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3. 5. 8. 07:44

<Jesus Christ Superstar>

일시 : 2013.04.26. ~ 2013.06.09.

장소 : 샤롯데씨어터

작사 : 팀 라이스

작곡 : 앤드류 로이드 웨버

연출 : 이지나

음악슈퍼바이저, 편곡 : 정재일

출연 : 마이클리, 박은태 (지저스) / 윤도현, 김신의, 한지상 (유다)

        정선아, 장은아 (마리아) / 김태한, 지현준 (빌라도)

        조권, 김동현 (헤롯)

제작 : 롯데엔터테인먼트 (주)설앤컴퍼니, RUG, CJE&M

 

이 작품, 정말 기다렸다.

2004년 11월에 푹 빠져서 본 후에 무려 9년 만의 관람이다.

그때 이 작품을 보면서 받았던 충격은!

지금도 도저히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임펙트가 강했다.

서울시뮤지컬단을 주축으로 박완규, JK 김동욱이 예수와 유다로 분했었다.

경기도를 시작으로 세종문화회관, 지방투어까지...

아직도 그 기억이 생생하다.

<지킬 앤 하이드>와 이 작품 덕분에 나 또한 공연관람이라는 몹쓸 길로 접어들게 됐다.

이 두 작품이 아니었다면,

아마 지금쯤 부자가 됐을지도 모르겠다!

(진실로 진실로, 진심이다!)

  

예수가 십자가가 못박히기 전 7일간의 행적을 담은 이 작품은,

파격과 경이, 그리고 놀라움의 연속이다.

우리가 아는 기독교적인 신의 아들 예수가 아닌,

그저 한 명의 인간으로 그려진 예수의 모습과

배신을 강요당한 유다의 어쩔 수 없는 선택과 절망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받았던 충격은

종교와 믿을을 뛰어넘은 그 무엇이기도 했다.

이 작품이 1971년 미국에서 초연됐을 때도 그 반향이 엄청났단다.

예수를 "슈퍼스타"라 지칭한 것에 대해 기독교인들이 신성모득이라며 데모를 일으키고

심지어 일부 라디오 방송국에서는 이 곡 자체를 금지곡으로 지정하기까지 했단다.

이게 일종의 노이즈마케팅 효과를 발휘했는지 작품은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그리고 이 작품만큼 원작에 수정이 가해진 작품도 드문 걸 같다.

우리나라에서도 2004년 경기도 공연 첫 날에 마지막 장면을 자체 수정했던 걸로 알고 있다.

(아마도 예수의 부활을 표현하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그러다 RUG의 반발로 다시 원상복귀되는 웃지 못할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2004년도에 이 작품을 여섯 번 정도 관람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앙상블의 파워에 엄청난 감동을 느껴었다.

서울시뮤지컬단이 만들어낸 "The Temple"과 "Make Us Well"은 엄청났다.

특히나 "Make Us Well"은 바닥에서 병자들이 예수를 향해 한 명씩 기어오는 모습을 보면서 

엄청난 두려움과 공포를 느꼈었다.

(아직까지도 그 장면이 주는 공포는 생생하다)

이 작품은 나에게 참 각별한 기억으로 남아있어

모든 장면들이, 심지어는 김문정 지휘자의 손끝까지도 생생하게 기억될 정도다.

가야바 최병광의 땅을 파고드는 엄청난 저음도,

안나스 주성중의 찌르는듯한 날 선 고음도,

이연경과 유미의 조심스럽던 마리아도,

빌라도 김법래의 묵직한 저음과 조상원의 천진난만한 헤롯도 다 기억난다.

락커 박완규의 엄청난 허리꺽기와 JK 김동욱의 웅웅거리던 불분명한 딕션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3년 뒤인 2007년에 다시 공연됐을 때 관람하지 않았던 건,

캐스팅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아서였다.

그래선지 이번 공연이 개인적으론 너무 반가웠다.

게다가 마이클리와 박은태, 윤도현, 한지상, 정선아가 캐스팅됐단다.

두말할 필요없이 "Must See!"하기에 충분했다.

 

박은태 지저스는,

얼굴과 표정, 액팅이 참 비장하고 거룩하고, 좋은 의미로 고집스러웠다.

워낙에 고음이 좋은 배우라 개인적으로 기대를 많이 했었는데

이상하게 고음으로 갈수록 목소리톤이 더 가늘어져서 오히려 여성스런 느낌이 강했다.

특히 예수의 대표곡" 겟세마네" 는 그런 느낌이 더 강해져서 좀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마지막 부분" 죽이소서! 지금 내 맘 변하지 전" 이 부분의 표현은 좋았다.

원망섞인 체념과 누구도 꺽을 수 없는 확고한 신념이 느껴져서...

그리고 이 부분부터 박은태의 지저스가 조금씩 괜찮아지기 시작했다.

39번의 채찍질과 십자가 처형 장면은 본인도 연기하면서 많이 힘들겠지만

보는 나도 너무 많이 힘겨웠고 섬득했다.

(이 작품을 하루에 2회 공연한다는 건 도저히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뮤지컬배우 박은태.

정말 기이하다!

매번 새로운 작품에 들어갈때마다 정말 잘할 것 같은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면 기대만큼 그렇지 못하다.

그렇다고 그가 못한다는 건 아닌데 여전히 인물보다는 박은태가 더 많이 보인다.

아무래도 아직까지는 <엘리자벳>의 "루케니"가 가장 좋았던 것 같다.

(이건 박은태가 뮤지컬배우로서 꼭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하겠다.)

 

다시 한 번 유다로 돌아온 윤도현은 이날 공연의 진정한 갑이었다.

개인적으론 역대 최고의 유다라고 말하고 싶다.

딕션과 연기, 표정도 너무 좋았고 넘버 소화력도 정말 엄청났다.

아마도 정재일 음악감독의 편곡을 완벽히 이해하고 공감한 유다가 아닐까 싶다.

(편곡자 정재일에게 정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정선아 마리아와 조권 해롯도 좋았다.

특히 조권은 등장하는 시간으로 따지면 정말 짧은데

그 짧은 장면을 완벽하게 자신의 시간으로 만들었다.

헤롯타임이 아니라 완벽한 조권타임!

게다가 자신에게 시선이 쉽게 가지 않는 39번의 채질질 장면에서도

무대 제일 위에서 열심이 연기하는 조권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정말 기특하단 생각이 절로 든다.

헤롯처럼 임팩트가 강한 역할을 자신의 첫 뮤지컬로 선택한 조권은,

확실히 영리한 아이돌이다.

 

개인적으로 2004년과 비교해보면,

무대와 조명, 편곡은 지금이 훨씬 좋았고

번역과 앙상블은 2004년도가 훨씬 좋았다.

가사의 일부를 영어 그대로 사용한 건 나쁘지 않았는데

번역 자체가 좀 투박하고 라임에도 잘 맞지 않는다.

쏭스루 뮤지컬인데 가사가 너무 성급하거나 느리다.

(이 표현이 이해가 될까?) 

빌라도 지현준은 딕션이 뭉개져서 잘 들리지 않았고

39번의 채찍장면에서는 예수보다 본인이 훨씬 더 괴로워하면서 바닥을 기어다녀서(?)

시선을 산만하게 분산시킨다.

가야바, 안나스는 사실 좀 참혹한 정도였다.

최병광의 비현실적인 저음과 주성중의 간교한 고음이 참 많이 그리웠다.

2막 첫 장면에서 최후의 만찬 장면이 좀 상징적으로 변한 것도 조금 아쉽다.

2004년도에 예수와 유다가 긴 테이블위에서 서로 대적하는 장면을 꽤 인상적으로 봤었는데...  

유다와 앙상블의 "Superstar"도 느낌이 확 달라졌다.

예전엔 쇼걸같은 천사들이 검은 옷과 흰옷을 나눠입고 무더기로 나와 쇼뮤지컬같은 느낌을 줬었는데

지금은 도입부분은 유다와 4명의 뽀글머리 코러스걸이 나와서 약간 코믹하게 변한 것 같다.

2004년도에 이 장면이 주는 파격적인 표현과 느낌이 사라진 것 같아 아쉽다.

그래선지 유다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 훨씬 늘어난 것 같다.  

 

이번 무대세트는 삭막하고 극도로 건조한 사막을 떠올리게 해서 좋았다.

(2004년도에 웅장한 성곽을 느낌의 무대 셋트도 나쁘진 않았다)

그리고 이지나 연출.

그녀의 작품에서 매번 느끼는 사실이지만

첫장면부터 시작해서 <바람의 나라> 오마주를 여러번 목격했다.

솔직히 이게 이지나가 그렇게 연출을 시도한건지,

아니면 워낙에 수정을 꺼려하는 RUG라 오리지널에서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나쁘지 않았다는 거다!

 

올 해 <JCS>가 다시 공연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워낙에 애정하는 작품이라

혹시라도 실망을 하게 될까봐 조금 걱정했었는데...

다행이다!

아주 좋았다.

그리고 기대중인  마이클리 예수로 두 번의 관람이 아직 남아있다.

마이클리가 보여줄 예수!

이번 주말에 드디어 확인할 수 있다.

 

좀 설랜다.

사실은 아주 많이...

 

 

 

Act I.
1. Overture
2. Heaven On Their Minds (유다)
3. What`s The Buzz (지저스, 마리아, 제자들)
4. Strange Thing, Mystifying  (유다, 지저스, 제자들)
5. Everything`s Alright (지저스, 마리아, 유다, 제자들)
6. This Jesus Must Die (가야바, 안나스, 앙상블, 사제들)
7. Hosanna (가야바, 지저스, 제자들, 군중)
8. Simon Zealotes (시몬, 제자들)
9. Poor Jerusalem (지저스)
10. Pilate`s Dream (빌라도)
11. The Temple/Make Us Well (지저스, 상인들, 환자들)
12. Everything`s Alright - Rprise (마리아, 지저스)
13. I Don`t Know How To Love Him (마리아)
14. Damned For All Time / Blood Money (유다, 가야바, 안나스, 사제들, 사자들)

Act II.
15. The Last Supper  (유다, 지저스, 제자들)
16. Gethsemane- I Only Want To Say (지저스)
17. The Arrest (유다, 지저스, 베드로, 제자들, 가야바, 안나스, 군중)
18. Peter`s Denial (베드로, 마리아)
19. Pilate and Christ (빌라도, 지저스, 안나스, 군중)
20. King Herod`s Song (헤롯)
21. Could We Start Again, Please? (마리아, 베드로, 앙상블)
22. Judas` Death (유다, 가야바, 안나스, 사자들)
23. Trial Before Pilate / 39 Lashes (빌라도, 가야바, 안나스, 지저스, 군중)
24. Superstar (유다, 코러스걸)
25. Crucifixion (지저스, 앙상블)
26. John Nineteen; Forty - One 요한 19장 41절 (오케스트라)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10. 6. 30. 06:37
역시 주제 사라마구다.
충격적이고 파격적이고 그리고 놀랍도록 문학적이고 신비하다.
주제 사라마구의 최대 문제작 <예수복음>
이 책은 사실 1998년 그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을 때
우리나라에 <예수의 제2복음>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됐다가 절판됐다.
2010년 1월 정영목 번역에 의해 다시 초판된 책.
(나로서는 정말 다행이다 싶다. 주제 사라마구와 정영목의 만남이...)
1991년 이 작품의 포르투갈에서 처음 발표됐을 때
주제 사라마구는 조국 포르투갈을 떠나야만 했다.
그후에 유럽문학상으로부터 심사를 거부당하기도 했고
199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을 당시에는 로마교황청에서 유감을 표명했다.
바로 이 작품때문에...
"신성모독"과 "편협한 이념의 소유자"라는 비판과 함께...
1995년에 나온 <눈먼 자들의 도시>가 신약의 끝인 묵시록에 해당된다면
이 책 <예수복음>은 신약의 출발인 복음서에 해당된다고 한다.
Veni Vidi Vici (베니 비디 비시)
말 그대로 이 책은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다...



책의 어떤 내용이 로마교황청의 분노를 샀을까?
표면적으로 말하자면 이 책의 내용 전체가 다 그렇다.
하나님에 의해 이용당하는 예수.
예수가 신의 아들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
숨쉬고 사랑하고 갈등하며 자신의 운명을 회의한다면?
동정녀 마리아에게 찾아와 수태고지를 했던 인물이
천사가 아니라 악마였다면?
그리고 창녀로 알려진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연인이었고 오랜 시간 사실혼 관계였다면?
이야기의 시작은 한 편의 명화를 꼼꼼히 해설하는 것처럼 섬세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모습.
왠지 거룩한 신성과 인간적인 연민이 함께 느껴지는 도입부.
글의 마지막 장면 역시도 십자가 처형 장면이다.
뼈에 목이 박히고 옆구리는 창에 찔려 극심한 고통과 갈증을 느끼며 
서서히 죽어가는 예수.
그때 저 높은 곳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며, 내가 기뻐하는 자다"
예수는 그 순간 자신이 당했다는 것을 알았다.
희생 제단에 가는 양처럼 꾐에 빠진 것이다.
인간들이여, 하나님을 용서하라. 하나님은 자신이 한 짓을 알지 못한다

예수의 입 속에 담긴 마지막 말...
확실히 로마교황청이 신성모독을 내세우며 유감을 표명할만큼 충격적인 내용이다.



남자로서 한 여자와 육체적인 사랑을 하는 예수,
그리고 하나님은 아들과의 만남에서 자신의 계획을 밝힌다.
내가 유대인의 하나님에서 더 많은 사람들의 하나님이 되도록 예수가 도와야만 하고
그러기 위한 예수의 역할은 순교자라고 말한다.
그 말을 따르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예수.
하나님은 예수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말한다.
순교자의 죽음은 고통스러워야지, 또 가능하다면 수치스러워야지,
그래야 신자들이 감동해서 더 헌신하게 되니까
.
체념하듯 질문하는 예수.
제가 죽은 뒤에 미래는 어떻게 되나요?
하나님의 대답한다.
교회가 생길거다.
유머러스게 들리는 이 대답의 의미심장함에 순간 멍해지기도 했다.
하나님과 악마와의 대화에서도 이런 유머러스한 섬뜩함이 계속된다.
자신을 다시 천국에 받아주면 예수는 죽을 이유가 없을거라는 악마의 거래성 말에
하나님은 대답한다.
내가 계속 선이려면 자네가 계속 악이 되는 게 긴요해.
하나님과 관련된 일은 모두 악마와도 관련이 되어 있다고 책은 말한다.
(그리고 이 말은 사실은 정말 진실이다)
책을 읽으면 읽으수록 지금 이 시대의 "종교"라는 의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딱히 기독교나 가톨릭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모든 의미의 종교를.
예수는 하나님께 요구한다.
당신이 다른 신들에게 거두는 승리가 얼마나 많은 고통과 주음을 가져오는지,
사람들이 당신의 이름과 제 이름으로 싸우는 전투에 얼마나 많은 죽음과 고통이 필요한지 말씀해
줄 것을...
마치 예리한 둔기로 강타당한 느낌이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하나님의 모습과
거대한 힘 앞에 결국은 불복할 수 밖에 없는 나약한 한 인간으로서의 예수.
그러면서도 마지막엔 종교로 대표되는 세상의 모든 거짓과 허상을 향해 한 방 제대로 먹이는 예수의 모습.
이런 충격적인 글들...
종교적인 비난보다 주제 사라마구의 상상력이 나는 더 두럽고 무섭다.
그리고 더 두렵고 무서운 것은,
이제 더 이상 주제 사라마구의 새로운 작품을 만날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이다.
2010년 6월 18일.
이 천재의 타계가 나는 세상의 "종말"처럼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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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사라마구의 작품들 (보라색은 내가 읽은 작품들)>

2009 『카인(Caim)』
2008 『코끼리의 여행(El viaje del elefante)』
2005 『죽음의 중지(As intermitencias da morte)』
2004 『눈뜬 자들의 도시(Ensaio sobre a lucidez)』
2002 『도플갱어(O Homem duplicado)』
2000 『동굴(A Caverna)』
1997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Todos os nomes)』
1995 『눈먼 자들의 도시(Ensaio sobre a cegueira)』
1991 『예수복음(O Evangelho segundo Jesus Cristo)』
1989 『리스본 쟁탈전(Historia do Cerco de Lisboa)』
1986 『돌뗏목(A Jangada de pedra)』
1984 『히카르두 헤이스가 죽은 해(O Ano da Morte de Ricardo Reis)??』
1982 『수도원의 비망록(Memorial do convento)』
1981 『바닥에서 일어서서(Levantado do Chao)』
1977 『서도와 회화 안내서(Manual de pintura e caligrafia)』
1947 『죄악의 땅(Terra de pecado)』 

주제 사라마구의 <인간의 조건 3부작>으로 불리는 『눈먼 자들의 도시』『동굴』『도플갱어』는 전부 읽었다.
좀 시간이 왔다갔다 하면서 우리 나라에 번역되기는 했지만
『눈뜬 자들의 도시』『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돌뗏목』『리스본 쟁탈전』『죽음의 중지』도 읽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수도원의 비망록』까지 읽으면 현재 우리나라에 출판된 그의 책 전부를 읽게 된다.
마지막을 한 권을 남겨놓고 허탈해하고 있었는데 좋은 소식이 들린다. 
2010년 『예수복음』을 시작으로
해냄 출판사에서『코끼리의 여행』『히카르두 헤이스가 죽은 해』두 권이 출간될 예정이란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내게 종말은,
아직까지는 유보중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
읽고 끄적 끄적...2009. 10. 22. 05:57
오랫만에 황홀하게 지적이며, 탐욕스럽게 흥미롭고
문학적으로 탐미적인 책을 만나다.
아직도 손과 머리 속에 끈적거리며 달라붙어 있는
치명적이게 관능적인 소설
클라스 후이징의 <책벌레>



책 속에서 길을 읽고 미아가 되지 않기 위해서
책장을 펼친 사람은 극도로 조심해야만 한다.
잔잔한 긴장감이 온 몸의 숨통을 서서히 조이는 그런 느낌.

요한 게오르크 티니우스 그리고 팔크 라인홀트.
책을 읽기 시작했다면 반드시
공평하게 동행해주어야만 하는 두 사람!
단 한명이라도 손을 놓치거나 감정적으로 치우치게 된면
아마 미궁 속으로 깊게 빠져버릴지도 모른다.
빠져나올 수 있다고 믿는가?
그렇다면 그건 단지 당신만의 착각일 뿐이다.



요한 게오르크 티니우스!
"책을 펼칠 때면 언제나 그의 주변세계는 베일에 가려졌다"
그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신시키는 하나의 힘이었던 "독서"
책에 대한 지독하고 집요한 애착,
중독에 가까운 도서수집벽을 가진 목사.
그는 급기야 책을 소유하기 위해 목사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몇 번의 살인을 저지른다.
아무런 죄의식 없이...
(심지어 그의 장모까지도... 아주 태연하고 자연스러워 심지어 경건함까지 느껴진다.)
더 많은 책을 사기 위한, 더 많은 책을 소유하기 위한 살인.
그의 목사관 윗층은 책의 천국으로 지상 위에 재림한다.



다른  한 사람, 팔크 라인홀트!
우연히 고서점에서 구입한 티니우스의 전기를 읽은 그는  
의도적으로 그리고 자발적으로
티니우스의 복제품으로  변한다.
(물론 그는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요소까지 모방하지는 못하지만, 거의 치명적인 상태로까지는 만든다.)
티니우스가 쓴 책 5권을 전부 소유하게 된 팔크 라인홀트.
그는 티니우스의 책들을 텍스트화시켜 열개의 글의 양탄자를 탄생시킨다.
기호학적이며, 비밀스럽기까지 한 텍스트들.
방 안에 홀로 칩거한 채 오로지 텍스트에만 빠져드는 라인홀트.
그 모습은 한창 열렬한 연애에 빠진 사람의 모습과 정확히 일치한다.
전희, 사랑, 애무, 쾌락과 욕정, 그 뒤에 남은 허무와 극도의 피로감.
그는 티니우스가 남긴 텍스트 전부를 컴퓨터 안에서 분석하면서
또 다른 텍스트들를 출산한다.
드디어 열번째 출산으로 독서의 비밀을 알아낸 라인홀트.
그리고 그는 비밀을 혼자만 간직하고
자신이 만든 열번째 양탄자를 타고 그곳을 떠난다.
방 안에 홀로 남겨진 컴퓨터가 켜지면
커서와 같은 모습의 그가 화면 가장자리 저쪽으로 서서히 사리진다.



황당한 소설이라고 느껴질까?
그러나 이 책을 다 마셔버리고 나면(책의 표현데로)
분명 충격적이라 입을 다물지 못하게 되리라.
활자 증후군들의 식욕을 제대로 자극하는 책.
거북한 소화불량에 빠지더라도
탐욕스럽게 남김없이 먹어버리고 싶은 그런 책이다.



누군가는 신성모독에 대한 이야기할지도 모르겠다.
예수를 떠올리게 하는 티니우스의 행적들.
그리고 12제자를 떠올리게 하는 라인홀트.
단지 신비주의 소설이라고 단정짓지는 말기를...
그러기엔 이 책이 가진 것들이 너무 깊고 넓다.

후후훅 이 책을 마셔라!
죽음을 이기는 독서의 환희와 전율.
당신의 최후의 책벌레가 된다.


책을 읽고 나면 이 말에 적적으로 공감하면서
심지어 두 사람의 가장 가까운 동행자가 되기를 자처하게 될지도... 



아주 흥미롭고 재미있는 한 대목.
가만 보고 있으면 이 공통점들은 정말로 적절하다.

* 책과 창녀(정부)의 공통점
1. 책과 창녀는 둘 다 침대로 데려갈 수 있다.
2. 책과 창녀는 시간을 뒤바꾸어놓는다. 그들은 낮을 밤처럼, 밤을 낮처럼 만든다.
3. 책과 창녀에게는 일분일초가 귀중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알지 못한다.
   그들과 좀더 가까워질 때에야 그들에게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가 그들 안에 잠겨드는 동안 그들은 시간을 재고 있다.
4. 책과 창녀는 예전부터 각각 불행한 사랑을 하고 있다.
5. 책과 창녀 - 그들에게는 빌붙어 살면서 괴롭히는 남자들이 있다. 책에게는 비평가가 있다.
6. 책과 창녀는 공공건물에서 산다 - 특히 대학생에게 그렇다.
7. 책과 창녀 - 그들이 맞이한 종말을 본 사람은 드물다. 그들은 퇴락하기 전에 사라지는 경향이 있다.
8. 책과 창녀는 어떻게 해서 지금처럼 되었는지 얘기하길 좋아하고, 그럴 때면 거짓말도 잘한다.
   그들 스스로 그 거짓말을 믿어버릴 때도 적지 않다.
   여러 해 동안 '사랑하는 마음에서' 모든 것에 열중하다가 어느날부터인가 비대히진 몸뚱이를 안고 거리를 나선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무엇인가 알아보려고' 그 주변을 돌아보기 위한 것이라는 식이다.
9. 책과 창녀는 손님을 끌 때 등을 내보이길 좋아한다.
10. 책과 창녀는 자식을 많이 낳는다.
11. 책과 창녀 - '허구한 날 기도하는 늙은 어멈도 젊었을 땐 창녀'였다.
    오늘날 청소년들의 필독서 중에서 한때 평판이 나빴던 책들이 얼마나 많은가!
12. 책과 창녀는 꼭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드잡고 싸운다.
13. 책과 창녀 - 책의 각주는 창녀의 양말 속에 감추어진 지폐와 같다.



"Habent sua fata libelli"
책들은 저마다 운명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독자가 어떻게 읽는가에 따라서 책들은 운명을 달라진다.
건전한 애서벽과 병적인 장서벽!
이제 내가 선택한 차롄가?
나 역시나 내가 만든 양탄자 속으로
하나의 텍스트가 되어 실종되고 싶다.

모든 독서의 끝은 결국 
지독한 그리고 완벽한
"실종"으로의 희망이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