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돐날> 연출 : 최용훈 기간 : 2011.06.03.~2011.07.10 장소 :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 출연 : 길해연, 홍성경, 서현철, 김왕근, 김은석,
황정민, 정승길, 정세라, 김문식 외.
극단 <작은 신화>가 차단 25주년을 맞아 기념 공연으로 3편의 연극을 대학로에 올리고 있다.
<가정식백만 맛있게 먹기> , <돐날>, <황구도>
<돐날>은 부제가 "돌아버린다" 란다.
"돐날"이라는 사랑스럽고 앙증맞고 행복한 단어 속에 이렇게 비루하고 비참한 일상이 담길 줄은 정말 몰랐다.
그런데 더 비참한 건 이 일상이 지극히 현실적이고 적나라하게 사실적이라 할 말이 없다는 거다.
혁명을 가고 비루한 일상만 남다!
혁명과 변혁의 시대를 살았던 386세대의 자기파괴적인 종말!
8년만에 다시 무대에 오른 연극 <돐날>은.
서로의 상처를 감싸안는 마지막 장면을 의도적으로 삭제해버렸다.
그런데 아마도 마지막 장면이 예전과 같았다면 난 아마도 이렇게 공감하면서 보진 못했을거다.
최용훈 연출 역시도 말했다.
"재공연을 준비하면서 10년 전 초연 때와 비교해보니 당시 아픔과 좌절이 해결되거나 좋아진게 전혀 없었다. 오히려 더 좌절하고 절망감을 느끼게 됐다"
그는 관객들이 위안을 얻어가지 않길 바랐단다.
그의 의도적은 결말은 아주 적절했고 그리고 절실했다.
모든 게 자신만만하고 적개심마저도사랑했던 젊은 시절은 사라지고 사는 게 지겹고 신물나는, 그래서 맨하탄 쌍둥이빌딩처럼 한 방에 무너뜨리고 싶은 삶으로 전락해버린 일상! 마치 그 일상을 비웃든 극악스럽게 웃어대는 사람들. (돐잔치에 모인 사람들의 괴기스럽기까지하던 웃음소리는 공포로 다가온다.) 폭탄처럼 쏟아지던 빗소리와 어지럽게 흩어지던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 그리고 엄마의 포악과 저주 속에 사생결단처럼 울어대던 아기. 잔칫날의 주인공이여야 할 아이는 마치 갓난아이처럼 강보에 싸여있다. (부모의 사랑을 받을 수 없었던 아기는 아마도 자라기를 거부한 모양이다.) "시간이 흐르면 점점 익숙해지는 게 당연한데 왜 사는 건 그렇지 않니?" 정숙이 친구에게 묻는 질문은 우리를 일상의 공포로 몰고간다. 그리고 이 대사는 우리 모두의 독백이자 처절한 고백이다. 후줄근한 삶을 연명해야 하는 우리는, 반미운동하던 사람은 미국이 만든거라 안전하다며 피라이드 주방세제를 팔고 땅투기 아비 덕에 돈푼 꽤나 만진 놈은 인맥형성을 위해 다니는 경영대학원의 학위 논문 대필을 거래한다. (그 당당함이라니...) 뒷담화와 뒷거래의 찬란한 일상이여~~! "너 왜 이렇게 됐니?" 그러나 이런 질문을 하는 본인의 삶 역시도 모든 사람의 삶처럼 거짓과 감춤의 삶일 뿐이다. 다른 사람처럼 평범하게 살기를 바라는 소망은 정말 소망에 불과한건가? 몸 속으로 무딘 칼끝을 찔러넣는 인생. 만약 누군가 데려다 줄 수 있다면 엄마 뱃속으로 돌아가 다시는 세상으로 나오고 싶지 않은 그런 인생! 세상 모든 남편들의 일생은 비참하고 세상 모든 아내들은 삶은 또 그만큼 박복하다. 그리하여 삶은 또 다시 언제나처럼 비루하고 비참하다. 내가 세상을 사랑하지 않아서였나? 아니면 세상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였나? 자기분열의 결말을 지켜보는 관객에게 자기분열의 질문이 남는다. 피투성이 무대와 현란한 비발디의 사계 속에서...
8년 만에 재공연된 <돐날>은
길해연, 홍성경, 서현철 등 초연 때 섰던 배우들이 그 역할 그대로 돌아와 무대를 빈틈없이 채웠다.
그리고 배우 정승길.
이 멋진 배우들을 한 무대에서 볼 수 있다는 건 더없는 행운이었다.
비록 비루하고 비참한 삶의 관음이었지만
그 비루함을 채우는 배우들의 열연은 풍요로움 그 이상의 만찬이었다.
뭐라고 명명해야 할까?
이 거침없는 포만감을...
오랫만에 연극 한 편을 봤다.
<연극열전3> 여섯 번째 작품 <너와 함께라면>
연극 <웃음의 대학>을 쓴 일본 작가 미타니 고우키의 작품으로 역시 코믹이다.
연출은 내가 좋아하는 이해제,
출연 배우들도 탐나는 배우들이라 미리부터 예매했던 작품이다.
기간 : 2010.07.23 ~ open run
장소 : 대학로 문화공간 이다 1관
출연 : 서현철(아버지), 추귀정 (어미니),
큰 딸 (이세은). 작은 딸 (김유영)
남자친구 (송영창), 남자친구 아들 (박준서)
이발소 직원 (조지환)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말, 무지, 엄청, 유쾌하고 황당하게 재미있는 연극이다.
보는 내내 사람들의 웃음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마치 웃음소리를 계속 틀어놓은 시트콤처럼...)
2시간 동안 시종일관 사람을 쥐고 흔들면서 박장대소하게 만든다.
모든 상황이, 모든 대사가, 모든 행동이 전부 다.
그런데 그게 억지스럽지 않고 아주 자연스럽게 동화되고 있다는 사실.
사실 코믹물은 억지스런 짜맞추기 같아 개인적으로 거부감을 갖고 있는데 이 연극은 전혀 그렇지 않다.
너무나 황당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자, 상상을 해보자.
내가 부모인데 28살 꽃다운 나이의 큰 딸내미가
어느날 결혼을 하겠다며 애인 사진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가족들이 오해를 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고 덧붙인다.
가족들이 "청년 사업가"로 알고 있는
그 사람이 사실은 "청년 사업가"가 아니라는 거다.
그 오해의 부분이 차라리 "사업가" 라는 부분이라면 천만 다행일텐데
문제는 "청년"이 아니라는 부분에 있다는 거다.
딸의 남자친구는 73세의 파파 할아버지.
딸의 할머니와 같은 해에 태어난 분으로 엄연한 경로 우대증 소지자시다.
어찌어찌해서 아빠와 여동생에게는 이 사실을 밝혔는데 문제는 엄마!
엄마에게 사실을 말하려고 하는 게
오히려 거짓말에 거짓말 꼬리 잡기가 되고 만다.
노령의 남자친구는 여자친구의 집에 찾아와
한참 젊은 예비 장인(?)에게 "아버님!, 아버님!"을 연발하며 점수를 따기 위한 필살기 중이시다.
(섬뜩섬뜩한 귀엽성이 있더라. ^^)
설상가상으로 노인의 아들까지 찾아와 이야기는 더 꼬인다.
아들은 엄연히 남편이 있는 그 집 어머니를 자신의 아버지와 사귀는 분으로 착각하고
구렛나루를 휘날리며 "엄마! 엄마!"를 연발한다.
급기야 건장한 아버지는 이웃집 게이 남자로 둔갑해 버리고
이발소 종업원의 멀쩡한 눈은 졸지에 사시가 되버린다.
마치 탁구 경기를 보는 것 같다.
서로 받아치는 대사들은 탄력성 있고 하나하나 똑똑 튄다.
(원래 거짓말이라는 속성이 그렇긴 하지만...)
배우들의 연기가 감탄스러울정도로 능청맞다.
늙은 남자친구 역을 맡은 송영창이 예비 장인을 향해 날리는 필살기는 은근히 귀여운 게 중독성이 있다.
큰 딸 역의 이세은은 첫 연극 무대 데뷔인데 사실 좀 놀랐다.
연기 잘하는 배우들 틈에서 대략 묻어가겠거니 했는데
딕션도 괜찮았고 무엇보다 철없는 표정연기가 일품이더라.
작은 딸 김유영은 <스프링 에웨이크닝> 이 후 두 번째 작품인 것 같은데 신인같지 않은 안정감이 있다.
약방의 감초같은 역할...
거짓말의 퍼레이드는 오히려 그녀의 입에서 더 부풀려지고 한층 업그래이드 된다.
story-maker 역할이 바로 그녀인듯 싶다.
커튼콜때 그녀의 코에서 튕겨나온 땅콩은 내 손에 정확히 맞았다. (브라보~~)
연극에서 누구보다도 돋보였던 사람은 역시 아버지 역의 서현철.
예전에 <판타스틱스>라는 뮤지컬에서 유랑극단 대표로 나왔을 때도
얼마나 맛깔스럽고 재미있게 연기를 하던지 연신 감탄하면서 봤었는데
이번 연극은 서현철이라는 배우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발휘케 하는 작품인 것 같다.
소위 "물 만난 고기"라고나 할까?
말투와 표정, 행동들 하나하나가 전부 다 재미있고 유괘한 웃음을 자아낸다.
그것도 억지스러운 게 아니라 너무 자연스러워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맨발에 파자마 바람, 헝클어진 머리로 편안한 일요일 오후를 보내고 있는 아빠에게
쓰나미같이 벌어지는 가공할만한(?) 상황.
상당히 불편하고 거북스런 상황을 이렇게 유머와 위트로 만들 수 있다는 게 마냥 신기하다.
출연하는 배우들 7명 모두가 아주 똑 떨어지게 연기를 잘 한다,
과장스럽긴 해도 그 과장이 어디까지나 이 연극속에서는 오버처럼 느껴지지 않고 잘 어우러진다.
그래서 2시간 동안 충분히 즐겁고 유쾌하게 관람할 수 있었다.
다시 보라고 해도 처음 보는 것처럼 큰소리로 웃을 수 있을 것 같다.
그야말로 <너와 함께라면>
분명히 재미있고 유쾌한 시간을 다시 한 번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오랫만에... 오랫만에...
박장대소하면서 기분 좋아지는 연극 한 편을 봐서 아직까지도 흐뭇하다.
끈적끈적해서 불괘지수 높아지는 이 여름에
시원한 청량감마저 느껴지는 그런 연극 한 편을 만나다.
<너와 함께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