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5. 7. 31. 08:10

<팬텀>

 

일시 : 2015.04.28. ~ 2015.07.26.

장소 : 충무아트홀 대극장

원작 : 가스통 르루와 <오페라의 유령>

극작 : 아서 코핏 (Arthur Lee Kopit)

작곡 : 모리 예스톤 (Maury Yeston)

편곡 : 킴 샤른베르크 (Kim Sharnberg)

안무 : 제이미 맥다니엘 (Jayme McDaniel)

연출 : 로커트 요한슨 (Robert Johanson)

음악감독 : 원미솔

출연 : 류정한, 박효신, 카이 (팬텀) / 임선혜, 임혜영, 김순영 (크리스틴)

        신영숙, 홍륜희 (마담 카를로타) / 박철호, 이정렬 (제라르 카리에르)

        에녹, 강성욱 (필립) / 김주원, 황혜민, 최예원 (벨라도바)

        윤전일, 알렉스 (젊은 제라르), 이상준 (무슈 숄레) 외

제작 : EMK

 

<드라큘라>와 같은 반전이 일어나길 바랬지만

결국 그 정도의 극적인 반전은 일어나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공은 확인하고 싶었다.

다행이다.

네 번의 관극 중 그래도 막공이 가장 만족스웠으니.

이 작품을 볼 때마다 늘 크리스틴 때문에 몰입이 안됐는데

성악적인 발상과 기량면에서 임선혜와 김순영에 뒤쳐질지는 몰라도

전체적인 느낌과 연기는 임혜영 크리스틴이 단연코 좋더라.

시골아가씨, 의상 꼬맹이 이미지에도 훨씬 더 잘 어울리고...

아무래도 임선혜와 김순영이 나이도 있고 정통 성악발성으로 넘버를 부르다보니

에릭 류정한이 나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연상연하처럼 느껴져서 어색했다.

그래서 모성애가 물씬 풍겨주면 또 모르겠는데 그것도 아니라 괴리감이 너무 컸다.

크리스틴이 의도데로 보여지니 에릭의 연기 노선도 더 확실해져서

개인적으론 제일 공감하면서 관극했다.

세 번의 관극에서 에릭의 느낌은 끝없이 모성애를 갈구하는 아이에 가까웠는데

이제서야 아이에서 남자로 넘어가더라.

그래서 한 곡의 넘버안에서 목소리톤이 점점 달라지는 것도 이해가 되더라.

그러니까...

에릭은 크리스틴을 통해 아이의 세계에서 벗어나 드디어 어른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렇게 뒤늦게 찾아오는 에릭의 성장통은 환희이지 고통이다.

지독하고 처절하고 가여운 성장통.

어린이 된 후에 찾아오는 성장통이 치명적인 이유는,

전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버리기 때문이다.

all or nothing.

아니 all and nothing이다.

참 참혹한 비극이다.

그리고 늦었지만 이제야 이 작품이, 정확히 말하면 팬텀이 마음속에 담기기 시작했다.

어쩌면 처음부터 크리스틴을 놓아버려야 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랬다면 팬텀에게 다가가는게 훨씬 쉬웠을텐데....

사실 팬텀에게 필요했던건 크리스틴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그 모습 그대로 타인에게 받아들여지길 바라는 간절함.

그 간절함이 너무 가혹하고 참혹하다.

 

"엄마한테 데려다 준다고 약속했쟎아!"

그의 마지막 바람처럼

에릭이 엄마 품에 완벽하게 안겨있길 간절히, 간절히 바란다.

 

* 인간은 기쁨과 슬픔을 위해 태어났으며

  우리가 이것을 제대로 알 때 비로소

  우리는 세상을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다.

  섬세하게 직조된 기쁨과 슬픔은

  신성한 영혼을 위한 안성맞춤의 옷,

  모든 비탄과 갈망 아래로

  비단으로 엮어진 기쁨이 흐른다.

         - 윌리엄 블레이크 <순수의 전조> 에서...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3. 2. 8. 08:30

<나에게 불의 전차를>

일시 : 2013.01.30. ~ 2013.02.03.

장소 :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대본 : 정의신

연출 : 정의신

출연 : 차승원(이순우), 김응수(고대석), 쿠사나가 츠요시(나오키)

        카가와 데루유키(키요히코), 히로스에 료코(마츠요)

 

길어도 정말 너~~~무 긴 작품이었다.

(토요일 저녁 7시 30분에 시작해서 공연장을 나오니 11시 30분 가량이 됐다.)

인터미션까지 포함해서 장장 4시간의 러닝타임!

그런데 길어도 너~~~~무 긴 이 시간이

짧아도 너~~~~무 짧게 느껴졌으니!

지난해 배우 차승원의 연극 출현 소식을 듣고 놀랐었다.

게다가 한국에서가 아니라 일본에서 먼저 공연할거란다.

 

그 당시 드라마가 성공하면서 배우 차승원의 주가가 항창 올라가던 시기이긴 했지만 

분명 연극판은 그가 지금껏 해왔던 드라마와 영화와는 완전 딴판일텐데....

걱정보다는 차승원이라는 영상배우가 너무 무모한 도전과 자만심에 빠진 건 아닌가 싶었다.

솔직히 고백컨데 맨땅에 헤딩을 하는 근거없는 자신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난해 일본 ACT Theater에서의 40 여회 공연이 전석 매진이 됐단다.

그뿐만 아니라 매회 계속되는 엄청난 기립박수까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보고 싶어졌다.

 

 

차승원이 그랬단다.

텅 비어버린 느낌이었노라고.

배우로서 원점으로 다시 돌아가서 시작하고 싶었노라고.

그래서 이 연극의 출연을 결심하게 됐노라고.

나는 배우 차승원의 초기 모습을 아직 기억한다.

간지 흐르는 쭉뻗은 모델에서 이제 막 배우로 화면에 나온 그는 

미안한 말이지만 연기를 정말 징그럽게 못했다.

더 솔직히 말하면 "개나 소나 다 배우한다고 나대는" 부류에 간단히 포함시켰었다.

(워낙 TV도 안 보지만 그가 출연하는 드라마를 본 기억도 거의 없다!)

연극을 보겠노라 예매하면서도 솔직히 차승원보다는

초난강으로 알려진 쿠사나가 츠요시와 영화 <비밀>의 여주인공 히로스에 로코의 모습이 궁금했다.

그런데 난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그들이 유창한 한국말을 구사할 것도 아니고

만약 일본어로 대사를 한다면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자막만 연신 기웃거릴 뿐이었을텐데...

그런데 이 작품을 보고 난 지금의 심정을 옳기자면

그건 근거없는 오만이었고 턱없는 허세였다.

“태어나서 손에 꼽을 정도로 공포스러운 경험이었다”

남사당패의 꼭두쇠 이순우로 분해 줄타기를 해야만 했던 차승원의 고백이다.

연습 초반에 줄타기 하는 게 꿈에서도 나왔다고.

실제로 일본 공연 때는 2.5m 상공에서 떨어졌다고도 했다.

공포와 불면증에 시달리면 남사당패의 줄꾼 어름산이가 되기 위해 연습했단다.

실제로 차승원의 줄타기 장면은 작품의 내용과 관계없이 뭉클하고 감동적이었다.

인간 차승원의 후들거리는 떨림이 객석에 앉아있는 내게까지 그대로 전해졌다.

그순간 인간 차승원은

내게 배우 차승원으로, 예인(藝人) 차승원으로 각인됐다.

그는 정말 배우였다.

너무 뭉클한 순간이라 박수도, 눈물도 흘릴 여력이 없었다.

침묵 속에서 그저 막연한 미안함과 경의로움으로 혼자 먹먹했다.

 

일본 배우들의 열연은 언어의 장벽을 완벽히 뛰어넘었다.

쿠사나가 츠요시, 히로스에 료코의 연기도 인상적이었지만

카가와 데루유키의 능숙한 한국어 발음과 감정표현은 경이로웠다.

이 작품 속에서 가장 힘겹고 가슴아픈 인물이었던 키요히코와 카가와 데루유키는 마치 동일인물처럼 느껴졌다.

틀림없이 이 모든 상황과 고통을 실제 겪은 반쪽바리 일본인이 분명하다고...

그의 연기는 장중했고 그리고 쳐연했다.

자막을 굳이 읽지 않아도

자막을 과감히 버리고 이들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작품의 내용을 다 알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연기였다.

그들은 단 한 순간도 배우로서 이뻐보이려고, 멋있어보이려고, 더 튀어보이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냥 작품 속 인물과 동일인이었다.

소름끼쳤다.

무시무시한 집중력으로 모든 관객들을 휘어잡던 괴물같던 이들이.

 

정의신의 대본과 연출력도 역시 놀랍다.

한 장면 안에 비극과 희극을 어떻게 그렇게까지 잘 배합을 했는지 혀를 내두를 정도다.

처연한 음악과 비장한 분위기 속에 던져지는 우수깡스런 대사들.

평소의 나라면 이런 장면들에 눈살을 찌푸렸을거다.

그런데 이 작품 속에서는 그러지 않았다.

보면서 내내 이 작품 참 나를 묘하게 만드는구나 몇번씩 생각했다.

세련되고 명확한 연기가 아니여도

타인에게 이런 식으로 진심을 전달할 수도 있는거구나 절감했다.

 

참 아름다운 작품이었고,

참 아름다운 관람이었고,

그리고 참 아름답고 귀한 기억을 남겼다..

주연 배우들 뿐만 아니라

출연한 모든 배우들에게 진심어린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나는 아마도 이 모든 장면을 오래 담아온 꿈처럼

내내 기억하게 될 것 같다.

 

나에게 불의 전차를 다오

나는 결코 마음의 투쟁으로부터 한 발자욱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며

나의 검을 헛되이 잠재우지 않을 것이다,

                  

                                  - 윌리엄 브레이크 "예루살렘" 중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