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끄적 끄적...2011. 10. 31. 08:32



아름다운 한 편의 시였다.
두고두고 눈에 아른거리는 묵향 가득한 단백한 수묵화였다.
마음을 그대로 훔쳐서 그 자리에 멈추게 하는 음악이었다.
숨통을 쥐고 흔드는 애뜻한 몸짓이었다.
여백이 그대로 몸 속을 울리고 마침내 오래 머무는 대사들이었다.
<바람의 나라>는 그랬다.
확실히 <바람의 나라> 무휼펀은 그랬다.
내게는 충격에 가까운 파격이며 세상에 다시 없을 반전이었다.
그런데 어쩌자고 호동편을 이렇게 만들었냔 말이다.
일말의 예의도 없이 전편의 그 장중하고 간결한 아름다움을
어쩌자고 이 정도로 송두리째 무너뜨릴 수 있느냔 말이다.
이건 거의 재앙 수준의 파괴고 몰염치한 퇴보다.
미안하다.
도저히 이렇게 밖에는 말 할 수 없어서... 나도 민망하고 미안하다.
차라리... 차라리...
무휼편을 다시 올리지...
그랬다면 그동안 <바람의 나라>를 목마르게 기다렸던 사람들이
오랫만에 해갈(解渴)의 기쁨을 맞봤을텐데...
아! 정말 절망적이다. 
심한 피곤과 노곤함 때문에 앉아있는 내내 힘들었다.



개인적으로 유희성 연출이 요즘 참 너무하다 싶다.
<바람의 나라> 호동편도 유희성 연출의 전작 <피맛골 연가>만큼 황당하다.
왠지 어디서 본 듯한 장면들이 많고
극의 분위기는 너무 발랄하다못해 경박의 수준까지 도달했다.
격조까지 바란건 아니지만,
그래도 무휼편의 감동을 이렇게 삭막하고 무자비하게 깎아버리지는 말았어야 했다.
아니면 차라리 <바람의 나라>라는 타이틀을 버리는 게 옳았다.
그랬다면 무률편에 애절함을 마음에 담고 있던 사람들이
지금처럼 배신감을 느끼지는 않았을텐데...
유희성 연출은 인터뷰에서 <피맛골 연가>에 이어 한국적인 요소를 담았다고 했다.
이런 경박함과 번잡스러움이 정말 한국적인 요소가 맞나?
무률편의 전투씬이 얼마나 장중하고 절박했는데...
그런 애타는 감정과 그 감정의 공유가 호동편에서는 전혀 드라나지 않았다.
메튜본의 백조의 호수를 떠올리게 하는 국적불명인 의상을 걸친(?) 호동의 신수(身守) 봉황은
그대로 나이트클럽에 가서 스피커를 붕등켜 안고 격한 춤을 춰도 되겠다.
누군가는 그러더라.
그 복장 그대로 <미스 사이공>에 바로 투입되도 되겠다고...
왕의 운명을 상징하는 신령한 신수에게서 닳고 닳은 작부의 이미지가 풍겼다면?
그렇다면 차라리 제대로 농염하기라도 하던가!
봉황은 호동을 지키는 신수가 아니라 호동을 유혹하기위해 싸구려 몸짓을 난발하는 요괴가 되고 말았다.
(제일 고생하긴 했다. 그 무거운 속눈썹을 깜박거리면서 한쪽팔을 들고 온몸을 끊임없이 배배 꼬느라고...)
음악도 귀에 들어오는 건 두어곡 밖에 안 되고.
더더군다나 난데없는 초등학교 학예회같은 음악들이 너무 자주 나와 정말 심장이 덜컹덜컹하더라.
스토리는 또 어찌나 빈약하던지 차마 눈뜨고 못보겠더라.
결국 광녀(狂女)가 되어 아비의 칼에 죽는 사비의 모습은 순간 개그콘서트로의 완벽한 빙의가 이루어진다.
헛헛한 웃음....
확실하게 꽃이라도 달던가...
아! 정말 심장이 여러번 덜컹거려 이 작품 도저히 두 번은 못보겠다.
높은 원통의 단위에서 "낙랑의 깃발을 가져오라!"며 호동을 고무시키던 사방신의 모습은 또 어떤가? 
레이스와 원색으로 치장된 옷은 <피맛골 연가>에 이어 또다시 롯데월드 페러이드를 떠올리게 했다.
특히나 고미경이 입었던 의상은 "인어공주"의 문어 마녀를 떠올리게 한다.
사방신에 문어가 새롭게 포함됐다는 소식 듣어본적 없고...
급기야 원색의 미역줄기 의상 사이사이로 레이저가 불꽃처럼 춤추는 장관이 연출될까봐 정말 조마조마했다.
허무하다.
속상하다.
그리고 화가 난다.
그대로 소리내서 억울한 통곡이라도 하고 싶다.
엉~~엉~~
서울예술단의 그 아름다운 <바람의 나라>는
정녕 어디로 사라져버렸는가 말이다!
흔적도 없이...

Posted by Book끄-Book끄
보고 끄적 끄적...2010. 9. 10. 06:33


서울시에서 3년의 준비과정을 거쳐 만든 창작 뮤지컬 <피맛골연가>
동아연극상, 대산문학상을 수상한 배삼식 작가가 극본을
뮤지컬 <싱글즈>, <형제는 용감했다>, <뮤직인마이하트>를 만든 작곡가 장소영
<뷰티블 게임>의 안무가 이란영,
그리고 뮤지컬 <모차르트> 유희성 연출까지
일단은 제작진들이 알차다.
거기에다가 우리의 영원한 줄리엣 조정은이 여자 주인공 홍랑을
<노트르담드파리>와 <모차르트>로 한창 주가 상승 중인 박은태가 김생역을
연기와 노래 잘하기로 유명한 양희경이 행매역으로 출연한다.
뮤지컬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must see 목록에 꼭 포함시키고 기다렸을 작품이다.



서울시는 이 작품을 서울시민과 국내외관광객들이 꼭 보고픈, 꼭 봐야 할 뮤지컬로 만들기 위해
지속적으로 작품을 보완하고 업그레이드 할 예정이란다.
18억이라는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제작한 창작 퓨전사극 뮤지컬 <피맛골 연가>
요즘은 "퓨전"이 유행이라 서울시에서도 유행에 뒤쳐지기 싫으셨던 모양이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퓨전이 아니라 정통 사극이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화성에서 꿈꾸다>나 <명성황후>같은...
보고 난 느낌은 뭐랄까...
왠지 모를 어색함, 그리고 묘한 불협화음.
대중적으로 유명한 이야기들의 중심 모티브만 열심히 짜집기한 모자이크 작품이다.
서울시에서는 2011년 지방공연에 이어 2012년에는 해외마케팅에 주력할 계획이라는데
그러기위해서는 아무래도 수정 보완이 많이 필요할 것 같다. (제발~~~)
창작뮤지컬을 서울시에서 만들었다는 건 참 고무적인 일이긴한데
아무래도 그 포부가 좀 과한게 아닌가 싶다.
<피맛골 연가>를 세계적인 뮤지컬 <캣츠>나 <오페라의 유령>처럼
문화적 차이에도 무관하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작품으로 만들겠다는
글쎄 과연 이 상태로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을지는 솔직히 많이 의심스럽다.



행매 양희경의 <한천년>으로 시작되는 <피맛골 연가>
양희경의 목소리가 주는 아우라는 관객들을 초반에 완벽하게 몰입하게 만든다.
그리고 양희경의 시작은 이 작품 초반의 큰 장점이자 두고두고 참 다행스런 부분이기도 하다.
이어지는 무대 장치나 군중 장면은 나쁘지 않고
관객들의 호응도 좋은 편이다.
그런데 작품을 볼수록 점점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굳이 피맛골이 아니었어도 되는 거쟎아!
조선시대 고관들의 말을 피해 서민들이 다녔던 좁은 골목길 피마(避馬)골.
그러나 작품 속에서 서민들 설움과 아픔이 절절하게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이야기의 개연성도 많이 부족하다.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민화와 민요같은 해학과 위트는 나쁘지 않다.
가령 서출들의 노래나 비밀연애 장면같은 부분들.
뻐국, 야옹, 부엉...
사물놀이나 창을 활용한 음악들도 참신했고 안무 역시나 이란영스럽게 깔끔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이상하게도 아주 괜찮은 작품같아 보인다....
문제는 역시나 빈약한 스토리에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김생 역의 박은태는 주로 노래 위주의 공연을 많이 했던 탓인지
대사 연기가  조금 어색하게 느껴진다.
케릭터를 그렇게 정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목소리 톤이 너무 높은 미성이다.
그래도 "푸른 학은 구름 속을 우는데"나 2막에서 홍랑을 만나기 위해 절규하듯 부르는 노래는 아름답더라.
노래의 감성은 확실히 대단한 배우다.
뮤지컬 배우 남녀를 통틀어 가장 한복이 잘 어울리는 조정은.
그녀는 역시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김생보다 등장은 적지만 노래도 자태만큼 아름답고 고왔고
연기도, 목소리도 작품과 잘 맞는다.



2막에서의 쥐 세계의 등장은 솔직히 많이 당황스럽다.
서출(庶出)의 "서"와 쥐를 뜻하는 서생원 "서(鼠)"를 연결한 발상이라는데
관객들이 그렇게 연결해서 생각하기에는 이미 우리가 한자생활과 너무 멀리 와버렸다.
기껏 300년의 시간을 지나 왜 하필 김생을 쥐의 세계로 보내버렸는가 말이다.
개나 소가 아니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동화스런 세계에 19금 대사는 또 왠 말이고...
너무 좋은 노래들이 많이 나옴에도 불구하고 2막때문에 전체적으로 작품이 가볍게 느껴진다.
힙합에 랩, 절절한 발라드와 창 비슷한 노래들의 혼합은
처음 보는 낯선 비빔밥을 앞에 놓고 있는 심정이다.
이걸 비벼야하나? 말아야 하나?
인터넷상으로 많이 들었던 주옥같이 아름다운 노래들은 급기야 허술한 스토리에 묻혀버리고 만다.
그래서 슬프고 애절하다.
(어쨌든 슬픈 작품이 되긴 했다...)
안타까운 심정은 홍랑과 김생의 재회하는 엔딩 장면 "아침은 오지 않으리"에서 그 정점을 찍는다.
심하게 차전놀이스러운 장면 연출에 나는 그만 경악하고 말았다.
두 사람의 노래는 애절하고 감동적인데
그 밑에서 정체불명의 무빙셋트를 움직이며 허우적대는 서생원들을 어찌하리...
왜 까치를 등장시켜 오작교라도 놓으시지...
서울시가 차려준 18억의 밥상 앞에 숟가락 챙겨 들고 
아직까지 나는 당황하고만 있는 중이다.
이를 어쩌나......



이 좋은 노래들, 이 좋은 배우들을 다 어쩌나...
둥치만 남은 매화나무처럼 막막하다.
참 모질기도 모질다.
참 질기기도 질기다.


                                  <아침은 오지 않으리 - 박은태, 조정은>
Posted by Book끄-Book끄