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6. 12. 27. 08:12

 

<벙커 트릴로지>

 

일시 : 2016.12.06. ~ 2017.02.19.

장소 :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

원작 : 제스로 컴튼 & 재이미 윌크스

번역 : 김수빈 / 각색 : 지이선

작곡 : 김경육

연출 : 김태형

출연 : 이석준, 박훈(Soldier 1)/오종혁, 신성민(Soldier 2)/임철수, 이승원(Soldier 3)/김지현, 정연(Soldier 4)

제작 : (주)아이엠컬처

 

<카포네 트릴로지>에 이은 김태형, 이지선 콤비의 연극 <벙커 트릴로지>

모르가나(Morgnan), 아가멤논(Agamemnon), 멕베스(Bacbeth)

세 편의 에피소드 중 모르가나와 아가멤논 두 편을 봤다.

벙커(Bunker)라는 공간이 주는 밀폐성과 비밀스러움.

그리고 전쟁이 주는 극도의 긴장감과 공포감.

내가 본 두 편의 작품 속에선 이 모든게 그대로 살아있었다.

막막한 천진함도 있고,

버티기 위해 스스로 괴물로 변하는 인간의 모습도 있다.

전쟁.

예전엔 그랬다.

전쟁만큼 거대하고 비극적인 국가적인 재앙은 없다고.

(그게 아니라는건 지금 대한민국을 통해 보고 있긴 하지만...)

연극은 재미있으면서 참혹하다.

"홀림" 혹은 "광기"

이 연극을 표현할 수 있는 아주 적절하고 명확한 두 단어다.

<카포네 트릴로지>도 초연과 재연 모두 챙겨볼 정도로 좋아햇던 작품인데

<벙커 트릴로지> 그에 못지 않는다.

아니 개인적으론 훨씬 더 매력적이고 흡인력 있었다.

그럼에두 불구하고 몇 번 씩 보지는 못할 것 같다.

작품 자체에서 발산되는 엄청난 무게의 감정들을 감당하는게 힘겹다.

게다가 배우들의 연기가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그야말로 내가 전쟁이 한창인 참호 속에 있는 웅크리고 느낌이다.

온 몸을 벌벌 떨면서...

폐소공포의 위협이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그건 장소때문이 아니다.

이 모든게 숨통을 서서히 조여오는 감정들 때문이다.

무감(無感)도 관조(寬眺)도 쉽지 않다.

 

If... Maybe...

작품을 본 뒤 끝없이 던진 질문들.

만약 내가 이 상황이라면.

만약 내가 저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면.

나의 선택은 아마도...

아, 참 두루두루 비극적이다.

지이선의 말처럼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고, 지금도 일어나는 일이다.

그것도 아주 처절하게...

 

* 이석준의 연기는 눈부시다.

  그야말로 진흙탕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을 연기다.

  이 작품에 이석준이라는 버팀목이 없었다면...

  생각하기 싫을 정도다.

  배우 이석준의 시야는 배우의 시야를 넘어 연출가의 그것과 맞닿아있다.

  매번 느끼는거지만 참 넓게, 그리고 참 깊게, 그리고 참 자세히 보는 배우다.

  좁은 공간에서 연기해야하는 오종혁에게 이석준이 그랬단다.

  "흥분하지 마라, 70%만 해라"라고.

  그 말이 이해가 된다.

  일종의 거리감을 유지하라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실제로 오종혁은 첫공연을 한 뒤 기억이 안 난다고, 스스로 미쳐서 날뛰었다고 표현하더라.

  (오종혁의 마음도 이해가 된다... ^^)

  엄청난 각색으로 완전히 다른 작품을 만들었다는 지이선의 능력도 놀랍고

  그걸 쿨하게 인정해준 원작자 제스트 컴튼의 마음도 놀랍다.

  심지어 자신의 의도에 더 근접한것 같아 감동했다는 말까지 했다.

  원작자의 감동이 아니더라도,

  이 연극은 확실히 감동적이고, 놀랍고, 강렬한 작품이다.

  그리고 그만큼 고통스럽고, 잔인하고, 비통한 이야기다.

  뭔가에 홀린 눈빛으로 홀로 앉아 군번줄에 적힌 친구의 이름을 부르던 아더의 모습.

  그 모습이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다.

  꼭 유령같았던 그는... 어떻게 됐을까?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4. 10. 23. 07:59

<뿌리 깊은 나무>

 

일시 : 2014.10.09. ~ 2014.10.18.

장소 :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

원작 : 이정명 <뿌리 깊은 나무>

대본, 작사 : 한아름

작곡, 편곡 : 오상준

연출 : 오경택

예술감독, 총안무 : 정혜진

출연 : 서범석(세종) / 임철수, 김도빈 (강채윤) / 최정수, 박영수 (무휼)

        이시후 (성삼문), 김백현 (가리온) 외 서울예술단원

제작 : (주)서울예술단

 

서울예술단의 새로운 창작가무극 <뿌리 깊은 나무>가

국립한글박물관 개관 기념으로 10월 9일 한글날 기념적인 첫공연을 올렸다.

한아름, 오상준 콤비에 서범석과 임철수가 객원으로 참여한다는 소식에 "must see!"를 다짐했던 작품이다.

역시나 이번에도 공연 기간은 너무나 짧았고,

그래서 입소문이 제대로 나기도 전에 끝이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볼 사람은 다 본다.)

끝난 공연을 포스팅하는게 좀 뒷북같긴 하지만 그래도 짧게라도 코멘트를 남기련다.

 

작품은,

역시나 서울예술단이기에 가능한,

서울예술단 창작가무극스러운 작품이었다.

그리고 확실히 서울예술단 단원들은 서울예술단 작품을 할 때가 가장 그들답고 아름답다.

그들이 함께 무대에 서면

주조연을 구별하는 것도, 출연분량의 많고 적음을 따지는 것도 참 부질없다.

내 앞에 펼쳐진건 그들 모두가 정성을 다해 그려낸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심지어 그 그림 속에는 아련하고 그윽한 향(香)까지 느껴진다.

최고는 아니지만 자기 자리에서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게 그대로 보여진다.

그리고 나는 서울예술단의 그런 모습이 언제나, 너무나 좋을 뿐이다.

 

 

얼마전에 예술단 단원이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데

연습하면서 서범석 선배에게서 후광을 봤다는 내용이었다. 

그때는 단지 후배가 선배에게 느끼는 존경심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는데

작품 속에서 세종으로 분한 서범석의 아우라를 실제로 보니 그 말의 의미가 충분히 이해되더라.

연기도, 노래도, 전체적인 위엄과 분위기도 진심으로 왕다웠다.

배우 서범석이 아니라,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하는 군주의 모습이더라.

이 작품 보면서 서범석이 "화성에서 꿈꾸다"의 정조를 해도 정말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내 머릿속에서 정조는 only 민영기뿐이었는데...)

 

역시나 서울예술단 작품답게 타악기의 활용도, 배우들의 군무도 탁월했고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영상을 생동감있게 표현한 것도 참신하면서 흥미로웠다.

<소서노>에 이어 무대 바닥까지 꼼꼼하게 활용한 영상효효과도 좋았고

마지막 장면에서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나비처럼 날아다니게 만든 연출은 베스트였다. 

그리고 2막 채윤과 성삼문의 격구장면 연출,

아주 멋졌다!

어린 채윤과 세종이 어른이 되는 모습을 오버랩시킨 것도 좋았고

무휼의 누나가 공녀로 끌려가는 장면에서 하얀 상여를 등장시킨 장면은 뭉클했다.

너무나 간곡하고 절실한 은유라서 많이 아프더라.

때로는 시같고 때로는 그림같던 무대였고 작품이었고 장면이라 여운이 깊다.

배우들 모두의 정성이 깊이 담긴 작품이더라.

심지어 어린 채윤역의 아역까지도 어쩜 그리 잔망지게 잘하던지...

공연기간만 충분히 확보되고 계속 피트백을 할 수 있다면

정말 좋은 작품이 될 것 같은데...

짧은 공연기간이 내내 아쉽고 아쉬울 뿐이다.

다르게 생각하면 그런 아쉬움이 서울예술단 작품의 매력이기도 하고!

작품의 완성도도 그렇고, 공연기간도 그렇고, 배우들의 연기도 그렇고

자꾸 뭔가 부족함의 여지를 남겨 아쉬움과 그리움을 동시에 느끼게 만드는 묘한 힘.

그 빈 여백의 가능성이 나는 너무나 좋다.

그래서 작품이 끝나고 커튼콜이 시작되면 매번 자리에서 저절로 일어서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완벽함에 감동한 기립이 아니라

내가 본 가능성에 진심으로 응원을 보내는 기립.

 

분명한건,

서울예술단 작품은 뭐가 됐든 끊임없이 발전할거란 사실이다.

그걸 믿기에 그들이 보여주는 작품에 매번 기쁘게 박수쳐줄 준비!

 나는 언제나 되어 있다.

 

커튼콜때 두 손을 곱게 모은 박영수 무휼이 서범석 세종을 바라보던 눈빛...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숱한 의미가 담겨 있던 그 눈빛.

   뭉클함이 느껴질만큼 참 아름다웠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3. 12. 10. 08:27

<공동경비구역 JSA>

일시 : 2013.12.07. ~ 2013.12.15.

장소 : 대학로 뮤지컬센터 공간피꼴로

원작 : 박상연 "DMZ"

작사 : 이희준

작곡 : 맹성연

연출 : 최성신

출연 : 준모, 임현수 (지그 베르사미) / 정상윤, 강정우 (김수혁)

        최명경 (오경필), 임철수 (정우진), 이기섭 (남성식) 외 

제작 :  CenS

 

2013 공연예술 창작산실 지원사업 뮤지컬 우수작품 제작 지원 선정작 <공동경비구역 JSA>

이병헌, 송광호 주연의 영화로 잘 알려진 이 작품이 뮤지컬로 만들어진다는 말을 들었을때 궁금도했고 걱정도 됐다.

아무래도 영화의 잔상이 너무 강력한 작품이기에...

그랬더랬는데 리딩공연만으로도 들리는 입소문이 범상치가 않았다.

게다가 작사, 작곡, 연출을 비롯한 스텝진과 배우진이 이보다 더 좋을 순 도저히 없다!

묵직하고 선 굵은 양준모에 섬세한 연기와 감성의 끝을 보여주는 정상윤.

<오페라의 유령> 이후 두 사람을 한 작품에서 보는 것도 정말 오랫만이라 개인적으로 기대가 컸다.

여러모로 퀄러티 보장되는 작품이 나오겠구나 짐작했다.

 

실제로 보고 난 느낌은!

이 작품,

확실히 수작(秀作)이다.

올 상반기 최대 화제작이었던 뮤지컬 <그날들>보다 개인적으론 훨씬 좋았다.

공연 2일차에 고작 네번 올려진 작품이 이 정도 퀄리티를 보여줄 수 있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다.

지금같은 작은 극장이 아니라

조명과 무대를 제대로 쓰는 중극장 이상에서 지금 상태로 공연된다면 엄청났겠다 싶다.

개인적으론 영화보다도 뮤지컬이 훨씬 더 강렬하고 인상적이었다.

스토리도 자체도 너무나 탄탄했고

시간을 교차시키는 방식도 아주 좋았다.

그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유행가나 드라마, 만화영화 주제가를 살짝씩 삽입시킨 음악도 친근하면서도 어딘지 신선했다.

(김광석과 최진실 생각에 혼자 뭉클해기도...)

과하지 않은 웃음코드도 곳곳에 잘 배치시켰고

그걸 또 배우들이 적절하게 잘살려 표현했다.

이건 완전히 기대, 그 이상이다!

 

 

한동안 나이를 앞서간 연기를 주로 했던 양준모는

요근래 내가 본 그의 출연작 중에서 단언컨데 최고였다.

영화에선 이 역을 이영애가 했었고 비중도 크지 않았지만

뮤지컬에서는 스위스 중립국 수사관으로 나오는 지그 베르사미의 비중이 상당히 크고 중요하다.

해설자이기도 하고, 직접적인 개입자이기도 하고, 과거의 대역이기도 한 이 역할을

양준모가 아주 묵직하게 제대로 표현해줬다.

사실 중반부까지 너무 밋밋한 역할이라는고 생각했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참 표현하기 힘든 인물임을 알게 됐다.

평면적이듯 보이지만 작품 속 그 누구보다도 가장 입체적인 인물.

눈 앞에 보여지는 사건과  갈등을 표현하는건 오히려 쉽다.

그러나 이렇게 잔잔한 수면 밑, 몰아치는 회오리 물살을 표현하는 건 결코 쉽지 않다.

오랫만에 배우 양준모가 이런 모습을 보여줘서

개인적으로 너무나 반갑고 반가웠다.

 

김수혁의 정상윤.

역시나 끝과 끝의 표현을 망설임없이 보여준다.

귀엽고 철없는 모습일때는 정말 스무살 초반 갓입대한 군인 같았고

섬세한 내면의 갈등을 표현할 때는 표정과 목소리톤까지도 순간적으로 달라진다.

등퇴장없이 곧바로 전환되는 장면들,

그리고 그 틈없는 시간과 공간을 완전히 다른 감정을 가지고 표현하는 정상윤을 보면서

또 다시 혀를 내두르게 된다.

확실히 정상윤은 작품과 배역에 대한 해석력과 표현력이 탁월하고

작품 안에서 어떻게든 배역을 살려내는 몇 안 되는 배우 중 한 명이다.

30대 초반이라는 게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만큼 노련하고

무대 위 돌발상황에 대처하는 것도 아주 민첩하고 유연하다.

창작 초연 작품 섭외 1순위가 정상윤일 수밖에 없는 이유,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개인적으로 내가 더 늙기 전에(?) 정상윤의 <헤드윅>은 꼭 보고 싶은데...)

최명경의 엔딩곡은 어색해서 오히려 단백하게 들렸고.

이러다 북한병사 전문배우가 되는 건 아닌지 슬슬 걱정되기 시작하는 임철우의 맛깔스런 연기도 아주 좋았다.

앙상블의 연기도 좋았고,

주조연 배우들 모두 전체적인 합과 발란스도 괜찮았다.

창작 초연임에도 불구하고 객석 점유율이 95%를 육박한다는데

그 이유 역시도 충분히 알겠다!

그만큼 좋은 작품이고

단언컨데 영화보다 훨씬 더 내용도 구성도 짜임새있게 잘 만들어진 작품이다.

굳이 단점을 찾자면,

공연기간이 너무 짧다는 것과 공연장이 공간피꼴로라는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대 활용도와 음향은 아주 좋더라.)

이 두 가지가 정말 아쉬웠지만

조만간 더 좋은 공연장에서 만나게 되리란 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때도 양준모와 정상윤만큼은 꼭 다시 볼 수 있게 되길...

 

* 한 번쯤 더 보고 싶은데 시간도, 좌석도 다 없다.

  아.쉽.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