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0. 12. 10. 05:50

<뮤지컬 엣지스>

원작: 벤제이 파섹, 저스틴 폴
연출: 변정주
극작: 류용재, 윤혜선
기간: 2010.11.23 ~ 2011.1.16
장소: 대학로 더굿씨어터
출연: 강필석, 최재웅, 최유하, 오소연


오랫만에 강필석의 무대를 봤다.
<틱틱붐>을 보려고 했는데 놓쳐버리고...
솔직히 제목만으로는 그리 끌리는 작품은 아니었다.
그런데 강필석, 최재웅 두 배우를 함께 볼 수 있다는 게 선택의 가장 큰 부분으로 작용했다.
모자이크 형식의 이야기.
스터디셀러 <아이 러브 유>를 떠올리게 한다.
평범한 젊은이들의 고민과 고백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낯설고 어색하지?
원래는 송쓰루 뮤지컬이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대사가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냥 원작처럼 송쓰루로 갔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등장인물조차도 배우들의 실명 그대로 사용해서 나름데로 친밀하게 다가가게 한 것 같은데
그게 이상하게 솔직하게 다가오는 게 아니라
작위적으로 다가온다.
중간중간 인터넷이나 현장에서 쓴 고민을 소개하는데
그게 또 물위에 기름이 뜨듯 이질적이다.
단지 소개한다는 의미 밖에는...
그걸 관객의 참여라고 과연 할 수 있을까????
관객들의 호응도 생각만큼 즉각적이고 원활하지 않아 배우들도 참 힘들겠다 싶다.

 

반복되는 직장 생활에 질린 남자,
여기저기 면접을 찾아다니는 취업 장수생인 여자,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자 하는 맞선녀,
인터넷에 빠져 가상의 모습과 헷갈리는 컴퓨터 중독남,
이렇게 네 사람으로 시작되고 끝나지만
그 중간중간은 실제와 배역 사이를 왔다갔다하면서 좀 산만하게 진행된다.
88만원 세대로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는데
꿈, 사랑, 실수... 등 그냥 평범한 이야기들 뿐이다.
뭐랄까? 포인트가 될만한 이야기가 없다는 게 흠이라고나 할까?
원케스팅으로 작품의 집중력을 높인건 정말 좋았는데...
(좀 걱정은 된다. <건메탈 블루스>, <더 씽 어바웃 맨>처럼 비운의 운명이 될까봐...)  
변정주 연출이 말했다.
“만약 캐스트가 많았다면 작품이 이렇게 나오긴 힘들었을 거다.
작품에 나오는 내용들이 본인들의 입에서 직접 나온 것이 많았다.
원캐스트여서 배우들도 자신을 벗고 보여줬기에 작품이 나왔다고 생각한다”고
독특한 컨셉이 장점이 될수도 있겠지만 그게 단점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어려운 여정이 되겠지만 부디 진화를 잘 시키기를...



기억에 남는 뮤지컬 넘버들이 꽤 있다.
가령, 네 배우가 함께 부른 "가면을 벗어"라는가
최재웅이 부른 "어머니"
(이 노래 가사가 참 좋다. 그리고 최재웅의 음색이랑 잘 어울린다)
강필석이 조그만 인형 두 개를 가지고 부르던 동화같은 노래,
(이 노래를 부를 때 강필석의 표정과 목소리 참 좋다)
그리고 최유하가 캣우먼스러운 복장으로 지나간 연예 편력(?) 노래 "이젠 안녕" 도 괜찮았다.
최유하, 오소연 두 사람이 연인으로 나와서 부른 "너는 나를 믿어야해"도
여자 두 사람의 하모니가 안정적이고 특별했다.
마지막에 나오는 "난 무엇이 될까?(become)"는 시작과 마지막 부분이 대비되는 느낌이 들면서
묘한 분위기는 남기더라.
그리고 무대 창문과 벽면에 보여지던 영상도 분위기와 아주 적절하게 어울렸다.
소극장 공연인데 에피소드에 따라 배우들의 의상도 자주 바뀌었고
4명으로 구성된 밴드의 라이브 연주도 장점이라 하겠다.
조목조목 따지고 들어가면 나쁘지 않은데
이상하게 전체적으로는 조화가 잘 되지 않는다는 게
좀 아이러니다. 



꿈, 사랑, 실수, 어머니. 다시 사랑...
아마도 너무 많은 흔한 이야기를 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산만하다고 느껴진 건.
아니면 이런 이야기에 공감하기엔 내가 너무 무덤해진 건지도 모르고...
가끔은 그럴 땐 조금 서글퍼지기도 한다. (*^^*)
그래, 그냥 독특했다라고 기억하자.
엣지있게 ^^
확실히 오랫만에 무대에서 본 강필석의 목소리는 반가웠다.


                                           <Become> - 강필석, 최재웅, 최유하, 오소연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9. 8. 26. 13:37
<다이어트의 여왕> - 백영옥


다이어트의 여왕 


<스타일>의 작가 백영옥이 쉬크하고 엣지(?)한 두 번째 칙릿소설 <다이어트의 여왕>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일단 재미 하나는 정말 제대로 있습니다.  뻔한 내용을 가지고, 그것도 제목에 책의 내용을 아주 노골적으로 다 드러내고서도 이렇게 재미있는 글을 썼다는 사실은 한없이 부러운 일이죠.

전작처럼 “요리사”가 등장합니다.

약간 차이가 있다면 <스타일>에서는 주변 등장인물이었는데 <다이어트의 여왕>에서는 드디어 주인공으로 등장을 했네요.


정연두!

28세 꽃다운 나이로 신장 173cm (여기까지는 참 부러운 대목입니다), 몸무게는 85kg, 조금은 육중한 몸을 가지고 있는 레스토랑 <퍼플>의 셰프.

어느 날 그녀는 3년 동안 사귄 애인 하정민(56kg)으로부터 결별을 통보받습니다.

뭐, 실연의 고통을 굳이 폭식으로 달랜 건 아니지만, 어찌됐든 이별 통보 후 그녀의 몸무게는 0.1톤에서 7kg 모자란 93kg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전 그녀의 “요리사”라는 직업과 “허기”(어떤 의미에서 “체중”)에 대한 논리가 참 정당하게 다가왔습니다.

“요리사는 절대로 배고프면 안 돼! 그러면 음식에 너무 관대해져. 그런 사람이 만든 음식에 디테일이 있을까? 좋아! 나 뚱뚱해. 근데 그건 내 직업병이야. 난 직업윤리를 가진 요리사이고, 무엇보다 내 직업병이 자랑스러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방송작가 친구 김인경의 강력한 권유로 <퍼플>도 그만두고 1억원 상금이 걸려있는 서바이벌 리얼 다이어트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 8주간의 합숙소 생활을 시작합니다.

“비만은 질병이자 전염병이다”

첫날부터 14명의 육중한 경쟁자들이 들은 첫말은 전혀 달콤하지 않은 살벌한 말이네요.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딸에게 당당한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미혼모 박순옥, “단비”라는 이름에 맞은 사람이 되어 잃어버린 자신의 이름을 찾겠다는 182cm, 121kg의 42세 최고령 참가자 최단비 여사, 운동할 때조차도 구두를 포기하지 못하는 악녀 캐릭터의 구두디자이너 송준희 등등....

눈물 많고, 사연 많고, 다른 무엇보다 특히나 살 많은 14명의 참가자들.

그들은 이제 A, B 두 팀으로 나뉘어져 각각의 미션을 수행하게 됩니다. 미션의 결과가 나오면 패한 팀에서 스스로 탈락자 1명씩을 선정하게 되죠.

이 상황에서 내가 살아남기 위해선 공개적으로 팀원을 비난하고 자신이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를 팀원에게 설득해야만 합니다.

“언어”와 “감정”의 전쟁터인 셈이죠.

어쩐지 “입”이라는 신체 부위가 범상치 않게 다가옵니다.

“요리사의 입”과 “작가의 입”

왜 작가들이 미각과 탐식에 열광하는지, 그리고 그와 관계된 인물들을 창조하는데 열광하는지 조금은 이해가 될 것 같습니다.

작가의 발설 혹은 폭로의 욕구를 가장 잘 대변해주는 신체기관이 바로 “입”일 테니까요.

입의 말을 손으로 대신 말하면서 미(美)를 탐하는 작가와 손의 감각보다 입의 감각으로  미(味)를 탐하는 요리사....

이쯤이면 썩 어울리는 조합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폭로와 발설, 비방과 힐난의 긴 8주간의 시간이 끝나고 드디어 최종 우승자가 결정됩니다.

우리의 주인공 연두가 1억원의 여왕이 됐을까요?  8주간 총 48kg 살을 뺀 기적을 만든, 늘 모자를 쓰고 다녔던 최고령 “최단비” 여사가 최종 우승자로 뽑힙니다. 그리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다시 진짜로 시작됩니다.


일상으로 돌아온 정연두는 “최고의 스타. 정연두 셰프 입성! <다이어트의 여왕>이 마련하는 최고의 만찬을 즐기세요!”라는 광고간판과 함께 레스토랑 <퍼플>의 부주방장이 되어 다시 주방에서 일을 시작합니다. 매스컴의 효력으로 레스토랑은 연일 문전성시를 이루게 되고요.

그런데 이런! 그녀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벼락 스타가 되어버린 정연두 그녀에게서 점점 이상징후가 보이는 시작하네요.

점점 후각이 예민해지더니 급기야 야채도, 고기도, 그 무엇도 먹지 못하게 됩니다.

자신의 몸이 내는 비명소리를 피하기 위해 그녀는 수면제와 알약에 의지하며 요리를 하죠. 손님들에게 음식에 대한 클레임이 들어오는 횟수도 점점 늘어납니다.

음식물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녀의 몸은 이제 늘 허기에 지쳐있습니다.

“한 번도 배고픈 적 없던 나는 늘 배가 고팠다. 너무 배가 고파서 칼을 쥔 손가락 열 개를 베어 뼈까지 와작와작 다 씹어 먹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내 몸을 베어 먹어버린다면, 그것으로 체중이 늘어날까? 하루 종일 주방에 서서 나는 양고기와 돼지고기를 써는 대신, 상상 속의 내 몸을 씹고, 분해하고, 으깨며, 요리했다. 나는 내 살을 잘라 사람들에게 먹이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 이 몸속에 존재하는 지방과 살덩이들을 다 제거하고 싶었다.”

그녀는 스스로 고백합니다.

내 위치는 분명 바뀌어 있었다고....


93kg -> 79kg -> 52kg -> 47kg -> 41kg

173cm의 신장을 가진 그녀의 몸피는 계속 말라갑니다.

미각까지 상실한 그녀는 결국은 <퍼플>에서 쫒겨나기에 이르죠. 맛을 느낄 수 없는 요리사가 만든 음식에는 결코 진실성이 담기지 못할테니까요. “신경성 식욕부진증”, 그녀는 이제 거대한 “거식의 세계”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미각을 잃은 세 치 혀가 내뱉는 말은 이제 그녀에게 공허할 따름입니다. 그녀의 “혀”는 드디어 “가짜”가 되버리고 말았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찾아온 요요현상에 대한 두려움.

그녀의 텅 빈 위는 금기야 그녀의 모든 생활까지도 텅 비게 만들어 버립니다.

게다가 하나씩 소위 까발려지는 참가자들의 진실들.

쇼에 참여하기 위해 일부러 살을 찌운 송준희, 우승자 최단비 여사는 성전환수술로 여자가 된 남자모델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인터넷에 유포되는 모델시절의 사진들, 그리고 정연두의 사진들과 무수한 댓글들....

그녀를 포함한 모든 괴물들의 적나라한 모습들.....

그녀는 어느덧 뚱뚱했던 시절의 자신을 조금씩 잃어가기 시작합니다. 그 시절의 미덕들, 긍정성, 명랑함, 사랑과 동경같이 빛나는 것들을요. 그뿐만 아니라 처음엔 수첩을, 다음엔 핸드폰을 그리고 삼 년을 지켜보던 고양이와 직장, 몇몇 친구들까지도 말입니다. 뒤돌아보니 어느새 그녀는 모두 다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결국 식이장애클리닉을 찾은 그녀에게 의사는 거식으로 인한 “가성치매”라는 진단을 내립니다. 그러면서 말하죠.

“정연두씨는.....말하자면 이 병을 사랑하고 있는 겁니다. 다른 모든 거식증 환자들처럼, 낫고 싶지 않은 거죠. 먹지 않는 것이 엄청난 능력이라고 자부하고 있어요..... 정연두씨는 기억이 돌아오는 것보다, 다시 뚱뚱해지는 게 훨씬 더 두려운 겁니다. 그렇지 않나요?”


사람은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보다 이해받고자 하는 욕구가 훨씬 크다고 합니다. 하지만 타인에게 이해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자신을 이해하는 일이라고 하네요. 바보 같고, 멍청하고, 때로 죽이고 싶을 만큼 어리석은 자신의 모습까지도요.

성공적인 치료로 50kg 진입을 앞두고 있는 정연두는 말합니다.

“이제야말로 나는 진짜 내 이야기를 고백하고 있었다. 바뀐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나 자신을 알기 위해선 타인의 시선 역시 필요하다는 것, 거울 없이는 자신의 앞모습은 물론이고 뒷모습까지도 우리는 결코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나는 깨닫는 중이다.” 라고....

결국 그녀에게 필요했던 건, 잃었던 미각을 찾는 일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잃었던 귀를 잃었던 시선을 찾는 게 훨씬 더 필요했던 거죠.

드디어 그녀도 말하네요.

“이제 나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 기꺼이! 온 마음을 열고서 말이다....”

정상적인 생활로 복귀한 그녀, 정연두.

어느날 조카와 함께 찾은 서점에서 한 사람을 목격합니다.

그녀가 그렇게 살을 찌우기 위해 노력했었던 그 남자, 하정민이 불과 몇 개월만에 후덕한 아저씨의 모습이 되어 서점 안을 서성거리고 있습니다.

그의 모습을 목격한 그녀는 생각합니다.  예민하고 신경질적이었던 정민이 비로소 편안하고 온전한 연애를 시작한 건지도 모른다고..... 뚱뚱해졌지만 활기차 보이는 그를 보면서 이제야 끝나지 않았던 정민과의 연애가 진짜로 끝나게 됐다는 걸 그녀는 알게 됩니다.


“허기”란 모든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한 삶의 “결핍”이라고 하네요. 때문에 우리가 사랑에 배고프고 관심에 목마른 것도 모든 거식증 환자들의 허기와 다르지 않다고 합니다.

“배고픔”과 “허기”를 적당히 잘 조절하고 지배(?)하는 것!

어쩌면 그게 내 삶의 여왕이 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닐까요?

조심하지 않으면 언제 “폭식”과 “거식”의 경계선을 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14명의 참가자들이 모인 만찬의 자리.

모든 비밀들이 하나하나 폭로된다고 해도 이제 그녀는 다시는 어떤 것도 잃지 않을 것 같습니다. 훨씬 끔찍한 것은 폐쇄된 공간에서 나가지 못하고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서 일어나기 마련이니까요.

여자들은 누구나 자기 안에 날씬한 또 다른 진짜 내가 살고 있다고 믿는다네요.

그래서 조금만 몸을 움직이고, 조금만 덜 먹으면 뚱뚱한 몸은 어느덧 낡은 코트처럼 벗겨지고 그 속에 원래의 내 모습이 들어날 거라고 생각하면서.... 몸 어딘가에 달린 지퍼만 찾아 쭉 열면 지금까지의 헌 몸은 사라지고 환상적인 새 몸이 눈앞에 펼쳐질거라고....

그러나 이런 “환상” 속에는 여지없이 “독”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이해할 것 같습니다. “환상”은 부디 “환상”속에 남겨두고 우리는 열심히 치열한 “현실”로 돌아와야 할 시간이라고 이 책은 말해주네요.

세상의 모든 결핍에 대응할 준비, 이쯤이면 당신은 되셨겠죠?

자, 이제부터 현실로 출발합니다.


"Are you ready~~?"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