 세상과 거리를 두라  - 플라톤이 발견한 거리의 아름다움 
마음의 거리를 확보하라 - 세네카가 발견한 내적 거리
손에 책을 들게 하라 - 구텐베르크의 자기 성찰
오래된 도구를 사랑하라 - 느린 도구의 매력에 빠진 셰익스피어
삶의 질서를 창조하라 - 벤저민 프랭클린의 긍정 습관
나만의 월든 존을 만들라 - 소로와 숲 속 안식처
마음의 온도를 낮추라 - 맥루한과 행복의 온도 

스마트가 대세인 세상에서
아직 핸드폰조차도 스마트하지 못한 나는
이런 책을 읽는 게 마치 내 편을 하나 얻는 것 같아 든든하다.
나 역시도 언제가 나만의 윌든숲을 꿈꾸고 있기 때문에...
이 시대는 과연 진심으로 스마트한가?


책을 쓴 코너 우드면은 영국에서 잘나가는 애널리스트(analyst)였단다.
"기업 분석가"라...
소위 말하는 참 뽀대나는 직업이다.
저자즌 제대로 뽀대나는 이 직업을 때려치우고
것도 모자라서 전재산까지 팔아치워 세계 여행을 시작한다.
6개월동안 세계를 여행하면서 자신의 판단하에 물건을 사고팔면서 정확히 2배의 이익을 얻겠다는 포부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을 한다고 누가 나선다면
일단 다리 하나쯤은 거뜬하게 부러질 각오를 할 판이다.
저자의 거래는 언제나 성공적이었던 건 아니다.
본전의 반도 안되는 돈을 받고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팔아치워야도 했고
아예 시작부터 황당한 거래도 있었다.
그러나 일단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전혀 다른 일을 새롭게 시작한 그의 자유와 용기는 진심으로 존경스럽다.
모로코, 남아프리카공화국, 인도, 키르기스스탄, 중국을 다니며
낙타에서 커피, 말, 와인, 옥, 목재까지 돈이 될 만한 것은 무엇이든 사고파는 경제 여행이라...
어쨌든 코너 우드먼은 5000만원으로 여행을 시작해서
1억의 돈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리고 그게 연쇄반응이 돼서 새로운 일과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영국에서 TV 프로그램으로 방영되고
그게 또 엄청난 인기를 얻으면서 새로운 스타탄생이 된 모양.
의외의 결심과 선택은
사람을 의외의 곳으로옮겨 놓는다.
새롭게 뿌리 내리고 있는 그는...
참.좋.겠.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12. 6. 06:26
시인 박노해.
<노동의 새벽> 얼굴없는 시인,
그가 <참된 시작> 이후 12년 만에 시집을 출판했다.
1985년 결성된 서노련(서울노동운동연합) 중앙위원 활동,
1989년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연맹) 결성 주도.
1991년 3월 체포되어 24일간의 불법고문 끝에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 수괴’ 죄목으로 사형 구형,
그 후 무기징역형으로 감형.
1998년 8월 15일,
김대중 대통령의 특별사면 조치로 석방되었다.
그 후에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복권되었으나
(참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국가 보상금을 거부했다.
지금은 반전평화운동도 하고 있고
"생명, 평화, 나눔"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단체 "나눔문화(nanum.com)"를 설립해 활동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지금 20대들은 그를 전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에게 "노동 해방'을 운운하면서 그의 이름을 말하는 건,
기행에 가까운 행동이 되어버렸다.
박.기.평.
그는 희망이었다가 전설이었다가 이제는 무엇이 되었는가!
씁쓸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면서
나는 그만 당황하고 말았다.
그의 시들...
아름답고, 가혹하고, 적나라하고, 통쾌하고
그리고 정확하고 분명해서...
읽는 내내 가슴 한 켠이 뭉클뭉클 떨어져나갔다.



한계선

옳은 일을 하다가 한계에 부딪혀
더는 나아갈 수 없다 돌아서고 싶을 때
고개 들어 살아갈 날들을 생각하라

여기서 돌아서면
앞으로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너는 도망치게 되리라

여기까지가 내 한계라고
스스로 그어버린 그 한계선이 평생 너의 한계가 되고 말리라

옳은 일을 하다가 한계에 부딪혀
그만 금을 긋고 돌아서고 싶을 때
묵묵히 황무지를 갈아가는 일소처럼

꾸역꾸역 너의 지경(地境)을 넓혀가라


들어라 스무 살에

반항아가 살지 않는 가슴은
젊음이 아니다

탐험가가 살지 않는 가슴은
젊음이 아니다

시인이 살지 않는 가슴은
젊음이 아니다

너는 지금 인류가 부러워하는
스무 살 청춘이다

스무 살 폐부 속에 투지도 없다면
스무 술 심장 속에 정의도 없다면
스무 살 눈동자에 분노도 없다며
알아채라, 네 젊음은 이미지나가 버렸음을

들어라 스무 살에

혁명가가 살지 않는 가슴은
젊음이 아니다


거대한 착각

나만은 다르다

이번은 다르다

우리는 다르다


후지면 지는 거다

불의와 싸울 때는 용감하게 싸워라

적을 타도할 수 없다면
적을 낙후시켜라

힘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다
돈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크기로 이기는 거다
미래의 빛으로 이기는 거다

인간은, 후지면 지는 거다

웃는 나의 적들아
너는 한참 후졌다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

지금 세계가 칠흑처럼 어둡고
길 잃은 희망들이 숨이 죽어가도
단지 언뜻 비추는 불빛 하나만 살아 있다면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세계 속에는 어둠이 이해할 수 없는
빛이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거대한 악이 이해할 수 없는 선이
야만이 이해할 수 없는 인간정신이
패배와 절망이 이해할 수 없는 희망이
깜박이고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그토록 강력하고 집요한 악의 정신이 지배해도
자기 영혼을 잃지 않고 희미한 등불로 서 있는 사람
어디를 둘러 보아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대에
무력할지라도 끝끝내 꺾여지지 않는 최후의 사람

최후의 한 사람은 최초의 한 사람이기에
희망은 단 한 사람이면 충분한 것이다
세계의 모든 어둠과 악이 총동원되었어도
결코 굴복시킬 수 없는 한 사람이 살고 있다면
저들은 총제적으로 실패하고 패배한 것이다

삶은 기적이다
인간은 신비이다
희망은 불멸이다

그대, 희미한 불빛만 살아 있다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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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여 편의 시들이 어찌 그리 다 진심이던지...
"넌 나처럼 살지 마라" 말하는 부모를 앞에 둔 대한민국의 슬픈 현실과
거대기업을 삼성을 향해 
스스로 착해지지 말고
네 주둥이를 묶은 안전망과 목줄로만 착해지란 외침이
지금까지도 부끄러워 참을 수 없다.
최선이 타락하면 죄악이 되고
멈출 때를 모르는 성장은 죽음이란다.
참된 성장은 그래서 성숙이라고...
그러니 정직하게 흔들리고 깨끗하게 상처받으라고 박노해가 말한다.
책을 열심히 보느라 독서할 시간이 없고,
말을 많이 하느라 대화할 시간이 없고
머리를 많이 쓰느라 생각할 틈이 없고
인터넷과 트위터 하느라 소통할 시간이 없는 우리에게
그가 말한다.
참담했다. 눈 앞이 캄캄했다.
그러나 그 참담함 속에서도 나는 조금 안도하고 안심했다.
참담한 자신의 모습 앞에 눈앞이 캄캄해지고
다리가 후들거려 무릎을 꿇어보지 않은 자는
무릎 꿇는 힘으로 다시 일어서 전진할 수 없다고 그가 위로하며
초라한 어깨를 다독였다.
어쩌면 나는 이 참담함을 이겨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사람만이 희망이라고 했다.
그러니 그대여!
우리도 아직은 사라지지 말자.
작은 불빛 아직 깜박이고 있으니
우리는 아직!
나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8. 27. 06:37
복잡하고 어려운 책이다.
제목에 끌려서 선택한 책인데 그야말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에바 일루즈의 유명한 강의를 정리한 책이라는데
아주 전문적이고 철학적인 문화비평서다.
대략의 의미를 파악하는데 문제가 없었지만
자세히 이해하기에는 아무래도 내 지적 능력이 한참은 부족해서...



감정 자본주의란,
감정 영역과 경제 영역이 상호 침투하는 문화란다.
정서가 경제행위의 본질이 되는 동시에 경제논리가 감정생활을 지배하게 되는 문화를 뜻한다.
이걸 가지고 정신분석학자, 철학자, 석학들의 연구들을 접목해가면서 온건하게(?) 비판하고 있는 책이다.
정서와 정신분석학적 구상은 노사관계와 생산성의 핵심에 놓인다는 말은 꽤 정확한 지적이다.
정서성의 언어와 생산적 효율성의 언어가 점점 뒤얽히게 되면서
서로가 서로의 구성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는 말은 나 역시 충분히 공감이 된다.
책 속에서 저자는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환경에서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기술로 "소통"을 꼽는다.
"소통"은 조율과 인정을 가르치는 기술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공존할 수 있는 감정 기술 이란다.
이 책에서 경제 영역이란
감정이 결여된 영역이 아니라 오히려 정서로 가득한 영역이라면서
감정지능(EI) 중요성을 역설한다.
감정지능이란,
사회지능의 한 유형으로 자기와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점검하고,
감정간의 차이를 식별하며, 이렇게 얻어진 정보를 활용해 자신의 사고와 행동을 결정하는 능력이다.
감정지능에 속하는 능력은 다섯 가지가 있는데
자기인식, 감정관리, 동기부여, 감정이입, 관계조율이 그것이다.
감정지능을 통해 사람들은 사회와 문화의 새로운 특징들을 가늠할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을 등급화할 새로운 방식들을 고안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현재의 자본주의를 "감정 자본주의"라 지칭할 수 있는 것이다.



본문의 내용이 다소 어려운 건 사실인데
인내심을 가지고 마지막 부분의 옮긴이(김정아) 후기까지 읽으면
어느 정도 정리를 할 수 있다.
감정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적 관계들은 탈육체와, 탈낭만화 경향을 보인단다.
저자가 원제로 채택한 "차가운 친밀성"이란 바로 이런 감정 자본주의 시대의 새로운 정서 형태이다.
에바 일루즈는 감정 자본주의의 최종적 판단의 근거로
"합리"가 아닌 "상식"을 내세우는데
개인적으론 명확하게 이해긴 어려운 논제다.
"합리"에만 맹종하게 되면 "초합리적인 바보"가 된다고 말하는데
이해는 되지만 확실히 어렵다.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심리학이나 철학적인 사고가 꼭 필요할 것 같다.
책을 읽다보면 (꼭 이 책이 아니더라도)
내가 이런 부분에 취약하다는 걸 절감하게 된다.
그러니... 나는 한참 멀었다.
넓게 읽어야 하는 건지, 깊게 읽어야 하는 건지,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딜레마에 빠졌다.
뻐.끈.하.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7. 8. 06:40
정말 인간적으로 재미있는 책이다.
책 표지부터 얼마나 인간적(?)이던지...
앞표지의 그림 자체가 이 책의 내용을 그대로 다 말해주는 것 같다.
한쪽으로 밉지 않게 살짝 돌아간 눈이며,
누군가의 시덥잖은 비밀을 듣느라 잔뜩 집중된 귀,
벌름거리리는 건수를 찾는 듯한 코,
금방이라도 별 생산적이지 않는 우스개소리를 쏟아낼 것 같은 입매.
거기다가 상당히 주관적으로 편안한(?) 원초적인 의상에
두루뭉술한 배둘레, 겹겹히 쌓인 친숙한 지방질까지...
정말 한 마디 안 할 수 없다.
"야~~ 참, 인간적이다~~~"
그러면서 문득 궁금해진다.
표지는 성석제의 의도였을까? 출판사의 디자인이었을까?



49편의 콩트같은 단편들이 담겨 있는 책이다.
아주 소소하고 일상적이고 이야기들
게다가 몇몇은 거의 허무개그의 수준이다.
박장대소를 노리고 보다는 삐질삐질 새어나오는 웃음을 노린 그런 이야기다.
개그콘서트를 책으로 보고 있다는 느낌 ^^
이 중에 또 몇 편은 또 다른 이야기가 되어 지금 성석제의 머릿속에 구상 중일지도 모르겠다.
성석제의 글들은 가벼운듯 하면서도
묘한 뒷끝이 있다.
읽는 사람을 뒤가 구리게 하고 캥기게 하는 그런 반갑지 않은 마음도 들게 한다.
하지만 그의 재치와 유머러스함은 정말 명불허전이다 싶다.
손꼽히는 스토리텔러에 들어가는 이유를
이 사람의 책을 읽으면 매번 확인하게 된다.
2시간 정도 진득하니 앉아 있을 수 있는 책.
것도 아니면 아무 페이지나 펼쳐들고 겅중겅중 읽어도 무방한 책.
책이 주는 자유로움을 맘껏 즐길 수 있는 단편집이다.



열 두 번째 소설집을 낸 50에 들어선 작가 성석제는 말한다.
"사람 사이의 이야기를 문장으로 포착해 소설로 만들어내는 순간,
 소설과 비소설 사이에 있는 그 아슬아슬한 긴장이 좋다"
라고...
그래서 그의 글 속에는 사람 냄새가 진동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제일 중요한 건 독자와의 소통이거든요. 
 내 소설이 구현하려는 바와 독자들이 가지고 가려고 하는 것이 맞아떨어지면 문학적 거래,
 즉 소통이 성립하죠.
 이 때 형식적 시론은 중요치 않아요."

성석제의 글을 읽고 있으면
내 일상같은 단편들로 인해 세상 다들 별 다를 것 없이 사는구나 싶어
안도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안도감이 나는 "소통"이라고 생각된다.
살다보면 담배값 깍는 인간도 만날 수 있을 것이고 (대단은 하다...ㅋㅋ)
후진하는 차를 인도하는 신부님을 보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고
철부지없는 시부모를 만날 수도 있을거다.
또 모르지, 종계(種鷄)를 서리해서 씨를 말리는 참사를 빚게 될지도...
읽으면 읽을수록
나만 시덥잖은 게 아니구나,
나만 지지리궁상인 건 아니구나.
나만 팍팍한 게 아니구나...
웃으면서 공감하하게 되고 절로 악수하고 싶어지게 만든다.
가볍지만 그러나 그 가벼움 속에 똬리 틀고 있는 예리한 일상들 역시도 다정하게 다가온다.
그래, 인생 뭐 별 거 있나?
이렇게 인간적으로 사는 거지!
어딘가에 있을 49편 단편의 주인공들과
인간적으로도다 소주 한 잔 기울이고 싶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1. 22. 06:05
공자를 흔히 이상주의자라고 말한다.
그런데 아무래도 나는 장자가 공자보다 훨씬 더 이상주의자같다.
공자의 말은
그래도 성인군자로서의 행동을 시행해 봄 직도 하지만
장자의 말은 인간세상에서 성인군자를 넘어 도통의 경지에 이르기를 바라는 것 같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고 좋은 말이긴 한데
이걸 현실적으로 받아들이는 방법은 도저히 아무것도 하지 말고
무심(無心)의 경지가 되야만 한다.
아무 마음 없이 세상을 살 수 있을까?
(정확히 말하면 사심과 욕심없이)



깨끗함이 드러나는 사람은 진정 깨끗한 사람이 아니다. 장자의 관점에서 보면 그는 깨끗함에 집착하는 사람일 뿐이다. 집착하는 사람은 그 반대되는 것을 의식하고, 더 나아가서는 반대되는 것을 부정할 것이다. 지나치게 깨끗한 옷차림을 좋아하는 사람이 남의 더러운 옷차림을 이해하지 못하는것처럼, 마음의 깨끗함이 '훌륭한 것'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작은 오점을 용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보았다. 장자가 보기에는 이런 사람은 진정 깨끗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효도와 형제애, 박애와 정의, 충성과 신의, 지조와 청렴 등의 가치는 원래 인간의 내면에 있는 자연스러운 품성의 발현이므로대단하다고 할 만한 것들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런 것이 드러나 보이면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것은 사람이 머릿속의 생각만으로 추구하는 가치란 아무리 숭고한 것이라 해도 상대적인 것이며, 결국에는 무너지기 쉬운 허상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사람을 세상 속에서 버티게 만드는 건 어느 정도 "집착"의 힘이 아닐까?
결국에는 무너지기 쉬운 허상이며 관념이라는 장자의 말은
그러나 지독히 이기적인 결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책 속에 "관념"에 대해 언급한 부분은 눈에 띈다.

생각으로 자리잡은 "관념"이란 편견에 불과할 뿐이다.
관념은 대개 주관적이고 편협적이다.
진정한 실체는 인간이 생각하는 한계와 표현하는 범주를 넘어서는 일이다.
아무리 좋은 가치라도 머릿속에 관념으로 자리 잡히는 순간 본질이 훼손도고 만다.
진실을 보지 못하는 원인이란 정형화된 기준이 "관념"이 되어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정한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개념화된 언어와 문자의 폐해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변화하는 사물의 표면에 얽매이기 때문이다.
관념의 덫과 껍데기에 머무는 오류는 세속적인 것에의 탐닉 때문이다.


관념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그는 "통찰"을 언급한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새로운 차원의 눈으로 현실을 보는 통찰.
결국 장자가 강조하고 있는 것은,
첫째는 "있는 그대로 두라"는 것이고,
두 번째의 것은 더 나아가 "자신을 쓸모없는 상태로 두라"는 것이다.
모든 감관(感觀)의 작용을 멈추고 자기 자신의 존재조차 잊는 "좌망"의 존재가 되자고 말하는 장자.
사랑이나 정의 등도 인간이 설정한 일정한 기준에 불과하다.
이런 기준은 그보다 더 큰 기준으로 넘어설 수 있지만 자신의 육신의 존재를 잊고 감관의 작용을 넘어서는 일은 어려운 일이란다.
거기에 "나"라고 하는 자의식과 지식까지 버리고 자연의 섭리와 하나가 된다는 것은
"지고의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는...
이렇게 살게 되면 장자의 말처럼 삶의 기술과 도가 합쳐지겠구나 싶기는 한데,
아무래도 불가능 그 이상의 일 같다.
(불가능, 그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한다면 대략 난감...)

언젠가 지적 능력(?)이 지금보다 월등해지면(?)
해석본이 아닌 제대로 된 장자와 한 판 붙어봐야 겠다..
비판자가 될지, 동조자가 될지 스스로 궁금해지기에...
아직 그의 이론은 내겐 그저 "한여름밤의 꿈" 같다.
그런데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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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동네 책거리2009. 11. 30. 05:51
 <죽도록 책만 읽는> - 이권우



죽도록 책만 읽는

지난번에 소개한 간서치 이덕무와 유사한 책벌레의 책을 한 권 소개하려고 합니다.

책을 읽고 싶은데 어떤 책을 읽는 게 좋을지 모르겠다고 생각되는 분께 적극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일곱 개의 챕터로 구성된 이 책은 어느 한 쪽에 치우침 없이 다방변의 주제에 대한 책들을 적당한 호기심과 흥미를 유발하도록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도 이 책을 보면서 희망도서 목록에 상당한 책들을 추가했고 지금 열심히 읽고 있는 중입니다.

저처럼 두루뭉술하게 주절주절(?) 책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소위 말하는 에센스만을 짧고 간략하게 소개해 주고 있는 책입니다.

솔직히 꽤나 열등감과 부러움을 자아내게 만드는 책이죠.

그래도 평소에 책 좀 읽는다고 자부했었는데 이곳에 소개된 책들을 살펴보고는 읽지 않은 책이 훨씬 더 많다는 걸 알고는 번데기 앞에 주름잡은 스스로에 대해 반성하게 만든 계기도 됐습니다.

책의 저자 이권우!

서평잡지 <출판저널>의 편집장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야말로 책에 파묻혀 지냈던 사람이고 현재도 책을 통해 여전히 밥벌이를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스스로 “호모 부커스”를 자처하는 사람이기도 하죠.


“호모 부커스”

책 읽는 인간 존재라는 뜻의 신조어죠.(사실은 꽤 오래된 단어이긴 합니다만...)

이 말 속에는 “공유”의 의미도 함께 포함되어 있습니다.

흔히 독서라는 건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책 읽는 자의 궁극적인 목적은 저 또한 “공유와 소통”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작가 개인과의 생각과 감정 공유를 넘어 더 많은 타인과의 적극적인 소통의 시작이 “독서”의 매력이라고 개인적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호모 부커스”들은 상당히 개방적이며 지독히 현실적이기까지 하죠.

어설픈 독서가들은 현실과 이상 사이의 혼동을 겪게 되지만 “호모 부커스”들은 현실과 이상을 명확하게 구분함으로써 스스로 최대한 편견 없이 판단하고 평가하는 공정함까지 소유하게 됩니다.

“박학다식”이라는 말 속에 항상 “다독”이 포함되어 있는 이유기도 하죠.

눈이 갖는 기억력, 그래서 저는 책을 통해 얻게 되는 기억과 지식들에 대해 차별성을 두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은 말이죠...

사람을 참 조용히 수다스럽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이 책, <죽도록 책만 읽는>도 그런 의미에선 상당히 수다스러운 책이죠.

그런데 그게 “바글바글” 떠들며 밖으로 퍼지는 소란스러움이 아니라 “소곤소곤” 다가오는 울림이라는 게 그 차이점이죠.

무려 110권이나 되는 책들의 수다를 들을 수 있습니다.

신문을 펼쳤을 때 부담감 없이 재미있게 보게 되는 한 컷짜리 카툰 같다고나 할까요?

짧은 글 속에 필요한 것들만 쏙쏙 알차게 들어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짧은 글 속에 촌철살인의 문구들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가령, “고전”에 대해 말하면서,

“고전, 제목은 알아도 정작 읽어보지 않은 책”이라는 스피노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정곡을 찌르는 이야기를 시작하죠.

“...... 오늘, 다시 고전을 읽는 데는 다른 무엇보다 토론과 논쟁의 정신이 필요하다. 세월의 담금질을 겪으면 겪을수록 그 정신의 순도가 높아지는 것을 일러 고전이라 한다. 앎과 지혜의 고갱이가 가득 쌓인 곳간인 셈이다. 그러나 이 곳간은 좀처럼 자신의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지적 호기심이나 의무감만으로 고전을 읽으면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 정도로는 권위와 명성, 그리고 오해의 더께가 잔뜩 끼인 고전의 빗장을 열어젖힐 수 없다. 나는 고전의 문을 여는 열쇠는 치열한 문제의식이라고 여겨왔다. 우리 시대의 문제상황을 깊이 이해하고, 그 타개책을 찾기 위한 지적 분투의 필요성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을 달리 표현하면, ‘질문만들기’라 할 수 있다.

질문을 만든 사람이 고전을 경전처럼 여길 리 없다. 고전의 지은이와 토론과 논쟁을 벌이게 마련이다. 막장을 뚫고나갈 지혜를 묻고, 그 답이 현재적 가치가 있는지 토론한다. 도전적인 토론은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이 과정에서 지은이의 사상이 안고 있는 한계가 드러나며, 이를 넘어서기 위한 대안을 찾게 된다. 이쯤 되면, 고전의 주위를 맴도는 지은이라는 ‘유령’이 가만히 당할 리 없다. 해석의 오류를 지적하거나 자신의 다른 책을 참조해야 한다고 복화술로 변호하기도 한다. 고전을 읽는 행위는, 그러므로 묵독일 수 없다. 제대로 읽으면 그것만큼 소란스러운 책읽기가 없다. 자신도 모르게 카니발적 책읽기에 몰두하게 된다..... “

고백컨대, 

저를 완벽히 KO패 시킨 문구였습니다.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만드는 책입니다.

책은 그러니까 “앎과 함”의 일치를 위해 우리에게 꼭 필요한 행위라고 이 책은 말합니다.

환상은 현실보다 힘이 세다고 하죠. 그래서 우리는 환상에 머물고픈 욕망에 늘 빠지게 됩니다. 그게 어쨌든 일반적인 힘의 논리니까 말입니다.

책은. 그러니까 그 환상을 극도의 차가운 정열로 바라보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카더라” 통신에 빠지지 않고 바른 시각과 주관을 갖게 만들어 주죠.

생각해보면 정말 책만큼 누구에게나 민주적인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책장을 열기만 한다면 누구에게나 공평한 세계를 그것도 비밀 없이 송두리째 보여주죠.

“다 열어보였으니 어디 한 번 맘껏 들여다봐라!”

책벌레들을 그래서 흔히 관음증 환자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책에 새겨진 다른 사람의 욕망을 책장을 커튼 삼아 훔쳐보는 책벌레들...

그러나 책을 탐하는 관음의 시선은 훨씬 더 근원적이고 깊고 고요합니다.

책을 구하고, 읽고, 즐거움을 나누는 모든 과정에 대한 일종의 은밀한 흥분감이죠.

그래서 책의 자궁이라는 것이 있다면 저 역시도 기꺼이 몸을 웅크려 작은 태아가 될 용의가 있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죽도록 책만 읽어도” 다 읽혀지지 못할 책들의 세계.

그 책들의 세계 속에 몸을 웅크리고 지독히 탐욕스런 관음의 시선으로 책들을 바라보자 권하고 싶습니다.

마술사의 비밀을 아는 순간 눈속임의 실체가 드러나는 게 아니라 드디어 스스로 같은 마술사가 되는 거라고 하죠.

오늘 해리포터의 세계로 함께 들어가자 여러분께 손 내밀고 싶습니다.

깊고 고요하고 간절하고 농밀한 관음의 세계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11. 9. 06:01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 - 배용준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

일본에 사는 저희 언니의 말입니다.

일본 아주머니들이 왜 그렇게 욘사마에 열광하는지 모르겠다는 핀잔성 발언을 하는 저에게 배용준이란 한국배우가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얼마나 유명하고 대단한 위치에 있는 줄 아느냐며 해 준 말이었죠.

욘사마랑 같이 여객선을 타고 여행하는 크루즈 상품이 판매된다면 그 상품은 수 초 만에 대박 매진이 될 것이고, 그렇게 바다 위를 함께 여행하는 어느 날, 정말 아무런 이유도 없이 욘사마가 ”뛰어!“라고 외치면 의심의 여지도 없이 배 위의 모든 여자들이(남자들은 물론 아니고) 거침없이 푸른 바다 속으로 줄줄이 뛰어 내릴 거라고...

언니의 말을 듣고 배용준의 입지가 어느 정도인지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솔직히 좀 공포스럽긴 했죠.

사이비 종교의 집단 최면 상태가 떠올랐기에...

거대 한류산업의 최대 기업체 배용준이 자신의 이름으로 여행 에세이를 출판했습니다.

“연예인 프리미엄”

저는 개인적으로 이 책이 연예인 프리미엄의 극대화를 보여주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의 질적인 부분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책을 만든 모든 과정과 배용준이 선택한 여행의 여정들, 그리고 만나게 된 모든 사람들에 대한 언급이죠.

우리같은 일반인들에게 감히 금지된 혹은 쉽게 허락되지 않은 곳을 직접 보고 경험하고 온 특별한 사람의 기록!

딱 배용준이기에 만들 수 있었던 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마음 한켠으론 뭉클한 동정심이 일기도 했죠.

조금은 두려웠습니다.

배용준의 여행길을 함께 동행하는 게 아니라, 그의 외로움을 들여다보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스러움...

책을 집필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 그는 말합니다.

어느 날 일본에서의 인터뷰 중 한 기자에게 “혹시 추천 해주고 싶은 한국의 여행지나 명소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게 됐다고 합니다.

“부끄러웠지만 별로 아는 것이 없었다.”

그의 솔직한 고백이었답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고 하네요.

“......잘 알지 못했던 우리 문화를 알아 나가면서 나는 내 자신을 다시 찾고 싶었고 그럴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전히 외롭고 또 그리운 것을 찾고 싶은 한 인간으로서 다시 서고 싶은 심정이 들었던 것 같다......”

그의 마음속에는 아마도 자신조차도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커다란 구멍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다르게 숨쉬는 방법을 선택하게 된 건지도요...


"떠나다 - 머물다 - 버리다 - 사색하다 - 돌아오다 - 다시 떠나다 "
그가 선택한 여행의 루트입니다.

그 각각의 여정 속엔 딱히 타이틀과 어울리지 않은 부분들도 많이 있긴 하지만 그는 이런 감성의 루트로 여행을 이어갑니다.

떠남을 준비하면서 그는 정갈하고 소담한 아침상을 받는 것으로 그 여행을 시작하죠.

“일상의 단순함이 큰 의미를 줄 수 있듯이, 매일 차려먹는 단순하고 소박한 가정식이 내 활력의 근본이었다”고 말하는 배용준.


늦은 가을의 끝자락 생애 최초의 김장을 통해 힘찬 겨울나기 갈무리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 그 여행의 끝에 그는 자신만의 래시피로 김장을 하고 싶다는 소망도, 지인들과 소박한 김장모임을 만들고 싶다는 바램도. 우리나라 김치명가를 찾아 떠나는 또 다른 소망의 여행도 꿈꿉니다.

옻칠공예와 전통한지, 템플 스테이, 차, 도자기 속으로의 잠깐 동안의 멈춤.

(모두 오랜 시간을 들여 곱게 곱게 그리고 고요히 정제되고 있는 것들이죠.)



우리나라보다 오히려 일본에서 더 유명한 옻칠공예 장인 전용복 선생(그가 일본의 세이코 시계와 함께 만든 자계 손목시계는 최고 9억 원을 호가하는 엄청난 명품 예술품으로 인정받고 있죠)과의 만남, 천 년의 세월을 견뎌온 전통 한지의 신비감, 이상하게도 건강한 식욕을 솟구치게 만드는 발우공양, 야생차밭에서 채다(採茶)된 덖음차의 깊고 고요한 맛. 흙과 하나가 되는 도공의 물레와 춤추는 불꽃 가마 앞.

읽는 동안 저 또한 그가 머물렀던 곳을 신기한 풍광을 보듯 기웃거립니다.

(우리의 전통 문화를 신기한 이국의 풍경을 보듯 바라보고 있는 제 모습이 어쩐지 처량하기까지 합니다.)

부럽다는 생각.

이런 대가들의 작업장을 방문해서 고급의 전통문화의 진수와, 그 정신의 정갈함을 직접 보고 체화할 수 있는 사람... 과연 얼마나 될까요?

초특급 배우 배용준이기에 방문이 허락된 곳도 분명 여러 곳 있기에 괴리감이 느껴지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일반인에겐 공개되지 않는, 어떤 의미에선 선택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진정한 노블리스 고급 문화의 한 단면을 보는 심정은 열등감 비슷한 자괴감까지 들게 합니다.

물론 전통한지를 만드는 열악한 환경에 대한 토로나 점점 사라져가는 가양주에 대한 안타까움에 대한 기록도 있습니다. 만약 누구라도 관심만 가져준다면 살려낼 수 있는 전통에 대한 안타까운 현실고백들 말이죠.

점점 잊혀져가는 그래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전통 문화에 대한 개인적인 안타까움과 관심은 급기야 그의 집에 옻칠 공예 작업대를 들여놓고 하고, 도자기를 만드는 물레와 가마를 들여놓게까지 했습니다.

대단하다는 생각도 물론 들지만 어쨌든 세상 다수의 사람들은 아무리 관심이 깊어도 쉽게 이런 것들을 구비하며 탐구할만한 여유가 없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관심은 있지만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동경이 대부분 사람들의 심경이죠.

아마도 배용준이란 한 사람이 이런 것들에 대해 관심에 갖게 된 이유는 “깊이에 대한 외로움”이 그 원류가 아닐까 가늠합니다.

환하게 비춰지는 스포트라이트 앞에서, 숱한 파파라치들과 그를 향한 시선들 속에서 어쩌면 그는 깊은 곳으로 잠시 침참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죠.

“우선 향은 단내가 났다. 차분하게 눌려있는 기운이다. 맛은 대체로 맑았다. 색은 약간 황금빛이 돌았다. 그리고 배에서부터 팔다리로 따뜻한 기운이 펴져나갔다...... 녹색의 진함이 강렬하고, 색이 맛으로 고스란히 전달된다. 부드러운 거품과 은은한 향이 점점 강해지면서 몸 속까지 푸르게 만들어 버릴 것만 같다.”

한 잔의 덖음차를 목울대로 넘기는 그의 느낌이 어쩐지 저는 절절하게 느껴졌습니다.

그에게 필요했던 건 “휴(休)”였던 것 같네요.

그 방법으로 그가 선택한 것이 바로 문화 속으로의 정중동(靜中動)이었음을 조금씩 이해하고 다독이듯 보듬게 됩니다.

주춧돌만 남은 황량한 폐사지 앞에서 버림으로 다시 흥하는 문화를 생각하고 한글과 세종대왕, 경복궁과 천상열차분야지도의 현대적 해석과 적용을 깊게 깊게 음미하고, 국립중앙박물관 앞에서 원류에 대한 탐구로 미래의 길을 찾으려고 그는 노력합니다.


“'미지의 것'을 마음에 품고 살 때 그것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유익한가를 나는 알고 있다. 그것은 사람을 순수하고 겸손해지게 한다. 그리고 노력하게 하며 반짝이게 한다. 배움의 열의를 갖게 한다. 너무 많으면 바보가 되고, 너무 적으면 교만하게 만들지만 적당히 가지면 유익한 것이 바로 그 미지의 것이다.”

그의 여행을 압축한 문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가 꿈꿨던 “휴(休)”라는 건 그러니까 방황하지 않는 법을 찾아내는 것이었네요.

아마도 그는 또 다른 책을 다시 쓰게 되겠죠.

하고 싶은 말들이 아직은 많이 남아있는 것 같거든요.


그리고 이 책 한 권으론 그 말들을 충분히 담을 수 없었다는 것까지요...

바람이 있다면 다음에 만들어지게 될 책은 조금 더 정직했으면(그냥 여러 가지 의미에서요)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책은 한류의 열풍을 타고 일본에서도 폭발적인 주문이 이어지고 있는 책이니까요. 그들에게 번역본으로 책이 출판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구절들이 상당히 있습니다.

이 모든 전문적인 글들(특히 옆에 따로 기재되어 있는 각주같은 것들)이 분명 배용준의 머릿속에서 나온 건 아닐 텐데 참고한 문헌에 대한 명확한 기재가 없다는 게 좀 그렇습니다, 그리고 사진에 대한 설명도 부족하죠. 더불어 본인이 찍은 사진과 다른 사람이 찍은 사진을 좀 구별했다면 그 느낌도 남다르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마치 이 모든 사진들을 그가 찍은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하죠.

물론 책을 보고 있으면 그의 얼굴이 담긴 사진들이 많기 때문에 뭐 굳이 포토그래퍼들을 전면에 드러내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죠.

그리고 띄어쓰기가 잘못 된 곳도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일정한 그의 감정에서 살짝 벗어나는 어투들도 간혹 보입니다. 다른 사람의 손길이 닿은 흔적 같은 거죠.

뭐, 그렇더라도 이런 시도는 박수를 보내기에 충분하다 생각합니다.
잊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한 안스러움을 일깨워주니까요. 그리고 이 책을 만들기 위해 그가 찾았을 숱한 자료들과 책들에 대한 탐구도 눈부십니다. 모든 구술(口述)들까지도 말입니다.


녹차가 채집시기에 따라 세작, 중작, 대작이 구분된다는 것도, 세종대왕이 즉위 후 처음 한 말이 “우리 논의합시다!”였다는 사실도, 노비들에게 출산휴가를 주었다는 사실도, 도자기를 굽는 가마에는 적어도 한번에 1톤의 나무가 필요하다는 것도 모두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

우리 전통 문화에 대한 고급스러움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는 걸 책을 덮은 후 이해하게 됐습니다.

비록 그것이 소수에게만 허락되는 문화일지라도 그 소수의 사람이 의해 다수의 사람에게 전달되기를 그는 꿈꿨던 거죠.

“유명인이 되기에 앞서 진정한 문화인이 되라.”

그가 방문했던 사찰의 큰 스님이 그에게 신신당부한 말이라고 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 남들이 보기에는 내가 인기와 명예로 정말 풍요로울 거라 생각하겠지만 나는 내가 그것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죽는 것이다라고 항상 스스로 되뇌인다. 아직 그렇게까지 무뎌지고 싶지는 않다. 나는 언제나 꿈을 꿀 것이고 꿈을 꾸고 있어야 내가 살아가는 것이니까 .......

척박할수록 더 질기게 발휘되는 게 인간의 잠재력이라고 합니다.

그 잠재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우리 전통 문화의 정수인 원칙, 정성, 노력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반드시 필요하겠죠.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동시대 사람들이 함께 꾸어가는 꿈이 바로 “문화”라고 하네요.

아마도 그는 그 “문화”를 공유함으로써 소통을 꿈꾸려 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타인과의 소통,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소통까지 말이죠.

그는 이 책을 통해 분명 낯선 말걸기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어쩐지 잘 들었노라고 가만히 대답해주고 싶어지네요.

어쩌면 이 대답이 문화 공유를 꿈꾸는 우리 모두의 첫 교감이 되 줄지도 모르니까요.

어쩌면 정말 그럴지도요...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4. 6. 05:57
<연금술사> - 파올로 코엘료

연금술사 


“옛날 영화를 보러갔다”

윤대녕의 소설 제목입니다.
<연금술사>를 떠올리면 이상하게 전 이 소설 제목이 떠오릅니다.
그렇다고 <연금술사>가 무슨 오래된 고전 소설도 아닌데 말이죠.
우리나라에 미지의 문학처럼 여겨졌던 중남미 문학의 붐을 만들어냈던 소설.
그리고 작가는 참 다양한 경험과 다양한 직업, 그리고 다양한 방황(?)과 다양한 구도(?)의 길을 만난 사람입니다. 산전수전에 소위 공중전까지 전부 겪은 셈이죠.
처음에 이 사람의 책을 읽었을 때 분명 게이일거란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지만....^^)
문체가 여성스러웠던 건 아닌데 어쩐지 섬세하고 다정한 것이 따뜻한 양모를 뒤집어쓰고 있는 느낌이었거든요.
따스함의 전달 혹은 적당한 안식이라고 말할까요???
제가 알기론 현재까지 우리나라에 번역된 그의 책은 전부 9권입니다.
그의 첫 책을 비롯해 11권은 아직 번역되지 않은 상태고 가장 최근 번역작은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개인 산문집입니다.
1982년부터 지금까지 27년 동안 열심히 작가의 길을 가고 있네요.
이 사람의 경력은,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직업을 가지는 게 가능할까 의심스러울만큼 다양합니다.
그것도 한번 스치는 직업이 아니라 소위 한 분야의 전문가 소리를 들을 만큼 실력을 발휘했던 사람이죠.
그런 사람의 마지막 정착지가 작가인 셈이네요.
1947년 출생, 이제 60 고개에 접어든 나이니까 혹 모르겠습니다. 또 다른 길을 준비하고 있을지도....

<연금술사>
파올로 코엘료를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로 만들어준 소설입니다.
“무언가를 온 마음을 다해 간절히 원한다면, 온 우주가 그 소망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와준다...”
책의 내용은 몰라도 이 구절은 이제 하나의 명언처럼 유명세를 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 단서가 있다는 걸 혹시 아시나요?
“단, 자신이 원하는 게 무언지 언제나 정확히 알고 있어야만 한다....”는
생각해보면 너무 당연한 말입니다.
내가 원하는 게 뭔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이루어지길 간절히 소망할 수 있겠어요?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잘 아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자주 그리고 쉽게 잊어버린다는 사실이죠.

이 책,
 
첫 페이지부터 은밀함을 품고 있습니다.
.....위대한 업의 비밀을 알고,
그 비밀을 사용할 줄 아는 연금술사 J에게....
어쩌면 그냥 스쳤을지도 모르는 이 문구가 이 책의 맨 앞에 쓰여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책을 읽는 동안은 이 “J"가 되기로 작정을 했죠.
주인공 산티아고의 순례의 길을 함께 따라갑니다.
“J"인 나는 꿈을 해몽하는 집시가 되기도 하고, 늙은 왕이 되기도 하고, 크리스털 가게 주인이 되기도 하고, 영국인이 되기도 하고, 낙타몰이꾼이 되기도 하고, 오아시스에 남겨둔 그의 여인이 되기도 하고, 연금술사 스승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물론 산티아고 자신의 모습이 되기도 하죠.
함께한 순례의 길은,
자아의 신화, 위대한 업 혹은 만물의 정기, 그리고 하나의 언어로 명명되어지는 “사랑”에 대한 비유와 상징의 보물 찾기였다는 걸 깨닫습니다.
결국 이 책,
“소통”과 “조화” 에 대한 충고였던 셈이네요.
크리스털 주인의 꿈은 메카로의 성지순례였습니다.
산티아고 덕에 부자가 된 그는 떠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떠나지 못합니다.
그는 말하죠.
“내 꿈을 실현하고 나면 살아갈 이유가 없어질까 두려워.....”
(혹시 이 모습이 내 모습, 혹은 당신의 지금 모습은 아닌지......)
가게 주인은 꿈의 길 그 끝에서 마지막을 보게 될 사람입니다.
그가 만약 진정한 연금술사를 꿈꿨다면 아마 다르게 말을 했겠죠.

꿈을 이루지 못하게 만드는 건,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것 때문이라고 하네요.
그리고 한 가지 더 기억해야 할 것은,
“모든 일에는 결국 치러야 할 댓가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래 앓고 난 사람처럼 힘들게 하는 일이 있나요?

어쩌면 이 책이 도움이 될 수도 있겠네요.
아는 길을 되집어 볼 수도 있을 테니까요...
따뜻한 봄날,
당신의 영혼에 파이팅을 외칩니다.
이제 꽃으로 피라고....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3. 9. 05:38
 

<단 하루만 더> - 미치 앨봄


단 하루만 더

 
미치 앨봄.

잊혀질만하면 한권씩 책을 내는 사람.

우리나라엔 이 책까지 전부 3권의 책이 출판됐고 모두 베스트셀러에 올라와있습니다.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 그리고 이 책 <단 하루만 더>

한때 제가 사람들에게 즐겨 선물했던 책도 이 사람 책이었습니다.

이유는, 부담감 없이 편하게 읽을 수 있다는 장점과, 그리고 실화를 바탕으로 혹은 실화임직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그의 화술능력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었거든요.

영혼이나 죽음에 대한 그의 동양스런 생각도 친근하게 느껴졌구요.

그의 소설을 함축시킨 단어를 찾으라면 “인연”과 그리고 “관계, 소통”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에서는 죽음의 순간까지도 세상과 따뜻하게 소통함으로써 주위를 변화시키는 신비로움을 만날 수 있었고,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을 읽을 땐 내가 하는 아주 사소하고 작은 행동이 누군가의 생과 사를 결정하게 된다는(결정할 수도 있다는...이 아니라) 섬뜩한 기운도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 책 <단 하루만 더>에서는,

빙의에 가까운 죽음의 체험과 그 곳에서 만난 죽은 자와의 소통.

그로 인해 새롭게 제 2의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왕년의 잘 나가던 시절”

그 시절이 없거나 그립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과거의 그 “왕년”에 발목이 잡혀 지금 서서히 무너져 가는 한 남자가 있습니다.

어린 시절 가족의 해체를 경험했던 그의 손엔 지금 한 장의 사진이 들려있네요.

사진 한 장으로 통보 받은 딸의 결혼 사실.

어른이 된 그는 또 다시 가족의 해체를 느끼며 결심을 하게 되죠.

그리고는 고향으로 차를 몰고 떠납니다.

예기치 않은 교통사고에서 도망쳐 나온 그는 어린 시절 자신의 꿈을 키워준 야구장을 찾아가 높이 솟은 물탱크 앞에 지금 서 있습니다.

하나, 둘, 셋!

허공을 향해 뛰어내린 그의 눈앞에 뭔가가 스치듯 지나갑니다.

이미 몇 년 전에 심장마비로 사망한 당신의 어머니가...

아픔과 상처 속에서 깨어난 그 사람은 어머니를 만나 다시 어머니의 아들로 돌아가 함께 대화를 하고, 산책을 하고, 어머니가 준비해 주는 식사를 합니다. 따뜻한 온기 속에서.

그는 어머니와 함께 한 사람, 한 사람 평온하고 아름답게 죽음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간호사에 미용사, 청소부이기도 한 어머니는

그들의 마지막을 함께 준비해주죠.

어머니는 모든 걸 포기한 아들에게 “죽음”을 통해 “삶”을 깨닫게 해 주고 싶었던 겁니다.

다시 돌아가고 싶도록, 그래서 다시 시작하고 싶도록 말이죠.

어머니는 마치 죽음의 강을 건너 주고 배 삯을 받는다는 그리스 신화 속 뱃사공 “카론”을 떠오르게 합니다.

배 삯으로 건네지는 한 닢의 동전 대신 그녀는 아들에게 새 삶의 약속을 무언 중 받아내고 있는 셈이죠.

돌아간다는 건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지만 아예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는 사실을 아들 또한 어머니와 보낸 그 짧은 하루의 시간동안 진심으로 체화하게 됩니다.

자, 이 정도면 아주 성공적인 deal이 이루어진 셈이네요.


모는 가족의 이야기는 결국 다 “유령 이야기”라고 합니다.

오늘 내 모습으로 인해 내 가족 누군가가 통곡하고 있다면 그 사람이 살아 있든, 혹은 죽어 있든 내가 그 사람을 다시 유령으로 만들어 버리게 된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당신은 누군가의 품 안으로 뛰어 들어가 통곡할 자신, 혹 있으세요?

살면서 때론 유령을 만나는 것보다 누군가의 앞에서 통곡하게 될까봐 그게 더 두렵고 무서운 게 사실입니다.

제 인생 하나 책임질 깜냥조차 못되는 허접인생처럼 취급될까 두려워 어쩌면 울음을 꾹꾹 참게 되는지도 모르죠.

그런데 속으로 담기는 울음의 폭발력을 아세요?

장담컨대 그 위력은 한 사람의 인생은 뿌리까지 그리고 흔적없이 날려버릴 정도죠.

이 책을 만나고 난 후의 느낌은,

이제 정말 잘 돌아가야겠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통곡”을 통한 “정화”가 필요하다면 혹은 찾아온다면 도망치진 말아야겠다는 사실도요.

세상의 모든 인생은 짧든 길든 결국은 집을 찾아가는 “귀로의 여정”이라는 말, 이제는 조금씩 이해하게 됩니다.

살면서 어쩌면 저 또한 그럴지도 모르죠.

인생에서 “단 하루만 더”를 바라게 되는 날이 오게 될지도요.

그런데 그리운 사람, 사랑했던 사람과 단 하루만이라도 더 보낼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이라면, 그에게는 이미 그 하루가 주어져 있는 셈이라네요.

그렇다면 이제 남은 문제는 “어떻게 돌아올 것인가”라는 사실이겠죠?

혹 돌아오고 싶지 않다면......

이 말이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부터 제가 당신의 편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잘 돌아와 주세요...

당신의 “되돌아옴”을 기다리며......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