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1. 2. 4. 10:42

"무대가 좋다" 다섯번째 작품 <아트>
그리고 악어 컴퍼니의 영원한 스테디셀러 <아트>
오죽하면 수컷들의 수다임에도 불구하고 등장인물들을 싹 다 여자로 바꾼 아트까지 나왔을까?
대학로에서 제일 많이 본 포스터도 내 기억엔 <보잉보잉>과
<아트>인 것 같다.

2006년도인가 2007년도인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권해효, 조희봉, 이대연이 출연하는 <아트>를 봤었다.
그때 느낀 재미와 충격이란!
아마도 출연배우들의 내공도 큰 몫을 차지했겠지만.
권해효의 규태는 정말 인물과 일체감이 느껴졌었다.
그 표정이며 어이없어하는 말투며, 홍삼다시마 골드를 분노게이지 상승시키며 우걱우걱 씹어대던 모습이며... 
그리고 약간 촌스럽게 생긴(죄송^^) 조희봉의 청담동 피부과 의사 수현 역은 기대 이상으로, 아니 상당히 꽤 세련됐었다.
지금 말하는 까도남의 원조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이대연의 덕수는 구수하고 소박했고 지극히 현실적이었고...


그때 공연장을 나오면서 꼭 다시 봐야지 했었는데 무슨 이유때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러지 못했다.
지금처럼 OB팀, YB 팀은 아니지만 그때도 역시 두팀으로 나눠서 공연됐었다.
권해효, 조희봉, 이대연이 한팀이고
다른 한 팀이 박광정, 정원중, 오달수였나?
(몹쓸 놈의 기억력이 또 흐려지는 중이다.)
대학로에서 상당히 오래 공연됐음에도 불구하고 박광정의 규태는 결국 못보고 말았다.
그리고 결국은 영원히 박광정의 규태는 볼 수 없게 돼버렸다.
개인적으로 박광정이 연출하는 연극 무대도 참 좋았지만
난 이 사람이 무대위의 배우로 나오는 모습이 너무 좋았었다.
액센트같던 배우, 무대의 방점 같던 배우 박광정이 그래서 늘 안타깝고 아깝고 그립다.



일부러 정상훈, 김재범, 김대종 YB팀을 선택했다.
류태호, 이남희, 윤제문, 유연수의 OB팀도 궁금하긴 했지만
어쩐지 젊은 수컷(?)들이 만들어내는 아트도 상당히 예술일것 같아서...
그리고 개인적으로 YB팀의 싱크로율이 등장 인물들에 상당히 흡사해보였다.
특히나 뮤지컬 <스팸어랏>를 통해 특별한 우정을 만든 세 사람의 동반 출연이라는 게  흥미롭기도 했고.
그들 스스로가 함께 하고 싶다고, 세 사람이 한 팀이 되겠다고 해서 만들어졌다는 YB팀!
나름대로 호흡과 발란스가 잘 맞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도 됐다.
결론은...
좋았다. 생각보다 훠얼~~~씬!



정말 남자들도 이렇게 소란스럽고 수다스럽고 유치찬란하게 싸울까?
정말 그랬으면 좋겠고 어쩐지 확실히 그럴 것 같다.
수컷들이라고 뭐 별 다를게 있나?

"친구가 그림을 하나 샀습니다.
 하얀색 바탕 위에 선이 있는 하얀색 그림입니다.  
 이 그림의 가격은 무려 2억 8천 만원입니다.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러니까 사건의 발단은 규태의 첫 대사에 나오는 것처럼 "앙트로와"가 그렸다는(?) 하얀 바탕 위에 하얀 그림이다.
("앙트로와"가 정말 실존하는 화가인지 찾아보려다 귀찮아졌다. 실존 하던지 말던지...)
그리고 규태(정상훈), 수현(김재범), 덕수(김대종)의 유치찬란 시끌벅적 물고 뜯기가 시작된다.
내 돈 가지고 내가 쓰겠다는데 늬가 무슨 상관이냐?
맞는 말이다!
상관, 당연히 없다!
그런데 어쩌나!!!
그 상관없는 일에 배앓이 꼴리는 건 또 내 몫이다!
왠만한 전셋값뿐만 아니라 집 한 채도 살 수 있는 가격이다.
나라도 철친이라는 인간이 이 따우 짓거리를 했다면(이건 순전히 내 입장에서다...)
분노 게이지 무한 상승하면서 배신감 비슷한 감정 처절히 느꼈으리라.
세 사람도 이 사건이 기폭제가 돼서 고래고래쩍 푹 삭은 감정들이 그야말로 봇물 터지듯 쏟아진다.
(원래 발효의 깊이와 세월만큼 곰삭은 냄새의 상관관계 수직상승하신다)
급기야는 규태 마누라 피부가 돼지 껍데기였노라는 피부과 의사의 충격 고백까지 나오신다.
설상가상으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 격으로 문구점 싸장님 덕수가
이 모든 사건의 주범이라는 두 친구의 일방적인 몰아붙이기 사태 발발한다.
그런데 어쩌랴!
본인들이야 참 속꽤나 너덜거리고 남들 보기 넘새스러운 광경의 연출이지만
보는 입장에선 그게 또 그렇게 통쾌하고 속시원할 수 없다.
타인의 찌질함을 들여다보며 박장대소하는 재미는
몰래 들여다보는 관음의 즐거움 그 이상이다.
솔직히 더 짜릿하고 묘한 만족감을 준다.
또 다시 어쩌랴!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다는 게 불구경과 싸움구경이라는데...



연극을 보고 난 뒤 문득 예전에 갖지 못한 생각을 하게 됐다.
정말 수현이 2억 8천을 주고 그 그림을 샀을까?
이게 사실은 수현의 트릭이 아니었을까?
어딘지 이그러지고 어긋나는 그들 세 사람의 우정을 회복하고 싶은 일종의 깜짝쑈!
규태가 파란색 유성팬으로 스키타는 모습을 그리는 걸 바라보는 수현의 표정이
이런 생각을 갖게 한다.
어쨌든 다행인 것은 그들의 우정은 회복됐다는 사실이다.
참 매직블럭처럼 깜직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뭐 색은 약간 바랠 수 있겠지만... (이게 바로 매직블럭의 한계다)



이상하게 나랑 참 시간때가 잘 안 맞았던 김재범을 드디어 무대에서 직접 봤다.
상당히 매력적인 배우다.
살짝 여성스런 감정이 담긴 수현이었던 것 같은데 자신의 색을 과하지 않게 잘 표현한 것 같다.
코믹한 모습을 진지하게 연기하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자칫하면 가볍고 정체성 불분명한 인물이 될 수도 있었을텐데
그 한계를 잘 지키면서 연기한 듯.
나중에 다른 작품을 하면 꼭 챙겨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몇 년만에 다시 본 연극이지만
여전히 괜찮은 연극이었고
그리고 괜찮은 배우들이었다.
그래서 괜찮은 나들이었다.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1. 1. 6. 05:59

□ 공연명 : 연극 '트루웨스트'
□ 극   본 : 샘 셰퍼드

□ 연   출 : 유연수
□ 기   간 : 2010년 11월26일~2011년 2월26일
□ 장   소 : 서울 종로구 컬처스페이스 nu
□ 출   연 : 리 (오만석, 배성우, 김태향)
              오스카 (조정석, 홍경인, 이율, 김동호)
              제작자 사장 & 엄마 :
임진순

"무대가 좋다" 시리즈 그 네 번째 작품 <트루 웨스트>
어쩌다 보니 무대가 좋다 시리즈를 다 봤고
그리고 앞으로 2 작품(아트, 대머리 여가수)도 볼 예정이지만
지금까지 본 무대가 좋다 시리즈 중에서 가장 맘에 들었다.
개인적으론 오랫만에 조정석과 오만석의 연극 무대를 보는 거라서 기대가 컸다.

이상하게도 조정석은 연극, 뮤지컬 다 괜찮은데
오만석은 뮤지컬보다 연극 무대에서 보는 게 훨씬 더 잘 어울린다.
너무 진지하게 몰입해서 그런가???



반듯한 성격의 모범생 동생 오스틴과 껄렁한 양아치 형 리.
그 둘의 역지사지(?)스런 모습은 재미있고 그리고 은근히 사실적이다.
(나만 그렇게 느꼈을까?)
90분 남짓의 시간이었는데 이상하게 2시간 처럼 느껴지는 연극이었다.
그런데 더 이상한 건 그 시간이 전혀 지루하거나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사실.
두 형제의 사생결단을 보고 있노라니 시간도 약간 다르게 흐른 모양이다.
처음엔 오스틴 조정석의 연기에 반했고
그리고 조정석을 점점 끓어오르도록 열심히 빈정대며 부추키는 리 오만석의 연기에도 반했다.
(정말 한 대 확 때려주고 싶더라...)
난장판이 되는 형제의 모습과
똑같이 난장판이 되는 집 안의 모습을 보는 건
대리만족이자 거한 살풀이 굿 같기도 하다.
일렬로 쭉 나열되어 있던 온 동네 토스트기와
(어느 놈이 가장 바삭하게 구워지나 지켜보는 조정석의 모습이 얼마나 귀엽던지...)
자신이 밟은 토스트를 우걱우걱 씹어대던 적나라한 리의 모습.
그리고 형의 목에 전화선을 감고 죽일 듯이 조르는 오스카의 절묘한 간절함까지...
이 모든 모습을 지켜보는 건 일종의 관음적 즐거움이기도 했다.



어딘가 한 군데쯤 정상적이지 못한 가족의 모습.
오스카도, 리도
그리고 죽은 화가 피카소가 동네에 왔다며 보러 가자고 말하는 엄마까지도
일종의 정신착란의 상태에 놓여있다.
그리고 그건 모든 사람들의 일상이기도 하다.
착각을 현실로, 그리고 가보지 못한 길을 희망하고 꿈꾸는 평범한 모든 이들의 바람.
제목이 주는 느낌과 딱 맞아 떨어지는 작품이다.
2003년 영국에서 공연됐을 때는 
안전상의 이유로 앞열 3열을 모두 비워두기까지 했단다.
그만큼 두 형제의 싸움이 리얼하고 치열했다는 의미다.
원래 연극 <트루웨스트>는 전통적으로 리와 오스틴 역의 배우들이
매일 역할을 바꿔가면서 공연을 해 화제가 됐던 연극이다.
우리나라에서 초연된다고 했을 때도
이런 방식으로 공연되겠거니 기대했는데
마지막까지 나온 스케쥴상엔 크로스되는 캐스팅은 없다.
개인적으로는 좀 아쉬운 부분이다.
하긴 조정석이 형 역할을 하기엔 초동안이긴 하다.
(당췌 누가 이 인간을 32살이라고 생각하겠는가??? 넌 도대체 어느 별에서 왔니???)
그래도 서로 바꿔서 연기했다면 그 재미도 만만치 않았을까?

네 작품만에 처음으로
"무대가 좋다"에서 괜찮은 작품을 봤다.
그래서 또 다시 기대하기 시작했다.
<아트>와 <대머리 여가수>를...
(7,8년전에 봤던 권해효의 "아트"는 정말 아트였는데...)
그리고 이 두 작품에는 대중적인 스타 마케팅이 현지까지는 없다.
아무래도 나무 액터스 배우들이 요즘 바쁜가 보다.
미안한 말이지만 참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덕분에 좀 진중하고 충실한 작품을 보게 되지 않을까 혼자 기대하는 중이다.
그래 이제 네 작품까지 왔으면
진심으로(그리고 양심적으로다) 무대가 좋아 질 때도 되긴 했다.
늘 궁금하긴 했었다.
누구한데 좋은 무대인지가... ^^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11. 13. 05:54

연극 <프루프>

장 소 : 대학로예술마당 3관
기 간 : 10월 12일(화)~12월 12일(일)
극 본 : 데이비드 어번

연 출 : 이유리
출 연 : 로버트 - 남명렬, 정원종, 
         캐서린 - 윤지, 강혜정 
         클레어 - 하다솜, 김태인
         해롤드 - 김동현



나무 액터스와 악어 컴퍼니의 야심작(?)
"무대가 좋다" 시리즈 세 번째 작품이자
타블로와 결혼 후 아기를 낳고 한동안 쉬고 있던 강혜정의 복귀작 연극 <프루프>
그러나 난 이윤지 캐서린을 선택했다.
2 년 전에 김지호와 남명렬이 부녀로 나왔던 <프루프>를 보면서 그 느낌이 얼마나 좋았던지...
그때 이 작품을 보면서 김지호가 나이가 좀 더 어렸다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을 했었다.
김지호 자체는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연기를 잘했었고 집중력도 놀라웠었다.
단지 그녀가 25살로 나오는 게 나홀로 어색했었는데...
그래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이윤지의 캐서린을 선택한 건.
그리고 왠지 그녀는 똑 부러지고 야무지게 연기를 할 것 같았다.
아버지 로버트역은 전혀 망설임이 없이 배우 남명렬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무대 위에서 존재감 있다는 표현,
배우 남명렬만큼 적절하게 들어맞는 경우가 또 있을까?
그의 딕션과 톤은 가히 환상적이다.
연극을 보는 내내 나는 로버트가 내 아버지가 아니라는사실에 불같이 질투가 났다.
(이게 말이 되느냐 말이다)



천재 수학자 로버트는 20대에 이미 학계가 깜짝 놀랄 수학적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그 천재성이 오히려 그에게 견디기 힘든 독이었을까?
말년은 정신분열 증세와 불안장애로 혼란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캐서린의 보호를 받으며...
아버지의 수학적인 천재성을 물려받은 캐서린은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학업도 포기한다.
...... 캐서린은 분명 내 삶을 구원해주었다. 
       그 아이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나는 결코 그 아이에게 보답하지 못할 것이다 ......

캐서린의 21살 생일에 쓴 로버트가 일기.
문득 두 부녀의 관계에 또 다시 질투가 난다.
로버트에게 딸 캐서린은 어떤 의미였을까?
그리고 연극은 우리에게 무엇을 증명하고 싶었던 걸까?
우울증마저도 너무나 수학적인 딸 캐서린,
아버지 로버트는 혼자 남겨진 그 딸에게 환영으로라도 나타나
새 삶을 시작할 힘을 남겨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겟다.
네 삶에 새로운 삼페인을 스스로 떠뜨리라고...
스스로를 죽은 사람임을 인정하면서 퇴장하는 아버지의 탈육체화된 모습을 보면서
난 그 어떤 실체보다 더 현실적으로 만져지는 로버트의 존재감를 느꼈다.
마지막 유산, 혹은 찬란한 유산이라는 식상한 표현이라도 꼭 해야할 것 같다.
부재가 분명한 한 사람이 버젓이 현실로 변하는 그 시점.
아버지는 딸에게 모든 걸 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늘 모녀관계에만 익숙했는데 무대에서 만나는 부녀관계는 참 뜨겁고 사랑스럽고
그리고 안타까움의 연속이었다.
부녀의 사랑은 할과 캐서린의 사랑마저도 유치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캐서린과 클레어의 관계까지도.
캐서린은 정말 그랬을까?
아버지의 천재성이 가장 번득이던 20대 중반,
지금 그 나이를 지나야 하는 자신에게도 혹시 아버지의 정신병이 유전되는게 아닐까 불안했을끼?
작품 속에서는 그런 뉘앙스가 아주 많이 풍기지만
난 결코 아니라도 말하련다.
딸이자 보호자이자 협력자이자 간병인이었던 캐서린.
그 부녀의 관계는 무엇으로도 증명될 수 없고
그 누구라도 감히 끼어들 여지가 없다.
연극은 마치 그것을 증명하는 어렵고 난해한 공식 같다.


연극 <프루프>는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천재수학자 존 내쉬와 그의 가상 딸을 소재로 쓰여진 작품이다.
2001년 드라마부문 퓰리처상과 토니어워즈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데이비드 어번의 극본은 아름답고 치밀하다.
아쉬움이 있다면 부녀를 제외한 다른 두 사람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는 점이다.
언니 클레어 역의 하다솜은 너무 신경질적이여서 오히려 정신과적인 진료를 받을 사람은 캐서린이 아니라 바로 그녀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2년 전 봤던 클레어는 이지적으로 도시적인 느낌이 강했었는데...
초반에 캐서린과 머리 영양제(?)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마치 미장원 종업원이 손님에게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열심히 강매하는 느낌까지 들더라.
그리고 그 옆에서 손톱 손질하면서 함께 수다떨기에 딱 제격이었던 캐릭터 할까지!
목소리와 외모에서 지석진을 떠올리게 했던 김동현 할은,
아무리봐도 수학자같은 이미지는 아니여서 보는 내내 당혹스럽웠다.


클레어와 할 덕분에
순간순간 이 연극이 이렇게 수다스러운 작품이었나 생각했다.
(놀랍도록 새로운 경험이었다)
이윤지 캐서린은...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앗다.
목소리 톤이 급작스럽게 변한다거나 과장되게 표현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첫 연극 무대라는 걸 감안한다면 앞으로의 모습도 기대가 된다.
2시간 동안 이야기를 끌고 나가야 하는 캐서린.
그 역할을 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텐데...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끊임없이 감정의 변화를 조율하는 일도 쉽지 않았으리라.
스스로도 어느정도 대견해하고 있지 않을까?
젊은 배우들의 연극 무대 도전!
지금까지 "무대가 좋다" 시리즈 중에서 개인적으로는 가장 좋았던 작품이다.



"다 됐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위험한 때야!'
연극 속에서 논문 초고를 들고 찾아온 할에게 로버트가 던진 말이다.
모든 증명의 완성은 항상 이런 반추가 아닐까?
살면서 우리가 증명해야 하는 모든 것들에게 마지막으로 던지는 화두!
그게 사랑이든, 학문이든, 집착이든, 두려움이든. 정신병이든,
다 됐다고 생각하는,
가장 위험한 그 때를 지나오는 증명만이
오직 위대하고 완벽한 증명이 될 수 있듯이...

한 편의 연극을 보고...
어쩌자고 또 다시 이렇게  멀리 와버렸는지...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10. 4. 06:08


나무 액터스와 악어 컴퍼니가 기획한 "무대가 좋다" 시리즈 2탄 <클로져>
이미 대학로에서 장기 공연을 여러번 했던 작품이라 신선할 것까진 없다.
단지 문근영이라는 국민 여동생이 스트립퍼라는 파격적인 성인 연기로 연극에 데뷔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엄청난 티켓전쟁을 만들어낸 문제작 되시겠다.
엄기준, 문근영 출연분은 수초만에 매진이 돼서
헛손질 몇 번에 황량한 자리만을 확인해야만 했다.
솔직히 많이 놀라긴 했다.
조승우의 <지킬 앤 하이드>를 보는 듯 했다.
(조승우도 10월이면 제대라는데 다들 서로 잡으려고 혈안이 되겠구나 싶다.)
워낙에 엄기준을 제외하고 생각했던지라
(이 사람 나랑 참 안 맞는다)
문근영, 이재호 춮연분은 다행스럽게 좋은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문근영 앨리스, 이재호 댄, 진경 안나, 배성우 래리.
내가 선택한 casting.
솔직히 말하면 별로 선택의 여지가 없긴 했었다.
내가 진짜 보고 싶었던 건 최광일 래리였지만
배성우도 워낙에 <Closer>에서 래리 역을 오래 했던 사람이라
뭐 나쁘진 않더라.
(정말 오래전 이야기긴 한데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란 뮤지컬에서 그는 참 안 어울렸었다...)
안나 역의 진경이야 워낙 연기를 잘하는 여배우라 선택의 고민이 전혀 없었고
(여전히 나는 연극 <이>의 녹수에는 그녀만한 사람이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신인 이재호의 댄도 나쁘지는 않았다.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오디션에 합격한 뉴페이스라는데
첫 작품에서 그야말로 기라성같은 배우들과 만난 셈이다.
행운이면서 불운이기도 했겠다.
꼭 그런 심정이지 않았을까?
"나만 잘하면 돼!"
표정연기가 많이 어색하고 다소 어린애스러운 액팅 부분이 있긴 하지만
무엇보다 목소리 톤이 맘에 든다.
목소리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탈렌트 정찬의 이미지와 많이 겹쳐진다.
더불어 TV 연기도 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혼자 해봤다 



개인적으론 이런 노골적인 대사들이 오가는 연극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겠지만
어쩐지 앨리스라는 역이 문근영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불량 청소년, 엄마 화장을 몰래 하고 나온 어설픈 문제아 쯤으로만 여겨지니
아무래도 국민 여동생이라는 이미지가 너무 강력하지 않나 싶다.
따지고 보면 문근영이라는 배우의 나이가  이제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귀여운 여고생으로 밖에는 생각되지 않으니 말이다.
아마도 문근영에게도 국민 여동생의 이미지가 오래 간다면
배우로서는 오히려 마이너스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까 싶다.
영리한 배우니까 자신의 이미지를 잘 만들어 가겠지만 노파심에 한 마디 ^^
물론 연극 <클로져>에서 문근영의 연기가 나빴다는 뜻은 아니다.
순간적인 몰입으로 눈물을 흘리는 것도 좋았고 딕션 또한 정확했다.
표정 연기도 나쁘지 않았다.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지르는 모습은 좀 거슬리긴 했지만.



사랑의 첫번째 조건은 타협이란다.
처음 본 낯선 사람에게 사랑에 빠질 수 있다면,
그 사람을 곁에 두고 또 다른 낯선 사람과 사랑에 빠지지 않을거라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그래서 앨리스는 안나에게 이런 말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사랑에 빠진 게 아니라 유혹에 넘어간거야" 라고...
사랑은 타협이기도 하지만
무언의 룰을 지키지 않을 때에는 대가를 치뤄야 하는 게임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랑에 필요한 두번째 조건은 어쩌면 "정의"가 될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이유가,
"그 사람에겐 내가 필요하지 않아서" 라고 말하는 댄도
그런 댄을 "집요하게, 이해를 못 할 정도로" 사랑하는 앨리스도
그래서 모두 다 낯선 사람들일 뿐이다.
앨리스는 안나에게 묻는다
"왜 그랬어요?"
그리고 래리는 안나에게 묻는다.
"왜 하필 그 자식이야?"
그리고 극의 마지막엔 안나의 입을 통해 또 하나의 질문이 던져진다.
"우린 왜 그랬을까?"



연극과 영화의 느낌은 당연히 다르겠지만
이 작품은 특히나 차이가 난다.
연극이 훨씬 더 가볍다고나 할까?
문근영이 아니었다면 솔직히 챙겨보지 않았을 작품이다.
참 많이 대학로에 올려졌는데도 매번 초지일관 외면했었는데...

혹시 한 눈에 반하는 낯선 사람과의 사랑을 찾고 있는가?
그렇다면 타협과 정의의 룰을 반드시 지킬 것을 조언한다.
왜냐하면 이 두 가지를 무시할 때 그 결과는
연극에서처럼 누구에게도 해피하지 않기에...
선택했다면,
타협하라!
그리고 반드시 정의롭게 행동하라!

내게 연극 <클로져>는 두개의 화두를 남겼다...
Posted by Book끄-Book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