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발'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11.04 달동네 책거리 68 : <공무도하>
  2. 2008.11.27 달동네 책거리 2 : <사랑하기 때문에>
달동네 책거리2009. 11. 4. 09:31
 <공무도하> - 김 훈


공무도하 


제가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김훈의 글들은 단 한 번도 서정적이지 않았죠. 오히려 너무 사실적이었으며, 심하다 싶게 물고 늘어져 집요하다는 생각까지 갖게 만듭니다. 그러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끔찍스럽게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30년 넘게 기자생활을 했던 사람, 그리고 여행과 자전거를 너무나 좋아하는 사람. 자신의 직업을 작가가 아니라 자전거레이서라고 소개하는 61살의 김 훈.

<밥벌이의 지겨움>, <풍경과 상처> 제가 만난 김훈의 첫 책들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기행 산문들 <자전거 여행 1, 2>와 <바다의 기별>.

오히려 그의 소설은 뒤늦게 찾아 읽은 셈이네요.

<빗살무늬토기의 추억>, <칼의 노래>, <현의 노래>, <강산무진>, <남한산성>, 그리고 <공무도하>까지...

여전히 연필과 원고지로 글쓰기를 고집하는 너무나 아날로그적인 그가 지난 5월 네이버를 통해 자신의 여섯 번째 소설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이 소식을 접했을 때 저는 적잖은 충격을 받기도 했죠.

그런데 역시나 김훈답네요.

소설을 연재하면서 단 한 번도 댓글을 들여다보지 않았다는 말하는 그.

독자와 작가는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름다운 관계라고 그는 말합니다.

연재를 시작하면서 그는 말했습니다.

"약육강식은 모든 먹이의 기본 질서이고 거대한 비극이고 운명이다. 약육강식의 운명이 있고 거기에 저항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이 있다. '공무도하가'는 강 건너 피안의 세계로 가자는 것이 아니라 약육강식의 더러운 세상에서 함께 살자는 노래다. 나는 인간 삶의 먹이와 슬픔, 더러움, 비열함, 희망을 쓸 것이다."

이 책, <공무도하>

서정적인 제목과는 다르게 책의 내용은 결코 서정적이지 않습니다.

비굴과 굴욕, 치사와 번잡스런 인간의 이면에 대한 이야기죠.

“사랑아, 강을 건너지 마라”

표지에 쓰여 있는 문장에 속지 말라는 충고 또한 함께 드립니다.

 

公無渡河 (공무도하) : 님아, 저 물을 건너지 마오

公竟渡河 (공경도하) : 임은 그예 물을 건너셨네

墮河而死 (타하이사) : 물에 쓸려 돌아가시니

當奈公河 (당내공하) : 가신님을 어이 할꼬


기억하십니까?

술에 취해 강을 건너다 물에 휩쓸려버린 남편(백수광부)를 바라보며 애절한 노래를 불렸던 백수광부의 처.

학창시절에 이 고대가요를 배웠을 때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왜 백수광부의 처는 남편이 물에 들어가지 못하게 직접 말리지 않고 보고만 있었는지를...

그러나 지금은 알 것 같습니다.

세상엔 말릴 수 있는 것과 말릴 수 없는 게 있다는 걸 말이죠.

이 책 <공무도하>는 이 땅의 숱한 백수광부와 그를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숱한 백수광부의 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인간은 비루하고, 인간은 치사하고, 인간은 던적스럽다. 이것이 인간의 당면문제이다. 시급한 현안문제다.”

장철수라는 소설 속 인물의 입을 통해 발설되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다수의 비루하고 치사하고 던적스러운 인간들이 건넌 물보다 더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

부끄러움도, 죄스러움도, 비밀스러움도 그들과 함께 기꺼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건너갑니다.

동료를 배반하고 풀려남으로써 고향 창야를 등지게 된 운동권 출신 장철수, 소방서 인명구조 특공조장 박옥출은 백화점 화재현장에서 4억 5천 만원 상당의 귀금속을 들고 나와 장물로 팔아넘깁니다, 치매기 있는 외할머니와 함께 비닐하우스에 버려지듯 살던 아들, 그 아들이 친구처럼 키우던 개에 물려 사망한 사건을 뉴스로 보고 세상으로부터 숨어버린 어미 오금자, 본처가 있는 줄 모르고 속아 결혼한 남편으로부터 도망친 베트남 여성 후에. 물막이 공사 크레인에 깔려 사망한 딸의 보상금을 몰래 수령하고 사라진 아비 방천석...

숱한 백수광부들은 지금 “해망(海”望)이라는 도시에 모여 있습니다.

바다(물)를 바라본다는 뜻의 해망!

그래서 이 책의 곳곳에는 “바라봄”이라는 그 아득함과 노곤함, 그리고 무력감이 오랜 상처처럼 담겨있습니다.

그리고 그들 백수광부를 바라보는 백수광부의 처 문정수, 노목희.

일간지 사회부 기자 문정수가 노목희를 찾아오는 밤이면 그는 추적할 수도 없고 전할 수도 없는 숱한 백수광부들의 세상을 노목희에게 말합니다.

노목희는 그를 다독이며 진심으로 답합니다.

“냅둬... 제발 좀 그냥 냅둬!”

그래요, 어쩌면 진실을 폭로할 자신이 없다면 우리 모두 백수광부의 처가 되어 그저 손끝으로만, 애타는 심정으로만 물을 건너는 남편을 말릴 수밖에 없을 테죠.

그리고 우리가 건너야 하는 게 어디 물 뿐이겠습니까!

물보다 더 한 것들을 건너고, 물보다 더 한 것들을 건너는 사람을 이편에서 그저 보고 있기만 해야 하는...

그래서 인간이란 존재가 이렇게 비루하고 던적스럽고 소란스러운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을 읽고 있으면 어쩔 수 없이 적나라하게 겹쳐지는 우리네 현실과 만나야 합니다.

새만금 간척사업, 매향리 미군폭격훈련장, 의정부 미순∙효선 사건, 동남아시아 여성 상대의 국제결혼, 가족의 해체와 남겨진 아이의 버려짐. 그리고 업무상 배임, 불법 장기매매와 투기, 정부주도의 독점사업에 이르기까지...

벌거벗겨진 우리의 현실을 그대로 들여다 봐야하는 부끄러움과 민망함도 있습니다.

“증발과 해체는 숨막혔고 스산했다.”

이 문장에 저는 그만 턱하고 숨이 막혔습니다.

어쩌면 누군가에겐 이 모든 게 하찮은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알까요?

그 하찮은 소리가 너무나 유혹적이라는 사실을요.

그런 이유로 비록 하찮을지라도 쓸데없는 일이 되버리는 건 결코 아니라는 걸 말이죠.

작가 김훈은 고백은 그래서 차라리 속이 시원해지기까지 합니다.

“나는 나와 이 세계 사이에 얽힌 모든 관계를 혐오한다.

 나는 그 관계의 윤리성과 필연성을 불신한다.

 나는 맑게 소외된 자리로 가서, 거기로 새로 태어나든지 망하든지 해야 한다......

 나는 왜 이러한가. 이번 일을 하면서 심한 자기혐오에 시달렸다.

 쓰기를 마치고 뒤돌아보니, 처음의 그 자리다...“


이 책 <공무도하>

강을 건너가지도 못하고 물가에 선 사람에게 재차 묻습니다.

이제 어찌 할지를 말이죠...

김 훈,

그의 글은 때로는 너무 정직해서 오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무딘 칼끝을 가지고도 그는 예리한 상처를 남길 줄 아네요.

벌려진 상처를 바라보는 또 다른 백수광부의 처가 지금 여기 오도카니 남아있습니다.


* 11월부터 그가 다시 새로운 글을 쓸거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예 대놓고 공표했습니다.

  “독자들이 바라는 희망이나 위안은 아주 인색하게 주고,

   독자를 고문하고 들들볶아 극한까지 고통을 주는 글을 쓰고 싶다”고...

  고문관이 되어 돌아올 그가 문득 궁금해집니다.

  극한의 고통...

  그 길을 기꺼이 동참하겠노라 저 또한 대놓고 말하렵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달동네 책거리2008. 11. 27. 12:07

<사랑하기 때문에> - 기윰 뮈소


 사랑하기 때문에

 


프랑스인들은 어쩐지 우리네랑 감성이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이상하게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영혼과 프랑스인들이 생각하는 영혼은 같은 서구라고 해도 참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제가 정말 무지 좋아하는 프랑스 작가는 고전 작가 “빅토르 위고”와, 현대 작가 “알랭 드 보통”입니다.

“기윰 뮈소”라...

참 재미있고 그리고 쉽게 글을 쓰는 작가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참 제목이 말캉말캉하지 않나요?

게다가 우리에겐 동명의 유재하의 노래가 있어 왠지 더 친밀하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언뜻 보면 “아! 연인간의 이야기겠구나...”하고 나름 유추할 수도 있고...

그런데,

그렇게 생각한다면 “땡!” 되시겠습니다. ^^ (오랜만에 원맨쇼 시츄에이션 나왔습니다..)


자, 당신에겐 아름다운 아내와 어여쁜 딸이 있습니다.

사랑스런 가족을 가진 당신의 자리에 이제 뭔가가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면 어떨까요?

그게 다름 아닌 당신의 다섯 살 어린 딸이라면...

이야기는 이제 시작됩니다.

이제 당신이 할 일을 말해야겠죠.

잃어버린 딸을 찾겠다는 일념으로 당신은 모든 걸 버리고 알코올 중독에 노숙자가 되어 거리를 헤매다닙니다. 당신의 아내는 당신도 잃고, 그리고 딸도 잃었지만 명성은 잃지 않은 채 바이올리니스트로 공연까지 하며 살아내고 있습니다.

그 둘의 방식이 누군가를 덜 사랑해서라고 말하려는 건 아닙니다.

하나를 잃었을 때 모든 걸 잃는 사람과, 하나를 잃었을 때 남은 것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 중 누가 올바르다고 말 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세상엔 찾지 않아도 돌아오는 게 있고, 죽을 듯이 찾아다녀도 결국은 찾아지지 않는 것도 있으니까 말입니다.

우연한 실종처럼 딸은 5년 전 실종됐던 바로 그 자리에 다시 기적처럼 나타납니다. 말을 잃을 채 말이죠.

아빠는 딸을 찾아 함께 비행기를 탑니다.

이제 모두 끝났다. 아빠가 네 곁에 있단다..

결말이 이런 평온한 안식이라면 다행이겠지만 안타깝게도 이 이야기의 끝엔 반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반전에 대해 말한다면 참 센스 없는 행동이겠죠?)


이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세 명의 사람들은 서로의 삶과 운명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딸을 잃고 방황하는 주인공 마크. 엄마를 의사의 욕심에 의해 잃고 그 의사에게 복수를 다짐하는 에비. 그리고 자신의 잘못한 행동으로 인해 마음속에 죄책감을 가지고 자신을 망치려는 재벌 상속녀 앨리슨.

누군가의 행동이 원인이 되어 누군가의 삶이 달라지죠. 그러나 그들은 서로 전혀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전 이런 내용들을 만나면 공포스럽습니다.

내가 한 행동의 누군가의 삶과 죽음을 가르는 도화선이 된다면...

어쩐지 자꾸 내 모습을 뒤적여보게 만들어 영 불편하기도 합니다.


아직 젊은 작가, 기윰 뮈소(35살)은 이 소설에서 뭘 말하고 싶었을까요?

작가는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하네요.

“나는 사랑 이야기가 없는 작품을 상상할 수 없다. 사실 인간의 행동은 사랑 혹은 사랑의 결핍에서 나오는 것 아닌가. 따라서 사랑이라는 독특한 감정을 기술하는 것은 작가인 나에게 일종의 도전인 셈이다."

작가가 출판 기념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책을 보면서,

실종과 증발, 그리고 결핍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작가가 말하는 “사랑”이라는 것도 감정의 실종 혹은 증발로 이야기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끝없는 결핍으로 인해 찾아내 소유하고픈 마음.

어쩌면 사람들은 “사라짐”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에 우리 내면이 반응하는 건지도요.

이 책의 내용처럼 내가 사라질 때 누군가가 치유될 수 있다면 “사라짐”이 별로 서러울 것도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일본 작가 아사다 지로의 <철도원>과 자꾸 비교하게 됩니다.

아빠와 딸이 만나는 모습...

<철도원>쪽이 훨씬 더 서정적이고 아름답지만, 파란 눈의 프랑스인에게도 이런 정서가 있다는 게 참 낯설면서도 신선하네요.

어떠세요???

동양의 거장의 감성과 서양의 젊은 감성을 함께 만나보시는 거...

두 이야기 모두엔 “사라짐”이 주는 치유가 있습니다.

비교해 보시라는 게 아니라 그냥 만나보시라구요...

분명한 건 그 책의 내용과 함께 비밀스런 “온기"도 함께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이제 따뜻함이 그리울 때잖아요... ^^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